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산에서 막걸리를 찾는 걸까
수리산을 나는 술이 산처럼 쌓인 '술이산'이라고 불렀다. 그 안에 술병처럼 생긴 마을이 있고, 그곳에 가려면 병목안을 거쳐야 한다. 나는 수리산 병목안을 내려다보는 창박골에서 10년을 살았다. 창박골은 창이 바위에 박힌 골짜기라는 뜻이니 산적들이 살거나 산적 같은 무리에 대항해 살았던 마을이다. 그곳은 숨어살기 좋은 동네기도 하지만, 술 평론가가 살기 좋은 동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막걸리학교를 막 시작하던 무렵에 내 소개 삼아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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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걸리 한 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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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술 평론가라 소개하면 사람들은 대뜸 '술을 얼마나 마시냐'고 묻습니다. 그때 대개가 얼마나 많은 양을 마시냐는 뜻으로 묻습니다. 우리는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을 술을 잘 즐긴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술을 많이 마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이렇게 대답하지요. 전국 말술 먹기 대회에서 1등을 했다고요. 국가대표로 선발돼 세계대회를 앞두고 지금은 전국 양조장을 돌아다니면서 전지훈련 중이라고요. 그럼 듣는 사람이 빙긋 웃습니다. 그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조금 미심쩍어하면서요.
그때 한마디 더 합니다. 전국 말술 먹기 대회가 열린 곳은 저기 저 안양의, 술이 산만큼 쌓인 수리산이 있는데 그곳 수리산 안쪽 병목안이라고요. 제가 그곳에서 열린 대회에서 1등을 해 부상으로 집을 한 채 받았습니다. 그래서 수리산 병목안에서 살게 됐지요. 3년 전에 대회가 열렸으니, 지금 3년째 수리산 병목안에서 술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병목안 삼거리에는 그날의 행사를 기억하는 엄마네 주막집이 있고, 옥수수 막걸릿집이 있어 해거름이면 운동 삼아 그곳을 찾아가 파전에 막걸리 한 통을 비우지요. 여러분도 막걸리학교에 등록하셨다면 조만간 말술 먹기 대회에 출전하실 기회가 주어질 테고 수업을 충실하게 들으신다면 말술 먹기 대회에서 입상할 만한 내공을 쌓게 될 것입니다. 개학하는 날 뵙겠습니다. 수리수리 말술이~~."
요즘 말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내가 사는 마을을 표현해 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리산이 특별히 술과 깊은 인연이 있는 건 아니다. 산이 독수리의 날개를 펴고 나는 듯해 수리산이라 했고, 그 정상에 수리봉이 있고, 동쪽으로 관모봉이 있고, 서쪽으로 슬기봉과 수암봉이 있다.
천주교인들이 담배 농사를 짓고 숨어 살던 마을이 있고, 기운이 좋다고 해 무속인들이 운영하는 점집과 굿당이 제법 눈에 띄는 마을이다. 창박골에서 수암봉을 거쳐 슬기봉, 수리봉, 관모봉을 거쳐 병목안 시민공원까지 돌아오면 산 능선을 온전히 완주하게 되는데, 산에서 온종일 보낼 생각을 하고 다녀야 한다.
허기도 면하고 갈증도 해소하는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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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목안시민공원에서 바라본 수리산 |
ⓒ 허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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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수리산에서 막걸리를 팔다가 1000만 원이 넘는 벌금을 받고 정식 양조면허를 내기 위해서 막걸리학교를 찾아온 이가 있었다.
"아유, 그렇게 많은 벌금을 내셨어요? 조금 적게 팔았다고 말씀하시지 그랬습니까?" 위로 삼아 그렇게 말했더니 그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신이 담근 술맛이 좋아서, 이 산 저 산에서 그 술을 가져다 팔았나 보다. 그 사람들이 죄다 잡혀들어가 언제부터 얼마 분량의 술을 팔았는지 실토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이는 술을 배우고, 수리산 자락의 마을에 양조장을 내고, 수리산 봉우리 하나를 술 이름 삼아 술을 빚고 있다.
산에 가면 사람들이 막걸리를 한 잔씩 하려 든다. 좋은 관행은 아니다. 그래서 단속을 하지만, 단속반원이 산에서 살 수도 없는지라, 그것을 쉽게 막아내지 못한다. 막걸리 한 사발에 2000원, 짭조름한 마른 멸치에 고추장이 안주로 나온다.
굳이 산중의 술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술도 아니고 왜 막걸리가 산속에서 먹히냐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서다. 등산가들이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 중에 위스키가 있다. 작은 병 위스키는 50㎖ 정도 되는데, 알코올 40% 위스키 한잔에 140㎉가 들어있다. 공깃밥 한 그릇이 300㎉이니, 반 공기 밥을 먹었을 때의 에너지를 얻는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아예 작은 술병이 달려있는 등산 지팡이를 보기도 한다. 산속에서 탈진했을 때에, 술 한 잔이 위급한 상황을 구해준다. 그렇다면 막걸리는 왜인가? 알코올 도수가 6%이고, 막걸리 한 잔 200㎖에 84㎉ 정도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 위스키보다 낮은 에너지를 얻긴 하는데, 허기를 면할 수 있고 갈증해소 음료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먹히는 듯하다. 그래서 산밑에서는 소주보다는 막걸리가 훨씬 더 잘 팔리고, 그에 어울리는 두붓집이나 전집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술은 그 바깥에 '길'이 있다
산속 수리산 병목안에도 옥수수 막걸릿집이 있다. 여느 막걸리보다 더 달다. 땀을 많이 흘리고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서 단 것이 당기는 하산객들에게 단맛 도는 옥수수 막걸리가 인기다.
산속에서 살면서 막걸릿집과 맥줏집이 아슬아슬하게 경합하면서 공존하는 것을 보면서 지내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곳에 살며 술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서 민속학과 문화콘텐츠학을 배웠고, 외국에 나가 술 공부도 하고 국내외 산지사방으로 술 기행을 다녔다. 왜 술에 싸여 살까? 너무 깊이 취한 것은 아닐까? 수리산을 들고 날 때마다 내게 던졌던 물음들이다.
수리산 산속 마을을 떠나던 날, 이삿짐을 정리하는 데 책만큼이나 술이 많았다. 나의 이사는 책장과 책을 지고 다니는 일인데, 이제 식구가 늘어 술통과 술까지 지고 다녀야 한다. 유통 기한이 있는 발효주들은 맛을 보고 버릴 수 있는데, 증류주는 그럴 수가 없다. 세월이 더할수록 알코올과 물이 굳건히 결합하면서 맛이 순해지니 들고 다닌다.
그러면서 술병 하나에 한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다. 술을 만든 사람의 얼굴, 술을 건네준 사람의 얼굴, 이 술을 함께 마시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책은 그 속에 길이 있는데, 술은 술을 둘러싼 그 바깥에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