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캠핑버스테마여행

[나눔]사랑방!

아직도 빗소리에 흔들리는 너는

여행가/허기성 2006. 7. 8. 21:55
아직도 빗소리에 흔들리는 너는



어릴 때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그것이 선녀님의 눈물 줄기인 줄 알았다.
선녀가 씻지 못할 죄를 지어 옥황상제님께 벌을 받느라 흘리는 눈물인 줄만 알았다.
모두가 알록달록한 동화책의 영향이었으리라.
그러나, 그 비에 대한 비밀은 자연시간을 통해 세세히 밝혀짐에 따라 하늘나라 선녀 시리즈도 어린 나의 상상력에서 영영 종적을 감춰 버리고 말았다.

산으로 놀러 갈래. 물가로 놀러 갈래.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 온다면 두번 생각할 것 없이 ‘물가로 놀러 갈래’하는 나는 비를 무척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밖에서 놀다가도 비가 오면 집으로 들어가는 반면, 나는 집에서 놀다가도 비가 오면 밖으로 나가는 스타일이니 남들로부터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도 자주 듣는 편이다. 하긴 좀 이상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나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나만의 개성이라면 그래도 이상할까.

그것은 동양사상적으로 풀이가 되는데 물 많은 계절, 즉 한여름에 태어난 영향이라 하는데 말복쯤에 태어난 여름생인 관계로 몸에 화(火)기가 많아 끓는 화기를 잠재우려니 자연히 찬 기운이 도는 물을 찾게 되는 것이라 한다. 누구나 다 그런 건 아니나 거의 모두에게 맞는 사상체질 해석이라 하는데 나에게는 아주 딱 맞는 묘수풀이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비를 좋아한다 해도 내리는 비를 마냥 바라보는 것만을 좋아할 뿐, 옴 몸으로 비를 맞는다거나 하는 것은 끔찍히도 싫은 것이다.

비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베란다에 의자를 가져다 놓은 남편이 있다는 얘기에 옆의 사람에게 운을 띄운다.
“나두 비 좋아하는데...그런 나를 위해 베란다에 의자 좀 가져다 놓을 생각이 혹 있으신지, 없으신지?”
“베란다에 의자를 가져다 놓으면 진종일 거기 앉아 있을텐데...있던 의자도 치울 판이구만...”
내외의 생각은 퍼붓는 비를 뚫고 극과 극을 달린다.

아이들이 어릴 때 비가 오면 가끔 하던 일이 있었다.
두 아이들에게 노란색 비옷을 입혀 큰 길[커피 전문점 잉카]로 가서 아이들에게는 아이스크림을 ,나는 커피를 시켜 앞에 놓고 창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비에 젖은 거리를 감상하기도 했다. 부담 없이 읽을 생각으로 챙긴 얇은 시집 한권을 탁자에 꺼내 놓았지만 글은 단 한줄도 읽지 못한 체 비 내리는 거리를 분주히 오락가락 하는 사람 구경만 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던 것이다.
비 맞는 건 싫어하는 내가 온 몸으로 비를 맞아 본 적이 단 한번 있다.
정말이지 그때처럼 흠뻑 맞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여름의 한가운데서였다. 하교 후 버스 세 정거장 차이가 나는 친구집에 무얼 가지러 가기로 했다. 예나 지금이나 걷는 걸 무척 좋아해서 버스 보다는 그냥 걸어서 다녀 오리라 마음 먹고 빈손으로 집을 나섰다.  세 정거장 밖엔 되지 않지만 걸어서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 거리이기도 했다. 친구집을 향하여 걷고 또 걷고 계속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비가 오려나... 발걸음이 조금 바빠졌다. 그러더니 이내 후두둑! 하고 비가 오는 것이었다. 발걸음이 더욱더 바빠졌다. 처음엔 가느다란 비 한두방울이더니 조금 지날수록 빗방울도 굵어졌다. 잠시 건물 안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하늘은 어느 새 양동이로 쏟아 붓는 듯한 빗줄기를 내려 보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그칠 비가 아니었다. 비 그치기만 기다렸다가는 그대로 날밤 세울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자. 이대로 친구집에 가기엔 역부족이다 싶어 걸음을 되돌렸다. 그러나, 걸어서 걸어서 나간 길은 한참이나 멀고, 우산도 없고 게다가 돈 한푼 없이 나갔으니 차비가 없어 버스를 탈 수도 없었다.
집을 향해 최대한 강속으로 뛰어서 간대도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걸어서 가자. 걸어서...이럴때 난생처음으로 비 한번 맞아 보는 거지, 뭐. 의연하게 걸어서 걸어서 떠났던 길을 되돌아 왔다. 비가 몸에 닿은 처음 느낌은 말할 수 없이 께름칙하더니 어느 정도 맞게 되자 감각조차 없는 것이었다.
얼굴에 온 몸에 비가 범벅이 된 체로 꿋꿋하게 걸어 억수 같은 빗속을 뚫고 집으로 되돌아 왔다.

내 모습을 본 엄마와 식구들은 기절을 하는 듯 했다.
현관에 걸린 직사각형 거울을 봤다. 거울 속엔 비에 젖은 내가 있었는데 머리는 착 달라 붙었고, 옷 또한 몸에 찰싹  달라붙어 가슴이 볼록 드러나고 속옷 끈이 훤하게 드러나 있는 거였다.
“이 아가...지금 이기 도대체 누 집 아이고? (얘가, 지금 이게 도대체 누구네 집 아이인고?)”
온 몸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내 모습이 희한하여 거울을 보며 눈만 껌뻑거리고 있는 나에게 수건을 엄마가 수건을 가져다 주었다.
“비가 올 줄 전혀 몰랐지....멋 모르고 나갔다가...”
수건으로 닦으며 변명을 늘어놓는 내게 엄마는 엉덩이를 한대 올려 부쳤다.
“다 큰 가시나가 이 꼬라지가 뭐꼬? 넘사시럽구러. 얼릉 가 씻그라.”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비를 흠뻑 뒤집어 쓴다는 것이 뭔가 후련한 면도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우산을 가지고 있었다면 비 맞을 생각은 언감생심 마음도 못냈을 일...
단 한번의 경험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시원하고 후련한 기억이다.

장맛비가 내린다.
굵은 빗줄기는 전깃줄에 수많은 방울들을 만들어 놓는다.
집집마다 담벼락에 주차해 있는 자동차들이 뿌옇게 뒤집어 쓴 먼지들을 벗는 순간이다.
그런데 비라는 건 참 이상한 물질이다. 이 나이쯤 되면 건설적인 변신에 이미 익숙해져 감성이고 뭐고 붙어 나질 않을텐데도  바닥을 두드려 대는 빗소리에 마음이 흔들린다. 우수와 감상이라는 두개의 감정이 단단히 작당을 하여 멀쩡한 심장에 고감도 펌프질을 마구마구 해대는 것이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그 빗소리에 아직도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물방울 잔뜩 머금은 강아지풀들처럼...





선생님, 비에 젖읍시다.

                  
                     詩  / 정공채



옛날같은 통정위로 비가 줄줄이,

줄줄이 비가 내리는군요

허벅지가 흰 나직하고 부드러운 가수를 찾습니다.

비가 통정해 오는 이런 날, 당신을 만나야 합니다.

선생님, 비에 젖읍시다.

지나가 버리면 먼 언덕입니다.

꽃잎도 흩어지며 지는 것, 아닐까요

햇살을 머리 위에 받으며

종이소리를 매일 바스락거리는 메마른 당신,

저 치차는 우리들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일수록 선생님, 함께 비에 젖읍시다.

잃어버리며 굳어져가는 낡은 회벽

당신과 나의 도시가 사람을 찾습니다.

저토록 쾌락과 부에 잠겨 있는,

눈을 못 뜨는 정욕과 무덤은 동행하는 중입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군요,

부재(不在)의 매끄러운 거리에서 말씀도 죽습니다.

이제 선생님.

우리들의 옛날의 비에, 그 참비에 젖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