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꼭 섹스를 통해서만 확인하는 게 아니잖아요” 젊은 부부들
중에서도 잠자리를 하지 않고 지내는 섹스리스(sexless)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섹스가 부부생활의 윤활유 역할은 하지만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것. 섹스 없이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주부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case 1
“각자 바쁘게 일하고 여가시간 함께 즐기며 행복 찾아요” ------------------------------------------------------------------- 이지영(가명) (30세·결혼 6년차)
사람들은 우리 부부를 보면 혹시 남매가 아니냐는 말을 가끔 한다. 부부가 함께 살면 닮아간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내가 거울을 봐도 남편과 조금 인상이 비슷해지는 것 같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부부는 정말 오누이 같은
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로 손만 잡고도 잠이 잘 오는 그런 사이니 말이다.
대학 1학년 때 3살 위인 남편을 만나 오랜 기간
연애하고 결혼한 지 올해로 6년째.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10년이 좀 넘는다. 우리는 처음부터 생각이나 취향, 가치관이 참 비슷한 커플이었다.
결혼 전부터 아이를 낳는 것보다는 각자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섹스에 갈증을 느끼지 않는
것도 그래서일까?
남편은 직장 일도 바쁜데 야간 대학원까지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는 선배와 함께 화실을 열어 너무나 바빴다.
그전까지는 내 그림만 그리다가 사업이라고 벌여놓고 보니 신경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남편은 고맙게도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화실에 들러
내 일에 신경을 써주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 밤이 늦어서야 돌아오고, 주말에도 남편은 공부한다며 도서관으로 가고, 나는 화실로
출근하고…. 이처럼 각자의 일에 빠지다 보니 집에서 얼굴을 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오히려 밖에서 잠깐씩 시간을 내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 먹거나
짧은 데이트를 즐겼다. 그러다 보니 섹스를 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섹스보다는 각자 일이 더 소중하고 중요했다.
사실
우리 부부는 결혼하기 전부터 성관계를 한 커플이다. 5년 정도 연애하는 동안 열심히 속궁합을 맞추면서 섹스 파트너로도 잘 어울리니 결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결혼 전에 너무 즐겨서 결혼 후 좀 시들해진 것은 아닐까?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 궁금해 남편에게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 결론은 각자 일에 충실하면서 충분히 행복하니 섹스를 좀 안 한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둘 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적도 있다. 아이를 갖는 것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단다.
부부관계를 안 한다고 큰 문제가 생겼던
기억은 없다. 서로 바쁜 만큼 건강도 챙겨주고 신경도 더 많이 썼던 것 같다. 남들은 섹스도 안 하고 아이도 없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우리 부부는 지극히 정상이다. 잠잘 때면 항상 남편의 팔을 베고 잠이 들고, 길거리를 다닐 때도 손을 꼭 잡고 다닌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기억이 나는데 섹스나 키스는 사랑 없이도 할 수 있지만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은 사랑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친구들과도 웬만큼 편한 사이가 아니면 손잡고 다닌다는 것이 쉽지 않으니 말이다.
남편과 나는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안부를 주고받고, 서로의 미니홈페이지를 통해 대화를
나눈다. 집에서 얼굴 보는 시간이 많지 않아도 항상 같이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인터넷 게임을 좋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게임을
즐기기도 한다. 섹스가 아니더라도 우리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은 얼마든지 많다.
결혼 초부터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한 덕분에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남편은 회사에서 승진이 빠른 편이고, 내가 운영하는 화실의 학생 수도 점점 늘고 있다.
작년에는 평수를 늘려 이사도 했다. 지금은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좀 생겨 주말이면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요즘 우리 부부는 주말마다 서울 근교
온천에 자주 간다.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를 푸는 데 온천만큼 좋은 것이 없다. 온천욕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바람도 쐬고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함께 온천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많이 하게 된다. 물론 아주 가끔 감정이 고조되어 섹스를 할
때도 있지만 그런 적은 많지 않다. 오히려 섹스를 한다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할 때가 있다. 그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함께 편안히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즐겁다. ‘우리가 정말 전생에 오빠와 동생 사이 아니었을까’ 하는 우스갯소리도 해가면서.
나는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남편도 자랑스럽고, 내가 하는 일도 즐겁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어 좋다. 양가 부모님들은 아이를 갖지
않는다고 걱정이 태산이시지만, 당분간 우리 부부에게는 2세 계획이 없다. 아이를 소중하게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은 우리 각자의 생활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
case 2
“섹스보다 부부간의 믿음과 애정이 더 중요해요” -------------------------------------------------- 김현주(가명) (33세·결혼 4년차)
한 살 위인 남편과 나는 친구 소개로 만나 2년 정도 연애를 하고 결혼했다. 누구보다 사랑했고 이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할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을 갖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결혼한 지 올해로 4년째인 우리 부부의 최근 섹스 횟수는
대략 서너 달에 한 번 정도인 것 같다. 신문기사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 정도면 섹스리스 부부로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현재 우리 부부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말이다.
물론 우리 부부도 결혼 후 1년
동안은 거의 매일 부부관계를 할 정도로 왕성한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신혼을 보낸 후 원하던 아이가 생겼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부부관계가
시들해진 것 같다.
남들보다 나이가 좀 들어 첫아이를 낳아 그런지 아이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모든 것이 새롭고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남들은 그렇게 유난떨어서 뭐 하냐는 말도 했지만 나는 모유로만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던 일도 그만두고 육아에만 전념했을 정도다. 다른
엄마들처럼 나도 남편보다 항상 아이가 먼저였다.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고….
하루 종일 혼자서 동동거리며 아이를 돌보다 밤이
되면 아이 옆에 쓰러져서 자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남편에게 신경을 못 써주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남편도 그런 나를 어느 정도
이해해주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다. 자신을 쏙 빼닮은 아들이라 그런지 남편도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나보다 아이를 먼저 찾을 정도로 아이는
우리 부부의 전부가 되었다.
물론 가끔 밤에 침대에 함께 누우면 남편이 나에게 신호를 보낼 때도 있었다. 그런 남편을 보면
‘출산하고 나면 아내한테는 성욕을 못 느낀다는데 이 남자는 아직 그래도 나를 여자로 보는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안심도 됐다. 그런데 문제는 내
몸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남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육아의 고통. 내 몸이 지쳐 있으니 그런 남편의 요구를 대부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더더욱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고 있던 중이라 밤에도 몇 번씩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섹스보다 잠이 훨씬 더 소중했던 것이다.
그래도 남편이 상처받지 않도록 애교스런 태도로 “여보야, 나도 하고 싶은데…. 오늘은 쫌 힘들어. 우리 다음번에 진짜 찐하게 한번
하자!” 하며 거절을 했다. 그런 날은 남편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다음날 아침식사도 신경을 써서 준비했다. 몇 번을 그러고 나니 남편도
언제부턴가는 부부관계를 요구하지 않았다.
육아에만 전념하던 1년 동안은 남편과 한 번도 부부관계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가
돌이 지나고 나니 처음보다는 훨씬 손도 덜 가고 수월해졌다. 시간적으로 좀 여유가 생기면서 내 곁에는 아이뿐 아니라 남편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남편이 원할 때 가끔 부부관계를 했다.
재미있는 것은 섹스를 하다 절정에 다다를 때쯤이면 아이가 울었다.
옆방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금방 달려가야 했기 때문에 김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편도 포기를 했는지 부부관계를 요구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얼마나 안쓰럽던지…. 한번은 혹시 이런 문제 때문에 남편이 힘들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진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당신이 나를 피하는 동안 득도를 한 거 같아. 이제는 우리 아들 녀석까지 셋이서 함께할 수 있는 게
많아졌으니까 뭐 별로 그거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더라구.”
우리 부부는 아예 안방 침대를 치우고 아이를 가운데 두고 셋이서 함께
잔다. 침대를 치우자는 제안은 남편이 먼저 했다. 아이가 혹시 침대에서 떨어지면 위험하고, 침대가 없으면 방이 넓어져 가족이 함께 잘 수 있다는
것이 남편 이야기였다. 아이의 재롱이 나날이 늘어가면서 우리 부부의 새로운 취미도 생겼다. 바로 매주 함께 외출해 사진을 찍는 것이다. 둘만
있던 신혼시절보다 오히려 외출도 많이 하고 여행도 많이 한다. 주말마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대화도 늘어났다. 우리 부부는 사소한
집안일이나 고민거리도 서로 이야기해서 함께 풀어가는 편이다. 연애할 때는 말 많은 남편이 ‘여편네’ 같은 생각이 들어 싫은 적도 있었는데
결혼하고 보니 그런 성격이 큰 장점인 것 같다. 얼마 전 남편이 회사를 옮겼는데, 그때도 나와 충분히 상의를 했다.
몇 십 년씩
해로하는 부부들에 비하면 4년이라는 기간은 턱없이 짧은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함께 기르고 생활하는 동안 남편과 나 사이에는
육체적인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 한 가족이라는 신뢰가 생긴 것 같다. 우리 부부가 섹스를 하지 않고도 잘 지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믿음
때문 아닐까?
친한 친구들에게 가끔 남편과 나는 별로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면 “너희 부부 뭐 문제 있냐, 혹시 네
남편 바람피우는 거 아니냐” 등등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별다른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고, 또 내가 아는 한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지는 않다. 혹시 나 몰래 감쪽같이 바람을 피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런 상상은 하고 싶지 않다.
사실 나도 걱정이 돼서 남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혹시 성욕을 다른 곳에서 해결하는 건 아니냐고 물었더니 남편 왈, “우리 아들
녀석이 없었다면 바람피웠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아들한테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싶지는 않아.” 이 말을 듣고 나니 ‘남편’은 못 믿어도
‘아이아빠’는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섹스 없이도 충분히 행복하다. 사랑스런 우리 아들이 있으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