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부녀회의 두 얼굴
친목 모임인데 이권 개입에 집값 담합까지…
수익 사업은 관리사무소 소관인데
알뜰 장터·재활용 판매 등 쥐락펴락
지출 내역 없이 멋대로 돈 쓰기도
"아파트 문제 전담 기구 설립 필요"
(아파트라는) 특이한 주거형태는 새로운 풍속도를 그려내고 있다. … 주부들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커지고 집단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 단지 안에 들어오는 야채나 생선차도 아파트 운영에 큰 영향력을 갖는 부녀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 아파트를 싼값에 내놓지 말도록 주민들에게 촉구한다. … 부녀회 기금 사용 내역이 분명치 않아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아파트 부녀회는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아파트 붐이 불기 시작한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30년이 흘러 이제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한국에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전체 가구의 절반가량인 816만여가구(2010년 기준)에 이른다. '친목'으로 시작한 아파트 부녀회를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단지 내 이권 개입에다 배우 김부선씨가 제기한 난방 비리, 집값 짬짜미(담합) 등 갖가지 논란의 중심에는 아파트 부녀회가 있다.
■ 집값 짬짜미부터 알뜰장터 이권까지
초창기부터 아파트 부녀회들이 힘을 쏟은 분야 중 하나는 '아파트 매맷값 올리기'다. 최근 서울 송파구 ㄹ주상복합아파트에서는 부녀회가 '아파트를 25억원 이하로는 팔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주변 부동산중개업소들에 요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아파트 부녀회 간부들은 지난 7일 저녁 "부동산업소 두 곳이 아파트 값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해당 업소 '퇴출'을 위한 동의서를 받다가, 1년 전 내놓은 아파트를 처분하지 못하고 있는 '반대 주민'과 폭행 시비가 붙어 경찰 조사까지 받고 있다.
경기 성남시 ㄱ아파트에 사는 김아무개(62)씨는 2008년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부녀회 회계 내역 공지를 보고 황당했다고 한다. 김씨는 "전달만 해도 부녀회비가 1800여만원이나 있었는데 한달 만에 회비가 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했다. 아파트 관리규약에 알뜰장터 사업, 재활용품 판매 등 수익사업은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관리한다고 돼 있지만, 실제 이 사업권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부녀회인 경우가 많다. 2010~2011년 이 아파트 부녀회의 수입·지출 현황을 보면, 알뜰장터 사용료 900만원, 헌옷 판매 수익금 350만원이 수입으로 잡혔다. 하지만 이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지출 내역과 관련 영수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2011년 입주자대표회의 대표를 맡은 김씨는 부녀회비 문제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부녀회의 방해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그래도 부녀회 기금 1억1300여만원을 결국 입주자대표회의 명의 통장에 입금하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권한'을 잃은 부녀회 쪽은 입주자대표회의를 넘보기 시작했다. 현재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대표는 2010년 부녀회 총무가 맡고 있다.
■ 투명하게 운영되는 부녀회
인천시 연수구 ㅇ아파트 주민 이아무개(59)씨는 "부녀회에서 6년 정도 알뜰장터를 열고 재활용품 판매 등을 했는데 수익 내역이 하나도 공개되지 않았다.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해 부녀회가 부당하게 챙긴 돈을 돌려받았다"고 했다.
2010년 주택법 개정으로 알뜰장터 등 아파트 단지 내 수익사업 관리 권한은 부녀회에서 관리사무소로 넘어갔다. 그 뒤로 부녀회를 둘러싼 잡음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ㄷ아파트 부녀회는 "주택법 개정 뒤로 수익사업은 모두 관리사무소에서 관리한다. 별도의 운영비 지출 내역도 연말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 2년간 103개 아파트 단지의 실태를 조사했는데, 부녀회가 스스로 '통장 관리'를 하거나 특정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은 사례들이 적발됐다. 모두 규정 위반이다.
송주열 아파트비리척결운동본부 대표는 14일 "아파트 비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면서도 "국민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만큼 아파트 문제를 전담하는 기구를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2013년 '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를 만들어 아파트 관리 실태조사와 비리에 대한 행정조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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