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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를 사랑한 초코파이맨

여행가/허기성 2007. 1. 4. 05:13

내 파이류 시장 점유율 60%. 다농, 네슬레 등 다국적 식품 기업들 얘기가 아니다. '초코파이 정(情)'으로 유명한 우리 기업, 오리온의 실적이다.

지난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국 식품 업체들에게 러시아는 불모의 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오리온은 러시아 내에서 존경받는 기업, 친근한 기업으로 우뚝 섰다. 주병식 해외사업부문 총괄 부사장 진두지휘 아래 오리온 임직원들이 피와 땀을 쏟아낸 결과다.

그 중에서도 주목받는 한 사람, 김경태(33, 사진) 오리온 러시아법인 영업기획팀장의 공로는 오리온 내에서 회자되고 있다. 비슷한 또래의 오리온맨들 사이에서 그는 '스타'다.

#추위, 위험, 그리고 정(情)

김경태 팀장은 한국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하다 러시아에 매료돼 2002년 모스크바국립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러시아에 대한 호감과 사랑은 그의 젊은날을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모스크바에서 생활할 당시 러시아인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보다는 한국의 가전제품, 자동차를 더 잘 알고 있더군요. 러시아에 관심을 갖고 장기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한국 기업에서 일하며 한국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경태씨가 찾아간 곳은 오리온이었다. 모스크바대학을 졸업하던 2002년 12월의 일이었다.

2004년 초 김경태 사원은 본사 교육을 마치고 러시아로 돌아왔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영업망을 탄탄히 구성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중장비를 동원해 걸림돌을 제거하고 땅을 일군 후 씨앗을 뿌린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토양 위에 양분을 공급하고 세심한 정성을 쏟아야 했다.

지난 2005년 1월, 영업점 교육과 시장 조사차 노보시비리스크로 떠나던 날 밤. 빙판이 돼버린 도로를 달리다 차가 쓰러졌다.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밤이 깊었던데다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가로등까지 없어 주위는 칠흙과도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마을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이들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지프차를 몰고와 아내와 함께 쓰러진 차를 바로 세워주고는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너무 고마운데 해줄 것은 없고 차 안에 있던 초코파이 몇 상자를 건네주자 아주 좋아하더라구요. 오리온에서 근무하는 게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역시 세계 어디서나 정(情)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어요"

김경태 팀장이 느낀 러시아인들의 정이었다.



#거래선 대상 개혁 시도

지난해 1월 러시아법인 영업기획팀장으로 승진한 김경태씨는 표준화 작업을 통해 핵심 거래선을 선정하고 핵심 거래선 수를 크게 늘렸다.

김 팀장은 240여명의 러시아인 영업 직원들과 함께 도시별 핵심 거래선 선정 작업을 벌였다. 이 작업은 거래선을 상대로 효율적인 영업을 위해 시도됐다. 그 결과 핵심 거래선에 선정되기 위한 러시아 유통상들의 노력이 진행됐고 오리온의 영향력이 크게 향상됐다.

거래선을 상대로 한 업무 집행 속도가 빨라지고 효율성이 높아지자 매장 내 오리온 제품의 진열 매뉴얼이 질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경태 팀장은 "지난해말 현재 1000여개가 넘는 핵심 매장을 관리하고 있으며 올해에는 핵심 매장을 배 이상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리온에 따르면 지난 2005년 러시아에서 올린 매출은 5000만달러에 이른다. 연간 초코파이 판매량은 2억3000만개. 파이류 시장점유율은 60%, 초코파이 브랜드 인지도는 72%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전년대비 30% 증가한 65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겸손한 마음으로 사랑하세요"

김 팀장이 글로벌 비즈니스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조언 하나. '그 나라를 사랑하고, 겸손하고, 희생하라'

"우리의 시각으로 그 나라의 국민성과 문화, 환경을 판단하면 단점이 많이 보이게 마련이죠. 이런 단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는 그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서 나타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 받지 못하게 되고 결국 비즈니스에서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 열정적인 사랑에는 감수성이 동반돼야 한다. 감수성 짙은 사랑은 곧 희생정신으로 이어진다.

또 자신을 낮출 줄 알아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다.

러시아인과 러시아의 문화를 사랑했고 더불어 한국과 오리온을 사랑한 김경태 팀장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