현송월 가까이서 모셔라" 눈발 날리자 우산 받쳐든 국정원
초강력 태풍 ‘현송월’호가 한반도 남녘을 휩쓸고 갔다. 북한 대남 전략가들이 씌워 준 ‘삼지연관현악단장’이란 모자에 걸맞지 않는 위세를 과시했다. 우리 당국자가 줄줄이 달려나가 병풍을 섰고, 시민 동선마저 끊어버리는 삼엄한 경호를 받았다. 전용 고속열차(KTX) 편성에 특급 호텔 최고급 룸, 코스 요리가 마련됐다. 과도한 예우는 논란을 불렀다. 그 중심엔 뜻밖에도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숨어있다. 현송월의 남한 체류 37시간 동안 막후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추적해봤다.
공자는 논어에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는 5가지 덕목’으로 공손(恭)과 관대함(寬), 믿음(信), 영민함(敏), 나눔(惠)을 설파했다. 그중 으뜸으로 공손함을 꼽았다. 경고도 잊지 않았다. 바로 ‘지나친 공손은 예의와 어긋난다’는 점이다.
과공비례(過恭非禮)가 외교나 체제 간 접촉 공간에서 불거지면 참사가 된다. 21일 시작된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장의 남한 방문 1박2일은 그 전형이다. 시쳇말로 “이게 실화냐”라는 걱정이 국민 사이에 나올 정도로 지나쳤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본래 20일 방문한다던 북측은 합의를 뒤엎고 하루 뒤로 늦췄다. 상황 설명도 않는 오만함을 보였다. 그런데도 관계 당국은 북한 처분만 기다렸다. 저자세란 비판이 쏟아졌다.
현송월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자 점입가경이 됐다. 출입경사무소 소파에 꼿꼿하게 앉은 현송월에게 국가정보원 간부는 “머무시는 동안 불편함 없도록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깍듯하게 말했다. 이런 다짐은 우리 취재진을 거칠게 밀치며 “현 단장께서 불편해하신다”며 역정을 낸 국정원발 촌극의 서곡에 불과했다. 당국이 제공한 현송월 관련 영상엔 목소리가 없다. 북측의 요구에 따라 무리수를 둬가며 편집해버린 것이다.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의 이탈리아제 조명을 바꿔 달라는 현 단장의 과잉 요구에 당국은 “시설 교체를 검토하겠다”며 자세를 낮췄다.
국가정보원은 남북 대화나 교류 현장을 장악하고 있다. 북측 대표단이 탄 차량은 물론 근접 경호·의전 인력도 모두 국정원 소속이다. 이동수단이나 통신은 물론 호텔 숙소와 방문지 선정도 주도한다. 현송월 일행을 밀착 경호하는 건 검은색 국정원 안전통제단 차량이다. 경찰차나 사이드카는 외곽만 맡는다.
현송월 과잉 접대의 정점은 KTX 특별열차 편성이다. 7명의 북측 점검단을 위해 서울~강릉 간 왕복편을 운행했다. 서울~강릉 편도 요금은 2만7600원을 책정돼 있다. 통상 900명 탑승 기준으로 볼 때 왕복 운행에 5000만원 가까운 비용이 든다는 게 코레일 측 설명이다. 모두 국민 세금이다. 일반 시민과 함께 현 단장을 태워 우리 사회의 자유와 풍요를 확인케 하는 게 바람직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도한 인력 투입과 ‘현송월 모시기’를 두고 국정원 내부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현장에 나간 모 간부가 현송월을 따르던 여성 요원의 몸을 손으로 밀어붙이면서까지 ‘가까이서 챙기라’고 채근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는 걸 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말했다. 국립극장 방문 때 눈발이 날리자 국정원 관계자들이 대형 우산을 펼쳐 현송월과 북측 실무진을 챙기는 볼썽사나운 장면도 연출됐다. 남북 대화에 오래 종사한 당국자는 “국민의 불편한 시선을 고려해 북측 관계자가 현송월을 보좌토록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 아니다. 2000년8월 이산가족 상봉단장으로 서울에 온 유미영 북한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은 귀빈 대접을 받았다. 한국 외무장관을 지낸 최덕신의 부인인 유미영은 1986년 4월 남편과 월북한 뒤 반한(反韓)활동을 주도했다. 그런데 국정원이 그의 전담 수행원으로 투입한 게 다름 아닌 대공 수사요원이었다. 이 직원은 “빨갱이 잡는다는 일념 하나로 일해온 내가 월북인사의 경호를 맡다니...”라며 통음했다.
따지고 보면 이런 국가 정보기관의 몰락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벌어졌다. 4억5000만 달러 대북 비밀 송금을 위해 국정원이 불법 환전소 역할을 맡고, 일부 직원 계좌까지 동원했다. 그러고도 “전혀 근거 없고 말이 안 된다”며 발뺌했다. “군사비 전용 우려를 알고 있었다”는 당시 고위간부의 특검 진술은 충격이었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조직적인 대국민 기만행위에 대해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없다. 정상회담 만찬에서 김정일에게 와인을 따르던 국정원장의 모습은 대북 정보기관의 진혼곡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참가 결정이 “평창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기여할 것”(21일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란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바람 앞의 촛불 지키듯 남북대화를 지켜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지켜야 할 것은 대화만이 아니다. 남북관계의 원칙과 대한민국의 국격 또한 더없이 소중한 가치다.
보수정권 아래선 ‘국정원 발’ 현송월 처형설이 나오자 확산을 수수방관하던 국정원이다. 정권이 바뀌자 현송월 모시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 안쓰럽다. 미덥지 않은 대북정보에 이젠 대공수사까지 포기하겠다고 나선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다. 이런 국정원을 북한은 맘껏 조롱하고 있다. 어제자 노동신문은 국정원의 극진한 예우를 받은 현송월의 서울 방문 사진을 실었다. 북한 김정은의 표현대로라면 ‘노래폭탄’을 싣고 올 선봉장을 환대한 꼴이다. 한때 대남비난 단골 메뉴이던 ‘국정원 철폐’ 요구는 북한 선전매체에서 사라졌다. ‘남조선 특무’로 불리며 북측에 공포의 존재이던 국정원은 이제 녹록한 상대로 전락한 것이다.
국민들도 국정원의 현송월 칙사(勅使) 대접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언제 대한민국과 국민을 그토록 지극 정성으로 섬겨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느냐”고 반문한다. 국정원이 5년째 북한에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 등 우리 국민 6명의 소재는 파악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민들은 왜 정보기관이 존재하는지, 국민 세금으로 왜 천문학적인 정보비와 퇴직 후 연금까지 챙겨주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현송월 모시기’ 작전에 동원됐다 구설에 오른 국정원 직원들은 한번쯤 내곡동 청사 옆 충혼탑을 찾아보았으면 한다. 거기엔 대공전선에서 숨져간 52분의 선배 요원들의 넋이 숨 쉬고 있다. 1996년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고(故) 최덕근 영사도 그중 한 분이다.
세계 정보기관이 전범(典範)으로 삼는 이스라엘 정보조직 모사드의 캐치프레이즈는 강한 울림을 준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지만,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린다”는 경구다. 우리 국가 정보기관의 지략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북 점검단 극진히 챙긴 정보 당국
7명 위해 전용 KTX 등 과잉 의전
‘처형설’ 방관하다 ‘모시기’ 나서
국정원 안팎서 “과했다” 볼멘소리
“북 억류 6명 소재는 파악했는가”
국민 비판 여론에도 귀 기울여야
공자는 논어에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는 5가지 덕목’으로 공손(恭)과 관대함(寬), 믿음(信), 영민함(敏), 나눔(惠)을 설파했다. 그중 으뜸으로 공손함을 꼽았다. 경고도 잊지 않았다. 바로 ‘지나친 공손은 예의와 어긋난다’는 점이다.
과공비례(過恭非禮)가 외교나 체제 간 접촉 공간에서 불거지면 참사가 된다. 21일 시작된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장의 남한 방문 1박2일은 그 전형이다. 시쳇말로 “이게 실화냐”라는 걱정이 국민 사이에 나올 정도로 지나쳤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본래 20일 방문한다던 북측은 합의를 뒤엎고 하루 뒤로 늦췄다. 상황 설명도 않는 오만함을 보였다. 그런데도 관계 당국은 북한 처분만 기다렸다. 저자세란 비판이 쏟아졌다.
국가정보원은 남북 대화나 교류 현장을 장악하고 있다. 북측 대표단이 탄 차량은 물론 근접 경호·의전 인력도 모두 국정원 소속이다. 이동수단이나 통신은 물론 호텔 숙소와 방문지 선정도 주도한다. 현송월 일행을 밀착 경호하는 건 검은색 국정원 안전통제단 차량이다. 경찰차나 사이드카는 외곽만 맡는다.
현송월 과잉 접대의 정점은 KTX 특별열차 편성이다. 7명의 북측 점검단을 위해 서울~강릉 간 왕복편을 운행했다. 서울~강릉 편도 요금은 2만7600원을 책정돼 있다. 통상 900명 탑승 기준으로 볼 때 왕복 운행에 5000만원 가까운 비용이 든다는 게 코레일 측 설명이다. 모두 국민 세금이다. 일반 시민과 함께 현 단장을 태워 우리 사회의 자유와 풍요를 확인케 하는 게 바람직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도한 인력 투입과 ‘현송월 모시기’를 두고 국정원 내부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현장에 나간 모 간부가 현송월을 따르던 여성 요원의 몸을 손으로 밀어붙이면서까지 ‘가까이서 챙기라’고 채근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는 걸 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말했다. 국립극장 방문 때 눈발이 날리자 국정원 관계자들이 대형 우산을 펼쳐 현송월과 북측 실무진을 챙기는 볼썽사나운 장면도 연출됐다. 남북 대화에 오래 종사한 당국자는 “국민의 불편한 시선을 고려해 북측 관계자가 현송월을 보좌토록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 아니다. 2000년8월 이산가족 상봉단장으로 서울에 온 유미영 북한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은 귀빈 대접을 받았다. 한국 외무장관을 지낸 최덕신의 부인인 유미영은 1986년 4월 남편과 월북한 뒤 반한(反韓)활동을 주도했다. 그런데 국정원이 그의 전담 수행원으로 투입한 게 다름 아닌 대공 수사요원이었다. 이 직원은 “빨갱이 잡는다는 일념 하나로 일해온 내가 월북인사의 경호를 맡다니...”라며 통음했다.
따지고 보면 이런 국가 정보기관의 몰락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벌어졌다. 4억5000만 달러 대북 비밀 송금을 위해 국정원이 불법 환전소 역할을 맡고, 일부 직원 계좌까지 동원했다. 그러고도 “전혀 근거 없고 말이 안 된다”며 발뺌했다. “군사비 전용 우려를 알고 있었다”는 당시 고위간부의 특검 진술은 충격이었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조직적인 대국민 기만행위에 대해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없다. 정상회담 만찬에서 김정일에게 와인을 따르던 국정원장의 모습은 대북 정보기관의 진혼곡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참가 결정이 “평창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기여할 것”(21일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란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바람 앞의 촛불 지키듯 남북대화를 지켜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지켜야 할 것은 대화만이 아니다. 남북관계의 원칙과 대한민국의 국격 또한 더없이 소중한 가치다.
보수정권 아래선 ‘국정원 발’ 현송월 처형설이 나오자 확산을 수수방관하던 국정원이다. 정권이 바뀌자 현송월 모시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 안쓰럽다. 미덥지 않은 대북정보에 이젠 대공수사까지 포기하겠다고 나선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다. 이런 국정원을 북한은 맘껏 조롱하고 있다. 어제자 노동신문은 국정원의 극진한 예우를 받은 현송월의 서울 방문 사진을 실었다. 북한 김정은의 표현대로라면 ‘노래폭탄’을 싣고 올 선봉장을 환대한 꼴이다. 한때 대남비난 단골 메뉴이던 ‘국정원 철폐’ 요구는 북한 선전매체에서 사라졌다. ‘남조선 특무’로 불리며 북측에 공포의 존재이던 국정원은 이제 녹록한 상대로 전락한 것이다.
국민들도 국정원의 현송월 칙사(勅使) 대접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언제 대한민국과 국민을 그토록 지극 정성으로 섬겨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느냐”고 반문한다. 국정원이 5년째 북한에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 등 우리 국민 6명의 소재는 파악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민들은 왜 정보기관이 존재하는지, 국민 세금으로 왜 천문학적인 정보비와 퇴직 후 연금까지 챙겨주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현송월 모시기’ 작전에 동원됐다 구설에 오른 국정원 직원들은 한번쯤 내곡동 청사 옆 충혼탑을 찾아보았으면 한다. 거기엔 대공전선에서 숨져간 52분의 선배 요원들의 넋이 숨 쉬고 있다. 1996년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고(故) 최덕근 영사도 그중 한 분이다.
세계 정보기관이 전범(典範)으로 삼는 이스라엘 정보조직 모사드의 캐치프레이즈는 강한 울림을 준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지만,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린다”는 경구다. 우리 국가 정보기관의 지략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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