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 한마리가 진흙탕 만들겠네지역주택조합 사업 괜찮나
지역주택조합. 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 제도다. 하지만 일부 지역주택조합은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다. 문제가 생겨도 탈퇴가 어렵고, 납부한 분담금을 돌려주지 않는 등 악행을 일삼고 있어서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시장을 어지럽히는 격이다. 지역주택조합, 과연 괜찮을까.
“법이 개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습니다. 하지만 저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해서 너무 답답합니다. 집을 사기 위해 죽어라 모은 돈인데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에 묶여 있으니….” 서울시 A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한 조합원 김모 씨의 한탄이다.
무주택자인 김씨는 지난해 1월 A지역주택조합 추진위의 대행사로부터 달콤한 제안을 받았다. 계약금과 업무대행비 2000만원을 입금하면 선착순으로 아파트의 동ㆍ호수를 지정할 수 있으니 서둘러 조합에 가입하라는 것이었다. 유명 건설사가 시공한다는 문구에도 귀가 솔깃했다. 김씨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 모은 종잣돈을 업무대행사에 입금했다.
입금 후 김씨는 사업 관련 소식을 귓등으로도 듣지 못했다. 사업 진행 여부를 업무대행사에 물어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김씨는 탈퇴 의사까지 밝혔지만 거절당했다. ‘이미 납부한 분담금 중 일부를 포기하거나 대체 조합원을 구해와야만 탈퇴를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씨는 “하다못해 보험도 내용이 이상하면 탈퇴하고 돈을 돌려준다”면서 “이렇게 큰 목돈이 들어가는 사업에 탈퇴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김씨의 내집 마련 꿈이 눈물로 점철된 이유는 무엇일까. 답을 찾기 위해선 김씨가 참여한 지역주택조합 사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77년에 도입된 지역주택조합은 일정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이 한데 모여 공동주택을 만드는 제도다. 집이 없는 사람들이 조합을 꾸려 돈을 모으고, 이 자금으로 중심지역에서 다소 떨어진 지역의 토지를 매입, 직접 개발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아파트를 ‘공동구매’하는 것이다. 장점은 사업이윤을 나눠가질 주체에 시행사가 없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이다. 청약통장 없이 가입할 수 있다는 점도 서민에게 매력적이다.
이런 장점 때문에 전국에 지역주택조합 설립 열풍이 불었다. 때마침 부동산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열풍이 더 세졌다. 청약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자 일반 분양시장에선 내집 마련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실수요자들이 지역주택조합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05년부터 올해 6월까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설립인가를 받은 지역주택조합은 총 155개(7만5970가구)다. 그중 지난해 상반기에 설립 인가를 받은 곳만 전체의 20%인 33개 조합(2만1431가구)에 달했다.
눈물로 바뀐 내집 마련의 꿈
지역주택조합에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대부분은 서민이다. 자격조건이 ‘9개 광역생활권에 6개월 이상 거주하고 있는 무주택자 또는 85㎡(약 17평) 이하 주택 1채를 소유한 세대주’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조합 측이 그 운영을 업무 대행사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서민으로 구성된 조합원들이 복잡한 사업절차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원활하게 수행하는 덴 한계가 있어서다. 문제는 업무 편의를 위해 일을 맡긴 대행사가 골치를 썩이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첫째 이유는 전문성 부족이다. 일에 능숙하지 않은 대행사가 사업계획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조합원을 모집하면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토지를 확보하지 않은 채 모집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행사 측은 업무추진비와 대행료 등을 요구하면서 갈등을 키웠다. 심지어 조합원의 분담금에 손을 대는 사건까지 발생해, 지역주택조합은 주택분양시장의 그림자가 됐다.
논란이 커지자 국회가 나섰다. 지난해 12월 29일 주택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돼, 업무 대행의 주체를 명확하게 했다. 주택업체 및 일반 건설업체 등록사업자, 정비사업 전문 관리업자, 부동산 개발업자 등 법에서 정한 공신력 있는 주체만 업무 대행을 할 수 있도록 정한 것이다.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 처벌규정까지 뒀다.
더불어 주택조합 업무대행자가 거짓이나 과장 광고를 하며 조합원 가입을 알선할 경우에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권익위원회 관계자는 “주택조합사업이 사회 이슈로 떠오른 것은 전문지식 없는 업무 대행사들이 마구잡이로 조합원을 모집했기 때문”이라면서 “이제 이들을 처벌할 근거가 생겼기 때문에 피해가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사업을 추진 중인 조합원들은 한숨만 짓고 있다. 개정안이 시행돼도 달라지는 게 별로 없어서다. 무엇보다 공신력 있는 주체만이 업무 대행을 맡을 수 있는 건 법 시행 이후 계약체결 때부터다. 지금까지 문제는 해결할 길이 없다. 조합원 탈퇴, 분담금 반환 규정 등이 개정안에서 빠진 것도 아쉽다는 지적이 많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는 조합과 개인의 사私적인 계약이기 때문에 관官이 직접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규제가 너무 많아지면 주택조합시장에 선의의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주택사업에 ‘가격 메리트’가 있는 만큼 어느 정도의 리스크는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 “개정안은 불완전하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180도 다르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조합 사업에 규제를 두면 시장이 축소될 것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의 취지는 돈 없는 서민들이 보다 쉽게 내집 마련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언제든 엎어질 수 있는 시장에 가난한 서민이 목돈을 쏟아 부을 수 있겠는가. 신뢰가 없는 시장은 성장하기 어려운 법이다.” 개정됐지만 불완전한 법으로 과연 지역주택조합의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까. 일단 시장은 부정적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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