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보험료서 사라지는 '사업비'를 아시나요
2011년 3월 모 중소기업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L(27)씨. 입사 5개월 후 L씨는 미래를 위해 연금을 들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며칠 뒤 지인에게 A사 보험설계사를 소개받았다. 설계사는 L씨에게 "변액연금보험이 원금보장은 못하지만 펀드 상품이기 때문에 수익률이 더 좋을 것"이라며 가입을 권했다.
L씨는 설계사 말에 끌려 '무배당100세시대변액연금보험'이라는 긴 이름의 상품에 가입했다. 3년이 좀 지나자 보험료 납부가 벅찬 L씨는 보험을 해지하려고 맘먹었다. A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험료 납입 내역을 확인한 L씨는 깜짝 놀랐다. L씨가 39개월간 납입한 보험료는 390만원. 그러나 A사는 사업비 41만7,300원(10.7%)과 위험보험료 6,660원을 뺀 금액으로 펀드를 운용하고 있었다. '사업비가 대체 뭐지? 설계사가 사업비에 대해선 얘기한 적이 없는데….'
L씨는 A사 민원센터에 "사업비에 대해 설명 들은 적이 없다"고 항의했다. A사 측은 "담당 설계사는 분명히 설명했을 거고 가입설계서에도 다 나와 있다"면서 "가입 후 콜센터 직원과의 통화내용 녹취록도 갖고 있다. 그땐 설계사에게 충분히 설명을 들었다고 답하지 않았나"라며 L씨를 몰아세웠다. L씨는 "원금 보장 여부와 중도 해지 시 환급금에 대해선 충분한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보험금에서 이렇게 많은 사업비를 떼 가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기자에게 하소연했다. 그는 "보험 가입 후 콜센터 직원이 '설계사 설명이 충분했나'라고 물을 때 '예'라고 답한 건 담당 설계사가 콜센터 직원이 묻는 질문엔 '예'라고 답하라고 했기 때문"이라며 "억울하고 답답하다"고 했다.
사업비는 보험료에 포함된 보험사의 운영 경비다. 보험사와 상품에 따라 다르지만 많게는 15%까지 사업비를 뗀다. 운영 경비엔 설계사 수당, 판매 촉진비, 점포운영비, 직원 급여, 수금비용 등이 포함된다. 어떤 보험을 가입하든 사업비는 내게 돼 있다. 그래서 가입 전 사업비가 얼마인지 알아봐야 한다. 특히 저축성 보험에 가입할 땐 사업비 비중을 충분히 살펴야 한다. 사업비 비중이 높으면 연금액 또한 적어진다.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제한 금액이 실질 운용액이기 때문이다.
보험 가입자들은 본인의 보험료에서 사업비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까. 기자가 보험에 가입돼 있거나 가입한 적이 있는 성인 20명에게 "납부한 보험료에 사업비가 포함된 사실을 알고 있나"라고 묻자 단 한 명만이 사업비가 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머지 가입자는 "그런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왜 보험 가입자들은 자기가 낸 보험료에서 사업비가 빠져나가는 걸 모르는 걸까.
B회사 보험설계사인 임모씨는 "일반보험ㆍ실손보험 등에서도 사업비는 다 나간다. 변액보험에서도 운용수수료를 떼간다"며 "설계사들이 보험 상품을 팔 때 사실 얘기를 잘 안 한다"고 했다.
"보험사가 자선사업단체는 아니잖아요. 설계사 수당이나 전반적으로 쓰이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사업비를 떼는 거예요. 그렇지만 보험사가 떼는 사업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고객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저도 그렇고 다른 설계사도 일일이 그것까지 설명하진 못해요. '보험료 일부를 보험사가 떼간다'고 하면 고객도 기분이 나쁠 테니까요. 일부 고객은 그런 걸 꼼꼼히 보고 따지기도 하지만 안 그러는 사람이 더 많은 게 사실이죠."
임씨는 "보험설계사들이 사업비에 대해 꼼꼼히 설명하진 않는 건 잘못됐지만 가입설계서엔 다 나와 있다. 판매할 때 사업비를 강조하고 보험을 판매할 순 없지 않나"라면서 "보험 가입 후 확인전화를 할 때도 고객이 '사업비를 얼마나 떼냐'고 물으면 금액까지 상세히 안내할 거다. 일평생 보장받는 것이기 때문에 직접 잘 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C보험사의 설계사인 장모씨도 고객에게 사업비에 대해 설명한 적이 없다고 했다. 장씨는 설계서를 꼼꼼히 읽지 않은 가입자들을 탓했다. 그는 "계약할 때 사인도 받고 확인 전화로 동의도 받는다. 보험사에서 녹취도 한다"면서 "계약할 땐 동의해놓고 사업비가 뭔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소비자원 약관광고팀 관계자는 보험사의 불완전 판매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 관계자는 "보험사는 설명 업무를 완벽히 이행했다고 말하지만 계약서 등을 꼼꼼히 읽는 가입자는 드문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보험판매 관행 자체가 잘못됐다"면서 "지인을 통해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설계사 말만 믿고 계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험사는 계약서나 녹취록을 통해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놓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가입자만 억울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보험사가 녹취록과 가입자 사인이 들어간 자료를 증거로 내밀면 가입자는 주의업무 소홀을 이유로 소송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면서 "판매 관행을 개선하고 가입자들이 보험 상품을 충분히 공부한 후에 가입하는 방법밖엔 없다"고 말했다.
담당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을까. 금융위 금융서비스국 보험과 관계자는 "저축성 보험은 사업비를 제외한 금액에서 자산을 운용한다는 내용을 담당 설계사가 꼭 설명하게 돼 있다"면서 "가입설계서에 사업비가 얼마나 빠지는지 나와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설계사들의 사업비 설명이 미흡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 "설계사가 사업비가 빠지면 투자금이 적어지고 수익률이 낮아질 수 있다는 걸 설명해야 하지만 계약에 걸림돌이 될까봐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가입할 때 설계서를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입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보험사가 가져가는 선취 사업비를 낮추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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