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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좀 뺄게요" 부자들 錢의 대이동

여행가/허기성 2014. 7. 24. 07:55

"돈 좀 뺄게요" 부자들 錢의 대이동

11월 차명 금지법 때 2차 예금유출 우려
5억 넘는 거액예금 인출 행렬… 작년에만 13兆 넘게 빠져나가

美시민권자 韓계좌 5만달러 넘으면 美에 통보… 벌금 두려워 예금 탈출
금융소득 과세 확대, 세금폭탄 우려… 부동산·金·저축성 보험으로 갈아타

지난달 초 서울 강남의 한 은행 지점에 70대 초반 고객이 찾아왔다. 이 고객은 "미국 시민권자로 예금 7억원을 갖고 있는데, 미 국세청에 통보되면 세금 문제가 생긴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담당 PB는 "그런 경우 대개 예금을 인출해 상가에 투자하거나, 절세형 보험상품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이 나이에 무슨 투자고 보험이냐. 그냥 금(金)으로 달라"고 했다. 다음 날 이 고객은 예금을 인출해 1㎏짜리 금 골드바 10개를 구입해 사라졌다.

서울 서초구의 시중은행 PB(프라이빗 뱅커)로 일하는 A씨는 월 1000만~5000만원씩 5년간 납입하는 저축성 보험상품 계약을 지난달에만 6건이나 성사시켰다. A씨는 "보험계약을 10년 이상 유지하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피하기 위해 자산가들이 거액 저축성 보험에 가입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은행가에선 거액 자산가들이 수억~수십억원대 예금을 한꺼번에 빼내가는 '쩐(錢)의 대이동'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1~2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쩐의 대이동' 현상은 한국은행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한은 통계에 따르면 시중은행에서 통장 잔고가 5억원(개인, 기업 계좌 합계)이 넘는 고액 계좌 수가 매년 꾸준히 늘어 2011년엔 7만9940계좌에 달했는데, 2012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7만2400계좌로 쪼그라들었다. 5억원 이상 통장의 총잔액도 2010년엔 한 해 동안 80조원가량 늘었지만, 지난해에는 13조7000여억원 줄었다.

◇자산가들의 '거액 예금' 인출 러시, 왜?

 

 

 

부자들의 '쩐의 대이동'을 촉발하는 요인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요인은 지난 7월부터 미국 정부의 해외계좌납세협력법(FATCA·Foreign Account Tax Compliance Act)이 한국에서도 시행된 것이다. FATCA는 미국 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가 외국에 금융계좌를 가지고 있을 경우 금융회사가 미국 조세 당국에 명단과 계좌 내역을 통보하도록 한 법이다. 지난 3월 한·미 조세 정보 자동교환협정이 타결되면서 한국의 금융회사는 6월 말 기준 5만달러(개인 기준·약 5060만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미국인 고객 명단을 미국 정부에 넘겨줘야 한다. 이를 통해 미(未)신고 해외 재산이 드러나면 미국 정부는 액수와 고의 여부에 따라 수만~수십만달러 벌금에 부과한다. 이 때문에 미국 영주권·시민권을 갖고 한국에 거주하고 있던 자산가들이 금이나 상업용 부동산으로 갈아탔다.

두 번째 요인은 지난해 세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연간 금융소득 2000만원 초과자(지난해까지는 4000만원)로 확대된 것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되면 최고 41.8%의 세율이 적용된다.

현재 1년짜리 예금 금리가 2.7%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예금액이 8억원 안팎이면 금융종합소득과세 대상이 되는데, 상당수의 자산가들이 이를 피하기 위해 예금을 빼고 있다.

세 번째 요인은 11월부터 시행되는 ‘차명거래 금지법’이다. 탈세나 재산을 숨길 목적으로 다른 사람(가족도 포함) 명의의 계좌에 돈을 넣는 ‘차명 거래’를 하면 형사 처벌(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하는 법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거액 자산가들이 차명계좌에 들어 있는 돈을 빼내고 있다.

시중은행의 자산관리(WM)담당 부행장은 “이런저런 이유로 거액 자산가들이 1~2년 전부터 돈을 빼기 시작했고, 미처 대비하지 못한 일부 자산가들은 새 제도 시행 한두 달 전에 급히 자금을 빼가고 있다”고 말했다.

◇현금이나 금, 부동산으로 이동

자산가들이 빼낸 예금은 어디로 갔을까. 은행 담당자들은 자산가들이 예금을 수표로 인출해 보관하고 있거나, 보험 가입, 상가 등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한 사례가 많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PB는 “5~6월엔 미국 시민권을 가진 VIP 고객의 상담이 한꺼번에 몰려 입에 ‘단내’가 날 정도였다”며 “상담 고객의 3분의 2 정도는 ‘일단 비는 피하고 보자’는 심정으로 수표로 예금을 인출해 갔다”고 말했다. 현금을 찾아 금(金)으로 바꾼 자산가도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판매된 골드바는 292㎏이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431㎏으로 47.6% 급증했다.

은행권에선 자산가들이 이미 많은 자금을 빼가 최근에는 예금 인출 사태가 다소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오는 11월 차명거래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2차 예금 유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는 예금 인출이 능사가 아니라고 조언하고 있다. 우리은행 문진혁 세무사는 “FATCA의 경우에도 최근 3년간 소득세 신고서와 미신고 사유서 등을 제출하면 벌금을 대폭 깎아주는 등 예외 조항이 있어 본인이 벌금 감면 대상인지 확인해 볼 필요도 있다”며 “세금을 내고 자녀에게 재산을 조기 증여하거나, 안전성이 높은 보험이나 펀드 등 다른 투자처를 물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