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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찰버스 부수지 마세요, 우리 집입니다"

여행가/허기성 2008. 6. 12. 11:45
"우리보다는 지방에서 올라온 대원들이 더 힘들죠."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가 두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집회를 막아야 하는 경찰의 '말못할 고통'도 심화되고 있다.

특히 집회 저지의 최일선에 선 전의경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에도 애처로움이 묻어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경찰버스로 만든 차벽으로 다가가 경계를 서는 전의경들에게 간간이 "힘내세요, 우리는 전의경을 사랑합니다"라며 응원을 보내는 시민들도 있었다.

6.10 촛불집회가 이어졌던 11일 새벽 기자는 서울교보빌딩과 세종로로 이어지는 차벽의 끝을 더듬어 가봤다. KT 빌딩 뒷골목, 미국대사관으로 빠지는 골목까지 '깻잎 한장 빠져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청와대로 향하는 골목골목을 막아놓은 경찰버스 끝에서 어렵게 전의경들을 만나봤다.

"안 힘들어요?"
"……"
방염 간이 진압복을 입은 전의경들이 시큰둥한 눈빛으로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기자에요. 전의경들 요즘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고생한다고 해서 얼굴 좀 보려고 왔어요."

기자 신분증을 보여주자 그때서야 경계심을 푸는 눈치다.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십여 분을 대화를 나누다 '이런 자세로 인터뷰하기 너무 어렵다'며 은근슬쩍 담을 넘었다. 일반 시민이었다면 밀어냈겠지만 '기자 넉살'에 대원들이 넘어가준다.

'막무가내 인터뷰'에 어느새 말문을 연 대원들은 서울경찰청 소속 방범순찰대 고참대원들이었다. 제대가 한 달도 남지 않았지만 예외 없이 순번대로 1시간 간격으로 '뻗치기' 경계근무를 서던 중이었다.

기자의 출현을 어떻게 알았는지 경찰 무전기가 울린다. 옆에 서 있던 무전병이 '노컷뉴스 기자가 인터뷰 한다'고 전하자 '어려운 거 잘 말씀드려'라며 농담 반 진담 반 답신이 돌아온다.

최근 한 달 남짓 이어진 촛불집회로 전의경들의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퇴근 무렵부터 이튿날 아침 출근시간까지 이어지는 시위 상황에 고참 대원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제대를 3주 남겨 놓았다는 신 모 수경은 대뜸 지방에서 올라온 대원들부터 걱정했다.
"힘들죠. 근무야 항상 하는 일이니까 큰 문제 없지만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으니까 그게 힘든 거죠. 우리야 서울이 근무지니까 피곤해도 (부대에) 들어갔다 나오니까 나름대로 괜찮은데, 지방에서 올라온 애들이 힘들 거에요."

수도권 지역에서 상경한 대원들은 대부분 경찰청이나 서울경찰청 강당 등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빨래와 갈아입을 속옷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 대원들에게 속옷을 긴급 지원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대원들이라고 편한 것만은 아니다.
신 수경 옆에 서 있던 홍 모 수경은 "부대에 들어가는 것은 씻으러 가는 것뿐"이라며 "상황이 종료되는 아침 9시~10시쯤 되면 부대로 돌아가 1~2시간 정도 씻고 옷 갈아입고 다시 촛불집회가 벌어지는 곳으로 눈 붙일 새도 없이 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 간에 버스에서 자고, 현장에서 노숙하고, 땡볕에 오전에 갈아입은 옷은 금새 소금기를 머금기 마련이다. 식사도 서울청에서 지원하는 도시락으로 대부분 해결한다.

최근처럼 오후에 시작해 이튿날 아침까지 시위가 벌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란다. 그렇다 보니 발 뻗고 편하게 잠을 자 본지도 벌써 한 달이 넘은 것.

슬쩍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이야기를 꺼내자 마자 피식 웃는다.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표정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는 정부 방침이 당연하다는 표정인지, 아니면 집회에 나선 시민들의 주장이 당연하다는 것인지 파악이 안된다. 다만 맡겨진 임무가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만은 뚜렷해 보였다.

30분 가까이 인터뷰 하고 있는 동안 시민들이 끊임없이 다녀갔다. 꽁꽁 숨어버린 전의경들을 구경하려는 사람부터, 고생한다며 음료수를 가져다 주는 시민들까지 젊은 전의경들의 노고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눈치 보다가도 정성을 마다할 수 없어 봉지 꾸러미를 담 너머로 받아드는 대원들이 고맙다며 답례를 한다. 건네준 시민들도 뿌듯한 웃음을 안고 수고하라며 사라진다.

"(제대해서) 밖에 나가면 똑같이 어울려 사는 사람들인데, 고생한다고 알아주니 고맙기도 하고, 멋쩍기도 하죠. 그런 분들에게 우리가 무슨 감정이 있겠어요."

최근 경찰의 과잉진압 여론에 대한 조심스러운 대답이다.
시위진압의 제1선에 서는 대원들은 경찰기동대원들이다. 전의경은 특성에 따라 크게 시위진압 전담 기동대(의경과 전경 혼합), 방범순찰대(의경), 교통대(의경), 대간첩작전에 활용하는 전투경찰대(전경)로 나뉘는데, 시대상황에 맞게 혼잡경비 체제로 복합적인 활용을 하면서 상황에 따라 선두와 후미 업무의 구분이 모호해진 상태다.

이 부대 중대장 이 모 경감은 경찰대 출신으로 올 3월 부임했다. 인터뷰 도중 경계근무 교대를 한 고참 대원들이 시민들에게 받은 음료수와 핫도그를 가져와 중대장과 소대장들에게 내민다.

이 경감은 이달 말 아내의 출산을 앞두고 미안한 생각이 먼저 앞선다고 했다.
"집에서 같이 있어주지 못해 출산을 앞둔 아내에게 늘 미안하죠. 한 달째 잠깐 옷 갈아 입으러 집에 들어가면 겨우 함께 밥 먹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씻고만 나와야 해요."

자신이나 소대장들이야 경찰 직원이니 불편함을 감수하지만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밤샘근무를 서는 어린 대원들을 볼 때는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경찰 조직에 대한 불만도 없지 않다고 했다.

시위상황이 격해지면서 전의경 부모들의 걱정 섞인 전화나 문자 메시지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날은 멀리 거제도에서 아침 일찍 올라온 전의경 부모들이 어찌어찌 수소문해서 근무 중인 아들을 찾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만나는 시간이야 고작 10여 분, 이날만 걱정돼 찾아온 부모들이 두셋 더 있단다. 몸조심하라며 걱정스러운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부모님들을 보는 중대장의 마음도 편치 않다.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쪽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한 취객이 집에 가는 길을 열어달라며 버스와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보고를 듣고 있던 중대장이 무전지시를 내린다.

"애들 안 다치게, 특히 뒤에 있는 신병들 화이버(진압모) 착모하고, 잘 좀 안내해 드려."

인터뷰를 마치고 빽빽이 들어선 경찰버스를 보며 출구를 찾아 허둥대고 있을 때, 문득 이 부대 기율경의 말이 떠올랐다.

"다른 건 어쩔 수 없더라도 버스는 시민들이 공격 안 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보면 버스는 잠도 자고, 이동도 하고, 밥도 먹는 우리 집이나 마찬가지거든요. 망가지고 부서지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에요. 이 이야기는 꼭 좀 기사로 써주세요."
출처 : "경찰버스 부수지 마세요, 우리 집입니다"
글쓴이 : 땅박사/허기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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