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 신부님 계셨다면 '야~ 잘 했어'라며 툭 치셨을 것"
고(故) 이태석 신부가 살아생전 의료봉사를 펼친 수단에서 우리나라에 온 토마스 타반 아콧(34)이 21일 의사국가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이태석 신부를 기리며 그토록 바라던 의사의 꿈을 마침내 이룬 것이다. 한국에 온지 9년 만에 얻은 결실이다.
토마스는 앞으로 인턴과정 1년, 외과 전공의 수련 과정 3년을 거치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외과전문의 자격증까지 손에 쥐고 나면 고국 수단으로 돌아가 꺼져가는 생명을 구하는데 평생을 바칠 각오다.
그는 기본적인 의료시설조차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단에서 외과전문의로서 활약해 갈 자신의 앞날이 결코 장밋빛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술로 이태석 신부님의 뜻을 이어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의사 시험에 최종합격한 소감을 묻자 토마스는 "이태석 신부님이 '야, 잘했다'라고 등을 한 대 치면서 웃으셨을 것"이라며 "정말 많이 기뻐하셨을 것 같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그동안 (한국에서)정말 굉장한 시간들을 보냈다"라면서 그동안 어려움을 참고 버텨왔던 지난 날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는 "누구보다 신뢰받는 의사, 인간적인 유대와 뛰어난 공감능력으로 마음까지도 치유해주는 그런 외과전문의가 되고싶다"고 강조했다.
▶지난 번 시험 합격 결과 발표때는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확인을 하려고 자판기를 두드리는 손이 덜덜 떨렸다. 오늘 오전 11시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니 빨간색 글씨로 '축하합니다'라는 문구가 씌어있었다. 그 다음에 '최종합격'. 처음에는 그저 '멍'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떠올라 누구에게 연락해야할 지 머리가 복잡했다. 어머님과 가족들이 정말 많이 기뻐해주셨다.
―지난 번 실기시험 때 고배를 마셨는데 힘들지 않았나?
▶첫 날에는 마음이 정말 힘들었다. 다음 날에는 '별 것 아닌 일'이라 여기고 넘기기로 했다. '한국인도 떨어지는 의사국가시험인데, 난 이만큼 해낸 것도 대단하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일으켜세웠다. 이후에는 외우기와 연습, 반복뿐이었다. 나처럼 필기시험에는 합격했지만 실기에 떨어진 한국인 친구 한 명과 함께 늦은 밤까지 실기시험 연습에 매진했다. 한글로 공부해야하는 만큼 장애도 많았다. 진료문항, 수기문항을 모두 합하면 86개다. 연습을 엄청나게 했다. 함께 공부한 친구도 이번에 합격했다. 정말 기쁘다.
―어떤 의사가 되고 싶나?
▶외과 전문의를 목표로 하고있다. 환자들이 아플 때 '저 사람이라면 나를 치료해 줄 수 있다'고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고싶다.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환자에게 진심으로 공감해주지 않으면 환자들이 다가오지 않는다. 인간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
―9년 전, 이태석 신부의 추천과 '한국에 가서 공부할 생각이 있느냐'는 전화 한 통이 토마스를 의사로 성장시킨 계기가 됐다. 그는 토마스에게 있어 어떤 존재인가?
▶나의 스승이자 친구이자 친형같은 사람이다. 이태석 신부와 같이 있으면 한국 사람, 수단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하나 되는 그런 느낌. 아마 오랫동안 같이 생활해왔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아셨을 것이다. 이태석 신부님은 내가 자신의 뜻을 이어받아 수단에 계속해서 생명의 씨앗을 뿌리기를 바랐던 것 같다. 이태석 신부님과 똑같이는 할 수 없겠지만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봉사를 하고싶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인턴과정 1년과 외과 수련기간 3년을 끝내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면 수단으로 돌아간다. 큰 병원에서 먼저 일을 할 것 같다. 의과 전문의가 정말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를 필요로 할 것이다. 이태석 신부님이 세운 병원 바로 옆에 이탈리아 신부님들이 설립한 '이태석신부 기념병원'이 있다. 거기에서도 일할 생각도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다.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고(故)이태석 신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신부님이 왜 나를 한국으로 초대했는지 그 깊은 뜻은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싶다.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함께 있지는 않지만 영혼은 언제나 같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 때마다 이태석 신부님이 생각났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면 담양에 있는 신부님의 묘소에서 가서 '한국에서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수단으로 돌아가 봉사활동 할 수 있기를' 이라고 항상 기도해왔다. 누구보다 신뢰받는 의사, 인간적인 유대로 마음을 치유하는 의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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