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체들이 벌벌 떨고 있다. 미분양 물량이 쌓이면서 건설업체들은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상위 대형 건설업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 건설업체 출신 대통령이 저렇게 돈다발을 갖다 안기려 하는 것 아닌가?”
건설업계 사정을 잘 아는 한 서울시 고위관계자가 최근 사석에서 한 말이다. 중견 건설업체인 H건설의 임원 권모씨도 “건설업체들이 자금난으로 난리를 치고 있다”며 “그래서 건설업계가 현 정부에 유동성을 공급해달라고 아우성이고, 정부도 최근 내놓는 정책들을 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집값 거품 붕괴 현상이 완연해지고 미분양 물량 급증으로 인한 건설업체의 자금난이 심각해지면서 거품 붕괴를 막으려는 정부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인 소위 ‘8·21대책’부터, 9·1 감세안, 9·19 주택 500만 호 주택공급대책, 9·22 종합부동산세제(이하 종부세) 개편안 등이 잇따랐다.
발표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자면 △분양가 상한제 무력화 및 사실상의 후분양제 폐지 △최저가낙찰제 확대 적용 연기 △지방 미분양 아파트 환매조건부 매입 △ 수도권 전매 완화 △ 정부 예산 120조 원을 동원한 주택 공급 △뉴타운 및 신도시 추가 지정 △재개발 재건축 사업 촉진 △1가구 1주택 양도세 부담 및 상속세 부담 완화 △부유층 중심의 소득세 완화 △종부세의 유명무실화 △분당신도시 16배 크기의 그린벨트 해제 등이다.
이들 대책의 공통점은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고가 주택 보유자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건설 및 부동산 경기 부양’과 ‘집값 거품 떠받치기’로 일관한 정책들이다. 더구나 정부가 이들 대책을 내놓는 속도와 규모가 엄청나다는 점이 주목된다. 정부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탈은 괜찮다’고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리지만, 속으로는 부동산 거품 붕괴에 대해 극심하게 걱정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직접적인 건설 및 부동산 정책이 아니어도 같은 정책 의도를 가진 게 많다. 정부가 향후 5년 간 56조 원을 투입하는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 사업이 대표적이다. 56조원 사업 가운데 53조원 가량이 이미 포화상태인 항만과 공항, 산업단지, 도로 건설 등에 들어가게 된다. 정부가 새만금개발사업 추진에 속도를 붙이고, 제2 롯데월드 건설을 신속히 허가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정부가 군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상암 DMC초고층 빌딩이나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 등 서울과 수도권에서 민간이 추진하는 등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는 많다. 하지만 당장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사업은 많지 않다는 게 관련 업계의 진단이다. 하지만 제2롯데월드는 다르다. 롯데그룹은 현재 상황에서도 비교적 풍부한 현금 동원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 롯데그룹 계열사의 한 부사장은 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건설경기를 살리려면 당장 돈을 풀 수 있어야 하는데 다른 데서는 지금 같은 신용 경색기에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수조원의 현금을 바로 동원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숙원사업인 제2롯데월드 건설을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롯데그룹은 정부에도 같은 논리를 내세웠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국내외 거시경제 구조를 볼 때 현 정부의 이 같은 부동산 부양책도 버블 붕괴를 막기 어렵다. 정부가 대출 규제 완화를 제외하고 웬만한 부양책은 다 내놓았지만 부동산시장이 꿈쩍도 않는 게 그 증거다. 정부의 종부세 개편 방침에도 불구하고 버블 세븐의 집값은 올 들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고, 금융기관이 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매물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버블 세븐 지역에서 그동안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가격대가 깨지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대출 규제가 풀린다 해도 마찬가지다. 이미 구조적으로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은행이 과거처럼 선뜻 대출을 해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높은 집값, 극심한 거래 부진으로 표현되는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기간을 지나 버블 붕괴의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 저금리와 달러 유동성 급팽창에 기인했던 전세계적 부동산 버블의 동시 붕괴 현상, 수도권 미분양 물량 급증으로 표현되는 공급 과잉, 투자 수익률의 저하와 투기 심리의 위축,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시중의 신용 수축과 금리의 지속적 상승, 이미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재개발과 뉴타운 등등 집값 거품 붕괴를 부르는 시장 압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버블 붕괴를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정부의 중구난방식 대책이 장기적으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특히 각종 주택 공급 확대책은 2010년대 이후 이미 꺼져 있는 주택시장을 ‘확인사살’할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런지를 주택 수급 조 분석과 전망을 통해 살펴보자.
이미 시장에는 공급 과잉임을 나타내는 징후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2008년 9월말 현재 미분양 주택 수는 전국적으로 16만호를 넘었고, 수도권에만 2만3000가구에 이르렀다. 하지만 실제 미분양 물량은 25만여 가구를 훌쩍 넘는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악성(惡性)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도 4만가구를 넘는다. 더구나 올해 들어 수도권에서 분양한 물량의 25%가량이 모두 미분양되고 있다. 넘쳐나는 중대형 위주의 공급 물량으로 버블 세븐과 수도권 남부축 등에서는 심각한 집이 남아돌고 있다.
문제는 2008년 이후에도 수도권에서 지속적으로 막대한 물량 공급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정부가 2006년 하반기 투기가 다시 극성을 부리자 2기 신도시 개발 계획을 내놓은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2009년 판교신도시 2만7000세대를 필두로, 2010년 위례(송파)신도시(4만6000세대), 광교신도시(3만1000세대), 동탄2신도시(11만 3천세대) 등에서 입주물량이 쏟아진다. 그 외에 검단신도시 6만6000가구, 파주신도시 3만4000가구, 김포신도시 5만9000가구, 양주신도시 5만6000가구 등 모두 10개의 2기 신도시에서 모두 52만 5023가구가 공급된다. 2010년까지 예정된 물량만 해도 30만 가구에 육박한다. 여기에다 ‘8.21’대책으로 인천 검단과 오산 세교에서 4만9000가구가 추가로 공급된다.
서울은 어떤가? 우선 뉴타운을 보자. 뉴타운은 사업지 수로는 35개지만 한 사업지역 당 개발면적은 재개발사업지 평균 면적의 약 40~80배에 이른다. 서울시가 73~2007년 사이 추진한 주택재개발 사업 전체 면적의 1.5배에 이른다. 여기에서 공급될 예정인 물량은 모두 32만호. 여기에 더해 준공업지역 내 아파트 공급도 시작된다. 서울시 전체 준공업지역 면적은 27.7㎢로 뉴타운 사업지 전체 면적과 맞먹는다. 이들 준공업지역에서도 2010년대 이후로 상당한 물량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판에 정부는 9.19대책을 통해 수도권에서 뉴타운 25개를 추가 지정하고 도심에서 180만호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이들 물량이 향후 주택시장에 어떤 여파를 미칠까?
주택 공급 물량이 늘더라도 충분한 수요가 있다면 괜찮다. 하지만 향후 이들 주택에 대한 충분한 수요층이 있을까?
보통 주택 구입이 왕성한 시기는 35~54세 정도로 잡는다. 그런데 지금까지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었던 베이비 붐 세대가 주택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면서 주택수요를 크게 위축시키게 된다.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들은 더 이상 집을 사지 않거나 기존보다 작은 주택으로 옮겨가는 패턴을 밟는다. 노후 불안이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에서는 은퇴 세대의 주택 수요는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비 붐 세대의 선두 주자인 58년 개띠들이 2013년을 전후해 정년을 맞아 직장에서 은퇴하기 시작한다.
반면 베이비 붐 세대의 끝자락에 위치한 74년생이 35세가 되는 2009년 이후로는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다. 출생자 수가 101만(71년)--->87만(80년)--->66만(90년)--->64만(2000년)--->44만(2005년)으로 급격히 줄기 때문이다. 결국 2013년 이후부터는 주택 구입 세대가 양쪽에서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보수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정년 시기는 52세 전후로 당겨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실제 베이비붐 세대 인구 감소 여파가 주택시장에 나타나는 것은 2010년경부터라고 볼 수도 있다.
더구나 78년 이후 출생한 지금의 20대들은 절대 숫자에서뿐만 아니라 주택 구매력 측면에서도 앞선 베이비 붐 세대들의 빈자리를 결코 채우지 못한다.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시대에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세대다. 동시에 2000년 이후 발생한 부동산 거품에서 철저히 불이익을 받게 된 세대다. 이들의 대부분은 베이비 붐 세대에 비해 경제력이 취약하다. 이들이 기성세대가 빠져나간 주택 시장을 채워주는 것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이처럼 정부가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질러대기식 주택 공급 확대책은 한 마디로 향후 주택시장의 수급 구조를 완전히 오판한 데서 나온 것이다. 오히려 2010년대 이후 이미 꺼져 있는 주택시장에 계속 찬물을 끼얹어 주택시장을 장기 침체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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