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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후 물 배급 시대 올 수 있다

여행가/허기성 2008. 9. 11. 12:07
세계미래회의는 최근 ‘10년 안에 물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한민국은 안전지대인가. 정부 수자원종합관리 리포트에 따르면 8년 후인 2016년 우리나라도 물 부족이 심각해진다. 자료 분석 결과 물 배급 시대가 올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샤워도 제대로 못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감증에 걸린 듯 물을 펑펑 쓰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물을 경제적 관점에서 심층 분석했다.
때는 2016년. 지구촌 축제인 올림픽이 한창이다. 한국 대표팀이 연일 승전보를 올리고 있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한국은 지금 ‘물 부족 대란’에 휩싸여 있다. 1939년 이후 77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 탓이다.

2016년 예상 강수량은 730㎜. 역대 최저 강수량(754㎜) 경신이 확실해 보인다. 당장 물 부족이 심각하다. 필요한 물은 358억t이다. 그러나 공급 가능량은 5억t 부족한 353억t에 불과하다. 인구(2016년 추정인구 4933만 명)를 감안했을 때 1인당 연간 10t, 하루 27L의 물이 모자란 셈이다.

국가가 직접 나서 1.5L들이 물병 18개를 개개인에게 배급해야 할 판이다. 바야흐로 물 배급 시대가 개막될지 모른다. 아침저녁 샤워는 ‘있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얘기다. 한 사람이 샤워하는 데 사용되는 물의 양은 평균 18L. 적게 잡아도 이틀은 물을 아껴야 빠듯하게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농민들의 주름살은 더욱 깊게 파이고 있다. 2016년 현재 경작 가능한 면적은 171만4000㏊. 여기에 필요한 농업용수는 156억t이지만 공급량은 154억t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2만2000㏊가 불모지로 변했다.

농림수산식품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당 농가소득은 평균 611만원이다. 그렇다면 1344억원(611만원×2만2000㏊)의 손해가 예상된다. 산업계도 골머리를 앓기는 마찬가지다. 물을 이용해 열연작업을 해야 하는 철강·비(非)철강 업계의 상황이 심각하다.

A사는 동(구리)을 이용해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비철강업체다. 이 회사의 평균 분기 생산실적은 구리 6만1000t, 월 2만333t 규모다. 구리를 제조하기 위해선 물이 필요한데 A사는 하루 6000t(월 18만t)의 용수를 사용한다. 구리 1t을 생산하는 데 8t의 물이 쓰이는 셈이다.

그런데 물 부족 사태로 용수 공급이 1%(1942t) 줄었다. 이 때문에 구리 생산량은 월 2만333t에서 1만8391t으로 감소했다. 그야말로 최악의 사태다.

2016년 최악의 물 부족 사태 오나

이 무서운 이야기는 국토해양부가 수립한 ‘수자원종합계획’에 담겨 있는 ‘2016년 물 부족 전망’을 세부적으로 풀어 정리한 것이다.

이를테면 가상 시나리오다. 수자원종합계획에 따르면 물 부족으로 어려워지는 것은 ‘먹고 씻는’ 것뿐 아니다.

농업을 포함한 모든 산업이 난관에 봉착한다. 최첨단 산업으로 불리는 반도체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반도체 역시 물이 없으면 생산이 불가능하다.

지름 200㎜의 반도체 웨이퍼(wafer) 한 장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은 대략 13t에 달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전체 물 소비의 25%가 반도체 제조에 사용된다.

현재로선 전 세계가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작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이상고온 현상 때문이다. 1900~2100년까지 지표면 온도는 평균 1.4~5.8도 오르고, 해수면은 최대 88㎝ 상승할 전망이다.

지구가 뜨거워진다는 것은 강수량이 부족해짐을 의미한다. 물 보유량은 전적으로 강수에 의존한다. 이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물 부족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산업화도 물 부족을 부르는 주요한 원인이다.

산업화가 가속화하기 시작한 1950년대 이후 기업의 생산활동에 사용하는 물의 양이 급증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투자은행 JP모건에 따르면 네슬레·코카콜라·유니레버·다농·안호이저-부시 등 5개 식음료 업체가 연간 소비하는 물의 양은 인류 전체가 하루 소비하는 것보다 많다.

미국에서는 호수와 지하에서 뽑아낸 물의 40%를 발전소 냉각수로 사용한다. 네슬레의 호세 로페스 최고운영책임자(COO)의 말은 의미심장하다.“1L짜리 제품을 생산하는 데 물 4L가 들어간다. 더 큰 문제는 1L짜리 제품에 들어가는 농산물을 재배하는 데 물 3000L가 소요된다는 점이다.”

화학업체인 다우의 앤드루 리버리스 최고경영자(CEO)가 “물이 ‘21세기의 석유’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진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는 이런 전망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사방에 물이 널렸는데 물 부족이라니?

한강이 저렇게 넘실거리는데 어떻게 물 부족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가? 또 다른 사람은 ‘아프리카 등 일부 지역은 물 부족에 시달릴 수 있어도, 우리는 아닐 것’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환경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정부의 물 부족 전망은 사실관계를 완전히 호도한 것”이라며 “정부가 댐을 만들고, 상하수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관계자들은 “정부가 한때 ‘우리나라는 유엔이 정한 물 부족 국가’라는 점을 강조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며 “이는 우리나라에서 물 부족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반면 정부의 말을 들으면 심각하다. 김석현 국토해양부 수자원정책과 과장은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에 해당한다는 것은 미국의 환경·인구 연구기관인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의 연구 결과”라며 “이를 유엔 산하기구가 각종 보고서에서 인용했을 뿐 유엔이 우리나라를 물 부족 국가로 정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물 스트레스(압박)를 받을 공산이 매우 크다”며 “2016년 찾아올지 모르는 물 부족 사태를 예방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대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국토해양부가 작성한 ‘물 부족 시나리오’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극심한 가뭄 피해 지역인 경남 합천에서 소방관이 주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물 부족 사태 해결 대안은 ‘절약’

그렇다면 정부 주장의 근거는 뭘까. 첫 번째는 1인당 강수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연 평균 강수량은 1245㎜다. 일본의 1718㎜보다는 적지만 미국(736㎜), 중국(627㎜)과 비교하면 1.5배가량 많다. 세계 평균 강수량(880㎜)보다도 많다.

그러나 1인당 강수량은 평균 이하다.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1인당 강수량은 2591t으로 세계 평균 1만9635t의 8분의 1 수준이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수자원량도 많지 않은 수준이고, 게다가 감소추세다.

수자원종합계획에 따르면 2025년 1인당 이용 가능한 수자원량은 1378t으로, 2002년 1493t보다 115t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2년 한 해 1인당 1.5L 물병 99만5333개를 사용했다면 2025년엔 7만6667개 줄어든 91만8666개를 쓰는 데 그친다는 얘기다.

정부가 물 부족을 예상하는 이유는 또 있다. 지형 특성상 물 관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수자원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량변동계수’다. 이는 하천의 최대 유량을 최소 유량으로 나눈 수치다.

유량변동계수가 낮을수록 수자원 관리가 쉽다. 한국의 유량변동계수는 무척 높다. 한강의 경우 90에 달한다. 프랑스 센강(34), 독일 라인강(18)보다 2~3배 높은 수준이다. 한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낙동강의 유량변동계수는 260, 금강과 섬진강은 각각 190과 270에 이른다.

이처럼 유량변동계수가 높은 것은 하천이 산지 주변에 있어 경사가 급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국내 하천의 유계량이 집중 호우가 쏟아지면 급증했다가 가뭄 때면 급격히 떨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만큼 물 관리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김중현 한국수자원공사 차장은 “우리나라는 지형상 물을 통제하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며 “이 때문에 최악의 가뭄이 찾아오면 물 부족 사태를 피하기 힘들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지형 특성상 물 관리가 어렵다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 숱한 대안이 나오고 있지만 아쉽게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물 관리를 위해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은 환경론자들의 반발에 부닥쳐 있다. 한탄강댐 건설을 둘러싸고 수년째 논란이 계속되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김석현 국토해양부 과장은 “댐을 통해 물 관리가 용이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한강의 경우 유계수량이 390에서 90으로 낮아졌고, 낙동강도 372에서 260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댐 건설이 물 통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댐 건설 시 생태환경 변화로 인한 서식지 파괴 등 환경적 폐해가 따른다는 부작용도 무시하기 힘들다. 물 관리를 위해 수돗물 가격을 올리자는 견해도 나온다. 가격을 올려 수돗물 과소비를 억제하자는 것이다.

수돗물에도 ‘시장경제원리’를 적용하자는 주장이다. 가정용 수도요금은 t당 349원으로 미국(769원), 일본(1509원), 독일(2241원)보다 훨씬 싼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거센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가뭄으로 상류지역이 바닥을 드러낸 소양호.

상수도사업 민영화 논란이 일었을 때 가장 먼저 흘러나온 루머가 ‘수돗물 가격 14만원 괴담’이었다. 그만큼 수돗물 가격은 민감하다.

‘물 절약을 생활화하는 게 물 부족 사태를 예방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재현 서경대 교수는 “물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없다면 결국 수요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물 절약의 생활화가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 절약 생활화로 아낄 수 있는 물의 양은 생각보다 많다.

가령 가정의 변기 용량은 대개 13L급이다. 하루 변기 이용 횟수를 7회(대변 1회·소변 6회)라고 가정하면 4인 가족의 물 사용량은 255L다. 하지만 여기에 ‘대소변 구분형 절수 장치’를 설치하면 하루 67L의 절수가 가능하다.

4인 가족 기준으로 360만 가구가 모두 이 장치를 설치하면 하루 24만1200t, 연간 8803만8000t을 절약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63빌딩(533만6000t)을 16.5번 꽉 채울 만한 물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양치용 물컵을 사용해도 많은 물을 절약할 수 있다.

가정에서 양치용 물컵을 사용할 경우 4인 가족이 절약할 수 있는 물의 양은 하루 40L에 이른다. 만약 360만 가구가 양치용 물컵을 사용하면 하루 14만4000t, 연간 5256만t을 아낄 수 있다. 올림픽주경기장(132만2000t)을 40여 번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신재택 한국상하수도협회 팀장은 “티끌이 모여 태산을 이루듯 물 절약이 생활화되면 물 관리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물 부족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한편에선 ‘물 고갈 사태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기우일 뿐’이라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이상고온 현상, 고도 산업화 등으로 물 부족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 중요한 것은 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다국적 투자인행인 골드먼삭스는 “국제유가는 최근 상승세가 꺾이고 있지만 대체할 자원이 없는 물은 20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 지탱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세계미래회의는 한 발 더 나아가 “향후 10년 안에 물값이 원유가격만큼 상승해 물 전쟁(Water Wars)이 발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6년 물 부족 사태 가상 시나리오에서 예견한 최악의 물 대란은 실제 상황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때 물을 배급 받을지도 모른다. 이런 두려운 사태를 막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개인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가 물 관리와 물 아껴 쓰기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