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 뛰는데 위약금이 대수?"..계약파기 속출
남북관계 호전에 개발 기대심리↑..지가 상승
땅값 오르자 계약 파기 잇따라..매수자, 소송전 불사
"토지주가 계약을 거부했는데 매수자가 중도금까지 입금하는 경우도 있어요. 조만간 소송이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올 겁니다." (문산역 인근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면서 접경지역 토지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고 있다. 호가는 단숨에 30% 이상 뛰었고 토지주들은 매도를 철회하고 버티기에 돌입했다. 전국에서 몰려든 투자자들이 가세해 일단 계약금부터 입금하는 '묻지마 투자'까지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방남으로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매도자가 계약 파기를 결정하면서 매수자들과 불협화음까지 예상되고 있다.
지난 30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역에서 차를 타고 10여분. 문산읍 마정리는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시골마을로 고요한 분위기였다. 넓은 농지에 몇몇 주민들이 농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임진강을 둘러싼 철조망과 맞닿아 있는 이곳은 전국구 투자처로 단숨에 이름을 올렸다. 투자자들은 북한과 인접한 민통선 내부 출입이 제한돼 마정리 일대를 우선적으로 답사한다고 인근 중개사들은 설명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농지는 3.3㎡당 20만원이었는데 야금야금 오르더니 호가는 30만원에 달한다"며 "현재 나온 물건도 다시 토지주에게 확인해봐야 할 정도로 매물은 씨가 말랐다"고 전했다.
현지에선 지난 2월 평창올림픽을 전후로 손바뀜이 상당수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10여년전 고점 매수로 애를 태웠던 토지주들은 정리를 마무리했고 기존 시장에 나와 매수자를 기다렸던 매물은 정리됐다. 지금은 호가가 높아진 매물이 일부 있다.
또 다른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평창올림픽 개막 전에 매수를 포기한 고객이 다시 해당 물건 계약이 가능하냐고 문의했다"며 "당연히 당시 가격에 매수를 할 수도 없고 매물도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남북관계가 예상보다 빠르게 개선 움직임이 나타나자 투자자들이 접경지역 땅 매수에 몰리고 있다. 민간인 출입이 제한된 민통선 내부에선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 설명이다. 아직까지 가격이 저렴한 데다 정부의 개발 소식에 직접적인 수혜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토지주들도 덩달아 매물을 회수하고 호가를 터무니없는 수준까지 높게 요구하고 있다. 최근 토지주들은 계약금까지 받은 상황에서도 거래를 취소하겠다는 태도로 돌변했다. 계약금의 2배로 위약금을 지불하더라도 땅값이 더 뛸 것이란 기대감에 매물을 걷워들인다는 것이다.
이에 매수자들은 중도금과 잔금을 서둘러 입금해 언제 바뀔지 모를 땅 주인의 변심에 대응하고 있다고 한 중개인은 귀띔했다. 앞으로 토지주와 매수자 사이에 소송전까지 나타날 것이란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문산역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매수자들은 소송전을 예상하고 막무가내로 중도금을 입금하고 있다"며 "앞으로 곳곳에서 소송이 난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도 "매도자가 취소 의사를 우선적으로 밝힌 경우엔 당연히 해당 거래는 무효"라면서도 "매수자는 계약금뿐 아니라 중도금까지 단번에 입금해 매도자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막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지에선 투기과열이 계속되면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가능성도 언급됐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란 지가의 급작스런 상승 또는 우려가 있는 지역에 땅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설정하는 지역을 말한다. 지정 이후엔 거래엔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전문가들은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한 가장 강력한 규제라고 입을 모았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은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면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현지에선 과거 노무현 정부시절부터 장단면 일대에 개발소문이 불었다고 설명했다. 장단면은 민통선 내부 지역으로 임진강 건너편 입지다. 당시 남북 화해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투자자들이 대거 몰려 '묻지마 투자' 진행됐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분위기는 꺾였다고 한다.
최근 장단면 일대 분위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토지주들은 사인만 남은 계약도 포기한 채 매물을 걷워들이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제2개성공단' 조성을 검토하고 유력 후보지로 장단면 일대가 거론되면서 이 일대 땅값이 다시 출렁이고 있다.
중개업소에선 장단면이 교통호재를 이유로 들며 제2개성공단에 안성맞춤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서울문산고속도로 (2020년 예정)가 개통되면 서울과 북한을 연결하는 사업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경의중앙선이 종착역인 문산역이 도라산역으로 연장된다면 추가적인 토지가격 급등을 기대할 수 있다고도 했다.
문산역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미 지역 일대에선 정부가 장단면을 개발하겠다는 소문은 퍼져 있어 새로운 소식은 아니다"며 "10년을 기다린 토지주들은 앞으로 몇 년 정도는 더 기다리겠다고 매물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장단면 소재의 매물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거래는 상당수 진행돼 버티기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중개사들도 민통선 내부 토지는 대기자 명단만 받고 있었다.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에게 가격대를 묻자 그는 "투자자 대부분이 1억원미만으로 찾고 있지만 소액 매물은 없다"며 "시장에 풀린 매물도 없어 사실상 가격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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