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생가의 쓸쓸한 모습. |
사자봉 밑 노 대통령의 새집터. 기초적인 정비가 완료돼 1월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다. |
봉하산 정상 사자봉과 대통령 생가. 역술인들은 노대통령이 이 사자봉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
생가 방문을 환영하는 봉하만을 주민들의 현수막. |
노무현 대통령 퇴임 후 귀향 구상… ‘단순한 은퇴’인가 ‘또 하나의 도전’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 경남 진영 봉하마을은 4월이 가장 화려하다. 2002년 4월, 배꽃이 필 무렵의 봉하마을은 정말 화려했다. 야산을 뒤덮은 흰색 배꽃의 흐드러짐이 꼭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 같다. 그해 4월 노대통령은 여당 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승장구, 대권가도를 질주하고 있었다. 4년 8개월이 흐른 지금, 그는 유례없이 저조한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는 ‘초조하고 불안한’ 대통령으로 전락했다.
그는 무언가를 단번에 뒤집는 데는 그러나 일가견이 있다. 경남 진영 작은 촌마을의 ‘돌콩소년’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뒤집기의 힘’이 작용한 결과다. 키가 작아 ‘돌콩’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 소년은 자신의 협소한 입지를 일거에 뒤집는 저력을 보여줬다. 어찌 됐건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가 보여줬던 속도와 파괴력은 경이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정치적 입지를 뒤집을 수 있는 묘안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견 그의 행보에는 파괴력도, 속도도 감지되지 않는다.
‘속도와 결단력의 사나이’ 노무현은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가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의 강’을 즐기겠다고 한다. 노 대통령의 퇴임 후 귀향 구상은 그러나 그리 단순하지 않다. ‘단순한 은퇴’인지 아니면 ‘또 하나의 도전’인지 아직 확언할 단계가 아닌 것이다.
그는 특이하게도 고향과 어린 시절의 원형질을 비교적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정치인이다. 당돌함, 낙천성, 상황을 돌파하려는 집요한 의지, 약간의 피해의식, 타협을 싫어하는 근성, 낯가림 같은 것들은 성장기의 초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노무현의 가계는 몰락한 양반이 근대화 과정을 통해 어떻게 재기하는가를 보여준다. 수직적 신분상승을 보장한 사법고시, 가족들의 열렬한 성원, 억척스러운 어머니, 탁월한 아들의 야망, 가족회의 등의 모습이 등장한다.
통합신당 반대 이유도 퇴임구상 때문
그는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 확실하지만 그 행보엔 무언가 감춰진 ‘계산’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 대통령이 ‘통합신당’에 열렬히 반대하는 이유도 퇴임 후 그의 정치구상과 맞물려 있을지 모른다. 그는 ‘통합신당’보다 ‘연정(聯政)’이 이 바람직한 정치구도라는 발언을 아주 고집스럽게 외치고 있다.
통합신당파의 한 재선의원은 “노대통령은 퇴임 후 자신이 영향력을 갖는 개혁정당의 존재에 무한한 애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권 재창출보다는 퇴임 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노 대통령은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과는 달리 2008년 2월 임기를 마치고 퇴임해도 62세의 ‘젊은 정치인’이다. ‘노무현 당’이 건재하면 퇴임 후에도 정치를 하기에 충분한 나이다. 그가 “열린우리당은 (호남)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당”이라고 강조하는 것 역시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경남 지역에서의 입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의 귀향이 ‘단순한 은퇴’가 아니라는 얘기도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8월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남 때 자신의 퇴임 후 구상을 언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한 30년 남은 것 같은데 우리당과 함께하다 눈을 감고 싶다. 당의 고문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당대회에서 열린우리당의 진로를 결정하자며 당내 통합신당파를 압박하고 있는 친노(親盧·친노무현 대통령) 그룹은 ‘내년 2월 전당대회 개최-신당파 밀어내기-독자적인 대통령 후보 선출’이란 시나리오를 세워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초 당 복귀가 예상되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과 영남권 주자를 자처하는 김혁규 전 최고위원 등이 참여하는 오픈 프라이머리(국민경선제)를 치르겠다는 구상이다.
노 대통령이 해외순방 전인 12월 3일 작성한 ‘당원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탈당은 절대 없다”고 밝힌 대목도 이런 구상을 관철하겠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는 이 편지에서 “연정(연합정치)은 불가능하고 다시 제안할 수도 없다”면서도 “연합정치는 한국정치의 발전과 국정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언젠가는 진지하게 고민할 문제”라고 연정 문제를 다시 제기했다. ‘언젠가는 진지하게 고민할 문제’라는 표현 속에는 퇴임 후 그의 정치구상이 은연 중 녹아들어 있다.
향후 10여 년간 현역 정치인 활동?
노 대통령이 연정 구상과 함께 선거구제의 개혁을 줄기차게 제기한 것도 그의 퇴임 후 구상과 무관치 않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의원은 “중선거구제 개혁은 노무현 영남당의 생존과 직결돼 있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이 정치적 고향인 부산·경남에서 한나라당이 아닌 정당을 기반으로 국회 의석을 확보하려면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뒤집기의 사나이’ 노 대통령이 ‘임기 전 사퇴’를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잔여 임기를 포기하는 결단을 통해 향후 10여 년간 현역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을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 내년 2월 25일 취임 4주년 때의 ‘사퇴 결단설’은 아직 여진이 감지되는 지진지대다.
그가 퇴임 후 고향 진영으로 내려간다는 스케줄은 확정적이다. 퇴임 후 거처할 집터 예정지인 경남 진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9-1 지역은 형 건평씨가 이미 3개월 전부터 정비를 진행하고 있다. 잡목이 우거졌던 이 터에는 묘소의 이장이 추진 중이다. 노 대통령이 10월 17일 구입한 고향마을 집터 예정지의 등기는 지난달 22일 완료됐고, 곧 건축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집터 예정지는 노 대통령 생가 바로 옆 1300평. 노 대통령 후원자인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의 측근인 정승영(56) 휴켐스㈜ 사장이 지난해 초 사들여 갖고 있던 8000평 가운데 일부다. 등기부등본에는 거래금액이 1억9455만 원으로 기재돼 있다. 청와대는 12월 20일 향후 건축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노 대통령의 퇴임 후 귀향은 역대 대통령 중 누구도 실천하지 않은 발걸음이다. ‘생태계 보전과 청소년 수련운동, 읍면 단위의 소규모 자치활동’을 하고 싶다는 그의 과거 발언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일체의 부연설명을 거절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지 않았고, 대통령이 그리는 구상을 미리 발표할 단계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가뜩이나 조기 레임덕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퇴임 후 구상이 조기에 알려지는 것이 대통령의 리더십 행사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노 대통령의 귀향이 새로운 정치실험의 시작이 될지, 단순한 ‘귀가’가 될지는 아직 더 두고 볼 일이다.
“대통령 귀향은 훌륭한 귀감이 될 것”
노무현 대통령은 경남 김해시 본산리 658번지에서 태어났다. 벼농사와 단감을 재배하는 본산리 봉하마을은 중농 이상의 주민들이 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 봉하마을은 1940년대까지 3~4호가 살았던 벽촌이었고 50여 년 전 마을 앞 늪지가 농지로 개발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이 형성됐다. 노 대통령은 1946년에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으니 대통령의 선친은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되기 전부터 살던 토박이였던 셈이다.
진영읍에서 본산중공업지구를 통하는 지방도로 접어들어 택시로 10여 분을 가면 봉하마을이 나온다. 진영읍의 택시기사마저도 길을 물어야 할 만큼 대통령 생가의 위치를 알리는 도로표지판은 부실했다. 봉하마을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잘 정리된 논이 넓고 길게 펼쳐져 있다. 늪지를 매립해 일궜다는 그 땅이다. 그 너머 낮은 산비탈은 감나무 과수원이다. 특산물인 진영 단감의 감나무 가지가 겨울 햇살에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고 있다.
2002년 인터뷰를 통해 안면을 익혔던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는 끝내 기자와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집앞에서 3시간을 기다렸지만 그는 전화를 통해 “이제 그만들 괴롭히고 제발 상경하시라”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친동생에게 ‘바보같은 형님’이라는 말을 들어가며 적지 않은 구설수에 오른 데다 최근 대통령의 집터 문제로 끊임없이 문의해오는 기자들이 지긋지긋한 모양이다.
마을 입구에는 아스팔트로 포장된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을 주위에 지은 지 몇 년 안 돼 보이는 마을회관·정자·화장실·매점·관광안내센터가 있다. 40호 정도 되는 허름한 마을은 그 뒤편에 자리 잡고 있었고 마을 뒤로 나지막한 산이 버티고 있었다. 이장이 필요한 묘지 곳곳에는 붉은색 깃발이 꽂혀 있고 묘소 앞에는 예외 없이 북어와 과일이 놓여 있어 이장 직전 제를 올린 흔적이 남아 있다.
관광안내센터의 안내인은 “이 마을에는 생가 말고도 대통령이 살던 집이 세 군데 더 있다”고 말했다. 5남매를 교육시키기 위해 집을 줄여 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생가는 500평, 다음 집은 100평, 그 다음은 60평… 마지막 집은 단감 농사 덕에 형편이 나아져 좀 큰 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는 것이 안내인의 설명이다. 그 마지막 집에서 대통령은 결혼도 하고 사법고시에도 합격했다.
생가는 슬레이트를 얹은 20평 남짓의 낡은 건물과 그보다 조금 큰 마당으로 이루어진 집이다. 대통령이 살던 무렵에는 초가집이었다. 현재 평일에는 70~80명 정도, 휴일에는 500명 정도의 관광객이 생가 주변을 찾고 있다. 취임 첫 1년 동안은 주말에 수십 대의 관광버스가 마을에 들어와 안내인은 녹초가 되곤 했다.
마을을 에워싼 집은 봉화산이다. 해발 140m에 불과한 낮은 산이지만 일단 오르고 나면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대의 넓은 들판, 화포천과 봉화산, 봉하마을을 연결하면 만만치 않은 풍광을 보여주는 명당자리다. 봉화산 정상은 사자바위다. 대통령이 이 우뚝한 바위의 정기를 받았다는 것이 안내원의 설명이다. 그 바위가 영험한 기운을 내뿜고 있어 옛 시절부터 무속인들의 기도처로 활용됐다.
인근에는 제2의 우포늪으로 평가받는다는 화포천이 있다. 노 대통령의 퇴임 구상에 들어 있는 생태계 보전 사업이 펼쳐질 곳이다. 낙동강 취수원이기도 한 화포천은 수생식물이 분포하는 수역과 갈대 선버들 등 수변식생이 형성된 습지, 물억새와 갈대가 분포하는 초지로 구분돼 하천습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경제 인제대 환경공학부 교수는 지난해 8월 인제대에서 열린 ‘화포천 현황과 수자원재해 관리의 실천방향’ 심포지엄에서 화포천의 생태와 홍수조절 기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고 ‘습지보호지역’ 지정이 시급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화포천은 노 대통령의 생태보전 계획과는 달리 한때 사라질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지난 2003년 김혁규 당시 경남도지사는 노 대통령 생가와 화포천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부지(지금은 농지로 벼가 심어져 있다)에 최첨단 IT산업단지 조성을 계획했던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당시 김 지사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부산에 위치한 산업단지들의 배후 부품기지로서 산업단지 조성을 계획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타당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낙동강 취수원으로서 화포천의 중요성과 환경오염 문제 등이 제기되면서 계획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귀향 계획에 대해 대부분의 주민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마을 이장 조용호씨(50)는 “고향에 내려와 사는 전직 대통령이 전무한 상태에서 노 대통령의 귀향은 훌륭한 귀감이 될 것”이라며 “지금 국민 여론과는 상관없이 노대통령은 고향 사람들에게 따뜻한 환영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IT산업단지 조성이 무산된 것에 대해서는 섭섭한 마음을 털어놓는 주민들도 있다. 한 주민은 “김혁규 당시 도지사가 100만 평 규모의 IT산업단지 조성을 의욕차게 추진했지만 갑자기 계획이 무산됐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 입장에서는 생태계 보전보다는 산업단지 유치를 통한 지방경제 활성화가 더 절실했다는 시각이다.
주민들은 그러나 최근 노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인 보도에 대해서는 커다란 반감을 드러냈다. “그렇게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누구인들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김해시와 진영읍 일대 주민들은 외지인과의 정치 이야기를 일절 금기시할 정도로 심각한 마음의 갈등을 안고 산다.
노 대통령의 귀향으로 관심을 끄는 부분은 주변 땅값이다. 일부 언론의 보도와 달리 이곳 땅값은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 현지 부동산업자의 말이다. 노 대통령 생가 인근에 위치한 본산 중공업단지가 입주한 이후 공업단지 평균 땅값이 4~5년 전보다 배 이상 뛴 평당 90만~100만 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퇴임 후 자택이 들어설 생가 뒤쪽 임야는 대략 평당 14만~15만 원 선으로 귀향 방침 결정 전후로 큰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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