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단군 이래 최대’라는 부동산 가격 폭등 현상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목은 주로 주택에 집중되고 있다. 그런데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 자산을 많이 보유한 기업 쪽에서는 최근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여러 지표를 갖고 치밀하게 분석한 결과 가격 상승세가 이미 꼭지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하고, 팔 수 있는 부동산은 ‘조용히’ 처분에 나서고 있는 건 아닐까?
수치로만 보면 상장기업들의 부동산 처분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12월1일까지 유형자산처분 공시 가운데 선박·기계설비 처분 공시를 제외한 부동산 처분 공시는 모두 29건에 이른다. 지난해(15건)의 2배에 육박한다. 2003년과 2004년에 상장기업의 유형자산처분 공시는 각각 18건, 32건이었다. 올해 29건의 전체 처분 금액은 7354억원으로, 해당 기업 자산총액의 7.3%에 달한다. 부동산을 처분한 업체 중에서는 전국 각지의 ‘알짜배기’ 땅에 공장을 보유한 충남방적, 대한방직, 동일방직 등 섬유업체가 많았다. 이들은 재무구조 개선과 운영자금 확보 등을 처분 이유로 밝혔다.
“유동성 문제 없어도 매각 문의”
흥미로운 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도 부동산 매각을 타진하는 기업들이 요즘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캠코 부동산사업부 김무성 과장은 “기업체들로부터 부동산 매각을 문의받는 사례가 최근 많아졌다.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은 워낙 덩치가 큰 편이라 매입자를 찾기 쉽지 않고, 특히 캠코가 매입하면 원하는 시기에 언제든지 현금을 매도자한테 줄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캠코가 실제로 매입한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한다. 캠코가 사들일 수 있는 기업 보유 부동산은 ‘기업 구조조정’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돼야 하는데, “유동성이 그리 나쁘지 않은데도 캠코에 빌딩·토지 매각을 문의하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김 과장)이다. 대기업으로부터 부동산을 매입하는 쪽은 주로 외국계 연기금이나 외국 투자은행들이다. 김 과장은 “캠코가 내년부터는 기업 구조조정의 범위를 폭넓게 적용할 방침”이라며 “이에 따라 기업이 팔려고 하는 부동산을 캠코가 적극적으로 매입해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유한 부동산의 자산 가치가 높은 ‘부동산 부자기업’들은 부동산값 폭등으로 얼마나 자산 평가금액이 늘었을까? 물론 어떤 기업이 보유한 토지·건물 규모는 취득과 처분이 함께 일어나면서 해마다 변동하기 마련이다. 즉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라 주택뿐 아니라 기업이 보유한 공장부지와 건물 가치도 상승한 건 분명하다.
<한겨레21>이 주요 대기업의 올 3분기 ’분기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KT의 경우 유형자산 가운데 토지 가치는 2004년 말 1조151억원에서 2006년 3분기에 1조534억원으로 늘었다. 건물 가치는 2004년 말 3조8736억원에서 2006년 3분기에 4조594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물론 토지 가치는 공시지가를, 건물 가치는 대차대조표에 기재된 장부 가격(감가상각 누계액 반영)을 기준으로 산정됐기 때문에 실제 부동산 가격에 비해 훨씬 낮게 평가돼 있다. KT가 올해 들어 처분한 토지는 5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처분액(25억원)보다 크게 증가했고, 건물 역시 올해 들어 처분한 금액이 7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0억원)보다 훨씬 늘었다.
삼성전자도 2천억원 넘게 처분
삼성전자가 보유한 토지의 가치는 올 9월 현재 2조5569억원이다. 2004년 말(2조588억원)에 비해 5천억원가량 늘었다. 삼성전자가 갖고 있는 건물의 가치는 올 9월 현재 6조4454억원이다. 지난 2004년 말 4조7948억원에서 2005년 말 5조7231억원으로 1조원이 늘어난 뒤 다시 1년 만에 7천억원가량 더 증가했다. 올해 들어 9월까지 삼성전자의 유형자산 처분액은 2743억원으로 2005년 한 해 총 처분액(1743억원)보다 더 많다. 물론 유형자산에는 토지·건물뿐 아니라 기계·설비 등도 포함되지만, 처분한 유형자산은 대부분 토지·건물이다.
‘땅 부자’로 알려진 한국전력이 보유한 토지 가치는 올 9월 말 현재 3조3862억원으로, 2004년 말(3조3477억원)에 비해 400억원가량 늘었다. 한국전력이 전국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건물 가치는 지난 9월 말 2조6655억원으로 2004년 말(2조4622억원)에 견줘 2천억원가량 뛰었다. 한전은 올 들어 9월까지 179억원어치의 토지를 처분했는데, 지난해에는 총 568억원어치를, 2004년에는 총 133억원어치의 토지를 내다팔았다. 현대자동차가 보유하고 있는 토지 가치는 지난 9월 말 현재 1조9282억원으로 2004년 말(1조8950억원)에 비해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하지만 현대차가 보유한 건물들의 총 가치는 올 9월 3조1144억원으로 2004년 말(2조7470억원)에 비해 4천억원가량 늘었다.
전국 각 도심에 걸쳐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신세계를 보면, 보유하고 있는 토지 가치는 올해 9월 말 1조5954억원으로 2004년 말(1조2482억원)보다 3500억원 정도 상승했다. 건물 가치 역시 올 9월 말 2조5347억원으로 2004년 말(1조8246억원)에 견줘 무려 7천억원 이상 상승했다. 새로 지은 매장이 늘어난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지만, 부동산값 폭등으로 건물의 평가 가치 자체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KT&G의 경우 보유 토지 가치는 올 9월 말 3516억원으로 2004년 말(2998억원)에 비해 500억원가량 증가했고, 건물 가치는 지난 9월 말 6070억원으로 2004년 말(5767억원)에 비해 300억원가량 상승했다.
기업마다 부동산 매각 검토 중?
대다수 기업들은 부동산 처분 목적을 ‘재무구조 개선 및 운영자금 확보’ 차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현금성 자산을 내부 유보로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사업 투자 자금 조달을 위해 부동산을 매각했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해 SK는 종로구 서린동 본사 사옥을 팔면서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2005년 말 현금성 자산을 무려 2조8516억원이나 갖고 있는 SK그룹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부동산을 매각했다고는 볼 수 있을까?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기업마다 부동산 매각을 기업 구조조정 작업의 일환이라고 설명하는데, 외환위기 직후에나 맞는 말일 뿐이다. 구조조정 목적이란 설명은 주가를 띄우기 위해 갖다붙이는 명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아무튼 복수의 재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근 국내 기업마다 부동산을 매각 또는 개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서울 강남에 위치한 글로벌마케팅연구소, 대치빌딩, 양평·양재·인천·부천 사옥 등 6개 건물과 서울 창동의 미분양 오피스텔 72가구, 토지 9필지 등을 외국계 자산유동화 전문회사에 매각(처분금액 1392억원)했다. 그러자 일각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 국면이 정점에 달했다고 판단하고 대기업들이 이제 팔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대두됐다.
대우증권 신동민 연구위원은 “지난해와 올해 보유 부동산을 매각하는 기업이 많아진 건 분명하다. 땅을 많이 가진 기업들은 부동산값 폭등으로 큰 재미를 보고 있다. 영업활동은 경쟁 격화로 인해 이익률이 5%도 안 나오는 반면 부동산 수익률은 매우 높은데, 부동산 자산 가치가 많이 올랐을 때 매각해 현금화하려는 기업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한양증권 김희성 연구원은 “몇 년째 보유 부동산 가치가 크게 오르자, 남의 건물에 세들어 살던 기업은 자체 사옥을 사들이거나 새로 지어서 자신들도 자본이득을 노리는 경향이 늘었다. 수도권에 넓은 공장 부지를 갖고 있는 기업의 경우 자산 가격이 많이 오른 이참에 공장을 팔고 지방의 외진 곳으로 이전을 검토하는 일도 있다”고 귀띔했다.
오를대로 오른 도심 업무용 빌딩
부동산값 폭등에 힘입어 ‘부동산 대박’을 터뜨린 대표적인 기업들은 인천 지역에 공장 부지를 보유하고 있는 화학·철강 등 굴뚝산업 기업군들이다. 한화·대우차판매·동양제철화학·한진중공업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 공장마다 부지가 수십만 평에 달해 공장이 아니라 마치 녹지가 많은 공원에 들어선 느낌이 들 정도다. 이들 기업은 최근 인천시의 도시계발계획에 따라 공장 부지 개발이 이뤄지거나 공장 이전으로 수천억원에 달하는 매각·개발 차익을 얻고 있다. 대우증권에 따르면, 인천에 공장을 보유한 8개 기업의 평균 주가는 부동산 자산 가치가 부각되면서 2005년 1월에 비해 2.5배나 상승했다.
대기업이 보유한 대형 사옥과 공장 부지뿐만 아니라 서울 도심의 업무용 빌딩 가격도 폭등하고 있다. 캠코 김무성 과장은 “업무용 빌딩을 보면, 수요는 많은데 지을 만한 땅이 거의 막혀 있어서 매도자 우위 시장”이라며 “종로와 강남 테헤란로 업무용 빌딩은 최근 몇 달새 평당 200만원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도심 대형 업무용 빌딩의 경우 2∼3년 전만 해도 평당 600만∼700만원 선에 거래가 이뤄졌으나 지금은 평당 1300만∼1400만원에 이른다. 부동산투자자문 알투코리아 유덕현 과장은 “업무용 빌딩의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건물주들이 팔려고 하지 않아 매물이 없는 상황”이라며 “특히 대기업들이 사옥을 다시 짓고, 계열사 사무실을 통합·확장하면서 도심 업무용 빌딩의 가격이 오르고 있는 중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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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세법 악용하는 집부자들?
캠코에 주택 매각 의뢰하고 비과세 혜택받는 ‘도덕적 해이’도
이사 등 일시적인 이유로 1가구 2주택을 보유하게 된 사람은 2주택이 된 시점으로부터 1년 안에 기존 주택을 팔아야 1가구 1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다. 그런데 소득세법은 1년 안에 팔지 못할 경우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매각을 의뢰하면 양도한 것으로 인정해 양도세 비과세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캠코의 김헌식 팀장은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고 캠코에 주택 매각을 의뢰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며 “다만 이런 특례를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캠코에 매각 의뢰가 접수된 뒤 2년 안에 인터넷 공매를 통해 팔리지 않으면 접수를 해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캠코에 매각 의뢰가 접수만 되면 양도한 것으로 인정된다. 그런데 캠코의 인터넷 공매는 경매와 달리 공매 예정가를 소유자와 협의한 뒤 매각을 진행하게 되는데, 소유자가 “가격이 너무 낮다”는 등 여러 핑계를 대면서 매매를 지연할 수도 있다. 비과세 혜택은 그대로 적용받되 매매 시기를 더 늦춰 부동산 값이 더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캠코의 주택 공매 가격은 시장에서 일반 매매되는 가격에 거의 근접한 수준에서 형성된다고 한다.
한편, 내년부터 1가구 2주택자는 양도차익의 50%(일반적인 9∼36%가 아니라)를 물게 되는데 이때도 캠코에 주택을 매각하면 양도차익 중과세 부분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이사 등 일시적인 이유로 1가구 2주택을 보유하게 된 사람은 2주택이 된 시점으로부터 1년 안에 기존 주택을 팔아야 1가구 1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다. 그런데 소득세법은 1년 안에 팔지 못할 경우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매각을 의뢰하면 양도한 것으로 인정해 양도세 비과세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캠코의 김헌식 팀장은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고 캠코에 주택 매각을 의뢰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며 “다만 이런 특례를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캠코에 매각 의뢰가 접수된 뒤 2년 안에 인터넷 공매를 통해 팔리지 않으면 접수를 해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캠코에 매각 의뢰가 접수만 되면 양도한 것으로 인정된다. 그런데 캠코의 인터넷 공매는 경매와 달리 공매 예정가를 소유자와 협의한 뒤 매각을 진행하게 되는데, 소유자가 “가격이 너무 낮다”는 등 여러 핑계를 대면서 매매를 지연할 수도 있다. 비과세 혜택은 그대로 적용받되 매매 시기를 더 늦춰 부동산 값이 더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캠코의 주택 공매 가격은 시장에서 일반 매매되는 가격에 거의 근접한 수준에서 형성된다고 한다.
한편, 내년부터 1가구 2주택자는 양도차익의 50%(일반적인 9∼36%가 아니라)를 물게 되는데 이때도 캠코에 주택을 매각하면 양도차익 중과세 부분을 피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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