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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눈"

5억 주담대 받은 집값 4억되면 4억만 상환?

여행가/허기성 2014. 7. 14. 10:19

5억 주담대 받은 집값 4억되면 4억만 상환?

구상권 범위 담보물로 한정' 비소구금융… 당국 도입 추진, 企銀은 상품출시 검토

[구상권 범위 담보물로 한정' 비소구금융… 당국 도입 추진, 企銀은 상품출시 검토]

#시가 7억원의 아파트를 사기 위해 자신의 돈 2억원에 주택담보대출 5억원을 받은 사람을 가정해 보자. 주택 가격이 4억원으로 폭락해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다. 채무자는 경매로 4억원을 갚아도 1억원의 빚이 남는다. 1억원을 갚을 방법이 없다면 이 사람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 하지만 4억원만 갚고 1억원의 빚은 사라진다면 최소한 재기의 기회는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

이처럼 채무자의 과도한 채무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안 중 하나가 '비소구 금융(non-recourse loan)'이다. 낯설은 개념이지만 '구상권(求償權) 범위를 담보물로 한정한 금융'이다. 채무부담이 담보물로 한정되기 때문에 담보물 가치를 넘어선 채무는 면제된다. 미국의 경우 일부 주(州)에서 '비소구금융'의 개념을 적용해 '비소구주택담보대출'을 실제 판매되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비소구 주택담보대출' 논의가 시작됐다. 금융당국이 비소구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일부 은행에선 상품 출시를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0일 '금융규제 개혁방안'을 발표하면서 '비소구 주택담보대출 연구 및 검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발표자료에 단 한 문장만 포함됐지만 짧은 문구에 비해 금융당국 내부에선 상당한 고민이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다.

이미 기업은행이 비소구 주택담보대출 검토에 착수했다. "검토 초기 단계여서 아직 공개할 만한 내용이 없다"는 게 기업은행의 공식 입장이지만 국책은행이 먼저 검토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과의 교감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파악된다.

이미 법적 타당성에 대한 검토도 어느 정도 이뤄진 상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담보가치를 넘어선 채무를 면제토록 강제하는 것은 민법을 바꿔야 하는 등 우리 법체계상 불가능하지만 대출 계약이 금융회사와 개인간에 이뤄지는 사적 계약인 만큼 금융회사가 상품을 출시하겠다고 하면 막을 이유도,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금융회사 입장에선 리스크가 커지는 만큼 대출금리를 일반 주택담보대출보다 높여 가격에 반영하고 소비자가 이 상품을 구매한다면 이는 시장 자율의 영역이라는 의미다. 다만 '비소구 주택담보대출'이 우리 금융시스템의 상식을 뒤엎는 상품인 탓에 전면적 도입보다는 저소득층, 고령층 등 취약계층으로 대상을 한정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소구 금융'은 실제로 경제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정장치로 주목받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6월부터 시작한 '표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제도'에서 '비소구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을 도입했다.

하도급 업체가 원청 업체으로부터 받을 공사대금을 담보로 받은 대출(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에 대해 비소구 금융을 적용한 상품이다. 금융회사는 하도급 업체에서 받지 못한 대출금을 대한주택보증에서 받는다. 국토부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담보 가치를 넘어선 대출금을 보증을 통해 보상받는 점에서 완벽한 비소구 금융은 아니지만 비소구 금융의 개념이 첫 도입된 사례"라며 "하도급대금 지급구조를 혁신해 경제적 약자인 하도급업체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비소구 금융'이 지금은 금융당국 내부에서만 검토가 진행되고 있지만 2기 경제팀이 내수활성화를 가장 큰 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대책으로 논의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주택경기 침체→채무자의 과도한 채무 부담→소비 부진→내수 침체'의 과정으로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채무자에게 모든 위험을 전가하고 있는 지금의 주택담보대출 시스템을 수술해야 한다'는 논의가 전 세계적으로 촉발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실제로 아직 국내에 번역되진 않았지만 경제학계에선 아티프 미안(Atif Mian) 프린스턴대학 교수가 최근 출간한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이 관심을 끌고 있다.

미안 교수는 책을 통해 '현재의 금융시스템은 자산가격(집값)의 변동위험을 분산시켜 소비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채무자에게 집중시키는 폐단을 가지고 있다'며 '자산가격 하락은 채무자의 과도한 자본손실과 소비위축을 가져와 경제불황을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비소구 금융은 채무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점에서 금융위기 이후 강화되고 있는 금융소비자 보호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