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강소 韓 벤처들 LA 노크…美 투자자 "기술력 대단"
“당신이 대표(chief) 매니저입니다.”
“뭐라고요? 내가 싸구려(cheap) 매니저라고요?”
3일(현지시각) 오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의 한국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기업설명회 현장. 미국의 벤처캐피털(VC)과 엔젤투자자(개인들의 벤처기업 투자), 액셀러레이터(창업지원기관)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음 교정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사 셀리이노베이션스가 발표에 나섰다.
강남에서 영어 학원을 운영하다 발음 교정 콘텐츠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강진호 셀리이노베이션스 대표의 비유에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던 미국 투자자 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강 대표는 “영어 발음이 좋지 않아 오해를 산 경우가 한 번쯤 있었을 것”이라면서 “이 앱은 발음을 스스로 교정할 수 있게 도와줘 그런 일은 없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실력 있는 韓 벤처기업…실리콘 비치 노크
- ▲ 미래글로벌창업지원센터가 엄선한 국내 IT벤처기업 ▲그루터 ▲넥스트이온 ▲블루핀 ▲셀리이노베이션스 ▲실리콘아츠 ▲아라기술 ▲ASD코리아 ▲엔피코어 ▲퍼플즈 ▲휴이노(가나다 순)./전효진 기자
한국 스타트업이 ‘실리콘비치(Silicon Beach)’라 불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3일(산타모니카)과 4일(오렌지카운티) 이틀간 기업설명회를 가졌다. LA는 실리콘밸리보다 물가가 30% 저렴해 미국에 진출하려는 IT 벤처기업의 새 요람으로 뜨는 곳.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고 미래글로벌창업지원센터 등이 행사 진행을 맡았다.
3일 행사에는 김현명 LA총영사를 비롯해 60여명의 현지 투자자들이 참석했다. 영어 발음 교정 등 학습 콘텐츠 관련 스타트업부터,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Wearable) 기기 전문 업체까지 IT기술 기반의 독특한 사업 모델을 가진 10여개 국내 스타트업이 참가, 각 기업당 10분씩 설명 시간을 가졌다.
- ▲ 셀리이노베이션스(좌)가 영어 발음 교정 앱‘클리어스피치(Clear Speech)'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넥스트이온(우)이 다양한 전자 기기에서 3D사진부터 360도 회전하는 비디오 클립을 재생하는 ‘파노스케이프’(PanoScape)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전효진 기자
할리우드(Hollywood)가 있는 도시답게 문화·콘텐츠 업종 관련 발표가 많았다. 김규현 넥스트이온 대표는 한류를 내세워 공연 문화 사업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군사 훈련 프로그램까지 제품 활용 분야를 여러모로 넓힐 수 있는 아이템으로 현지 투자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김정수 블루핀 대표는 캐릭터 관련 애니메이션 등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교육 콘텐츠를 가장 많이 (총 1만 2000여 편) 확보해 눈길을 끌었다. 김 대표는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모바일 교육 분야를 이끄는 선도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빅데이터 분석기업과 클라우드 관련 스타트업도 주목을 받았다. 작년 6월 실리콘밸리에 거점을 마련한 권영길 그루터 대표는 “고성능 빅데이터 분석 엔진 ‘타조(Tajo)’를 비롯해 사용자 편의성을 높인 대용량 빅데이터 처리 성능 기술로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겠다”고 전했다.
◆“네트워킹으로 투자 선순환”
- ▲ 기업설명회 이후 있었던 네트워킹 시간. 현지 투자자들은 한국 벤처기업과 명함을 주고 받으며 사업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을 이어갔다./셀리이노베이션스 제공
기업 발표가 끝난 후, 벤처 사업가들과 투자자 간 편안한 대화의 시간이 이어졌다. 한국 벤처기업 경영진 주변에는 추가 질문을 하는 외국인 투자자가 끊이지 않았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의 핵심인 근거리무선통신장치를 만드는 퍼플즈는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미국에 어떤 파트너를 찾으러 왔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정병훈 퍼플즈 전략기획 이사는 “단순히 재무적인 투자자 보다는, 지역 프랜차이즈와 협업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함께 열어갈 전략적인 파트너를 원한다”고 말했다. 투자자가 결정권을 가진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 ▲ 퍼플즈(좌)와 실리콘아츠(우) 등 한국 스타트업 경영진들이 외국인 투자자와 미국 사업 진출 방향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전효진 기자
이튿날 오렌지카운티에서 열린 설명회에는 50여명의 미국 투자자들과 액셀러레이터(창업지원기관), 회계사와 변호사 등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다. 오렌지카운티의 도시 어바인(Irvine)은 어바인컴퍼니(Irvine Company)와 손잡고 매년 8개 스타트업을 엄선해 투자 지원을 하는 등 미국 내에서도 벤처기업의 등용문으로 손꼽힌다.
스티브 최 어바인 시장은 모두 연설에서 “단순히 투자자들만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대기업, 회계사, 변호사 등 다양한 관계자들이 스타트업을 지속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면서 “민간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정부도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미국 투자자가 꼽은 매력적인 벤처기업의 조건은?
미국 투자자들은 어떤 벤처기업을 눈여겨봤을까. 이들은 독특함(Unique Idea)과 확실한 수요시장(Focused Target User), 그리고 강한 추진력(Fast Execution) 등을 매력적인 벤처기업의 요건으로 꼽았다.
현지 투자사 LV벤처스의 더글러스 헤크만(Douglas Hechman)대표는 “적은 돈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기반을 갖춘 기업이 끌린다”며 “사업 모델이 주목하는 수요 시장이 실제로 존재하고, 미국에 거점(지사)이 있어 사업을 곧바로 실행할 수 있는 기업이 대표적인 예”라고 전했다.
테크코스트엔젤스의 짐 브랜트(Jim Brandt) 대표는 “이 자리(기업 설명회)까지 왔다면 기술력은 이미 입증된 것”이라며 “현지(미국) 문화를 잘 아는 전문가가 사업 파트너로 있는 것도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미래글로벌창업지원센터는 국내 우수벤처기업을 발굴해 해외 진출에 필요한 해외 법률, 특허, 회계, 마케팅, 통번역 등 컨설팅과 해외 기업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9월 일본, 11월 미국 실리콘밸리 등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기업설명회를 개최한 결과, 2014년 한 해 동안 39개 기업을 지원해 605억원의 투자·연계를 도왔다.
미래글로벌창업지원센터는 오는 3월부터 벨기에를 시작으로 중국, 영국, 홍콩, 일본 등지에서도 해외 기업설명회를 실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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