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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 즐기는 외국인… '명동 노점'의 경제학

여행가/허기성 2014. 8. 15. 07:31

 순대 즐기는 외국인… '명동 노점'의 경제학

한국전쟁 때 보따리상서 역사 시작… 280여개 노점 성업
각종 먹을거리 등으로 외국인 등 유동인구 100만명 유혹
'권리금 수억원인 곳 있다' 소문… 노점상들 "터무니없다"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일할 거예요. 내가 못하게 되면 자식들에게 물려줄 겁니다. 우리 가족이 살아 있는 한 자리를 넘기는 일은 없어요." 명동 노점에서 15년간 양말을 팔았다는 A씨. 그는 노점상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푸념하면서도 자녀에게 꼭 노점상을 물려주겠다고 했다.

노점은 형편이 넉넉지 않거나 일자리가 마땅찮은 사람들이 하는 장사라고 생각하기 쉽다. 임대료가 없는 데다 초기 투자비용이 비교적 저렴한 때문이다. 그런 노점상을 상상한다면 A씨 얘기를 쉽사리 이해할 수 없다. 힘든 노점 일을 기어이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니….

뜻밖에도 노점을 대물림하겠다고 마음먹은 이는 A씨뿐만이 아니었다. 기자가 만난 명동 노점상들은 일을 그만두더라도 다른 사람에겐 절대 노점을 내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명동에서 오랫동안 노점상을 해왔다는 B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명동 노점상의 대물림 역사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명동 노점상은 6ㆍ25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보따리상들이 명동, 남대문 등지에 와서 장사하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노점상이 시작됐는데 나처럼 나이 든 사람이 오래 전부터 터를 잡고 하는 게 아니라면 모두 가족에게 물려받아서 하는 겁니다. 하고 싶다고 해서 명동에서 노점상을 할 수 있는 게 아녜요. 지금은 들어오려야 들어올 자리가 없어요."

명동 노점상들이 이처럼 가족까지 동원해 자리를 사수하려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명동 노점은 다른 지역의 노점과는 그 격이 다르다. 명동 노점상들의 단체인 '명동복지회'는 전국노점상협회에 가입돼 있지 않다. 전국노점상협회 회원들이 명동에 진입하겠다고 손수레를 끌고 온 적이 있지만 명동복지회의 반발에 못 이겨 돌아가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명동 노점은 다른 지역과 달리 알바를 쓰는 경우가 많다. 30세 이하는 노점 주인으로 등록하지 못한다고 명동복지회 규칙에 규정돼 있음에도 젊은 판매원들이 눈에 많이 띄는 이유다. 이처럼 노점상들이 개별적으로 단체를 만들어 권리를 주장하고 알바까지 고용하는 건 명동 노점이 소위 '돈 되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명동은 하루 유동인구가 100만명에 이르는 관광 명소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내국인도 숙박과 쇼핑, 관광을 위해 명동을 찾는다. 밤마다 명동 거리는 노점을 기웃거리는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며 불야성을 이룬다. 이들의 주머니를 노리고 명동에 들어선 노점이 280여개에 이른다.

이들 노점에선 갖가지 액세서리와 의류, 가방을 취급한다. 일반 상점에서 파는 물건을 대체한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판매 물품의 가짓수가 많다. 먹을거리는 특히 유명하다. 떡볶이, 꼬치, 소시지, 오징어 다리 등 전통적인 노점 음식은 물론이고 올갱이 묵 국수에 짜장면까지 판다. 외국인들이 순대와 떡볶이를 즐기는 풍경은 명동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요즘처럼 더운 날에는 직접 짠 레몬즙에 사이다를 섞은 레모네이드가 불티나게 팔린다. 영락교회 앞 대로에선 젊은 남녀가 레모네이드 판매대를 설치한 자동 손수레를 끌고 떼를 지어 도로를 가로지르는 독특한 광경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명동 일대에는 노점 손수레들이 주차(?)하는 주차장까지 있었다. "아시아에서 명동만큼 노점이 잘되는 곳이 없다"는 한 상인의 얘기가 빈말로만은 들리지 않는다.

명동복지회는 명동상가번영회인 '명동관광특구협의회'와 삼부제 시행 협약을 맺고 하루 195~196개의 노점을 운영한다. 좁은 명동 거리에 어마어마한 노점상이 들어서 있는 셈이다. 이런 환경에서도 노점들은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일 오후 6시께부터 소시지와 떡갈비 등을 판매하는 한 노점을 지켜봤더니 10여분 넘게 줄이 끊어지지 않았다. 인근의 한 상인은 "장사가 가장 안 된다는 액세서리 노점도 하루 매출이 50만 원 이상은 될 것"이라고 했다. 한 노점이 하루 평균 10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고 가정하면 명동 노점상 전체의 한 달 매출액은 58억5,000만원에 이른다.

장사가 잘되기 때문인지 명동 노점을 둘러싼 소문도 많다. 대표적인 게 명동 노점 권리금이 수억원이고 월세가 수백만원이라는 것이다. 노점은 엄연히 불법 상행위인 만큼 매매 등이 금지돼 있는데 암암리에 권리금과 월세가 오가고 있다고 한 상인은 주장했다. "우리도 눈으로 확인한 건 아니지만 들리는 말로는 권리금이 2억원까지 치솟은 곳도 있대요. 돈이 많이 벌리니 권리금을 내고서라도 노점을 하려는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 거예요."

노점상들은 "명동에서 우리를 내쫓으려는 이들이 허위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명동복지회 총무이자 명동 한복판에서 액세서리 노점을 운영하는 S씨는 "노점 아르바이트생들이 노점상과 갈등을 빚다 그만두면 '한 명이 노점상 여러 개를 갖고 있다' '명동 노점상이 하루에 500만원이나 번다'는 등의 헛소문을 인터넷에 올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노점을 임대하거나 전대하면 명동복지회 회원 자격을 박탈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언론 보도와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어디서 어떤 내용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참 답답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매번 아니라고 해도 '명동 노점 권리금이 수억원, 하루 수익이 수백만 원'이라는 식으로 기사가 나갑니다. 어떤 말을 해도 사람들이 우리를 안 믿어요. 먹고살려고 하루하루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왜 자꾸 그런 이야기가 돌아 우릴 괴롭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S씨는 "장사가 영 시원찮으면 동업 신고를 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 만큼 그 정도는 이해해준다"면서 "(일부 노점상이) 좋은 장사 품목을 갖고 오는 사람과 동업하는 경우는 있다"고 말했다.

상가 상인들 주장은 사뭇 달랐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 관계자는 "명동 노점상은 족벌"이라며 "우리는 열불이 치밀어오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동 노점상 중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노점상은 기본이고 한 사람이 노점 서너 개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나, 조카 등 가족이 다 달려들어서 일해요."

이 관계자는 특히 음식점을 하는 상가 상인들이 피해를 많이 본다고 말했다. 그는 "먹을거리는 액세서리나 다른 품목보다 장사가 잘되기 때문에 먹을거리를 파는 노점이 가장 많다"면서 "짜장면, 잡채, 떡갈비 등 없는 메뉴가 없다. 마치 '거리 뷔페' 같다"고 했다. 그는 "먹는장사를 하는 노점 때문에 상가 식당만 죽어난다"면서 "말을 들어보면 식당을 찾는 손님 2명 중 1명이 거리에서 산 음식을 들고 온다고 한다. 하나라도 팔려면 속이 타도 손님을 받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명동 거리 한복판에 위치한 상가 1층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C씨는 "정말 어려운 사람에게 노점상을 하게 하는 건 우리도 이해한다"면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2, 3년 일하게 하고 자활할 수 있도록 도와준 다음 또 다른 어려운 사람들이 들어와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어떻겠냐고 노점 단속권을 갖고 있는 구청에 제안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각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까닭일까. 명동복지회는 지난 3월 명동관광특구협의회와 '명동관광특구의 안전하고 쾌적한 거리 조성을 위한 업무협력 협약서'를 체결했다. 이 협약서에서 명동복지회는 ▲3부제를 실시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루 130대로 노점 개수를 줄인다 ▲노점 자연 감소 시 신규 노점을 금지한다 ▲영업시간(평일은 오후 5시, 동절기는 오후 4시, 주말ㆍ휴일은 오후 2시부터 운영)을 준수한다 ▲바가지를 씌우거나 불량품을 판매하지 않으며 위반 시에는 퇴출한다 ▲지정된 위치에서만 영업한다 ▲인근 점포와 같은 업종을 피한다 ▲절대 금지구역(사거리ㆍ삼거리 중심 등)에서는 영업하지 않는다고 상가 상인들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명동관광특구협의회 관계자는 노점상들이 이 협약을 사실상 따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