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적게 낼수록 이익일까요? 최근 세금에 대한 논쟁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야당에서는 정부가 너무 많은 예산안을 짜 국민에게 거두어야 하는 세금이 너무 많으니 줄이자고 하고, 정부 측에서는 국민생활을 위해서 이 정도의 예산은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직 국정감사 기간 중이어서 본격화되지는 않았지만 정부 예산안을 두고 이번 정기국회에서의 논쟁도 여간이 아닐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1년에 세금을 얼마쯤 내시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게 적정한 수준인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볼 때 어떤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만약 정부가 세금을 내리면 본인에게 이득일까를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정말 세금을 많이 내면 손해고 적게 내면 이득일까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기축구회나 동문회 등 이러저러한 모임에 가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정액의 회비를 내게 됩니다. 이런 회비는 주로 모임의 운영을 위한 공동경비로 회원들의 합의 하에 걷게 됩니다. 국가에 내는 세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동아리 회비와 국가에 내는 세금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회비 부과 방식의 차이입니다. 대개 동아리에선 평회원의 경우 회비가 균등합니다(물론 임원진은 많이 내기도 하지요). 그러나 국가는 국민들에게 똑같은 세금을 부과하지 않습니다. 소득규모 또는 자산규모에 따라 차등을 두어 대개 누진적으로 세금을 내도록 하지요. 소득이 적은 경우 아예 면제를 시켜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봉급생활자는 물론 자영업자까지 포함하여 소득세를 전혀 안 내는 사람의 비율이 절반에 이릅니다.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에게만 소득세를 걷고 있는 셈이지요. 전체 봉급생활자를 기준으로 해보면 2/3가 1년에 세금을 20만원 미만 또는 전혀 안내고 있습니다. 1/3이 나머지 사람들을 위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네요.
두 번째로 걷은 돈을 쓰는 사용처가 다릅니다. 동아리의 경우 모임의 공동경비지출 수준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국가의 경우 걷은 세금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소위 복지라고 하지요), 때로는 경제 운용 상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그 돈을 자본으로 삼아 사업을 벌이기도 합니다. 꼭 미국의 뉴딜 정책 같은 사례가 아니더라도 이전에 많았던 국영기업들이 거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임을 할 때도 기왕 회비를 걷는 김에 좀 많이 내서 상조회도 꾸리고 후배들을 위한 장학기금을 마련한다든지 공동 별장을 마련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사업을 크게 벌이자는 주장도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회원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회비도 최소화하고 지출이나 사업도 최소화하자는 주장이 맞서곤 합니다.
국가 재정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 두 가지 주장은 계속해서 맞서면서 시대에 따라 자리를 바꾸었지요. 근래 회자되는 신자유주의라는 것도 쉽게 말하면 국가의 역할(경제적 역할, 제도적 역할)을 줄이고 민간과 시장에 맡기는 게 더 낫다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금도 줄이고 복지도 줄이고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강화하자는 것이지요.
세금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의 역할이 줄어드는 대신 개인의 자율과 책임이 중시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각 개인이 알아서 자신의 삶을 책임지자는 얘깁니다.
반면 세금이 많다는 얘기는 사회적 약자나 또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공적인 영역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진국의 경우 흔히 영미식과 유럽식으로 분류하는데 유럽식이 보다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고 많은 세금과 높은 사회보장을 특징으로 합니다. GDP 대비 복지비 비중이 우리보다 2~3배는 더 높습니다. 그만큼 세금과 연기금 부담률도 높습니다. 물론 이러한 정책도 때에 따라 변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국가가 세금을 걷고 쓰는 문제는 국가경영의 요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국민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실무적으로는 행정권한을 위임받은 행정부가 안을 만들지만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국회가 가지고 있는 권능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막강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세금이 늘면 누구에게 부담이 되는지, 세금이 줄면 어떤 사람에 대한 혜택이 줄어드는지 잘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어떤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가의 문제는 아닙니다만 대개 삶의 질이 높고 공동체의 통합도가 높은 나라의 경우 공적인 영역의 크기가 큰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국가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들이 결정할 문제이겠지만 국민들의 뜻이 모두 같지는 않겠죠?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또는 가치관에 따라 의견이 달라지는 게 당연합니다. 그 의견들을 대변하는 게 바로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각 정당들은 자신이 국정운영을 맡을 경우 세금을 어떻게 걷어서 어디에 쓰겠다는 계획을 국민에게 제시하게 되고 국민들은 어느 정당의 방침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또는 자신이 생각할 때 바람직한지를 판단하여 국정운영 담당세력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정치의 과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선진국의 경우 선거 때 대개 세금 및 복지와 관련한 이슈가 핵심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 문제가 핵심 사안으로 등장하여 선거가 이루어졌다는 느낌은 솔직히 별로 안 듭니다. 그 간의 선거가 국가공동체의 운영방식을 둘러싼 합리적 정책대결의 장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지역대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지역 대결구도에서 세금논쟁과 같은 정책 대결은 후보자에게도, 유권자에게도 부차적인 문제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 당에 소속되어 있는 것만으로 당선이 보장되고 또 지역갈등이 커질수록 당선이 더 용이하니 국가경영 차원의 정책적 고민을 할 이유가 적어지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지역구도가 정치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주장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역대결구도 정치의 폐해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아무튼, 저는 최근 벌어지는 세금논쟁 속에서 우리 정치의 희망을 봅니다.
우리나라 정당들도 이제 지역정서에 기초하여 특정 지역민들의 지지를 얻어내고자 노력할 게 아니라 정책을 통해 지역을 초월한 지지를 얻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도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어느 사회에나 갈등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감정적 갈등은 조정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합리성에 근거한 갈등은 극복 경험이 사회적 경험으로 축적되어 보다 성숙한 사회로 가는 데 기초가 됩니다.
모처럼 국가경영방식을 둘러싼 정책논쟁을 통해 각 정당들은 자신의 지향점을 국민에게 분명히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국민들도 감정을 배제한 채 보다 합리적인 눈으로 각 당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철학, 그리고 그들의 정책을 바라봤으면 합니다. 정치가 선진화될 수 있어야 다른 모든 부분이 선진화가 가능하다는 사실! 정치인만 생각하면 짜증나고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분들께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