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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창간호 특별회견에서 “미국 네오콘이 미사일 방어체제(MD) 구축을 위해 북한 문제를 악용하고 있고, 일본도 악용이라고 해도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용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던 김 전 대통령은 15일 부산대 강연에서도 “미국의 추가적 대북제재는 큰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정치에 개입하고 싶지 않지만 민주당이 집권했으면 한국문제는 진작에 끝났다”며 현 부시 행정부를 직접 겨냥했고, 일본에 대해서도 “우리는 선비의 나라지만 일본은 사무라이 나라이기 때문에 그냥 칼빼서 달려드는 정치풍토가 있다”고 발언 수위를 한층 높였다.
지난 6월 방북 계획이 무산된 뒤 국내외 인사들과의 자택면담만 가졌을 뿐 ‘침묵’을 지켜오던 김 전 대통령이 최근 들어 공개적으로 미.일 우익세력을 향해 공개적인 비판의 칼을 빼든 이유가 뭘가.
김 전 대통령의 최경환 비서관은 “미.일을 중심으로 대북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 되고 있고, 북핵문제 등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의 교착상태가 장기화 되면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자부하고 있고, 퇴임이후 한반도 평화 정착에 모든 힘을 바치겠다고 수차례 공언해 왔던 김 전 대통령으로서는 현 상황 전개가 못마땅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속한 남북정상회담을 촉구한 것에 대해서도 DJ의 한 핵심측근은 “북한 지도부가 어리석은 행동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충고의 메시지와 함께 임기를 1년반 가량 남겨 놓고 있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현 참여정부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질책성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대해서는 큰 틀에서 지지하고 성원하지만, 참여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게 김 전 대통령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최근 언급이 단순히 ‘답답증’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에는 메시지의 농도가 너무 강하다는 해석도 있다.
바깥을 보면서 얘기하지만 기저에는 내부를 향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민주당 소속의 한 전직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정치의 달인”이라며 “남북문제를 통해 전통적 지지세력의 복원을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보여진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정치상황을 볼때 민주진영은 극심한 분열과 침체에 빠져있고, 보수진영의 목소리는 갈수록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을 방치할 경우, 이른바 ‘민주평화 세력’이 추진해온 대북정책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김 전 대통령을 자극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의 회견에서 김 전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께서 제가 한 것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는 계제를 임기 중에 만들어 놓아야 다음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남북관계를 바꾸지 못하게 된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위기의식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DJ와 가까운 또 다른 정치권 인사도 “정치권 재편의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김 전 대통령이 부산대에서 강연하고, 내주 전남대 강연을 계획하고 있는 것도 상징성이 있는 것”이라며 “DJ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흩어진 지지층이 결집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경환 비서관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라고 일축했다.
국제정치를 언급하고 있는 것일 뿐 국내정치와는 무관하며 ‘국내정치 불개입’의원칙은 끝까지 유효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열린우리당의 민병두 의원도 “만약 DJ가 국내 정치에 영향력을 가질려고 생각하는 순간 본인이 생각하는 남북관계해법이나 북미해법이 힘을 잃어버리게 될 수 있다”며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순간 DJ는 축소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