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1인 미디어’인 블로그(blog)는 집이다. 거실에는 일상의 흔적이 쌓이고 서재에는 각종 자료와 정보가 쌓인다. 벽에는 기억에 남을 만한 사진들이 걸리고 때로 친구들이 찾아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꽃을 피운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사랑방 구실도 하고 제멋대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토론장 구실도 한다. 블로그는 어느새 나의 또 다른 자아이자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네이버 700만 개, 지금은 블로그 시대
주변 사람들에게 ‘블로그’ 하면 뭐가 떠오르냐고 물었다. 십중팔구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사이트라고 답했다.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사이트에 가입만 하면 손쉽게 블로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주변인들의 대답처럼 블로그를 만들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사이트에 가입해 그 사이트가 제공하는 블로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현재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이 블로그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런 블로그를 서비스형·가입형 블로그라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가입형 블로그인 네이버 블로그는 2003년 10월 문을 열었다. 3년이 채 안 됐지만 벌써 700만 개에 육박하는 네이버 블로그가 활동하고 있다. 블로그보다 홈페이지에 가깝지만 큰 범주 안에서 블로그라고 볼 수 있는 싸이월드 미니홈피도 1천700만 명이 사용하고 있다. 국내 블로그 이용자 중 대다수가 가입형 블로그를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가입형 블로그를 쓸까? 모 카드회사 광고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빠르고 쉽고 편리하게 관리하고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입하고 하라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내 블로그가 생긴다. 인터넷에 대해 잘 몰라도 만들 수 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다. 가장 큰 단점은 빡빡함이다. 비슷비슷한 모습을 한 700만 개의 블로그는 한강변을 따라 쭉 서 있는 아파트와 닮았다. 가입형 블로그는 똑같은 평수와 구조, 똑같은 벽지와 전등을 단 아파트처럼 기능과 구성이 똑같다. 아파트에 입주해 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손으로 집을 짓고 살면 어떨까.’ ‘내가 중심이 되는 집에 살 수 없을까.’ ‘나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집이면 얼마나 기분 좋을까.’ 아파트에서는 아파트를 이용하는 ‘나’보다는 수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는 아파트의 목적이 앞선다. 가입형 블로그에서도 블로거 개개인의 필요성보다는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털 사이트의 필요성이 앞선다. 포털 사이트의 천편일률적인 블로그 대신 직접 블로그를 만들 수 없을까. 여기, 설치형 블로그가 있다.
설치형 블로그는 ‘설치’라는 말 그대로 내용물을 풀어놓고 마음대로 조립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인 호스팅과 집 주소인 도메인을 확보하고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곳에 직접 세운 블로그를 ‘설치형 블로그’라고 한다. 집으로 치자면 한적한 땅에 지은 2층짜리 양옥집이나 경치 좋은 야외에 세운 마당이 넓은 전원주택과 비슷하다. 설치형 블로그는 자신이 필요한 기능만 골라 쓸 수 있고 블로그 스킨 등 각종 디자인도 직접 수정해 사용할 수 있다. 주소도 포털 사이트 주소 뒤에 아이디를 붙이는 형식이 아니라 ‘닷컴’(.com)이나 ‘닷넷’(.net) 등 독립 도메인으로 연결해 충분히 자신의 브랜드로 사용할 수 있다.
파이어폭스에서도 깨지지 않는 웹 표준
캐릭터 회사에 다니는 전연식(34)씨는 지난해 초 설치형 블로그에 관심을 갖게 됐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더 전문적인 내용을 올릴 수 있는 블로그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설치형 블로그 툴인 워드프레스(www.wordpress.org)를 알게 됐다. 전씨는 워드프레스 블로그를 만든 뒤 그 매력에 빠졌다. 전씨는 “설치형 블로그인 워드프레스의 장점은 포스팅과 댓글, 트랙백 등 기본적인 기능이 있고 자신의 편의에 따라 플러그인을 통해 기능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드프레스 한국어 사용자들을 위한 포럼’(www.wordpress.co.kr)을 운영하고 있는 전씨는 “국내에 워드프레스 이용자가 많지는 않지만 설치형 블로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워드프레스 이용자도 함께 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워드프레스와 무버블타입 등 외국의 설치형 블로그도 사용되고 있지만 국내 설치형 블로그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독보적인 프로그램은 국내에서 개발된 태터툴즈(www.tattertools.com)다. 태터툴즈는 웹 프로그래머 정재훈씨가 2004년 3월 개발한 설치형 블로그 프로그램으로 현재는 지난해 9월 ‘태터앤컴퍼니’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법인회사가 관리하고 있다. 태터툴즈는 프로그램 배포 2년 만에 30만 건의 다운로드와 사용자 15만 명을 넘겼다. 워드프레스보다 설치가 더 편리하고 우리말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태터툴즈의 강점이다. 태터앤컴퍼니 안규성 기획팀장은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용자가 늘고 있다”며 “블로그가 점점 전문화되고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의 비중이 커지면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설치형 블로그의 또 다른 매력은 웹표준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웹표준은 어떤 브라우저에서도 사이트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든 규칙이다. 그런데 국내의 많은 사이트와 포털 사이트의 가입형 블로그는 웹표준이 아닌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기준으로 설계돼 파이어폭스 같은 브라우저에서는 사이트가 깨져 보이는 등 소외되곤 한다. 설치형 블로그는 검열에서도 자유롭다. 포털 사이트 가입형 블로그는 종종 포털 사이트의 기준의 맞지 않는 내용이 올라올 경우에는 공개를 못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설치형 블로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내용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 동시에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검색과 노출을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포털 사이트는 검색에서 자사 블로그를 먼저 보여주고 동시에 다른 포털 사이트나 블로그 전문 사이트의 블로그는 잘 노출하지 않는다. 설치형 블로그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포털 사이트 검색과 노출 조절이 가능하다.
훌륭한 블로그는 설치형이었네
블로그 문화가 발달하면서 블로그 콘텐츠의 전문성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블로그의 콘텐츠를 들여다보면 편리함이 강조된 가입형 블로그의 경우 새로운 콘텐츠 생산보다 ‘스크랩’ 등 콘텐츠의 복제와 확산이 대폭 늘어나고 있다. 반면 설치형 블로그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블로거가 많아 콘텐츠 생산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블로그 ‘BKLOVE’s Blog #1’(http://bklove.info)에 따르면 블로그 허브 사이트 ‘올블로그’(www.allblog.net)가 ‘2006년 상반기 블로그 어워드 톱 블로거 100’을 선정한 결과 100개 블로그 중 58개가 설치형 블로그, 42개가 가입형 블로그인 것으로 나타났다. 설치형 블로그 중 70%가 태터툴즈로 만든 설치형 블로그였고, 가입형 블로그 중에서도 절반 이상은 포털 사이트 블로그가 아닌 블로그 전문 사이트인 이글루스(www.egloos.com)의 블로그였다.
가입형 블로그와 설치형 블로그의 갯수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설치형 블로그를 쓰는 블로거들이 내실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실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만큼 콘텐츠의 이용도 중요하다. 포털 사이트 가입형 블로그의 경우에는 사적인 친분관계나 검색을 따라 블로그를 찾게 된다. 설치형 블로그는 친분관계보다 RSS(Really Simple Syndication), 태그, 트랙백 등 자신의 관심사와 키워드로 블로깅을 한다. 블로그 자체를 방문한다는 데 의미를 두기보다 블로그에 올라온 정보를 소비한다는 측면이 강조된다. 이는 블로그의 커뮤니티 구실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유동인구가 많은 길목에 자리잡은 가게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치지만 단골손님이 생기기는 힘들다. 한적한 골목에 위치했지만 그 가게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이 있다면 가게가 이사를 가더라도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있기 마련이다.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검색에서 노출이 쉬운 블로그나 커뮤니티에는 하루 방문자 수가 두 자릿수에서 세 자릿수를 기록한다. 그러나 블로거들끼리의 소통보다는 스크랩이나 간단한 인삿글을 남기는 데 그친다. 전문적인 내용이나 관심사로 이뤄진 블로그는 내용의 질과 수준에 따라 방문자 수가 결정되고 의견교환 등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설치형 블로그가 각광을 받으면서 설치형 블로그와 가입형 블로그의 장점만 모은 새로운 형태의 블로그가 등장했다. 태터앤컴퍼니와 포털 사이트 다음이 손을 잡고 만든 ‘티스토리’(www.tistory.com)가 주인공이다. 티스토리는 설치형 블로그를 쓰고는 싶지만 호스팅 비용 등이 부담스러웠던 단점을 다음의 서버와 회선 제공으로 보완했다. 사용자의 편리성과 안정성에 블로거의 개성까지 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티스토리는 지난 5월 베타 테스터 200여 명을 모집한 뒤 한 명에게 4장의 초대장을 줄 수 있도록 했다. 현재 1천여 명의 베타 테스터가 티스토리를 이용하고 있고 올해 안에 정식 출범한다는 계획이다. 안 팀장은 “정보기술(IT) 업계 종사자 등 블로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티스토리에 많이 주목하고 있어 초대장을 달라는 요구가 빗발친다”며 “티스토리를 통해 더욱 편리하게 설치형 블로그를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티스토리’ 시범 서비스 중
현실 세계에서 내 맘에 쏙 드는 집 한 채 마련하려면 등골이 휜다. 집의 위치나 평수, 인테리어는 다 ‘돈돈돈’이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땅에 내 이름 석 자가 담긴 문패를 단 번듯한 집 한 채를 갖는 것은 돈 대신 노력이고 애정이며 시간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부동산 정책에 따라 집의 가치가 춤을 추지만, 인터넷 세계에서는 노력과 애정과 시간을 투자한 만큼 집의 가치는 정직하게 올라간다. 획일적인 복제판 블로그에 질렸다면, 잘 만든 블로그 하나로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싶다면, 지금이 바로 설치형 블로그에 관심을 가져도 좋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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