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충격 - 화환대신 쌀을 받는 개업식
며칠 전 우연한 기회로 어떤 복지 센터의 개업식(개소식이 맞는 표현이나 한글로 써 놓으니.. ^^)에 가게 되었다. 저명인사들도 많이 온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입구 근처를 보다가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흔히 이런 행사에는 꽃냄새가 진동하는게 정상아닌가? 맞다. 바로 “화환들의 행렬”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예 없지는 않았는데, 그 화환은 저쪽 구석에 그냥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화환대신 기증한 쌀. 이 쌀은 푸드뱅크를 통해서 필요한 이웃에게 나누어 준다고 한다
2007.6. 사회공헌정보센터 개소식에서/사진제공 ⓒ 이정훈
▲ 화환대신 기증한 소금. 역시 필요한 이웃에게 제공된다
2007.6. 사회공헌정보센터 개소식에서/사진제공 ⓒ 이정훈
▲ 고인의 명복을 비는 뜻에서 보내는 화환 사진제공 : ⓒ미디어몽구 http://mongu.net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가면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화환을 진열해놓고 있다. 자리가 모자라서 겹쳐 놓기까지 한다. 예전에 있었던 가정의례준칙에서는 화환의 개수를 제한하기도 했지만, 1999년에 제정된 건전가정의례준칙에서는 아예 규정 자체를 빼버렸다.
어쨌든, 이 화환의 가격은 인터넷 꽃집을 검색해 본 결과 약 10만원에서 20만원 선이다. 평균잡아서 15만원이라고 치자. 하지만, 이 15만원짜리 화환의 생명은, 결혼식의 경우에는 2시간을 넘지 못하고, 장례식의 경우에도 3일을 넘기지 못한다.
모두 쓰레기통에 들어가기도 하고, 다시 재활용 되기도 한다. (재활용 했다고 싸게 해주는 곳은 잘 모르겠지만..) 그러면, 결혼식의 경우 다섯 개 정도 받았다고 치면, 약 75만원이 그냥 장식용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물론, 꽃을 누가 보냈는지는 기록해 두긴 하지만.. 그 분에 대한 고마움은.. 글쎄... 모두들 잊게 되지 않을까?
화환대신 쌀 기증 운동을 하면 어떨까?
우리네 풍습에서는 집안의 경조사때는 마을 사람 모두가 축하하거나 애도해왔다. 결혼식때는 말할것도 없고, 장례식때도 집안을 환히 밝히고서 문상을 받고, 옆에서는 밤을 새우며 떠들어주는 풍습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즉, 기쁘거나 슬프거나 서로 “나누는” 풍습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풍습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그 최첨단을 달리는 것이 바로 “화환”들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바로 쓰고 버리는 화환보다는, 쌀이나 현물을 대신해서 받고 그 쌀을 좋은 곳에 기증함으로써 뜻깊은 날을 더욱 뜻깊게 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특히 푸드뱅크 등에 혼주나 상주의 이름으로 기증을 하면, 후에 기증분에 대해서 세금 공제도 가능하다고 하다.)
화환도 물론 필요하다. 많은 나라가 결혼식이나 장례식때는 꽃장식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런 장식이 과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아예 화환을 혼주나 상주가 두어개 마련해 두는 것도 방법이겠다. 그리고, 쌀 기증을 할때 리본을 같이 보내주면, 그 리본을 자신들이 마련한 화한에 하나씩 더해가는 방법도 좋겠다. (그냥 A4지에 써서 붙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지만..)
보통 20kg짜리 쌀 한가마니가 3만원대에서 5만원대까지 형성되어 있으니, 적당히 2-3가마 수준이면 충분히 기증한 기쁨도 있겠고, 받는 측에서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FTA다 뭐다 해서 농민들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 농산물의 소비를 촉진하게 되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어떤 방법이 좋을까?
그냥 이런 이야기만 내 놓으면, 그냥 지나칠 것 같아서, 조금 더 생각을 발전시켜 보기로 한다.
먼저, 쌀을 파는 주체다. 예식장이나 장례식장 근처에 쌀집이 많을까? 하긴, 요즘에는 동네 쌀집도 많이 사라지는 추세다. 그러면, 대체 어디에 주문을 한단 말인가?
요즘에는 인터넷에 기반을 둔 꽃집들도 많이 있다. 그곳에서 농협등과 협정을 맺고 쌀 주문을 받으면 어떨까 싶다. 사실, 경조화환의 리본 출력 등에 대해서는 쌀을 전문적으로 파는 곳에서는 잘 모르기 일쑤고, 어떤 배달 경로를 통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무엇보다도 그런 일에 전문가는 여태까지 그런 일을 해오던 꽃집이다.
꽃집에서 어떻게 쌀을 파느냐고 하겠지만, 솔직히 말하지면, 어차피 한 브랜드만 지정해 놓고서 “몇 가마니”만 주문받으면 되는 것 아닐까? 이에 대한 라인을 구축하는 것은 그 분들이 더 빠르실 것 같다. 굳이 재고를 보유하지 않아도 근처 지역 농협등과 협약을 맺어 놓으면 손쉽게 운용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익에 대한 부분은 이렇다.. 기증자에 대한 정보를 확실히 전달하고 원하는 방식의 리본 출력등을 해주는 댓가로 쌀값은 원가보다 조금 더 받아도 별로 신경쓰지 않을 것 같다. 이에 대해서도 충분히 경쟁이 붙을 것이므로 쓸데없이 가격이 올라가거나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10만원, 15만원 이렇게 딱딱 떨어지는 편이 지불하는 쪽에서도 좋다)
그리고, 쌀을 받은 사람의 경우에는 미리 푸드뱅크나 여러 단체들에 연락해서 쌀이나 현물을 찾아갈 시간을 정해 두면 좋을 것 같다. 예식장에서 아예 협약을 맺어 놓는 것도 좋겠다. 기증하는 주체는 혼주나 상주로 하거나, 결혼하는 당사자들이나 돌아가신 분의 이름으로 하는 것도 뜻깊을 것 같다. 새로운 출발을 하면서, 남을 도운다는 것도 뿌듯하고, 이 세상을 떠나시는 분께서 가시는 길에도 이 세상에 좋은 일을 하시는 셈이니까 나쁠게 없다.
▲ 푸드뱅크 (http://www.foodbank1377.org/) 전국전화 1688-1377
문제는 이 시스템이 얼마나 조화롭게 움직이느냐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푸드뱅크나 밥퍼 운동 등 이런 현물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단체들이 그런 중심에 섰으면 좋겠다. 서로 협력을 한다면,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솔직히, 기증하는 사람이 적어서 탈이지, 많아서 탈이겠는가?
참.. 그럴바에야 돈으로 주지.. 하는 분들을 위해서 한 마디. 이 운동을 하면 여러 사람이 좋다. 먼저 농민들은 쌀을 팔아서 좋고, 꽃집 등은 기존의 라인으로 새로운 식품을 유통할 수 있어서 좋고, 꽃대신 화환을 보낸 사람들은 자신이 보낸 뜻이 잘 전달되어서 좋고, 혼주나 상주는 받은 쌀로 좋은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지금 논의 되는 것은 기존에는 그냥 버려지던 “화환”에 대한 것이지 부조금에 대한 것이 아니니, 버리지 말고 제대로 쓰자고 하는 것 아니겠나.
화훼농가 다 죽일셈이냐?는 분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지금 이 글로 인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쌀"만" 받거나 쌀"만" 줄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건 내 블로그를 정말 과대평가한 것이다. ^^ 사람들은 이 글을 읽고서 "쌀도 받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가질 것이고, 몇몇 분은 "쌀도 받습니다"라고 할 것이다. (저위에도 썼지만, 저 행사에도 화분과 화환은 어김없이 왔다. 관습이 하루아침에 바뀌는가?) 그런데 화훼농가가 왜 다 죽을까?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다. 이런 운동이 일파만파로 번지는 것을 무서워 하시겠지만... 글쎄...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화훼농가는 다양한 꽃을 취급하는데, 화환이 몇개 준다고 크게 타격받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 좀 억지는... ^^ (2007.7.3 오후 추가함)
새로운 움직임을 기대한다
우리 서민들은 누군가에게 기부하기도 빠듯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집안의 경조사때라도 이런 새로운 시도로 기부가 가능하다면, ‘서민의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세상’ 세상이 오지 않겠나? 물론, 넉넉하신 분들은 넉넉한대로 이 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믿는다.
서로 나누는 정신. 상부상조의 정신. 결코 구식은 아닌 것 같다.
세상을 바꾸는 작은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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