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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못잡고 건설경기 망쳣다

여행가/허기성 2006. 2. 26. 22:52

집값 못잡고 건설경기 망쳤다
지난해 GDP 성장률 4%中 건설업 기여부분은 0( 제로)

◆위기의 건설업 (1)◆

"작년 이맘 때만 해도 새벽 5시에 200명쯤이 일감을 구하러 오면 대부분 건설현장 으로 나갈 수 있었어요. 하지만 요즘엔 70~80명 정도가 찾아오지만 절반 이상이 일 감을 못구해 헛걸음질치고 되돌아가는 날이 많습니다 ."

서울 도봉구 창동에서 건설현장에 필요한 인부들을 그날 그날 공급해주는 인력업체 를 10년째 운영중인 이발규 소장(63).

그는 "요즘 건설 밑바닥 경기가 외환위기 때 만큼이나 싸늘하다"며 "이 사업을 접을까도 심각하게 고심중"이라고 하소연한다.

이 소장은 인부들에게 매일 새벽 면도를 하고 나오도록 하고 술 냄새를 풍기는 사 람은 아예 받지도 않는다.

특기가 없는 잡부들은 깔끔하게 보이지 않으면 현장감독들이 쓰려 하지 않기 때문 이다.

잡부 경력 3년차인 K씨(53)는 "요즘 한 달에 보름 정도 밖에 일을 못해 일당 5만50 00원씩 한 달에 90만원 정도 번다"며 "올해 대학에 합격한 아들 등록금만 300만원 이 넘게 나왔는데 어떻게 마련할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숙련공이어서 일당 13만~15만원을 받는다는 J씨(54)도 "재작년까지만 해도 서울이 나 의정부 정도에서 일거리가 해결됐는데 지금은 용인 파주 수원 등 먼 곳까지 다 녀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작은 토목업체를 운영하는 H사장(55).

지난해 8ㆍ31대책 발표 후 아파트 공사 일감이 눈에 띄게 줄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8ㆍ31 등 부동산대책은 서울 강남 집값을 잡자고 시작한 것 아닙니까. 그런 데 강남 집값은 오히려 작년보다 더 올랐다고 하데요. 결국 집값은 못잡고 힘없는 지방 중소 건설업체들만 더 어렵게 만든 것 아닙니까." 신발 합판 등 전통산업 붕괴로 가뜩이나 지역경기가 나쁜 마당에 최근 건설경기마 저 싸늘하게 식어 죽을 맛이라고 푸념한다.

8ㆍ31대책 발표 후 6개월이 흐른 지금, 건설현장 근로자나 건설회사 경영자들이 전 하는 밑바닥 경기는 수치로 나타나는 지표경기보다 훨씬 더 나쁘다.

권홍사 대한건설협회장은 "지방에선 초기 분양률이 20%에도 못미치는 아파트들이 수두룩하다"며 "이대로 가면 올 가을쯤부터 중소 주택업체 줄도산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고 염려했다.

열린우리당은 물론 청와대도 '집값 안정'과 '건설경기' 가운데 한 가지를 택하라면 지금은 무조건 집값이 우선이라고 수차례 공언해 왔다.



그러나 '참여정부 부동산대책 종합판'이라는 8ㆍ31 대책도 적어도 지난 6개월 동안 은 강남 집값을 잡는데 실패했다.

국민은행이 조사한 전국 주택가격지수를 보면 지난해 8월부터 올 1월까지 서울 강 남지역 아파트값은 2.14% 올라 전국 평균 상승률 1.04%보다 두 배나 높았다.

반면 서울 강북(1.07%) 부산(-0.41%) 인천(-0.51%) 대전(-0.56%) 등 외곽지역이나 지방 대도시에선 소폭 오르거나 오히려 떨어져 양극화가 지속됐다.

결국 지금으로선 강남 집값도 못잡고 건설경기만 망쳤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게 생겼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셈이다.


8ㆍ31대책 후 건설 지표경기도 나빠지고 있다.

향후 일감을 나타내는 건설공사 수 주액은 지난해 총 99조3840억원으로 전년 대비 5.1% 증가하는 데 그쳤다.

호황기였 던 2002년(22.6%) 2003년(23.2%)에 비해 증가율이 뚝 떨어졌다.

특히 지난해 4분기 수주실적이 5분기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19.3%)로 돌아서 8ㆍ3 1대책 영향이 뚜렷함을 보여준다.

올 수주실적도 지난해보다 2% 줄어든 97조원 안팎에 그칠 것으로 건설산업연구원은 내다보고 있다.

건설기성고(공사실적)는 지난해 1분기 2.8%, 2분기 10.3%, 3분기 4 .4%, 4분기 7.7% 등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 아직 그런대로 양호하다.

그러나 백성준 건산연 부연구위원은 "건설수주 부진은 1~3년 정도 시차를 두고 시 공실적 감소로 나타나므로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 건설이 성장률 까먹는다

=경기가 나쁘다 보니 건설업 경제성장 기여도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4% 가운데 건설업이 기여한 부분은 0( 제로)이라고 잠정 집계했다.

전년에 비해 나아진 게 없어 성장에 전혀 도움이 못됐 다는 뜻이다.

지난해 1분기 땐 기여도가 -0.4%포인트를 기록해 오히려 성장률을 까먹기도 했다.

건설투자의 성장 기여도는 2002년 0.9%포인트, 2003년 1.3%포인트, 2004년 0.2%포 인트 등으로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최근 민간소비가 경기 회복을 주도하고 있으나 부진한 건 설경기 때문에 예전같은 고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건설업은 취업자 수가 176만여 명에 달하는 데다 산업연관 효과도 커 바닥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 어느 업종보다 크다.

경재용 동문건설 회장은 "3000가구짜리 아파트 공사현장에 목수 2000여 명, 식당 아주머니 60명 등 매일 3000여 명이 일한다"며 "정부가 건설경기를 소홀히 다뤄서 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 8ㆍ31 이후 경기 급랭

=건설경기가 나빠진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역시 정 부의 강력한 부동산정책을 첫 손가락으로 꼽는 전문가가 많다.

LG경제연구원 관계자는 "8ㆍ31대책은 민간 신규 주택건설을 상당 부분 위축시킬 것 "이라며 "행정도시 공공기관이전 기업도시건설 등 대규모 국책사업이 시작되는 내 년까지는 건설경기 부진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8ㆍ31대책 발표를 전후해 각종 건설관련 지표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분기별 건설수주액은 1분기 7.8%, 2분기 36.4%, 3분기 13.4% 등으로 증가세 를 보이다 4분기 -19.3%로 급감했다.

대표적인 경기 선행지표 가운데 하나인 건축허가면적도 지난해 10월 -2.4%, 11월 - 14.3%, 12월 -8% 등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세금중과나 대출 축소로 직격탄을 맞은 주택 분양시장은 사정이 더욱 나쁘다.

몇 안되는 실수요자들은 강남 판교 동탄 등 인기지역에만 눈길을 두다보니 지방이 나 수도권 외곽지역에선 초기분양률이 30~40%만 넘어도 성공적이라는 얘기가 나온 다.

앞으로 공급될 주택량을 보여주는 주택건설 사업승인 실적은 지난해 9월 -23%, 10 월 -46%, 11월 33% 등 계속 두 자릿수 감소세를 보였다.

◆ SOC 예산 축소도 요인

=도로 철도 항만 학교 등을 확충하기 위해 정부가 투자하 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해마다 줄고 있는 것도 경기부진의 커다란 요인 가운 데 하나다.

참여정부 예산편성 방향은 사회복지 국방 연구개발분야 등에 대한 비중을 꾸준히 늘려 나가는 대신 SOC 투자 등은 가급적 민자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올해 SOC 예산총액은 17조8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7% 줄었다.

참여정부 출범 첫 해인 2003년 9.6%에서 2004년 4.7%, 2005년 2.7%로 해마다 증가 율이 떨어지더니 올해는 급기야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정부는 2005~2009년 SOC 예산 증가율 목표치도 연평균 1.3%로 전체 예산 증가율 6. 3%보다 훨씬 낮게 잡고 있다.

93~2005년 연평균 12.6%에 비해 증가율이 크게 둔화 되는 셈이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건설은 하도급 재하도급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정부 예산이 1%만 줄어도 바닥에선 10% 이상 영향받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