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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4세들의 먹잇감, 코스닥

여행가/허기성 2008. 9. 25. 07:22

 

횡령·배임 올 들어 급증… 모럴 해저드 심각한 수준

내부자거래와 주가조직 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LG 방계3세 구본호씨(왼쪽)와 뉴월코프 허위 인수공시 혐의를 받고 있는 두산가문 4세인 박중원씨.
코스닥 상장사의 도덕불감증이 최근 도를 넘어서고 있다. 경영진이나 최대 주주에 의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올 들어 크게 악화해 시장 참여자의 대부분인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8월 20일 기준 코스닥 시장본부 코스닥전자공시에 따르면 횡령 및 배임 건으로 공시한 건수는 무려 8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발생한 44건에 비해 90% 이상 증가했다. 이 같은 수치는 ‘정정공시’와 ‘자진공시’를 포함한 수치로 회사별로 중복될 수도 있어 회사별 수는 다소 줄어들 수 있으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동기간 대비 2006년에는 19건, 2005년에는 21건이 발생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 속도다. 횡령 규모도 매년 급증해 2005년 1031억9500만 원, 2006년 1424억9800만 원, 2007년 3530억4000만 원으로 집계됐으나 올해는 7일 기준으로 이미 6201억1000만 원을 넘은 것으로 파악됐다.

횡령 규모 커져 올해만 6200억 원

횡령·배임 범죄가 발생한 상당수 업체의 주식은 그같은 사실이 공시된 이후 주가 급락 현상을 지속하다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거나 상장 폐지로 이어져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모럴 해저드의 대표적인 사례는 한때 재벌가 테마주였던 뉴월코프다. 이 회사는 작년 3월 두산그룹 4세인 박중원(40·박용오 두산그룹 전 회장 차남)씨가 지분 130만 주(3.16%)를 사들여 회사 경영권을 인수했다가 같은 해 12월 주당 6000원에 지분을 전량 매각한 회사다. 검찰은 지난 8월 11일 박중원씨와 공범인 조용호(29)씨를 증권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전격 구속했다. 조씨는 자신이 실질적 사주인 코스닥 상장사 ‘뉴월코프’에 박씨를 ‘바지사장’으로 영입해 재벌가가 회사를 인수한 것처럼 허위 공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조씨와 박씨는 180억 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 회사 주가도 급락했다. 작년 7월 13일 1만850원이던 주가는 현재 940원대로, 무려 91% 이상 빠졌다. 이에 앞서 지난달에는 레드캡투어와 동일철강, 액티패스 등도 대주주인 LG그룹 3세 구본호씨가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면서 재벌 테마주 역풍을 맞은 바 있다. 세라온홀딩스는 조직폭력배가 차입금으로 인수한 뒤 자금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준 사례다. 검찰에 따르면 폭력조직 ‘XX파’는 차입금으로 세라온을 인수한 직후 회사 법인계좌에 입금했던 회사 인수대금 96억 원을 다시 인출해 사용했다. 세라온은 지난 4월 전 대표이사의 횡령 혐의가 발생하면서 상장 폐지 위기에 몰렸지만 XX파의 대리인 격인 애플이십일과 하태웅씨 등을 새로운 최대주주로 받아들이면서 퇴출은 모면한 바 있다.

엔터테인먼트주도 팬텀엔터테인먼트의 검찰 재수사 소식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검찰은 2005년 초 팬텀이 코스닥 시장에 우회상장되는 과정에서 주식을 차명계좌로 분산시킨 후 일부 주식을 방송국 예능, 드라마 프로를 담당하는 PD들에게 나눠준 사실을 확인하고 계좌 추적을 벌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코스닥 기업에서 ‘횡령ㆍ주가조작→검찰수사→주가급락’ 등의 도미노 악재가 되풀이되면서 코스닥 시장이 투기판으로 변해가고 있다”면서 “머니게임에 치중하면서 투기 세력들로 개인 투자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스닥 퇴출’ 벌써 20건

코스닥 상장기업의 퇴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8월 20일 현재 코스닥 시장본부 코스닥전자공시에 따르면 올 들어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된 상장 폐지 종목은 20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치는 2007년 전체 9개, 2006년 전체 12개를 감안하면 상반기 중 수치로는 2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 중 LG텔레콤과 아시아나항공은 코스피 시장으로 옮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퇴출됐지만 나머지 16개 종목은 자본 전액 잠식, 감사의견 거절, 2회 연속 자본잠식률 50% 이상 등 이유로 시장에서 사라졌다. 퇴출 기업을 살펴보면 ‘과거 전력’이 있는 기업이 역시 ‘사고’를 쳤다. 과거에 과장된 허위공시로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됐거나 대주주가 횡령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곳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애꿎은 개미 투자자들만 골탕을 먹고 있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코스닥사업본부의 한 관계자는 “코스닥 퇴출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면 기업의 장밋빛 사업계획서만 보기보다 기업의 기초 체력이 어떤지 재무제표 등을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면서 “과거 불성실 공시나 대주주의 횡령 혐의가 있는지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투자하는 것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상장 폐지의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지난달 23일 상장 폐지한 ‘플래닛82’는 2005년 11월 전자부품연구원에게서 나노 이미지센서 기술을 이전받았다고 발표해 당시 1000원대하던 주가가 그해 12월 4만6900원까지 수직상승했다.

그러나 기술 상용화가 지연되고 허위공시, 기술시연회 조작 등 악재가 불거지면서 주가는 840원까지 추락했고 결국 감사 의견 거절로 상장이 폐지됐다. 시큐리티코리아도 상습적 불성실 공시와 신고의무 위반으로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후 지난달 14일 퇴출됐다. 청람디지탈은 법정제출기한까지 사업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아 불성실 공시로, 한텔, 디씨씨, 베스트플로우의 경우 2회 연속 자본잠식률 50% 이상 및 자기자본 10억 미만의 사유로 퇴출됐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코스닥 공시팀 관계자는 “상장 폐지된 기업들을 보면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됐던 ‘전과’가 있는 곳이 다수”라며 “일부 대주주의 소위 ‘뻥튀기 사업계획’에 현혹되지 말고 확실하고 믿을 만한 투자 정보에 기초해 투자해야 하고 기본적으로 투자자들은 신규 사업에 항상 위험이 따른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스닥 기업들의 불성실 공시, 횡령, 배임이 증가하자 이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증권선물거래소는 지난 18일 ‘상장·퇴출 제도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고 21일에는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번 방안에 따르면 지속적인 공시 위반, 횡령·배임에 연루되거나 5년 이상 연속 적자를 낸 코스닥 상장사가 시장에서 퇴출된다. 반면 상장을 위한 소액주주 분산 요건을 크게 완화했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시장 진입은 완화하되 퇴출은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지난 21일 열린 ‘상장·퇴출제도 선진화 방안’ 공청회 모습. <금융위원회>
현재 기업들이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기 위해서는 각각 자기자본 100억 원, 30억 원 이상이어야 하나 선진화 방안이 시행되면 자기자본이 부족해도 각각 시가총액이 200억 원, 90억 원 이상이 넘는다면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불성실 공시 등 공시 위반에 따른 관리종목 지정 및 지정해제 요건도 강화된다. 불성실 공시로 관리종목 지정 후 반복·장기간 공시를 위반하거나 고의·중과실로 공시를 위반하는 경우 상장을 폐지할 수 있도록 상장 폐지 요건이 신설된다.

또한 장기간 영업적자가 계속되는 한계 기업을 퇴출하기 위해 4년 연속 적자가 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하며 5년 연속되면 상장 폐지한다. 그동안 말썽 많았던 우회상장 요건도 강화된다. 재무 건전성이 낮은 기업의 우회 상장을 방지하기 위해 ROE(10%, 벤처5%) 또는 당기순이익이 20억 원, 벤처는 10억 원이 돼야 가능하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선진화 방안으로 그동안 글로벌 스탠다드에 다소 못 미쳤던 상장제도를 개선해 상장 선택의 폭을 확대하고 시장친화적 상장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상장요건 완화로 침체된 코스닥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장기간 영업적자 등으로 상장 적격성을 상실한 기업은 퇴출해 시장의 건전성을 제고 및 퇴출 기능을 정상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스닥 횡령사건의 징후들 ▷ 회사실적 급격히 악화 ▷ 대표이사·주주 변경이 잦다 ▷ 사업목적을 자주 바꾼다 ▷ 호재성 남발 및 빈번한 번복 또는 취소 ▷ 불성실공시로 인한 제재 건수 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