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재건축단지의 대표 주자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재건축 주요 관문인 안전진단 통과를 눈앞에 뒀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그동안 은마아파트 현지 조사를 진행해왔고 10월 13일 대치동 은마아파트 안전진단 심의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은마아파트가 안전진단에 통과하면 얽히고설킨 규제로 미뤄지던 재건축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은마아파트를 비롯한 주요 강남 재건축단지에도 적잖은 파장이 미칠 수밖에 없다.
↑ 안전진단 통과를 앞둔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모습.
은마아파트는 102㎡ 2674가구, 112㎡ 1750가구 등 총 4424가구로 매머드급 단지로 꼽힌다. 79년 12월 입주를 시작해 어느덧 만 30년을 눈앞에 뒀다. 재건축이 그만큼 시급하다는 얘기다. 재건축 기대감 속에 은마아파트는 7~8월 실거래가 기준으로 112㎡가 11억6500만~12억5000만원 수준이다. 2006년 말 최고치인 14억원에는 못 미치지만 지난해 말 9억원대까지 떨어졌던 시세가 어느새 최고치의 80~90%까지 회복했다.
특히 안전진단 통과는 의미가 있다. 재건축 추진절차를 보면 추진위원회 구성, 재건축 결의, 시공사 선정을 거쳐 안전진단을 진행한다. 안전진단 통과 이후 재건축 속도는 빨라진다. 조합설립인가, 건축심의 교통영향평가,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 총회, 관리처분, 이주, 철거 및 착공 단계를 거치면 재건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다.
세 차례 안전진단 고배 후 '4수'
은마아파트의 경우 2001년 이후 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2002년 삼성물산과 GS건설 컨소시엄(주간사는 삼성물산)이 시공사로 선정될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102㎡를 126㎡로, 112㎡는 135~139㎡로 재건축할 수 있었고 조합원 부담금도 적어 사업성이 꽤 높았기 때문. 2003년 말 주거정비법에 의한 추진위원회로 승인을 받은 이후 2004년 5월 주민총회를 개최해 재건축에 대한 주민 의사를 확인한 바 있다. 당시 주민 대부분이 재건축 찬성 의사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소형 및 임대주택 의무비율,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등 정부의 잇따른 재건축 규제가 이어지면서 시공사 선정 단계에서 막혔고 안전진단 통과조차 쉽지 않게 됐다. 가구 수를 늘리는 게 어려울뿐더러 소형주택 의무비율 탓에 오히려 조합원의 기존 주택형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규제가 한창인 2005년 당시에는 재건축이 어렵다고 판단한 일부 주민이 리모델링 동의율 확보에 나서기도 했다.
정부 안전진단 규제 완화도 한몫
물론 지난해부터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자 MB 정부는 재건축 규제를 하나둘씩 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안전진단 관련 규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이 지난 2월 초 개정되면서 8월부터는 안전진단 및 정비구역 지정의 추진 주체가 기존 조합 등 사업시행자에서 구청으로 바뀌었다. 기존에는 조합이 직접 용역업체를 선정해 안전진단, 정비구역 지정 보고서를 만들어야 했지만 구청으로 역할이 넘어갔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안전진단 추진 주체인 구청장이 주민 투표로 선출되기 때문에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내년 지자체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굳이 재건축 안전진단을 까다롭게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때마침 안전진단 심의기준도 완화된 상태다. 재건축 추진 아파트의 안전진단 평가를 할 때 항목별 가중치를 일부 조정한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 개정안이 올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핵심 내용을 보면 노후 재건축아파트의 안전진단 평가 때 구조안전성 항목의 가중치를 줄였다. 그동안에는 항목별 가중치가 △구조안전성 0.5 △건축 마감 및 설비 노후도 0.3 △주거환경평가 0.1 △비용분석 0.1 등이었다. 하지만 새 기준에 따르면 구조안전성 가중치를 0.4로 낮추는 대신 주거환경과 비용분석은 각각 0.15로 높였다.
구조안전성(아파트에 구조적 결함이 있는지와 얼마나 튼튼한지를 보는 것) 배점이 줄어들었다는 건 구조적 안전성이 높은 아파트도 재건축이 수월하다는 뜻이다. 또한 도정법 시행령 개정으로 안전진단 절차가 기존 2회(예비, 정밀안전진단)에서 1회로 간소화되면서 안전진단이 한층 유리해졌다. 결국 안전진단 절차가 간소화돼 시간이 줄어들고 용역 발주 비용도 줄면서 조합은 수억원대 비용절감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됐다. 2004년 12월 안전진단 심의 결정이 유보되는 등 세 차례 예비 안전진단만 받고 '4수'에 나선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이번엔 안전진단 통과가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강남구청은 올 들어 자체 안전진단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해당 건축물의 구조안정성, 설비노후도, 주거환경 적합성 등을 심사하는 현지조사를 진행해왔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은마아파트는 비가 새고 녹물이 나오는 등 노후도가 심각해 이번에는 안전진단 통과가 수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추진위 설립단계 단지들, 재건축 빨라질 듯
안전진단 통과 후 은마아파트 재건축은 순항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갈 길은 '산 넘어 산'이다. 한 예로 최근 서울 가락시영아파트의 경우 안전진단 이후 관리처분단계에서 조합원 간 대립이 심해져 재건축 추진 여부조차 불투명해졌다. 서울고법 민사12부는 가락시영 재건축조합원 4명이 조합을 상대로 낸 사업시행계획 승인결의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가락시영아파트는 재건축사업을 다시 승인받아야 한다. 임달호 현도컨설팅 사장은 "은마아파트가 안전진단을 통과해도 중대형 면적으로 구성된 만큼 재건축이 쉽지 않아 입주까지는 빨라야 5~6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게다가 여전히 핵심 재건축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우선 강남 재건축 집값이 이상급등했다는 판단 아래 지난 8월 말 국세청에서 강남3구 재건축 매수자 자금출처조사를 진행했다. 이에 강남3구 재건축아파트 거래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9월 초에는 정부의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여파로 강남3구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하락세를 보였다. 또한 정부가 재건축 초과이익을 용적률 중심으로 환수할 것이란 계획을 발표한 것도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이에 대비해 은마아파트는 전용면적 60㎡ 이하를 20% 짓게 하는 소형평형 의무비율을 피하기 위해 전용면적만 10% 늘리는 '1대1 재건축(잠깐용어 참조)'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조합원 분양주택에 한해 주거전용면적이 10% 범위 내에서만 증가하는 1대1 재건축은 소형주택을 짓지 않아도 된다.
실제 서울 논현동 경복아파트는 지난 8월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주민공람에 들어가 1대1 재건축 추진을 시작했고 대치동 청실아파트 역시 주택재건축 정비계획 수립 및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주민 공람을 진행해왔다.
물론 1대1 재건축도 만만찮다. 임달호 사장은 "은마아파트 102㎡의 경우 전용면적을 10% 늘리는 데 최소 3억원 이상이 드는 걸 감안하면 13억원 수준인 도곡 렉슬 시세에 육박해 굳이 메리트가 없다"며 "안전진단 통과 후 당장 1억~2억원 정도 가격이 오르겠지만 이후 조합원 80% 이상 동의를 받기 어려워 사업 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결국 은마아파트 안전진단이 통과되면 여의도 시범 아파트 등 추진위 설립 단계에 있는 단지들의 재건축사업이 활기를 띠겠지만 영향은 일시적일 것으로 보인다. 1대1 재건축을 진행할 경우 일반분양 물량이 없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사장은 "각종 재건축 규제가 얽혀 있어 안전진단 통과는 가격 하락세를 저지하는 역할만 할 것"이라며 "사업 완료까지 길게는 10년 이상 시간이 걸리는 만큼 무리한 대출을 통한 투자는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이번에도 안전진단 통과가 어려울 경우 강남 재건축시장은 침체에 빠져들 가능성도 높다. 가뜩이나 노후도가 심화된 아파트의 경우 재건축 추진이 아예 무산되거나 리모델링 등의 대안이 다시 부각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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