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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눈"

퇴근 없는 재택근무자를 위한 가이드라인

여행가/허기성 2014. 8. 17. 07:50

퇴근 없는 재택근무자를 위한 가이드라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집 저녁식탁에는 불청객이 동석했다. 바로 ‘나의 일’이다.

솔직히 나도 예상 못했다. 저녁식사를 할 무렵 업무와 관련한 비상사태가 이렇게 자주 발생할 줄은. 내 일은 음식을 뺏어 먹지는 않지만 식사 분위기에 지장을 주고 남편을 거슬리게 했다.

나는 그 날 밤 식탁에서 일어나면서 남편에게 “딱 한 통화만 하고 올게”라고 말했다. 남편은 묵묵히 닭고기를 계속 씹고 있었다.

“서부에서 걸려온 전화라서 그래.”

나는 그렇게 설명하면 남편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기라도 하리라는 듯 말했다. 2층에 마련한 내 사무실로 올라가면서 나는 뒤를 돌아보면서 “빨리 끝내고 올게”라고 덧붙였다.

일하는 부모에게 재택근무는 굉장히 좋은 기회라는 사실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나는 출장할 때 빼고는 집에서 일할 수 있는 배려를 받은 것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집에서 일하다 보니 다 된 빨랫감을 지하 세탁실 건조기에 넣을 수도 있고, 오후가 되면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에게 인사도 할 수 있고, 일이 바쁘지 않을 때는 딸아이에게 하루종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화도 나눌 수 있다.

재택근무는 특권이고, 나는 이런 특권을 누릴 수 있어서 고맙다. 하지만 특권에는 대가가 따른다.

***

남편은 재택근무의 단점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불만이 많았다. 물론 남편은 내가 집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고 집에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내 일을 가정생활에 너무 깊숙이 끌어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가 일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100% 몰입하지 못하면 남편은 짜증을 낸다. 내가 1층에 노트북을 가지고 내려와서 일하느라 남편이 집안일을 하는 데 지장이라도 주면 화를 내기도 한다.

내가 느끼는 재택근무의 가장 큰 단점은 퇴근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집안에 마련한 사무공간에서 벗어나도 여전히 집이다. 일이라는 녀석은 사무실 밖 공간까지 나를 따라오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백화점 화장품 카운터에서 향수를 팔러 돌아다니는 점원처럼 일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가족들은 내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만다. 내 몸만 그 곳에 있고 마음은 딴 데 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일이 바로 옆에서 나에게 끊임없이 손짓하는 것 같다.

물론 내 일이 많다는 게 문제의 원인이다. 그런데 누구인들 일이 많지 않으랴. 뉴욕 본사에 있는 직원들에게 내가 집에서 놀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나는 언제든 연락이 닿을 수 있어야 하고 언제든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 쫓긴다는 게 더 큰 문제다(혹시 내 상사가 이 칼럼을 읽는다면 나는 태업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여기에 확실히 밝혀둔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팀원들에게 속보 기사를 맡길 수 없다는 것도 조금은 부당하다고 생각된다. 팀원들 대다수가 30~45분 걸려서 통근하는 것을 생각하면 미안해서 속보를 내가 처리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7살배기 딸아이를 재우다가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딸아이는 졸음이 그득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커서 부자가 돼야겠어. 그래야 엄마가 일 많이 안 하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볼수록 모든 문제는 결국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집에서 일하다 보니 이메일도 더 자주 확인하게 되고 사무실에서 일할 때보다 한두 시간 초과근무를 하게 되는 일이 빈번해졌다. 일과 가정을 확실히 구분 지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느 시점에서 일을 그만두는가가 관건이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나는 몇 가지 간단한 변화를 주기로 결심했다.

첫째, 비상사태이거나 중요한 기사이거나 마감을 제외하고는 저녁 7시 이후에는 일과 관련된 이메일이나 전화에 응답하지 않기로 엄격하게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진작 그랬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급한 일이 아니라면 내 말과 마차는 저녁 7시 이후에는 호박으로 변하고 나는 그 날의 일을 마친다. 물론 날마다 목표를 지키지는 못하겠지만 이 시점에서 그냥 손 놓고 있기보다는 일단은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또한 일과 관련된 서류나 자료는 절대로 사무공간 밖으로 유출하지 않기로 했다. 그전에는 거실이나 침실, 주방에 간행물이나 연구 자료가 나와있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자료가 눈에 띄지 않았다면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매일 일을 끝내는 시점에 10분에서 15분 정도 책상을 정리하고 다음날 아침 해야 할 일 목록을 정하는 시간을 갖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하면 그 날 일과를 정리하는 느낌도 들뿐더러 다음날 좀 더 일목요연하고 느긋하게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친구는 두세 주 정도 매일 근무시간과 근무 내용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보라고 제안했다. 만약 개인적인 일을 하느라 30분에서 1시간 정도 회사일에서 손을 놓았다면, 매일 근무시간 이후에 또는 주말에 그 시간만큼 추가로 집어넣으라는 것이다. 그 친구는 “그렇게 하면 네가 실제로 일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감이 올 거야”라고 말했다.

실천이 쉽지는 않겠지만 사소한 몇 가지 변화를 통해 나는 일은 사무공간에서만 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갖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