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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억원 사기 분양 "첫 집 장만 꿈이 사라졌다"

여행가/허기성 2008. 10. 7. 06:42

 

비대위원장 김성식씨
ⓒ 이민선
"이제야 실감이 납니다.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어요. 그저 막막했어요.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고요. 사실 계약한 이후 내심 불안하기는 했어요."

경기도 안양 비산동 대림아파트 이중 분양사기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위원장 김성식(42)씨는 이제야 실감이 난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10월 2일 안양 평촌동 비대위 사무실에서 위원장 김씨를 만났다.

지난 9월 20일 안양 비산동
대림 아파트 조합장 김모(34)씨가 브로커, 부동산 등과 함께 이중 분양을 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피해자들은 비대위를 만들어 공동 대응에 나서고 있다. 피의자 김 조합장은 지난 9월23일 구속됐고 대림 아파트 시행사 새로본 건설 대표 김모(48)씨도 22일 긴급 체포, 조합장과 공모한 혐의(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로 24일 저녁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들은 지난 30일 검찰로 송치됐다.

비대위원장 김씨가 계약 이후 불안했던 이유는 조합장 김씨와 통화가 제대로 되지 않고 공사 진행 상황에 대한 안내장도 집으로 배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약하고 계약금도 입금시켰는데 안내장이 한 장도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전화했지요. 어째서 안내장 한 장 오지 않느냐고 따지려고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도통 통화가 되지 않았어요.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지요. 나중에는 쫓아가서 따졌어요. 그랬더니 내 주소가 잘못 입력돼 있어서 안내장이 가지 않았다고 했지만… 어쨌든 늘 찝찝했어요." 김 위원장은 지난 2004년 10월경 대림아파트에서 '임의 조합원'을 모집한다는 사실을 부동산업을 하고 있는 장모님 친구를 통해 알게 됐다. 임의 조합원은 원 조합원이 사정상 입주를 포기하고 조합에서 탈퇴했을 시 조합에서 임의로 모집하는 조합원이다.

조합은 원 조합원에 결원이 있을시 19세대까지 임의로 조합원을 모집, 아파트를 분양할 수 있다. 이렇게 모집된 조합원이 일명 '임의 조합원'이다. 만약 결원 세대가 19세대가 넘으면 그 이상은 일반 분양으로 돌려서 공개 분양해야 한다.
대림아파트는 총 486가구다. 조합원은 282가구, 일반분양은 204가구다. 80㎡(24평형) 15가구, 106㎡(32평형) 320가구, 149㎡(45평형) 151가구다. 분양가는 2억7천만원에서 7억1천만원 사이였다.

이중분양 사기사건 피의자인 조합장 김씨는 임의 조합원 100세대를 모집했다. 아파트 한 채를 가지고 이중, 삼중 분양을 한 것이다. 안양 인근 부동산을 통해 계약을 한 다음 계약금을 조합 통장으로 입금시키게 하는 방법이었다. 주변시세보다 싼 분양가가 좋은 미끼가 됐다.

"돈만 도둑질 한 것이 아니라 꿈도 도둑질 한 것"

대림 아파트 조감도
ⓒ 이민선
비대위원장 김씨도 이런 식으로 부동산 사무실에서 계약을 하고 계약금과 중도금 8300만원을 조합 통장에 입금시켰다. 나머지 중도금 1억2000만원은 대림산업 통장에 입금시켰다. 전액을 조합통장에 입금시키라고 하면 의심할까 봐 조합측에서 양쪽에 나눠서 내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전화를 받지 않고 안내문을 제대로 보내지 않는 등 조합장 태도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대림산업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대림이라는 큰 회사가 서민들 돈을 떼먹겠느냐는 믿음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기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지난 9월 20일, 입주자 사전 점검일이었다. 입주자 사전 점검일에 아파트에 가봤더니 입주자 명단에 이름이 없었다. 어찌된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조합장 사무실이 있는 새로본건설(시행사) 사무실로 달려갔다. 그 곳에서 김씨는 사기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조합장 사무실이 아수라장이었어요. 사람들이 몰려와 있고.저마다 내 아파트 어디에 있느냐고 조합장에게 다그치는데 조합장 김씨는 각오하고 있었다는 듯 돌부처처럼 아무 말 하지 않고 앉아 있었어요. 기분요? 실감이 안 났어요. 내가 사기 당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지요. 조합장은 그 자리에서 경찰에 체포됐어요."

대림 아파트와 계약했다가 사기를 당한 주민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김 위원장이 계약한 아파트는 106m²(32평) 크기였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가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라는 것이다.

피해당한 주민 중에는 김 위원장처럼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인 30~40대 젊은 부부가 많다. 조합장 김씨는 내 집 장만하는 꿈에 부풀어 있던 이들의 꿈을 도둑질 한 것이다.



비대위 회의
ⓒ 이민선
피해 유형은 한 가지가 더 있다. 일반 분양을 받은 경우다. 일반 분양은 평수(149m², 45평)가 크기 때문에 피해액도 크다. 주부 이아무개(46)씨는 106m²(32평) 크기 아파트에 살다가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하기 위해 지난 2005년에 대림 아파트 조합과 계약했다.

건설회사 직원용으로 빼놓은 일반 분양 잔여분을 분양한다는 소식을 듣고 좋은 기회라 판단했다. 계약금과 중도금을 치르기 위해 이씨는 살고 있던 아파트를 6억6천에 팔고 현재 살고 있던 아파트 부근에서 전세를 살고 있다. 이씨가 조합에 입금한 돈은 총 4억원이다.

이씨는 4억이란 큰돈을 모두 조합 통장에 입금시켰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림산업은 대림 통장으로 입금된 돈은 돌려준다는 뜻을 비쳤다. 하지만 조합으로 입금된 돈의 행방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경찰조사에서도 지금까지 밝히지 못했다. 피의자 김씨가 입을 열지 않는 한 이 돈의 행방을 찾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계약을 하고 난 이후 조합장 김씨는 갖은 핑계를 대면서 계약서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한번은 계약서가 차 안에 있다며 주지 않았고 또, 한번은 바쁘니까 다음에 작성해 준다며 주지 않았어요. 불안한 마음에 대림 본사에도 전화해 봤어요. ○동 ○호 계약한 사람인데 대림으로 돈 들어 왔느냐고 물어 봤더니 원 조합원이냐 임의 조합원이냐고 묻더라구요. 전 그때서야 제가 임의 조합원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임의 조합원은 조합장과 통화해 보라며 전화를 끊었어요." 이씨처럼 직원용이란 말에 속아서 계약을 한 세대는 현재 신고된 것만 38세대다.
직원용이란 말에 속아서 계약, 4억 조합 통장으로 입금

피해 진술서
ⓒ 이민선
이상은 계약 유형 별로 나눠본 피해 유형이다. 입금시킨 유형별로 나누면 피해 유형은 총 6가지, 피해세대는 136세대다. 총 피해 금액은 약 360억원이다. 평균 2억 5천만원 이상이다.

첫째, '브로커'에게 모두 입금시킨 유형이다. 대림아파트를 분양한 것은 부동산 중개업자뿐만 아니다. 일명 '브로커'라는 소개업자도 한몫 했다. '브로커' 최아무개씨에게 계약금과 중도금 전액을 입금시킨 세대도 21세대나 된다.

둘째, 약 50:50 비율로 조합 통장과 대림 통장에 입금시킨 유형이다. 김 비대위원장도 이런 유형이고 69세대가 속해있다.

셋째, 계약한 부동산에 입금시킨 유형의 세대가 13명, 넷째, 새로본 건설에 입금시킨 세대가 4명, 다섯째, 조합에 모두 입금시킨 세대가 17명이다. 여섯번째는 김 조합장 통장으로 입금시킨 유형(8명)이다.

아파트를 정상 분양했으면 계약금을 포함한 모든 돈은 시공사인 대림산업에 입금시켜야 한다. 서울 망원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공인중개사 명아무개씨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입금시킨 방법만 봐도 사기 사고가 날 만한 충분한 조짐이 있는 일이었다"고 밝혔다.

이중삼중 입금됐는데, 대림산업은 몰랐다?
피해 주민들은 사건이 터진 직후 비대위를 구성, 공동 대응에 나섰다. 비대위는 10월3일 오후 3시, 안양 호계동 일심교회에 모여 일단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대림산업 소유 부동산 일부와 채권 일부를 가압류하기로 결정했다.

비대위는 시공사인 대림산업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림산업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시행사와 조합장에게 당한 피해자들 위치와 같다"며 "공사대금 등 회사 내부적으로 손해 본 금액이 굉장히 크다"며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피해자들이 이런 대림측 입장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똑같은 호수에 대 여섯명이 입금한 사례가 여러 건이었다. 대림산업 통장에 이중 삼중으로 입금이 되고 있는데, 사기 분양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 또한 어떠한 공개 절차도 없이 입금건수가 19건을 넘겼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지난 9월 30일 대림산업 본사를 항의 방문, 대림에서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또한 사건이 터진 직후부터 지금까지 수차례
안양시청을 방문, 준공검사를 해 주지 말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안양시는 특별한 하자가 없는 이상 준공검사를 해주지 않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