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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소식

두 권력자의 ‘통 큰 결단’ 비핵화·평화협정 난제

여행가/허기성 2018. 3. 10. 03:24

[북·미 정상회담]

두 권력자의 ‘통 큰 결단’ 비핵화·평화협정 난제 풀 큰 동력

ㆍ한반도·동북아 안보 구조적 변화 단초…전인미답의 여정 출발
ㆍ남·북·미 모두 전통적 외교라인 배제 ‘정치적 의지’로 이룬 성과
ㆍ세부절차 논의 과정, 유례없이 복잡하고 지난한 협상될 듯
ㆍ첫 대화 합의 의미·특징·전망

방미 중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이 8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뒤뜰 웨스트윙 앞에서 서훈 국가정보원장(왼쪽), 조윤제 주미 한국대사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가 담긴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북한과 미국의 첫 정상회담 합의 과정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과감한’ 정상회담 제안을 전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제안을 수용하면서 “5월 안에 만나자”고 답했다. 한국전쟁 종료 직후부터 북한이 반세기가 넘도록 갈망해온 미국과의 정상회담은 전격적이고 신속하게 결정됐다.

북·미 정상회담은 그 자체로 역사의 한 장면이 될 수 있다. 한국전쟁 휴전협정이 60년 이상 이어져 왔지만 양측은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전쟁 중’인 교전국이다. 특히 미국 현직 대통령이 미수교국이며 ‘불법 핵무장국’이자 최악의 인권탄압국인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직접 만나는 것은 상상키 어려운 일이었다.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정세와 동북아시아 안보환경을 구조적으로 변화시키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예상되는 결과는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에 동의하고 북·미 양측이 비핵화 과정에서 서로에게 필요한 외교·경제·군사적 조치에 합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비핵화, 평화협정, 북·미관계 정상화 등이 논의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 같은 난제들을 병행 추진하면서 풀어가야 하기 때문에 당사국들은 외교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전인미답’의 여정을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포함한 일정한 합의에 도달하게 되면 지구상에 마지막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며 “합의 이행을 위한 세부절차 논의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복잡하고 지난한 협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의 정상회담 합의 과정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단계적 접근법이 아니라 전형적인 최고위급 주도의 ‘톱다운’(top-down)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최고지도자의 ‘통 큰 결단’을 통해 일을 풀어나가는 것은 북한을 포함한 절대권력의 독재국가에서 흔히 나타나는 외교 방식이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고 여론과 절차적 정당성이 중요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파격적이고 예측불허의 권력자가 탄생하면서 이 같은 합의가 가능해졌다.

일각에서는 이런 방식이 오히려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전직 관료 출신의 북한 문제 전문가는 “북·미 협상은 여러 가지 현실적 제약에 가로막혀 수십년 동안 진전이 없었다”면서 “앞으로 실무적 현안을 논의할 때 난관에 봉착할 수 있겠지만 정상 간에 이미 원칙적인 합의를 해놓은 것이 있다면 그런 난관을 돌파하는 데 큰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미가 모두 전통적인 외교라인을 배제한 채 회담을 추진한 것도 눈에 띈다. 미 국무부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기능부전 상태에 빠져 있고 한국도 외교부 대신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전면에 나섰다. 북한도 외무성과 대미·북핵 협상 관련 인물들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남북·미 모두 강한 ‘정치적 의지’로 성과를 만들어낸 셈이다.

하지만 향후 실무 현안을 조율하고 협상을 진행하는 단계에서는 이 분야에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전문 외교관료들의 역할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중국을 거치지 않고 북한과 ‘직거래’를 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앞으로 북·미는 정상회담 사전조율, 합의 이행 논의 등을 위해 빈번히 접촉해야 하기 때문에 확고한 소통 채널을 갖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북한 문제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던 중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북·중관계는 물론 ‘한·미·일 대 북·중’이라는 패턴화된 구도가 재편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한국 역할도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북·미대화가 재개되면 서로의 인식 차이를 메우고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소통을 도와주는 중재 역할이 필요하다.

정부 당국자는 “북·미가 만나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만으로 우리 역할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며 “한국의 중재외교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