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철도 연결되면 1억명 소비시장 열린다"
남북분단 73년, 수없이 되뇌인 ‘통일이 된다면’이라는 가정은 이상에 불과했다. 2000년과 2007년, 남북 정상이 손을 마주잡았을 때 통일이 왔다고 생각했지만, 38선의 벽은 높았다. 2018년 4월 27일, 남과 북의 정상이 다시 만났다. 통일은 이상임을 알지만,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이기에 한 번 더 희망찬 기대를 해보려 한다. ‘통일이 된다면’이라는 가정과 함께 변화될 한반도 및 건설업계 모습을 국토연구원 이상준 부원장에게 들어봤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났지만, 정상회담과 경제협력은 다른 문제다. 언제 쯤 북한에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
사회주의, 폐쇄적 국가가 정상국가로 전환한 아시아의 대표적 사례가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미국과 수교하면서 경제를 개혁·개방했다. 북한도 비슷한 과정 밟지 않을까 싶다. 비핵화 과정을 통해 정상국가 길로 접어들고, 국제사회 일원으로 들어갈 거다. 국제 금융기구에 가입하고, 그런 과정에서 국제기구 지원과 함께 경제를 발전시키는 프로세스다. 이 과정은 아무리 빨라도 10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 남북 통일 비용은 500~4800조 원으로 추정된다. 독일의 경우 통일 이후 산업기반 인프라에 전체 비용의 11.6%를 투입했는데, 한반도의 인프라 투자액도 비슷한 수준일까
통일비용은 어떤 가정을 하느냐에 따라 고무줄처럼 달라진다. 북한에서 이뤄지는 사업을 한국이 독점해서 진행하느냐 아니면 외국이 참여하냐에 따라 개발비용은 천차만별이다. 다만, 철도와 주택, 항만, 공항, 수자원 등을 개발하는데만 300~400조 원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된다. 통일 이후 약 20년간 들어갈 비용이다.
북한의 주 교통수단은 철도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단순 통계로 전철화율만 따지면 남한보다 비율이 높지만, 가동률은 훨씬 낮다. 전기 공급이 안 되니까 정규 운행 속도의 20~30%도 못 내고 있다. 철도가 많다고 하지만, 현재 북한의 철도는 쓸모가 별로 없다. 통일이 되면 완전히 새로 깔아야 한다. 상대적으로 차량이 많지 않으니 도로도 엉망이다. 고속도로는 완전 포장도 안 돼 있고, 상태가 좋지 못하다. 북한의 고속도로는 평양-남포 구간, 평양-원산 구간 등 평양 중심으로 동서남북 일부만 연결돼 있다. 고속도로를 새로 건설하는데 상당한 비용이 들어갈 거다.
- 북한의 주택보급률도 상당히 낮다.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주택 공급이 필수적인데, 어떤 방식으로 공급될 것으로 보는가
북한의 주택보급률은 70% 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추진했던 주택 200만 호 건설처럼 북한도 향후 10년간 300~400만 호의 신규주택을 건설해야 한다. 북한의 주택 분야는 의외로 빠른 속도로 시장이 형성돼 가고 있다. 북한에서는 토지와 주택의 소유권이 국가에 있지만, 건축물의 사용권은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다. 통일 이후 북한 주요 도시의 중산층을 대상으로는 아파트 분양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주택이야 말로 정부 돈을 다 투입할 수 없다. 북한지역 개발과 연계해 여러 형태를 검토해야 한다. 북한 상류층 대상으로는 분양을 하고, 일부는 관광 수익형 사업을 만들면서 주택 공급을 패키지로 묶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민간자본을 끌어 들이는 아이디어가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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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개발 시나리오로 서북축 인프라회랑 프로젝트와 동부축 인프라회랑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북한의 개발은 자연적, 지형적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부축과 동부축을 중심으로 이뤄질 거다. 서울에서 평양, 신의주를 연결하는 서부축, 서울·원산·청진·나선으로 가는 동부축이다. 북한은 동쪽이 산악지역이고, 서쪽에 평야가 많다. 우선, 북한 인구의 60%가 살고 있는 서부축의 개발이 필요하다. 동부축은 강원도, 함경도로 연결시켜 동해안을 따라 연결하게 된다. 두 축을 따라 철도와 도로 개발의 우선순위라든지, 산업단지 및 주택 개발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남한에서는 서울을 제외하고 인천이 중요하다. 인천공항은 해외 물자가 들어오는 관문이고, 해상으로 보면 인천항과 남포항을 통해 평양이 연결될 수 있다. KTX 같은 철도가 부산에서부터 신의주로 갈 때 서울을 관통하지 않는다면 인천이 우회할 수 있는 대안이 된다. 인천은 수도권에서 관문 역할을 하고 있지만, 통일 이후에는 해주와 개주의 관문이 될 수 있다. 육해공 측면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다.
남과 북이 철도로 연결되면 폐쇄돼 있던 인구 2000만 명의 소비시장이 새롭게 형성된다. 더 중요한 건 북한을 매개로 중국 동북삼성(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이 육상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동북삼성에는 1억 명 정도의 인구가 있는데, 동북지역 인구와 시장이 남한과 직결된다. 단순히 북한 2000만 시장 아닌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경제권이 한반도를 통해 만들어 질 수 있다. 사실 중국이나 러시아는 북한에 대규모 투자를 할 생각이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 북한은 군사안보적으로 중요하지 경제적으로 매력적인 투자처는 아니다. 실제로 돈을 낼 사람은 우리밖에 없고, 김정은도 그것을 안다. 중국과 러시아는 2000만의 숫자를 보지만 우리는 북한 넘어서를 볼 수 있다.
- 통일이 된다면 한반도 토지 이용 방법 달라질 것 같다. 현재의 강남 중심의 부동산 시장, 수도권 과밀현상에도 변화가 올까
강남이나 수도권에 대한 수요는 더 올라갈 수 있다. 우리는 남한에서 북한으로 올라가는 것만 생각하지만, 위에서 내려올 수도 있다. 지금 북한에서 조금 산다는 사람들도 대치동에 살고 싶어 할 거다. 이 때문에 남한의 땅값은 더 올라갈 수 있고, 수도권의 과밀화 현상도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서울과 수도권은 통일 이후의 모습을 생각하고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 북한 개발에는 민관의 협력이 중요하다. 정부에서는 일관된 대북 정책이 필요하고, 민간에서도 북한 개발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정부는 차분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북한 개발하는 것이 남한에도 도움이 되고 북한에도 도움 되는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개발의 큰 그림인 로드맵과 300~400조 원에 달하는 자금 조달 방식이 중요하다. 또한, 북한이라는 파트너를 어떤 형태로 설득하면서 개발할지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해야 시작할 때다.
민간은 창의적으로 고민하면 좋겠다. 과거의 남북경협은 가난한 북한을 잘사는 남한이 동포로서 끌어안고, 잘 살게 만들어서 균형을 맞춰보자는 접근이었다. 2018년 지금은 한 단계 더 나가야 한다. 한국은 성장의 정체기에 들어가서 고실업, 고령화의 한계에 직면했고,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자동차가 언제까지 버틸지 모른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서 북한과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의 저임 노동력을 활용해 돈 버는 시기는 지났다. 개성공단은 남북협력의 물꼬를 튼다는 의미가 있었지만, 이제는 중국과 일본과 경쟁할 수 있는 신상품이 필요하다.
건설사는 한국에서 규제 때문에 하지 못하는 실험적인 사업을 북한에서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하 20~30도까지 내려가는 북쪽 지역에 맞는 건설기법을 개발하는 거다. 이런 기술은 시베리아, 북극에 가서 상품화할 수 있다. 창의적인 아이템으로 북한에 진출한다고 하면 정부가 지원할 수 있다. 청진에 2000~3000세대의 타운 만들겠다고 하면 북한 당국도 관심을 보일 거다. 정부사업의 하청만 생각하지 말고, 북한을 신기술 개발의 테스트베드로 삼아 선도적인 비즈니스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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