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분조건부 물량 주택시장 부담 가중
저축은행 PF연체율 14.3% '위험 수위'
주택담보대출이 우리 경제에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최대 분수령은 내년 상반기다. 3년 전 급증한 대출의 만기와 거치기간 만료가 줄을 잇고, 기존 주택을 처분한다는 조건으로 받은 대출의 만기도 집중 도래하는 시기다. 금리 급등에 따라 이자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 연체 상태에 빠지고, 빚을 갚기 위해 집을 처분하려 해도 꽁꽁 얼어붙은 주택시장 탓에 팔지 못하고, 이것이 집값 하락을 더욱 부추기는 악순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6일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은 2006년에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가장 큰 폭(31조5,000억원) 늘어나면서 연말 잔액이 275조2,000억원에 달했다.
문제는 주택담보대출이 통상 3년 가량 원리금 상환을 유예하는 거치기간을 두고 그 이후부터 대출금 상환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2006년 급증했던 대출의 상당 부분이 내년 상반기부터 거치기간이 종료되고 원리금 상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특히 지금은 대출 당시보다 금리가 1, 2%포인트 치솟은 상태. 시중은행 관계자는 "거치기간 연장 등의 조치가 없다면 원리금 상환 부담 급증에 연체자가 속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상반기부터 만기 도래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늘어난다는 점도 부담이다. 금융권 전체로 내년에 만기 도래하는 주택담보대출이 2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2006년3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처음 도입됨으로써, 재약정을 하더라도 DTI 규제를 새롭게 적용 받아 대출원금 일부를 상환해야 하거나 이자 부담이 대폭 늘어나는 대출이 적지 않다.
처분조건부 주택담보대출도 시한 폭탄이다. 기획재정부가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에게 제출한 국감 자료에 따르면, 기존 주택을 1년 내 처분하는 조건으로 다른 주택의 담보대출을 받은 건수가 올 들어 9월까지 29만6,823건. 내년에 이 물량이 쏟아지면, 가뜩이나 침체된 주택시장에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
70조원에 육박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부실 가능성 우려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이광재 의원(민주당)에 따르면 6월말 현재 저축은행의 PF 대출은 연체율이 14.3%로 이미 위험 수위에 다다랐고, 금융당국의 저축은행 PF 대출 규제 이후 급격히 늘어난 할부금융사 등 여신전문사의 PF 대출 연체율도 2006년말 0.2%에서 6월말에는 4.2%로 크게 높아졌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주택담보대출과 PF 충격이 시장에 바로 영향을 주지 않도록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종부세 완화된다고요? 완화되면 뭐 합니까? 팔리지도 않는 강남의 고급 아파트는 쳐다보지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로워요." (경매 7년차의 70대 응찰자)
"강남 아파트는 감정평가금액의 80%에도 응찰자가 없는 경우가 허다해요. 60%대로 내려가도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람이 아니고선 입찰에 응하지 않는다니까요." (경매법정에 견학 온 부동산학과 재학생)
"한 번 나왔다 하면 50~60명이 몰렸던 빌라와 다세대 열기도 한 풀 꺾인 느낌입니다. 낙찰건수가 적어지면서 경매물이 누적되고 있는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경매정보업체 직원)
지난 9월 23일 9시30분 중앙지방법원 경매6계. 결코 경매호황이라고 할 수 없던 지난 1월과 비교해 봐도 눈에 띄게 한산했다. 법원 안에 자리한 사람들은 어림잡아 150명 선. 올 초의 절반 수준이다. 재테크의 블루오션이라고 일컬어지던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그나마 법정을 채운 사람들 가운데 3분의 1 가량은 경매를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다.
입찰결과는 법정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했다. 전체 65건 가운데 유찰된 물건이 46건. 아파트 매물이 33건이나 나왔음에도 전체 낙찰건수는 12건에 불과했다.
감정가 6억2500만원의 서초동 서초삼성래미안아파트가 3회 유찰을 기록하며 3억2000만원까지 떨어졌고, 17억원의 방배동 대우로얄빌라트가 감정가의 65%인 11억1000만원에 겨우 낙찰됐다.
보통 1회 유찰될 때 마다 가격의 20% 가량 하향 조정되는 경매의 특성을 감안하면 2회 유찰은 기본, 3회 유찰은 선택이다. 상가시장의 붕괴 이후의 모습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매주 중앙지방법원 경매법정을 찾는다는 강금례 굿옥션 과장은 "최근 경매시장의 분위기는 한산하기 그지 없다"면서 "심지어 하루에 5개 매물만 낙찰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빅4' 낙찰가율 사상 최저치
달라진 부동산의 위상 덕분에 경매시장의 침체도 장기화가 우려되고 있다. 추석 직전 지지옥션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부동산 활황을 이끌었던 강남, 서초, 송파와 분당의 낙찰가율은 2001년 이 회사가 경매분석을 시작한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지옥션은 9월1일부터 12일까지 경매결과를 확인했더니 강남 3구의 낙찰가율이 72.9%로 사상 최저치였다고 밝혔다. 올해 줄곧 80%대를 유지하다가 8월 77.9%로 내려앉고, 9월 초 들어 이보다 5%포인트 더 낮아지게 된 것.
9월8일 동부지방법원에 나온 송파구 문정동 올림픽훼밀리타운의 한 매물은 64%의 낙찰가율을 기록했다. 전용 158.7㎡의 감정가는 16억원이었지만 단독응찰자를 통해 낙찰된 금액은 10억2550만원에 머물렀다. 9월11일 서울지방법원의 감정가 28억원짜리 도곡동 타워팰리스 전용 165㎡도 감정가의 69%인 19억3600만원에 넘어갔다.
1기 신도시를 이끌었던 분당의 낙찰가율은 이보다도 참담하다. 분당구의 낙찰가율은 67.7%다. 분당의 고급 아파트 지역으로 손꼽히는 정자동의 아이파크와 로얄팰리스는 모두 60%대에 낙찰되면서 감정평가금액을 무색케 했다.
9월8일 정자동 아이파크 158.1㎡는 감정가 17억원의 67%인 11억3700만원에 낙찰됐으며, 9월1일에는 정자동 로얄팰리스 244.2㎡가 감정가 25억원의 66%인 16억5000만원에 팔렸다.
◆경기, 인천, 신도시 등 전체적 내림세
최근 경매동향을 살펴보면 비단 경매 침체 분위기는 강남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지옥션이 9월4일부터 17일까지 경매물로 나온 경기지역의 아파트 277건을 살펴본 결과 낙찰률은 39.7%에 불과했다. 서울지역의 37.6%보다는 높은 수치지만 전반적인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분당, 산본, 일산, 중동, 평촌 등 신도시의 아파트 낙찰률은 30%에도 못 미치고 있다. 썰렁한 경매법정의 분위기는 낙찰가율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달 전보다 9.2%포인트가 하락하며 74.3%를 기록하고 있다.
열기가 가득했던 인천지역의 경매시장의 분위기도 주춤한 상태다. 인천의 낙찰가율은 지난달 100.5%에서 99.7%로 소폭 하락했다. 평균 응찰자 수도 한 달 전보다 1.9명 줄어든 9.9명이었다.
◆연립ㆍ다세대 지지선 위협
재개발·재건축의 기대심리가 반영된 연립·다세대 주택은 감정가격 이상을 웃돌며 지지선을 구축하고 있지만 낙찰가율은 하락세다. 서울의 5대 권역인 도심, 강동, 강서, 강남, 강북권 가운데 강동, 강북, 강서권만 낙찰가율이 소폭 상승했다.
반면 강남권의 연립ㆍ다세대 주택의 낙찰가율은 100.3%에서 79.4%로 무려 20.9%포인트 하락했다. 마포, 서대문, 용산, 종로, 중구 등 도심도 지난달보다 12.9%포인트가 빠지면서 서울 경매시장의 낙찰가격 하락을 주도했다.
수도권 지역의 연립ㆍ다세대의 분위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적으로 8월에 비해 8.2%포인트 하락했으며 응찰자 수 역시 0.5명 줄었다.
강은 지지옥션 팀장은 "현재 경매시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한산 그 자체"라며 "9억원 이상의 고가 아파트는 매물이 쌓여 적체현상을 보이고 있고 빌라나 다세대 주택의 열기도 한 풀 꺾였다"고 말했다.
강 팀장은 "경기침체에 부동산 시장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응찰자들이 극히 보수적인 자세로 입찰가를 쓰고 있다"면서 "정부의 규제완화정책이 반등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노려봄직 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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