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캠핑버스테마여행

노.후.대.책

"집 상환금 월 100만 원... 애고 뭐고 생각 못하죠"

여행가/허기성 2014. 11. 14. 23:34

"집 상환금 월 100만 원... 애고 뭐고 생각 못하죠"

"취업도 어려운데 육아는 남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을 낳아서 이런 고통을 되물려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결혼을 한다고 해도 주택문제는..." 장아영(29, 취업준비생)

마이크를 잡은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과 연관된 자기 얘기를 털어놓을 때마다 객석을 채운 80여 명의 청중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출산 해법과 관련한 주제 발표를 내놓은 학자들의 진단과 방향도 어느 정도 명료했다. 그러나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사회보장학회는 14일 오전 서울 롯데호텔에서 '한국사회의 저출산, 해법을 찾는다'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 참석한 청년들은 저출산을 유발하는 사회적인 원인으로 높은 주택 가격과 취업난을 꼽았다. 노동자보다 기업 이윤을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기사 관련 사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사회보장학회는 1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한국사회의 저출산, 해법을 찾는다' 세미나를 열었다. 이태한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장이 발언하고 있다.
ⓒ 김동환

관련사진보기


"정부가 만든 '경력단절 여성 위한 일자리' 현실적으로 안 와닿아"

이날 세미나에서는 20~40대 남녀 6명이 직접 패널로 나와 자신이 겪은 한국 사회와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생각들을 말했다. 직장 경험이 있는 20대 여성 두 명은 안정적인 정규직 직장이 잡혀야 결혼이나 육아 생각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미혼 비정규직 직장인인 이수현(33)씨는 "비정규직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며 입을 뗐다.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신분으로는 주거, 결혼, 출산, 자녀계획 같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비정규직을 위해 출산·육아 대체인력을 뽑아주는 회사는 없다"면서 "비정규직이 출산과 사회적 업무를 병행하는 것은 거의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6개월간 공기업 청년인턴을 거쳤지만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아 취업준비생이 된 장아영씨는 "경쟁에서 밀리고 밀리다가 취업 준비를 길게 하게 됐다"면서 "일단 취업이 우선이고 결혼은 그 다음 문제"라고 털어놨다. 그는 "결혼을 한다고 해도 주택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30대 여성 두 명은 정규직 직장이 있어도 출산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두 살배기 아이를 둔 전자영(32)씨는 "내년에 진급하는데 직급이 올라가면 책임도 많아진다"면서 "한 명은 시어머니가 도와주셨지만 둘째를 낳는 것은 힘들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자녀가 없는 김하영(32)씨는 제도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아이를 낳으면 육아휴직을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는 회사도 드물지만 1년 육아휴직만으로 출산을 결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김씨는 "재택근무나 단축근무가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되면 모를까 개인의 희생만으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한 번 자리를 뜨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현실도 출산의 큰 걸림돌로 지목됐다. 경력단절 여성인 소지애(42)씨는 "세 자녀를 낳고 육아에 전념하다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받을 수 있는 시간당 보수가 5000원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경력단절 여성을 위해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내일 결혼 예정인 서한석(35)씨는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는 가장 큰 이유로 부동산 문제를 꼽았다. 서씨는 "결혼 문제는 집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 결혼하는 친구들 보면 2억 5000만 원짜리 27평형 아파트를 1억 5000만 원씩 대출받고 사는데 그러면 월 상환액만 100만 원이 넘는다"면서 "그럼 애고 뭐고 생각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기사 관련 사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사회보장학회는 1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한국사회의 저출산, 해법을 찾는다' 세미나를 열었다. 이태한 인구정책실장이 발언하고 있다.
ⓒ 김동환

관련사진보기


보건부 "육아휴직 안 지키는 기업 강제로 어떻게 못 해"

저출산 관련, 사회 전반의 다양한 지점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지적과 호소가 이어졌지만 정작 관련 대책을 세우는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 측은 이날 다소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저출산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해 놓고 정작 법제화 되어있는 육아휴직제를 지키지 않는 기업을 강제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하소연 하는 식이었다.

이날 패널들과의 대화에 보건복지부 대표로 나온 이태한 인구정책실장은 "일 문화, 기업 문화 등 사회에 팽배한 문화적인 부분을 바로잡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심층적으로 대책을 내놓을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과 직장인들이 일을 바라보는 시선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 답변을 내놓는 수준에서 그쳤다. 이 실장은 경력단절 여성의 시간제 일자리 문제와 관련해 "노동부가 열심히 정책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면서 "아직은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고 하는데 제가 가서 더 열심히 하라고 하겠다"고 답했다. "뭐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경력 단절을 어떻게든 막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했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이 내놓은 신혼부부 임대주택 한 채 제공안과 관련해서는 "내가 결혼하는데 집을 한 채씩 달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그는 육아휴직 관련해서는 "육아휴직이 법제화되어 있음에도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아니면 하기 어렵다"면서 "(그렇다고 안 지키는) 기업을 강제로 어떻게 해버리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답했다.

이날 객석에서 세미나 진행을 지켜본 청중들은 보건복지부 측 답변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청중 대부분이 사전에 주최 측에 참석의사를 밝히고 등록한 이들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이성민(32, 가명)씨는 "패널들은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자기 얘기들까지 솔직하게 털어놓는데 정부쪽 패널은 말만 들어서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김유정(30, 가명)씨는 "오늘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대화가 있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실망했다"면서 "장관도 아닌 공무원이 저출산 당사자들과 대화에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느냐, 이해한다"고 말했다.

당초 이날 패널들과 대화에 나설 예정이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세미나 주제발표 중에 행사장을 떠났다. 일정을 대행한 이태한 실장은 "어젯밤 갑자기 잡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 참석차 불가피하게 자리를 뜬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문가 패널로 세미나에 참석한 구인회 서울대 교수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문했다. 저출산을 조장하는 일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부가 분명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구 교수는 "이윤을 내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다 보니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도 취약해진 게 문제"라면서 "기업 우선 문화를 일하는 사람 우선하는 문화로 바꾸려면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