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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눈"

노처녀, 감 떨어지다

여행가/허기성 2006. 7. 29. 07:31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차! 나도 사진에 관심이 있다고 그에게 호응해야 했는데!’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실제로 최근 사진에 부쩍 관심이 생겨 카메라 G2까지 구입했는데도, 나는 그의 펜탁스 카메라 이야기를 들으며 예쁘게 웃어주기만 했다. 2시간 내내 혼자 떠들다 지친 그는 ‘집에 어떻게 가세요?’라고 물었고, 나는 엉뚱하게도 ‘걱정 마세요’라고 답했다. 웬 동문서답? 곰곰이 생각해보니 얼마 전에도 소개팅에서 ‘어딜 갈까요’묻는 그에게 ‘또 어디를 가시게요?’라고 말해 돌아오는 길에 가슴을 치며 후회한 적이 있었다. 요즘 나는 왜 남자만 만나면 마음에도 없는 말이 툭툭 튀어나오거나, 반드시 해야 할 말은 잃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게 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감을 잃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발레리나들이 주문처럼 외운다는 말이 떠올랐다. ‘연습을 하루 거르면 내 몸이 알고, 이틀을 거르면 동료가 알고, 사흘을 거르면 관객이 안다’는. 그러고 보면 나는 연애를 3년이나 걸렀으니 ‘감’을 잃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다고 내가 남자를 사로잡는 ‘연애의 기술’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소개팅에서 남자를 사로잡는 법? ’남자가 열광하는 여자 스타일?을 찾아내기 위해 남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것만도 10회 이상, 남자의 속마음까지 빠삭하게 파악한 나는 이론적으로 ‘연애의 고수’였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조명이 있는 와인 바? ’회식 자리에서는 그의 대각선? 등 남자에게 어필하는 장소, ‘귀 뒤로 머리카락 넘기기’와 ‘손가락을 입술에 댄 채 그의 말에 경청하기’ 등 제스처, ‘정말?’ 반문형, ‘아, 그렇구나’ 동의형, ‘맞아, 맞아’ 반복형, ‘나도 하고 싶다’ 희망형, 누구나 다 아는 은어에 대해 ‘그게 뭐야?’라고 묻는 순진 의문형 등 말투는 물론, 심지어 ‘그의 시선을 나의 가슴에 모으게 하는 법’까지 디테일하게 알고 있다.

다만 문제는 ‘연애 이론’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는 것과 연애를 잘한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 ‘순간 대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연하남과의 소개팅 약속을 정하는 전화 통화에서 “제가 한 살 더 많은 것은 아시죠?”라고 질문한 것은 내가 ‘남녀 사이에서는 위치 선정을 분명히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다만 그와의 관계에서 일어난 돌발 상황, ‘어색한 침묵’을 적절히 넘기는 능력을 상실했을 뿐이다.

지능 지수를 IQ, 감성 지수를 EQ라 했을 때, 바로 이 ‘순간 대처 능력’은 러브 지수에 해당하는 ‘LQ’쯤이 될 것이다. IQ가 지식이 아닌 지능 지수이듯, LQ는 ‘연애의 지식’이 아닌 ‘연애 능력 지수’쯤 되는데, 연애 이론이 상충할 때는 이 지수가 연애의 성패를 가른다. 예를 들어 남자가 ‘오늘 뭐하세요?’라고 물으면 참 대답하기가 난감하다. ‘약속이 없다’고 답하면 너무 쉬워 보일 테고, ‘바쁘다’고 답하면 만날 수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연애 이론이 상충할 때 LQ가 높은 사람은 “영국 문화원에서 영어 강의를 들어요”라고 짧은 스케줄을 제시하고, ‘그후 스케줄은 비어 있다’고 우회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순간 대처 능력=연애 능력 지수=러브 지수인 LQ가 낮은 나에게 이러한 현명한 답안은 전화를 끊고 나서야 떠오른다. 이미 전화로는 ‘한가해요’아니면 ‘바빠요’라고 답한 후이다.

그렇다면 LQ를 높이는 법은? 실제 ‘연애의 달인’인 후배 A는 소개팅만 했다 하면 100% 애프터를 받아온다. 그녀가 나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A는 남자가 없는 자리에는 끼지 않는다. 남자친구가 있어도 들어온 소개팅은 마다하지 않으며, 심지어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라도 3번 이상 만난다. 하여튼 그녀가 있는 자리에는 언제나 남자가 함께한다. 그 남자가 선배건 후배건 아니면 10년 만에 만난 대학 동창이건, 내일부터 다시는 만나지 않을 일회용 남자건 일단 만나고 본다.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남자와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가 좋아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처음엔 몰랐다가도 내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길 때 남자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한 번 느끼면,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게 되니까. 남자가 열광하는 여자의 행동이 대개 비슷하다. 그에게 감탄, 칭찬, 동의해주는 것. 그러니까 남자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자를 대하는 감이 발달하게 되는 거다.”

<미녀는 괴로워>에서 미녀가 된 폭탄 걸 ‘호나미’는 집 앞까지 바래다준 남자에게 “저, 섹스해도 돼요”라고 깨는 말을 한다. 성형 수술 이전에 남자 구경도 하지 못한 폭탄 ‘호나미’는 LQ가 떨어지는 캐릭터기 때문.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랑받고 싶어 하고, 상대가 좋아하는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연애를 하고 싶다면 남자의 무리에 뛰어들어라. 멋진 사람이 아니어도 좋고, 꼭 연애 상대가 아니어도 좋다. 영양가 없는 만남이라도, 남자와의 만남이라면 투자하는 마음으로 일단 즐겨라. 연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자와 자주 접촉하면서 LQ 지수를 높이는 것이 우선이다.처음에는 어색했던 행동도 의식적으로 반복하다보면 나중에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적절하게’툭 튀어나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