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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38년째 그대로인 10% 부가세율?

여행가/허기성 2015. 2. 14. 05:44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38년째 그대로인 10% 부가세율?

38년째 그대로인 10% 부가세율…부가세 부담 OECD 하위권
세율 인상·면세범위 조정 등 제도 개선 필요성 꾸준히 제기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기조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복지 구조조정’과 ‘증세’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증세’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가장 마지막 수단으로 고려할 것이라 하고, 야당은 당장 이명박 정부에서 감세했던 법인세부터 원상회복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비즈는 3대 세목인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의 도입 이후 역사와 현황, 각 세목의 증세 찬반 논쟁 등에 대해 정리했다. 그리고 부동산세 금융세 등 자산세에 대한 내용도 추가했다. 독자 여러분이 증세를 해야 할지, 한다면 어느 세목에서 어떻게 증세를 해야 할지 판단해 보시길. [편집자 주]

1977년 6월 7일, 부가가치세 시행을 한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녹실회의가 열렸다. 녹실은 서울 세종로 경제기획원 3층 부총리 집무실 옆 소회의실로 카펫과 가구가 모두 녹색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1970년대 이후 주요 경제정책 대부분이 녹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결정됐다. 이날 녹실회의에는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장예준 상공부 장관, 최각규 농수산부 장관, 김용환 재무부 장관 등 경제부처 장관들이 모였다.

녹실회의에 참석한 장관들은 한 목소리로 부가가치세 시행을 늦춰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반대 여론이 나오고 있었고, 당시 중동건설 자금의 유입으로 통화 팽창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었다. 부가가치세가 시행되면 물가 부담이 커진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재무부만이 부가가치세 시행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었고, 다른 경제부처들은 모두 반대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부가가치세 시행을 강행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부가가치세 시행을 결정하며 “정치는 내가 걱정할 테니 재무부 장관은 경제를 잘 챙겨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가가치세 시행은 박 대통령에게 칼이 돼서 돌아온다. 부가가치세 도입의 여파로 다음 해 총선에서 공화당이 패배했다는 분석이 있고, 박 대통령 시해사건의 도화선이 됐던1979년 부마(부산-마산) 항쟁에서 부가가치세 철폐 요구가 나오기도 했다.

부가가치세는 도입된 지 40년이 가까와지고 있지만 언제 타오를지 알 수 없는 화약고 같은 이슈다. 이렇게 민감한 이슈인 만큼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10%의 부가가치세율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 지금도 부가가치세 세율 인상은 통일 이후의 상황을 대비해 남겨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복지재원 마련이 화두로 등장하면서 부가가치세 세율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 아시아 최초로 도입된 부가가치세…세율은 38년전 그대로

한국은 1977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10% 세율의 부가가치세를 전격 도입했다. 부가가치세는 1960년대말 유럽을 중심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유럽을 제외하면 한국이 상대적으로 빨리 부가가치세를 받아들인 경우에 속한다. 당시 부가가치세 도입을 주도한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중화학공업시대를 열고 독자적인 무기체계개발을 위한 방위산업의 육성이 중요한 과제였지만 당시의 조세제도로서는 세입을 늘리는 데 한계에 도달했다”며 “기존 조세의 세율을 올리는 것보다 조세제도를 합리적으로 개편하고 탈세를 막아 세입을 증대시키는 근본적인 세제의 개혁이 필요했다”고 회고했다.

부가가치세는 모든 거래단계에서 생성되는 부가가치에 대해 과세하는 세금이다. 특정한 물품이나 장소에 대해 특정 거래단계에서 과세하는 개별소비세(옛 특별소비세)와 달리 부가가치세는 모든 재화나 용역의 공급에 대해 모든 거래단계에서 과세하기 때문에 일반소비세에 해당한다. 부가가치세 도입 전에는 한국은 개별소비세 위주의 세수구성을 갖고 있었지만, 부가가치세가 도입된 이후에는 내국세 중에서 부가가치세가 제일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부가가치세 세수는 약 56조원으로 전체 국세수입의 27%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5년 국세징수액 중 부가가치세 비중. /자료:기획재정부 그래픽:박종규


부가가치세는 물품마다 다른 세율로 부과됐던 복잡한 간접세제를 간소하게 바꾸고 탈세 방지, 수출·투자 촉진, 세수증대 등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물가상승 효과가 있고, 조세부담의 역진성이 있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받는다. 부가가치세는 소비지출에 대한 일정 세율로 과세되기 때문에 소득수준이 달라도 부담 세율은 동일하다.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의 부가가치세 부담이 크기 때문에 소득에 역진적인 것이다.

부가가치세가 도입된 이후 세율은 10%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도입 당시에는 기본세율을 13%로 하고 3%를 가감한 범위 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지만, 부가가치세에 대한 반대여론이 커지자 기본세율을 10%로 낮췄다. 이후 1988년 세법 개정에서 탄력세율제도를 폐지하고 실행세율 10%를 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 부가가치세 세율·부담 낮은 한국

한국의 부가가치세율은 신흥국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대만(5%), 싱가포르(8%), 태국(7%) 등은 한국보다 부가가치세 세율이 낮다. 일본도 작년 4월 5%의 소비세율을 8%로 올렸지만 여전히 한국보다 낮다.

반면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은 부가가치세 세율이 한국보다 높다. 고부담·고복지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덴마크와 스웨덴은 부가가치세율이 25%이고, 영국(20%), 독일(19%), 프랑스(19.6%), 벨기에(21%) 등도 한국보다 부가가치세율이 높다. 물론 유럽 국가들은 물품에 따라 부가가치세율을 다르게 적용하는 경감세율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어 단일세율인 한국과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한국의 세율 자체가 낮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래프=박종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부가가치세 부담 현황에서도 한국은 비교적 부담이 낮은 편에 속한다. 2011년 기준 OECD 34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가가치세 부담 평균은 6.7%인데 한국은 4.4%로 28위에 그친다. GDP 대비 부가가치세 부담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세율이 높은 덴마크로 9.9%다. 총 조세(국세+지방세) 대비 부가가치세 부담 비중도 한국은 17.6%로 OECD 34개국 가운데 24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한국은 부가가치세의 소득 역진성을 완화하기 위해 일부 재화나 용역의 공급은 면세를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부가가치세 면세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컨대 OECD나 유럽연합(EU)은 영리교육에 대해서는 부가가치세를 과세하고 있지만 한국은 면세를 적용하고 있다. 수도, 연탄 및 무연탄 같은 기초생필품에 대한 면세범위도 한국이 훨씬 넓다. 기획재정부가 올해부터 금융·보험 서비스에 대한 부가가치세 과세를 결정하는 등 조금씩 면세범위를 줄여가고 있지만,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복지재원 위해 세율 높여야 vs 가뜩이나 힘든 소비에 타격

최근 재정건전성 우려에 시달렸던 서유럽 국가들이 부가가치세 세율을 올리고 있다. 핀란드, 그리스, 폴란드, 포르투갈, 스위스 등이 부가가치세 인상 대열에 합류한 국가다. 한국에서도 복지재원 확보와 재정건전성을 위해 부가가치세 세율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OECD는 지난 9일 발표한 ‘구조개혁평가보고서’에서 “한국의 부가가치세 세율은 OECD에서 두번째로 낮다”며 “조세체계의 개편은 공공·사회지출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2012년 한 토론회에서 “부가가치세 세율을 10%에서 12%로 높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복지재원 확보 방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부가가치세를 2%포인트 높이면 세금을 10조원 정도 더 거둘 수 있다.

성명재 홍익대 교수(경제학부)는 ‘부가가치세율 조정의 소득재분배 효과: 복지지출 확대의 연계 가능’ 연구논문에서 “최근 서유럽 국가에서 부가가치세 세율을 인상하는 것은 소득재분배의 관점에서 긍정적인 경우가 있다”며 “한국도 복지재정 증가 추세와 인구 고령화에 따른 소득과세의 세원분포 축소 가능성을 감안하면 중장기적으로 부가가치세 세율 인상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가가치세가 소득 역진성이 있기는 하지만 소득이 높을수록 소비를 많이 하고 그러면 부가가치세를 더 많이 내게 되기 때문에 그만큼 역진성이 완화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부가가치세 세율 인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일반적으로 부가가치세 세율 인상은 부자보다는 서민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증세 논란이 한창인 정치권에서도 부가가치세 세율 인상에는 거리를 두고 있다.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부가가치세 인상은) 서민들에게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저희들은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도 작년 10월 “부가가치세율 인상은 물가상승 압력, 서민부담 증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히 검토할 사항으로 현재로서는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한국, OECD, EU 부가가치세 면세범위 비교표. /자료:국회예산정책처(2011년 기준)
한국, OECD, EU 부가가치세 면세범위 비교표. /자료:국회예산정책처(2011년 기준)

최근 경기 불황이 소비 부진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정부가 부가가치세 인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부가가치세를 높이면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각종 소비 지표가 저조한 상황에서 정부가 부가가치세를 건드리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부가가치세는 57조1000억원이 걷혔는데 당초 계획보다 1조4000억원이 적은 수준이다. 내수 부진 탓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부가가치세는 정부가 조정할 수 있는 마지막 증세 수단이자 가장 파급효과가 큰 증세 수단”이라며 “향후 통일 등에 대비해 부가가치세 인상 카드는 남겨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가가치세 세율을 건드리기보다는 선진국보다 넓은 면세범위를 조정하거나 매입자 납부제도 등을 통해 부가가치세 탈세부터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더 현실성 있다. 부가가치세는 간접세인데도 징수결정액 대비 체납비율이 2011년 기준 11.3%로 소득세(9%)나 법인세(2.6%)보다 높다. 2011년에 발생한 부가가치세 체납액은 6조7000억원으로 국세체납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6.4%나 된다. 또 신용카드나 현금영수증을 사용하지 않는 무자료거래 등을 통해 부가가치세 탈세가 이뤄지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