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아파트 "주민들만 골탕"

무일푼에 거리로 내몰리는 임대아파트 주민들

국민주택기금으로 세운 아파트들 부도 속출, 주민들만 집 뺏기고 쫓겨나

미디어다음 / 심규진 기자

setAd("economic");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조성된 국민주택기금이 허술한 관리로 부실 건설사에 지원되면서 무주택 서민들이 부도 임대 아파트의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고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 98년 경남 양산시 웅상읍 소주리 장백 아파트에 입주한 김승원씨는 보증금 2300만원을 모두 날리고 거리로 쫓길 위기에 처했다. 이 아파트의 제 1순위 근저당권자는 국민주택기금이다. 건설사는 아파트 3000세대를 담보로 국민주택기금 720억원을 지원받았다. 건설사가 국민주택기금을 받아 근저당을 설정한 것은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 문제는 입주민들 모르게 추가로 설정된 근저당 액수가 200 억원이 넘는다는 것이다. 이미 건설사의 담보 대출금이 800억원이 넘는데다 건설업자가 빌린 600억원에 대한 추가 근저당까지 설정돼 건설사의 자금력에 대한 의문이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었지만 국민은행은 '임대주택중도금지원자금'으로 156억원을 추가로 지원했다. 때문에 임차인들의 보증금 변제 순위는 5순위로 밀리게 됐다. 건설사가 부도난 지금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갈 경우 임차인들이 아파트 경매 후 보증금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셈이다. 이미 이 아파트 3000 세대 가운데 2300 세대가 경매 처리돼 주민들은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거리로 쫓겨났다. 남은 21명의 입주자들은 입주민들의 동의 없이 설정된 불법 근저당권의 말소를 주장하고, 경매 가처분 소송을 낸 상태지만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 지는 미지수다. 이 아파트 입주민들의 임대보증금은 2300만원에서 2800만원까지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규정하는 2000만원을 넘기 때문에 한 푼도 보상 받을 수 없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2000 만원 미만의 보증금에 대해서만 800만원까지 우선 변제해 주기 때문이다. 김씨는 “건설업자가 국민주택기금 외에 주민동의 없이 아파트를 담보로 다른 대출을 받은 것은 명백한 위법”이라며 “경매 가처분 소송을 진행해서라도 입주민들의 권리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임대련'카페 바로가기 방만한 기금 관리, 부실 건설사에 마구잡이 대출 건설사들 자기 돈 한 푼 안 들이고 집 지어 이처럼 부도가 나 임대보증금을 받지 못한 가구가 전국적으로 15만 가구가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건설사의 줄도산이 이어지면서 영세 임대입주민들의 피해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전국임대아파트연합회는 실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같이 밝히고 허술한 주택기금관리에 대한 실태 파악과 입주민 동의없이 기금측이 건설사의 자금력을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설정해 준 근저당권 말소를 주장하고 나섰다. 전국임대아파트연합회 장봉화 정책국장은 “서민주거안정을 위해 운용돼야 할 국민주택기금이 건설사의 자금력을 검증하지도 않은 채 마구잡이로 지원됐고, 이에 따라 건설사의 부도에 따른 손실을 임차인들이 떠 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값싼 임대아파트 공급을 위해 조성된 국민주택기금 지원이 정작 임차인들의 피해로 나타나게 된 이유는 뭘까?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이선근 본부장은 “정부가 기금을 경기 부양의 수단으로 운용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때문에 자본력이 없는 소규모 건설업자들이 임대 보증금 반환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사업자금을 집값보다 더 많이 끌어들일 수 있었다는 것. ”임대아파트 주민동의없는 불법근저당은 불법” 건교부, “2002년에 법 만들어져… 이전 사업장은 소급적용 안 돼” 사진=연합뉴스 자금력이 턱없이 부족한 건설사에 주택기금을 지원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주민들의 동의없이 설정된 불법 근저당을 은행 측이 방조했다는 데 있다. 주택건설촉진법에 따라 건설자금으로 주민주택기금을 지원받은 임대사업자는 임대주택중도금지원자금을 대출 받을 때는 별도의 물권을 설정해 담보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주택기금을 관리하는 국민은행은 아파트를 담보로 건설자금을 지원받은 건설업자들에게 또 다시 아파트를 담보로 중도금을 지원해줬다. 임차인들은 은행이 건설자금이 아닌 중도금을 빌려줄 때는 이미 건설자금에 대한 담보로 설정된 아파트가 아닌 다른 담보를 잡아야 하는데도, 은행 측이 불법 특혜 대출을 해 준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건설교통부는 중도금 지원으로 임차인들의 중도금 부담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임차인들의 동의없이 설정된 근저당권에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건교부의 한 관계자는 “법원에서 불법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겠나"라고 반문하면서 “중도금지원금도 국민주택기금의 한 종류이기 때문에 관련법이 개정된 2002년 이전에는 입주민의 동의가 없더라도 임대주택건설을 촉진하기 위한 방편으로 중도금 지원에 대한 근저당권을 설정 해 줄 수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국임대련 장봉화 정책국장은 “중도금 지원 후 3개월 이내 근저당을 말소해야 하지만 말소된 경우가 거의 없다”며 “건설 자금이 모자라 중도금까지 지원했을 정도면, 건설사의 자금력을 냉철히 따져봐야 할 텐데 사채까지 끌어다 쓴 건설업자에게 국민주택기금을 추가로 지원한 것은 아무리 봐도 수긍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관행적으로 건설사에 건설자금을 지원할 때 임차인들의 보증금을 제외한 나머지 건설자금을 모두 대출해 준 것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건설사들은 자기 돈 한 푼들이지 않고도 임대 아파트를 지을 수 있었던 것. 결국 은행들이 자금력이 없는 건설업자에게 눈 먼 돈을 빌려주면서 부도 사태 후 손해는 임차인들이 떠안게 된 셈이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본부와 전국 임대련이 전국 71개 단지의 등기부 등본을 확인한 결과, 정상적으로 건설지원자금만 받은 단지는 9개에 불과했고 주민의 동의없는 추가 근저당이 1회인 경우는 39개 단지, 2회는 11개 단지, 심지어 3회에 걸쳐 설정된 곳도 3개 단지였다. ”기금 관리 책임 철저히 밝히고 공공 임대 아파트 건설로 정책 선회해야” 건설사들이 부도에 대한 책임을 지지않고 채권자들에게 떠넘기면서 돈 한 푼 없이 거리로 내몰리는 영세민이 늘어나자 민주노동당과 전국임대아파트연합회는 정부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민노당과 임대련은 단기적으로 부도임대아파트 입주민 대책을 즉각 수립할 것 ▲부도임대아파트의 폭력적인 경매를 중단할 것 ▲임대보증금과 임대료를 인하해 주거 환경 안정시킬 것 ▲ 민간임대건설 정책 폐기하고 표준건축비를 인하할 것 ▲ 임대주택법,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정할 것 등을 촉구했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본부 이선근 본부장은 “정부는 부도사태의 책임자를 문책하고 임대 아파트 공급 주체를 지자체와 공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본부장은 또 “국민은행은 불법적으로 설정된 근저당권을 스스로 말소해야 한다“며 “국회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형편이 어려운 무주택 서민들을 위해 조성한 국민주택기금을 왜 민영 건설사들의 배를 불리는데 써야 하냐는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