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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휩쓴 피아니스트"수미"

여행가/허기성 2006. 4. 18. 22:28
독일 ‘휩쓴’ 소녀 피아니스트 “돈이 너무너무 싫었어요”
지난 19일 새벽 독일에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어머니, 저 드디어 해냈어요.”
딸 수미(19, 사진)였다. 독일연방 청소년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딸의 목소리가 떨렸다. 수미가 일등을 차지한 대회는 각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을 포함해 피아노 부문 참가자만 400여 명이나 되고 5개월 동안 지역 경연을 거쳐야 하는 유명한 콩쿠르였다. 한숨 자지도 못하고 소식을 기다리던 수미의 부모 이연식(48) 씨와 하영숙(46) 씨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딸이 큰상을 받아서 기쁜 것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남들처럼 뒷바라지 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더 컸다. 수미의 어머니 하 씨가 남편의 눈물을 본 것도 이날이 처음이었다. 수미는 14살 때 혼자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피아노 하나만 생각하고 떠난 길이었다. 당시 수미의 아버지는 구치소에 있었다. 건설업체에 자재를 납품하는 일을 하던 아버지의 회사는 IMF 때 부도가 났다. 그런 형편에 딸을 유학 보내는 것에 대해 주변에서 말도 많았지만 수미 어머니는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당장 생계가 막막했지만 딸의 꿈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때 수미는 영남대 교수님 추천서 한 장과 돈 38만원을 들고 독일에 갔어요. 마땅한 거처가 없어 한인 성당에서 자고 친구들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기도 했어요. 베를린 음대 예비대학생으로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줄곧 그랬어요.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배를 건반 삼아 연주하는 꼬마
“피아노만 치는 나라에 가서 살고 싶어요.”
이수미 양의 연주 모습. “피아노가 남자친구”라고 말하는 이 양은 피아노를 연주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수미는 피아노를 무척 좋아했다. 네 살 때 외할머니와 함께 길을 걷다가 피아노 소리를 듣고는 피아노학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떼쓰던 어린 수미는 집에 가자는 외할머니의 재촉에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피아노 선생님조차 아직은 너무 어리다고 만류했지만 수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수미는 다섯 살 때 “매일 피아노만 치는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피아노가 없을 땐 배를 건반 삼아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 치는 것을 밥 먹는 것보다 더 좋아해서 하루 12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하곤 하던 수미의 피아노 소리는 남달랐다. 외삼촌은 수미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시민회관에서 열린 대회에 나가 1등상을 받았을 때의 일을 잊지 못한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예쁜 드레스를 입었는데, 수미만 화장도 못하고 그냥 평상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갔어요. 순서가 맨 마지막이었는데, 침착하게 좌우를 살펴보고 조신하게 인사를 했어요. 다른 아이들이 외워서 치는 것과는 다른 어떤 느낌이 있었어요.”
음악에는 문외한이었던 수미의 외삼촌이었지만 수미가 치는 피아노에는 감정이 담겨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 아이는 피아노가 운명이다”라고 느꼈던 것은 친부모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후 수미는 여러 지역 및 전국단위 피아노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었고 수미의 재능을 알아본 대구 계명대 이청행 교수와 영남대 장신옥 교수는 여러 가지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자청해서 수미에게 무료 레슨을 해주었고 독일 유학도 적극적으로 추천해줬다.

가난을 이겨내는 힘, 피아노
“돈이 너무너무 싫었어요.”
지난 3월 이수미 양을 보도하는 독일 일간지.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유년 시절을 외갓집에서 보내야 했던 수미. 수미네 집안은 여전히 어렵다. 수미의 부모는 아버지가 출소한 이후 길거리에서 꽃을 파는 노점상을 하면서 살아왔다. 지금도 볼트, 너트 같은 건설용 부품을 납품하는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이다. 그런 형편이라 독일에 있는 딸에게 용돈조차 제대로 보내주지 못하고 있다. 기숙사에 있는 동안 집에서 보내오는 돈은 기숙사 비를 내고 나면 그만이었다. 유로화로 바뀐 뒤부터는 독일 생활이 더 빠듯해졌었다. 그래도 수미는 불만이 없었다. 친구들 생일 파티나 연주가 필요한 곳에서 피아노를 쳐주고 조금씩 용돈을 벌어 썼다. 부모님이 대구 시내 한복판에서 노점상을 할 때 교복 차림으로 스스럼없이 도와주러 나왔을 만큼 수미는 속이 깊었다. 지금도 오히려 수미는 고생하는 부모님과 자신 때문에 어려움을 함께 겪어야 하는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될 때가 많다. “돈이 너무너무 싫었어요. 어려서부터 집안이 어려운 걸 보고 겪어서. 다른 한국 유학생들 부모들이 와서 잘 해주는 걸 보게 되면 그냥 눈을 딱 감아 버려요. 그럴 땐 너무 속이 상해요.”
그럴 때마다 수미는 피아노를 친다. 수미에게 피아노는 남자친구 같아서 그냥 건반만 손가락으로 두드려도 기분이 한결 나아지곤 한다. 피아노를 치는 동안 속상하던 마음이 눈 녹듯이 풀어지고 마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힘들 때 가족 생각이 나서 외로울 때 피아노만은 언제나 수미 곁에 있다. “부모님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파요. 두 분 모두 건강이 좋지 않아 늘 걱정이에요. 특히 아버지는 당뇨 때문에 맛있는 음식도 못 드시거든요. 나중에 커서 능력이 생기면 제일 먼저 부모님과 남동생, 우리 가족이 함께 살고 싶어요.”


독일 사람들도 후원을 아끼지 않는 소녀의 꿈
“피아노로 나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수미는 인복이 아주 많다. 만 18세 이후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없게 되고 지금까지 수미는 60세가 넘은 독일 의학박사 출신의 양부모 댁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돈 한 푼 받지 않고 오히려 수미 뒷바라지를 해준다. 나중에 성공해서 돌려받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저 수미가 잘 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이유에서이다. 돈이 없어 끼니를 거르기도 했고, 감기에 걸려도 약조차 사 먹지 못했던 일까지 겪어야 했던 수미에게 양부모는 늘 고마운 분들이다. 지금까지 수미는 학교도 장학금으로 다녔으며 피아노 레슨도 베를린 음대 교수에게 무료로 받고 있다. 또 이번 콩쿠르에 우승한 이후엔 독일의 여러 도시를 다니며 독주회를 하고 있다. 그 역시 우연히 연주회에서 수미의 피아노를 듣고 감동 받아 눈물을 흘린 어느 폴란드 후원자 덕분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쇼팽이에요. 제일 좋아하는 작곡가는 리스트구요. 쇼팽은 곡 이해가 잘 되고 피아노를 치면서 작곡가의 의도나 마음을 상상할 수가 있어서 좋아해요. 리스트는 곡 하나에 늘 여러 가지 테마가 담겨 있어서 좋아요. 남들보다 리스트를 더 잘 표현해낸다는 얘길 많이 들어요.”
수미가 우승한 대회의 심사위원 6명은 42년 만에 처음으로 만장일치로 수미를 우승자로 뽑았다. 그들은 모두 수미의 테크닉과 소리에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수미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안다. 수미는 자신은 아직 그렇게 훌륭한 피아니스트는 아니라며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미덕을 지녔다. 올 여름방학에 수미는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한국에서 연주회를 열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피아노로 수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피아노는 손가락으로만 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머리로 해석하고 마음을 담아 쳐야 한다는 것을 얼마 전에 깨달았다는 이수미 양. 수미는 열아홉이라는 나이보다 훨씬 어른스럽지만 부모님 얘기만 나오면 금세 울먹이는 여린 감성의 작은 소녀 피아니스트이다. 수미는 멀리 타향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힘겹게 나아가고 있다. 머지않아 수미의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음악 세상을 열어 들려주는 꿈. 그 꿈 안에는 수미를 후원해준 많은 사람들의 고마운 마음과 더 주지 못해 안타까운 부모님의 가슴 아픈 사랑, 무엇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밤낮 없이 노력하는 수미의 땀방울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