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개편> '부자.대기업 위한 감세' 논란

 

이명박 정부의 첫 번째 세제 개편안이 경제적 차원이 아닌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큰 찬반 논란을 불러올 조짐이다.
1일 모습을 드러낸 세제 개편안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10년간 정립된 분배와 형평 위주의 기존 세제를 크게 뒤흔드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한 '참여정부가 박은 대못뽑기'인지, '비즈니스 프렌들리'(기업친화)를 명분으로 한 '부자 편들기'인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 MB노믹스 실천.."참여정부가 박은 대못뽑기"

 

세계적 유동성 팽창과 자산 버블(거품)로 인해 임기 내내 부동산 폭등에 시달렸던 노무현 정부는 전방위 부동산 압박책을 구사했고 그 중심에 세금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도입된 것이기는 하지만 6억원 이상의 집이면 1가구 1주택이라도 양도세를 물리는 정책이 시행됐고 공시가격 6억원 이상에 대해서는 >종합부동산세를 중과하는 방법이 동원됐다.

단순히 부동산 가격 억제만이 아니라 서울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무거운 세금을 물려 자꾸만 늘어나는 지역균형정책과 복지정책의 재정수요에 보탬이 되고자하는 재분배적 성격을 함께 가진 것이었다.

'세금폭탄'이란 반발이 적지 않았지만 김병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헌법처럼 바꾸기 힘든 부동산제도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고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는 세금부담이 과하다는 비판에 "보유세가 부담되는 강남 주민들은 강남 아닌 다른 곳으로 이사가면 될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스스로도 공개석상에서 '강남불패'는 없음을 강조하면서 "종부세 한번 내보시라"며 참여정부의 조세정책에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바로 이런 조치들이 시장경제에 맞지 않고 국제적으로도 사례가 드문 '불합리한 조세'라며 되돌려 놓겠다는 게 이번 세제 개편안에 담긴 정책의 골자다.
하지만 헌법처럼 바꾸기 힘들다던 '세금 대못'은 정권이 보수쪽으로 바뀌면서 단박에 헐거워져 빠지기 직전상태가 됐다.

우선 그간의 집값 상승을 반영해 1세대 1주택에도 양도세를 물리는 고가주택의 하한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높이고 발생차익도 10년 이상 살면 80%까지 과표에서 빼준다. 양도세도 대폭 낮춰 종합소득세율과 같게 인하된다.

참여정부의 상징인 종부세는 일단 이번에는 과표적용률을 작년 수준인 80%에서 동결하고 전체 보유세의 증가상한을 기존 300%에서 150%로 낮추는 정도에 그쳤지만 다음달 주택공급 확대방안 발표와 함께 대대적 '수술'이 예고돼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련의 '대못뽑기'가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재정경제부가 만든 조세원칙에 상충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지난 정부가 한 것은 지난 정부의 경제철학에 따라 한 것이고, 새 정부는 새 정부의 경제개방 시장경제원칙에 따라서 하는 것"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 '부자 위한 세제개편' 논란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이 '중.저소득층 민생안정 및 소비기반 확충 지원'을 겨냥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으나 혜택의 많은 부분이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집중돼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양도세 고가주택 기준상향의 경우 대상인 6억원 초과 주택은 29만가구(작년 기준)로 전체 주택 729만가구 중 4%에 그친다. 고가주택 기준이 9억원 초과로 올라가면 이 중 18만가구(2.5%)는 1세대 1주택과 거주요건을 충족하면 양도세를 내지 않는다.

과표적용률 동결, 보유세 세부담 상한선 하향조정농어촌특별세 폐지 등 종합부동산세 개편방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주택분 종부세를 낸 개인은 38만1천명으로 주민등록상 전국 가구주 1천777만명(2005년 8월 말 기준)의 2.1%, 전국 주택보유 가구주 971만명의 3.9% 정도다. 부동산세 완화의 혜택이 3∼4%에 불과한 고소득층에 돌아가는 셈이다.

상속세율 인하의 수혜계층은 더욱 좁다. 현 상속세제로도 각각 5억원씩인 일괄공제와 배우자공제를 통해 10억원까지는 세금을 내지 않아 과세대상 자체가 그야말로 상류층에 한정된다.

지난해 사망자 30만명 중 상속세 납세대상이 2천600여명, 0.7%에 불과하다는 정부 통계가 이를 보여준다.
정부는 고세율로 인해 탈세나 국부의 해외 유출 가능성을 고려한 현실적 선택임을 내세우지만 이는 세정을 통해 해결할 문제이지 세율을 내린다고 완전히 해소될 문제는 아니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투자유발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법인세 인하도 대기업만 득보는 대표 정책이다. 2006년 법인세 29조4천억원중 매출이 5천억원을 넘는 400개 기업의 법인세가 15조원으로, 매출 상위 0.1% 기업들이 전체의 55.4%를 내고 있다. 세율인하는 자연스레 이들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소득세의 경우 일단 근로소득자든, 사업소득자든 모두 적용된다는 점에서 이런 비판에서 거리가 먼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무엇보다 근로소득세만 보더라도 근로소득을 올리는 사람 가운데 절반 가량이 이미 면세점 이하이든, 아니면 많은 공제액으로든 세금 자체를 내지 않는다. 2006년의 경우 이 비율이 47.4%에 이른다.

소득구간에 따라 비교해보면 연 2천만원 소득의 근로자(4인 가구 기준)는 2010년이 되면 낼 세금이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5만원 줄지만 1억원 연봉의 경우는 1천351만원에서 1천179만원으로 172만원 감소한다. 비율상으로는 저소득자의 세금 감축비율이 높지만 실질 액수로는 고소득자일수록 절감액이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유종일 교수는 "투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경기 전망이며 지금 대기업들이 돈이 없어 투자를 못하는 것이 아니다"며 "세금을 깎아준다고 해도 투자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법인세나 소득세 등 직접세를 인하하면 혜택이 고소득층에 돌아가기 때문에 면세점 이하 서민들에게 혜택이 가는 간접세 인하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직접세 완화중심의 세제 개편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과감한 감세정책으로 경제 살린다

경제 활력을 되찾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하하는 등 모두 21조원 규모의 대대적인 세금감면이 이뤄진다.
조세부담률을 낮추고 양도세와 상속·증여세를 소득세 세율과 일치시키며 교육세 등 3대 목적세를 폐지하는 등 '개혁' 수준의 세제개편이 추진된다.
하지만 상속세가 대폭 인하되고 양도세 고가주택 기준과 종부세가 완화됨에 따라 부유층 편중 논란도 뒤따를 전망이다.
당·정간에 이견을 보였던 법인세 높은 세율의 인하 시기는 해당 재원을 민생안정 자금으로 활용하자는 여당측 입장이 반영돼 1년 연기됐다.
기획재정부는 1일 고위당정협의와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잇따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한 '2008년 세제개편안'을 확정하고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다음달 2일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강만수 장관은 "민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세부담을 낮추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개편 배경을 설명했다.

◈ 소득세 2% 포인트 인하
종합소득세가 납세자의 소득 수준에 따른 4개 과표구간별로 2% 포인트씩 인하돼 6~33%의 세율이 적용된다.
한꺼번에 내리지는 않고 내년과 내후년에 각각 1% 포인트씩 인하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최저 과표구간의 세율 인하폭은 25%, 최고 과표구간은 5.7%에 이르러 비율상으로는 저소득층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

재정부는 지난 10년간 민간소비 증가율이 GDP 성장률(4.3%)보다 낮은 연평균 2.8%에 그치면서 내수 위축과 함께 경제활력이 둔화되고 있다고 세부담 완화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저출산 현상과 관련, 다자녀 가구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1인당 공제가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늘어나고 자녀 교육비와 부양가족 의료비 공제도 확대된다.

이럴 경우 총급여 3천만원인 4인 가구의 근로소득세 부담은 19만원, 총급여 6천만원인 4인 가구는 89만원이 줄어든다.
재정부는 또 일용근로자의 소득공제액을 하루 8만원에서 10만원으로, 해외건설근로자의 비과세소득을 월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늘렸다.

◈ 종부세, 상속세도 손댄다
상속·증여세율이 소득세율과 같은 수준으로 조정돼 현행 10~50%에서 6~33%로 대폭 내려간다.
과표 5억원일 경우 6천만원(66.7%)의 세금을 덜게 되고 과표 20억원은 3억4천만원(53.1%)을 덜 내게된다.

재정부는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율은 국부의 해외유출을 초래할 수 있는데다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소득세율과 같은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국제적 추세라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부유세 등의 보완장치를 갖춘 선진국과 우리의 현실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합치 않으며 감세를 명분으로 소수 부유층의 손을 들어준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있다.

상속세는 일괄공제 5억원과 배우자공제 5억원 등 합계 10억원을 공제해주기 때문에 상속재산이 공시가격 10억원을 넘을 경우에만 초과분에 한해 세금을 매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상속세 납세자는 2600여명에 불과하다.

재정부는 또 종부세와 관련, 2년뒤 100%까지 늘어나는 과표적용률을 지난해 수준인 80%로 동결하고 세부담 상승폭의 상한선을 전년도 보유세(재산세+종부세) 대비 2배에서 0.5배로 대폭 축소했다.
재정부는 이밖에 중소기업 가업상속의 공제율을 상속가액의 20%에서 40%로 늘려 세부담을 완화하고 1세대 1주택 상속공제도 신설했다.

◈ 양도세 감면 확대...장기공제기간 10년 단축

양도소득세 역시 세율과 과표구간이 소득세와 같아진다.
재정부는 조세제도 합리화 차원에서 소득세와 세율체계를 일치시켰다면서 원래 동일하게 운용되던 것이 참여정부 후반에 잠시 차이가 벌어졌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에서도 대부분 양도소득과 사업소득, 근로소득을 구분하지 않고 같은 소득세로 보기 때문에 조세제도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란 설명이다.
재정부는 또 양도세가 과세되는 고가주택의 기준을 양도가액(실거래가) 6억원 초과에서 9억원 초과로 상향조정했다.
1999년 설정된 6억원 기준은 그동안의 주택가격 상승률(58.8%)을 감안할 때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 초과분에 대해서도 3년 이상 보유시 적용하는 장기보유특별공제를 확대해 1세대 1주택일 경우 연 4%, 최대 80%(20년 이상 보유) 공제해주던 것을 연 8%, 최대 80%(10년 이상 보유)로 조정했다.

국내 1세대 1주택자의 평균 보유기간이 8년 수준임을 감안해 20년 기준을 10년으로 단축한 것이다.
1세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규정도 완화해 지방의 2주택자 저가주택 기준은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조정되고, 실수요 2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배제 대상도 현행 '근무상 형편' 외에 '취학 및 장기요양' 등이 추가됐다.

반면 현행 6억원 이하의 1세대 1주택 양도세 비과세 적용요건은 '3년 보유, 2년 거주'에서 '3년 보유, 3년 거주'(비수도권 제외)로 일부 강화해 실수요자에 유리하도록 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기존 양도세 제도에 따른 거래 동결효과를 방지하고 공급을 확대해 가격 안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새 양도세 규정은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내년 1월1일 이후 최초 양도분부터 적용된다.

◈ 3대 목적세 폐지
과다하고 중복된 조세체계를 간소화하는 차원에서 교통·에너지·환경세, 교육세, 농어촌특별세 등 3대 목적세가 폐지된다.
휘발유와 경유 등에 붙는 교통세가 폐지돼 개별소비세(특소세)로 통합되고 교육세와 농특세는 본세로 흡수된다.
재정부는 70년대 종합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등을 도입해 기본체계를 갖춘 이후 다수의 목적세가 신설되면서 조세체계가 복잡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지방세 가운데 공동시설세, 지역개발세, 도시계획세 등 5개 목적세만 남게되고 국세는 목적세 3개가 모두 폐지돼 11개 일반세만 남게된다.

한편 법인세율 인하와 과표구간 상향 조정, 유가환급금 지급, 물가안정을 위한 긴급할당관세 등 이미 발표된 조치들은 법인세 높은 세율의 인하시기만 1년 연기됐을 뿐 원안대로 확정됐다.

정부는 당초 25%인 법인세의 높은 세율을 올해 귀속분부터 22%, 2010년 귀속분부터는 20%로 낮출 계획이었지만 여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22% 적용시기를 내년으로 늦췄다. 여당은 법인세 3% 포인트의 인하 시기를 1년 연장함으로써 확보한 2조8천억원의 재원을 저소득, 서민층의 민생안정과 택시 등 영세 자영업자의 구조조정 재원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해왔다.

이밖에 기업과세제도를 선진화하기 위한 연결납세제도와 이월결손금의 공제기간 연장 등의 개편안이 마련됐고, 녹색성장 기반 구축을 위해 하이브리드 차에 대한 개별소비세 면제 등의 방안도 추진된다.

◈ 세수 효과는?
재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이 차질없이 진행될 경우 성장률은 0.6% 포인트 이상, 소비는 0.5% 포인트, 투자는 7% 포인트, 고용은 연 18만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법인세와 소득세율 인하, R & D 지원 확대 등의 조치는 소비와 투자 등 내수기반 확충을 통해 7% 성장능력을 갖춘 경제구조로의 전환을 지원할 것이란 설명이다. 재정부는 법인세율 5% 포인트를 내릴 경우 실질 GDP는 6조원, 국내 투자는 10조원, 고용은 18만명 늘어난다는 지난 6월 조세연구원의 자료를 근거로 들었다.

한편 이번 세제 개편에 따른 세수 감소 규모는 올해 3조5천억원, 내년 7조1천억원, 내후년 6조8천억원 등 임기 5년간 20조7천억원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세제개편 당시 향후 5년간의 세수 감소 예상규모가 3조5천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감세 폭이 전례없이 큰 것이어서 재정건전성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재정부는 내년도에는 과표 양성화 등에 따른 항구적 세수 증가와 고유가에 따른 일시적 증가로 충당할 수 있고, 2010년 이후에는 재정지출을 줄이는 세출구조 조정 등으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재정부는 또 감세 → 투자 및 소비 증가 → 고용증대, 경제성장 → 세입증대의 선순환을 통해 세수기반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