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ㅇㅇ부동산입니다. 집 사시겠다는 분이 계셔서 전화 드렸습니다."
"네? 벌써요?"
"그러게요. 운이 좋으신가 봅니다."
"남편이 지금 지방 출장 중이라서…. 일단 상의해보고 바로 연락드릴게요."
부동산 사무실에 집을 내놓은 지 불과 사흘. 그새 임자가 나섰단다. 사실, 집을 내놓으면서도 반신반의했었다. 적정가격에 제대로 팔아 줄 것이라는 중개사의 장담도 사실 믿지 않았었다. 겨우 2평도 안 되는 문서를 가진 무허가 주택. '누가? 왜? 뭘 보고? 그 집을 살까'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자가 나섰다니, 그것도 사흘만에. '운이 좋다'는 중개사의 말이 듣기 좋은 콧노래처럼 귓전을 떠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왜 그리 불안하던지….
2003년이 시작되자마자 마포구 아현동은 재개발 이야기로 들썩거렸다. 재개발…. 시부모님께, 아니 우리 온 식구들에게 재개발 소식은 우환덩어리였다. 시부모님이 40년을 사시던 그 집이 무허가 집이었기 때문이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치열하게 얽혀들던 하루하루였다. 무허가 집을 철거하는 사람들, 그 흙더미 속에서 울부짖는 사람들…. 어쩌면 나 역시도 시부모님의 보금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 아비규환 속에서 울부짖어야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에 도통 잠을 이룰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막막한 시간들이었다.
보금자리 뺏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시간들
'무허가 집이라도 재개발만 확정되면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무허가집이니 당연히 분양권은 받을 수 없고 단지 이주비용만 몇 푼 받을 것이다'
'재개발 확정이 나기 전, 집을 팔면 얼마라도 건질 것이다'
'만약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지 않으면 오히려 아주 비싸게 집값을 받을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 한마디씩 거들고 나섰다.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그 당시의 나는 바보스러울 만큼 무지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무허가 집이라는 것도, 재개발이라는 것도, 태어나 처음으로 부딪힌 문제였다.
그러니 그저 TV화면으로 비쳐지던 무허가 철거장면에 가슴만 졸일 뿐이지, 무허가 집에 어떤 혜택이 있는지, 또 어떤 권리가 있는지, 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무허가 집이라는 것에 잔뜩 주눅 들어 있었으니 알아본다고 해도 별 뾰족한 방법이 없을 것이라 미리 낙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 계절은 봄을 지나 여름을 맞고 있었다. 그 즈음, 뉴타운 확정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했다. 올망졸망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던 이웃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그네들도 무허가 집을 지키고 있던 이웃들이었다. 어떤 부동산에서 얼마를 받고 팔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네들이 떠나면서 이구동성으로 남기는 말이 있었다. '지금 팔지 않으면 더 낭패를 볼 것이다. 뉴타운 지역으로 확정이 되어 버리면 거래규제에 묶여 그나마 팔지도 못할 것이다'라고.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양당간에 결론을 내야 했다. 그네들처럼 이사를 가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아니, 그 방법밖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분양권을 받는다 해도 사실 아파트 입주는 불가능했다. 아파트 입주까지 쏟아 부어야 할 엄청난 중도금을 마련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40년 무허가 주택...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부동산을 찾다
절박해진 심정으로 무작정 부동산을 찾아 나섰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부동산 사무실이 아현동 일대를 뒤덮고 있어 어느 한 곳을 골라 찾아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허가 집인데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전세방 얻을 정도는 받아드려야 하지 않겠어요."
"전세도 전세 나름인데…."
"글쎄요. 임자 잘 만나면 한 5000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처음 들어간 부동산에서 5000만원이란 금액을 제시했다. 귀가 번쩍 뜨였다. 번듯한 집문서 한 장 없는 무허가 집을 5000만원에 팔아 준다니, 세상물정 모르는 아줌마가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뒤로 나자빠질 뻔했음은 당연지사. 그런데 더 놀랄 일은, 다른 부동산에선 6000만원을 받아주겠단다.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무허가 집에 대한 그 무엇.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기에 문서 한 장 없는 집을 5000만원, 6000만원에 팔아주겠다고 하는 것인지…. 그 순간, 부동산의 '부'자도 모르던 무식쟁이 이 아줌마에게서 슬슬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 온 종일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6000만원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불러줄 부동산이 어디엔가 있을 것 같았다. 어쩌다 사람 좋아 보이는 중개사를 만나면 아예 퍼질러 앉아 통사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기를 몇 번, 통사정이 통했던지 한 곳에서 7000만원까지 받아줄 수 있다고 했다.
7000만원!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금액이었다.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볼이라도 꼬집어보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비록 돈이 손에 쥐어지지는 않았지만 작은 희망쯤은 가져도 될 것 같았다. 7000만원이면 시부모님께서 사실 수 있는 아담한 전세 정도는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흘만에 그 작은 희망이 현실이 되어 '운이 좋으신가 봅니다'란 콧노래로 내 귓전을 울렸던 것이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과 부동산중개사와 집 살 사람이 계약서를 쓰기 위해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집 살 사람은 평범해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계약금 치르고 중도금 없이 바로 잔금을 치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부동산 계약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던 남편인지라 그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나 잔금만 정확하게 치르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던지 선뜻 그러자고 했다. 아주머니는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금 700만원을 남편에게 건넸고 계약은 그렇게 끝이 났다.
계약을 하고 보름이나 지났을까. 집을 산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생각지도 않던 목돈이 생겼다면서 중도금을 치르겠다는 것이었다.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반가웠다. 사실 계약금만 받은 상태에서 시부모님이 사실 집을 보러 다닐 수도 없는 처지였다.
혹, 그 아주머니가 잔금을 치르지 않고 계약을 파기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중도금을 치른다니…. 그때서야 마음이 놓였다. 중도금을 치른다는 건, 최소한 계약을 파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간이라더니, 그 중도금이 화근이 될 줄 누가 감히 짐작이나 했을까.
중도금을 받은 다음 날 아침. TV뉴스에선 아현동이 뉴타운 지역으로 확정되었음을 발표하고 있었다. 어제까지도 피부로 와 닿았던 뉴타운 소식이 단 하루 사이에 남의 일인 양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미 집은 남의 손에 넘어간 거, 뉴타운으로 확정됐든 안 됐든 나와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오산이었음을 오후가 되어서야 나는 실감할 수 있었다.
1억3000만원짜리가 된 집을 7000만원에 팔다
"여기 ㅇㅇ부동산입니다. 저번에 집 내놓으셨죠? 그것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집값이 좀 올랐거든요."
"네? 얼마나 올랐는데요?"
"그때 제가 6000만원이라고 했죠. 근데 상황이 달라졌어요. 지금 팔면 못 받아도 1억3000은 받을 수 있겠는데요."
"얼마요? 1억3000이요?"
"네. 어떻게 파시겠어요?"
"…."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1억3000만원이라니…. 내가 잠든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7000만원하던 무허가집이 하루아침에 1억3000만원짜리 집으로 둔갑을 한 것인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때 얼핏 그런 생각을 한 것도 같다. '로또복권 맞은 사람이 아마도 이런 심정이겠구나'하고. 대박인생, 대박인생 하더니 그것이 대박인생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6000만원을 벌게 생겼으니 그게 대박인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계약금과 중도금을 합쳐 1700만원을 받았느니 해약을 하게 되면 두 배로 배상을 한다 해도 3400만원, 그래도 2600만원을 더 받는 거 아닌가. 다 합치면 9600만원. 전세가 아니라 그 돈이면 서울근교에 아담한 집 한 채 장만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햇볕 한줌 안 드는 집에서 평생 고생한 시부모님께 금싸라기 같은 햇살이 하루 온 종일 쏟아져 내리는 그런 집을 장만해 드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갑자기 온 세상이 광명천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건 꿈이었다. 한 순간의 황홀한 꿈, 바로 일장춘몽이었던 것이다.
"아주머니. 어떻게 하시겠어요? 계약 하시겠어요?"
"저, 그게…. 실은 그 집을 얼마 전에 팔았거든요. 해약하고 다시 계약하면 안 돼나요?"
"팔았어요? 언제요? 중도금은 안받으셨지요?"
"중도금요? 중도금 어제 받았는데... 왜요? 중도금 받으면 안 되나요?"
"중도금을 어제 받으셨어요? 받지 말지 왜 받으셨어요? 중도금 받은 계약은 파기가 되지 않습니다."
"왜요? 왜 안 되나요? 두 배로 물어주면 되잖아요?"
"그게 그런 게 아닙니다. 중도금은 계약이행의 착수금으로 중도금 지급 후에는 일방적인 해약이 불가능합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되긴요. 1억3000만원짜리 집을 7천만원에 파신 거죠. 결국, 중도금 1000만원 때문에 6000만원 날리셨네요."
소시민에게 일확천금 꿈꾸게 하는 부동산 정책은 이제 그만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광명천지이던 세상이 온통 암흑천지로 변해 버렸다. 얼마나 어이가 없었으면 그 순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을까. 속 차리려고 마신 냉수도 아니었건만 얼음을 둥둥 띄워 찬물을 한 컵 들이키고 나니 절로 정신이 들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무리 다시 담으려한들 담을 수도 없는 일. 내 복이 아니었음을 시인하고 깨끗이 승복하는 것이 아무래도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작은 돈도 아니고 그렇게 큰 돈을 어찌 그리 쉽게 포기하느냐고 주위에선 난리법석이었지만 나나 남편은 깨끗이 포기하고 말았다. 돈 싫다는 사람 누가 있을까만 그 돈에 있어 우리는 의외로 초연해질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절박했던 지난 순간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재개발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던 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부동산을 찾던 일, 칠천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소리에 너무 놀라 기절초풍할 뻔했던 일, 계약금을 받고도 행여 계약이 깨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일, 중도금 준다는 소리에 그나마 안심을 했던 일…. 1억3000만원이라는 소리에 너무 들뜬 나머지 그렇게도 가슴 졸였던 그 일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집값전쟁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요즘, 지금 이 순간에도 신도시 발표가 나는 곳에선 나와 같은 일을 누군가가 또 겪고 있을지 모르겠다. 부동산의 세계가 어떤 요지경 세상인지는 몰라도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일확천금의 꿈을 꾸게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집이란 것이 부의 축적수단이 아닌 내 식구들의 온전한 보금자리로 인식되어 졌으면 좋겠다. 살기 좋은 세상은 바로 그런 세상이 아닐까?
"네? 벌써요?"
"그러게요. 운이 좋으신가 봅니다."
"남편이 지금 지방 출장 중이라서…. 일단 상의해보고 바로 연락드릴게요."
부동산 사무실에 집을 내놓은 지 불과 사흘. 그새 임자가 나섰단다. 사실, 집을 내놓으면서도 반신반의했었다. 적정가격에 제대로 팔아 줄 것이라는 중개사의 장담도 사실 믿지 않았었다. 겨우 2평도 안 되는 문서를 가진 무허가 주택. '누가? 왜? 뭘 보고? 그 집을 살까'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자가 나섰다니, 그것도 사흘만에. '운이 좋다'는 중개사의 말이 듣기 좋은 콧노래처럼 귓전을 떠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왜 그리 불안하던지….
2003년이 시작되자마자 마포구 아현동은 재개발 이야기로 들썩거렸다. 재개발…. 시부모님께, 아니 우리 온 식구들에게 재개발 소식은 우환덩어리였다. 시부모님이 40년을 사시던 그 집이 무허가 집이었기 때문이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치열하게 얽혀들던 하루하루였다. 무허가 집을 철거하는 사람들, 그 흙더미 속에서 울부짖는 사람들…. 어쩌면 나 역시도 시부모님의 보금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 아비규환 속에서 울부짖어야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에 도통 잠을 이룰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막막한 시간들이었다.
ⓒ2006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
'무허가 집이라도 재개발만 확정되면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무허가집이니 당연히 분양권은 받을 수 없고 단지 이주비용만 몇 푼 받을 것이다'
'재개발 확정이 나기 전, 집을 팔면 얼마라도 건질 것이다'
'만약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지 않으면 오히려 아주 비싸게 집값을 받을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 한마디씩 거들고 나섰다.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그 당시의 나는 바보스러울 만큼 무지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무허가 집이라는 것도, 재개발이라는 것도, 태어나 처음으로 부딪힌 문제였다.
그러니 그저 TV화면으로 비쳐지던 무허가 철거장면에 가슴만 졸일 뿐이지, 무허가 집에 어떤 혜택이 있는지, 또 어떤 권리가 있는지, 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무허가 집이라는 것에 잔뜩 주눅 들어 있었으니 알아본다고 해도 별 뾰족한 방법이 없을 것이라 미리 낙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 계절은 봄을 지나 여름을 맞고 있었다. 그 즈음, 뉴타운 확정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했다. 올망졸망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던 이웃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그네들도 무허가 집을 지키고 있던 이웃들이었다. 어떤 부동산에서 얼마를 받고 팔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네들이 떠나면서 이구동성으로 남기는 말이 있었다. '지금 팔지 않으면 더 낭패를 볼 것이다. 뉴타운 지역으로 확정이 되어 버리면 거래규제에 묶여 그나마 팔지도 못할 것이다'라고.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양당간에 결론을 내야 했다. 그네들처럼 이사를 가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아니, 그 방법밖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분양권을 받는다 해도 사실 아파트 입주는 불가능했다. 아파트 입주까지 쏟아 부어야 할 엄청난 중도금을 마련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 열린우리당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항의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더이상 소시민에게 일확천금을 꿈꾸게 만드는 부동산 정책은 이제 그만 내놓길…. |
ⓒ2006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
절박해진 심정으로 무작정 부동산을 찾아 나섰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부동산 사무실이 아현동 일대를 뒤덮고 있어 어느 한 곳을 골라 찾아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허가 집인데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전세방 얻을 정도는 받아드려야 하지 않겠어요."
"전세도 전세 나름인데…."
"글쎄요. 임자 잘 만나면 한 5000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처음 들어간 부동산에서 5000만원이란 금액을 제시했다. 귀가 번쩍 뜨였다. 번듯한 집문서 한 장 없는 무허가 집을 5000만원에 팔아 준다니, 세상물정 모르는 아줌마가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뒤로 나자빠질 뻔했음은 당연지사. 그런데 더 놀랄 일은, 다른 부동산에선 6000만원을 받아주겠단다.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무허가 집에 대한 그 무엇.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기에 문서 한 장 없는 집을 5000만원, 6000만원에 팔아주겠다고 하는 것인지…. 그 순간, 부동산의 '부'자도 모르던 무식쟁이 이 아줌마에게서 슬슬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 온 종일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6000만원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불러줄 부동산이 어디엔가 있을 것 같았다. 어쩌다 사람 좋아 보이는 중개사를 만나면 아예 퍼질러 앉아 통사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기를 몇 번, 통사정이 통했던지 한 곳에서 7000만원까지 받아줄 수 있다고 했다.
7000만원!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금액이었다.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볼이라도 꼬집어보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비록 돈이 손에 쥐어지지는 않았지만 작은 희망쯤은 가져도 될 것 같았다. 7000만원이면 시부모님께서 사실 수 있는 아담한 전세 정도는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흘만에 그 작은 희망이 현실이 되어 '운이 좋으신가 봅니다'란 콧노래로 내 귓전을 울렸던 것이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과 부동산중개사와 집 살 사람이 계약서를 쓰기 위해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집 살 사람은 평범해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계약금 치르고 중도금 없이 바로 잔금을 치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부동산 계약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던 남편인지라 그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나 잔금만 정확하게 치르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던지 선뜻 그러자고 했다. 아주머니는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금 700만원을 남편에게 건넸고 계약은 그렇게 끝이 났다.
계약을 하고 보름이나 지났을까. 집을 산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생각지도 않던 목돈이 생겼다면서 중도금을 치르겠다는 것이었다.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반가웠다. 사실 계약금만 받은 상태에서 시부모님이 사실 집을 보러 다닐 수도 없는 처지였다.
혹, 그 아주머니가 잔금을 치르지 않고 계약을 파기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중도금을 치른다니…. 그때서야 마음이 놓였다. 중도금을 치른다는 건, 최소한 계약을 파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간이라더니, 그 중도금이 화근이 될 줄 누가 감히 짐작이나 했을까.
중도금을 받은 다음 날 아침. TV뉴스에선 아현동이 뉴타운 지역으로 확정되었음을 발표하고 있었다. 어제까지도 피부로 와 닿았던 뉴타운 소식이 단 하루 사이에 남의 일인 양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미 집은 남의 손에 넘어간 거, 뉴타운으로 확정됐든 안 됐든 나와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오산이었음을 오후가 되어서야 나는 실감할 수 있었다.
▲ 서울 성북구 월곡동 재개발지역. 재개발 소식만 들리면 집값이 들썩거리고 주민들의 불안은 늘어만 간다. |
ⓒ2006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
"여기 ㅇㅇ부동산입니다. 저번에 집 내놓으셨죠? 그것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집값이 좀 올랐거든요."
"네? 얼마나 올랐는데요?"
"그때 제가 6000만원이라고 했죠. 근데 상황이 달라졌어요. 지금 팔면 못 받아도 1억3000은 받을 수 있겠는데요."
"얼마요? 1억3000이요?"
"네. 어떻게 파시겠어요?"
"…."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1억3000만원이라니…. 내가 잠든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7000만원하던 무허가집이 하루아침에 1억3000만원짜리 집으로 둔갑을 한 것인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때 얼핏 그런 생각을 한 것도 같다. '로또복권 맞은 사람이 아마도 이런 심정이겠구나'하고. 대박인생, 대박인생 하더니 그것이 대박인생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6000만원을 벌게 생겼으니 그게 대박인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계약금과 중도금을 합쳐 1700만원을 받았느니 해약을 하게 되면 두 배로 배상을 한다 해도 3400만원, 그래도 2600만원을 더 받는 거 아닌가. 다 합치면 9600만원. 전세가 아니라 그 돈이면 서울근교에 아담한 집 한 채 장만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햇볕 한줌 안 드는 집에서 평생 고생한 시부모님께 금싸라기 같은 햇살이 하루 온 종일 쏟아져 내리는 그런 집을 장만해 드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갑자기 온 세상이 광명천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건 꿈이었다. 한 순간의 황홀한 꿈, 바로 일장춘몽이었던 것이다.
"아주머니. 어떻게 하시겠어요? 계약 하시겠어요?"
"저, 그게…. 실은 그 집을 얼마 전에 팔았거든요. 해약하고 다시 계약하면 안 돼나요?"
"팔았어요? 언제요? 중도금은 안받으셨지요?"
"중도금요? 중도금 어제 받았는데... 왜요? 중도금 받으면 안 되나요?"
"중도금을 어제 받으셨어요? 받지 말지 왜 받으셨어요? 중도금 받은 계약은 파기가 되지 않습니다."
"왜요? 왜 안 되나요? 두 배로 물어주면 되잖아요?"
"그게 그런 게 아닙니다. 중도금은 계약이행의 착수금으로 중도금 지급 후에는 일방적인 해약이 불가능합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되긴요. 1억3000만원짜리 집을 7천만원에 파신 거죠. 결국, 중도금 1000만원 때문에 6000만원 날리셨네요."
▲ 정부의 신도시 개발계획 발표 때마다 치솟는 집값. 서민들은 한숨 뿐이다. 사진은 집값 급등 양상을 보였던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
ⓒ2006 오마이뉴스 권우성 |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광명천지이던 세상이 온통 암흑천지로 변해 버렸다. 얼마나 어이가 없었으면 그 순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을까. 속 차리려고 마신 냉수도 아니었건만 얼음을 둥둥 띄워 찬물을 한 컵 들이키고 나니 절로 정신이 들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무리 다시 담으려한들 담을 수도 없는 일. 내 복이 아니었음을 시인하고 깨끗이 승복하는 것이 아무래도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작은 돈도 아니고 그렇게 큰 돈을 어찌 그리 쉽게 포기하느냐고 주위에선 난리법석이었지만 나나 남편은 깨끗이 포기하고 말았다. 돈 싫다는 사람 누가 있을까만 그 돈에 있어 우리는 의외로 초연해질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절박했던 지난 순간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재개발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던 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부동산을 찾던 일, 칠천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소리에 너무 놀라 기절초풍할 뻔했던 일, 계약금을 받고도 행여 계약이 깨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일, 중도금 준다는 소리에 그나마 안심을 했던 일…. 1억3000만원이라는 소리에 너무 들뜬 나머지 그렇게도 가슴 졸였던 그 일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집값전쟁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요즘, 지금 이 순간에도 신도시 발표가 나는 곳에선 나와 같은 일을 누군가가 또 겪고 있을지 모르겠다. 부동산의 세계가 어떤 요지경 세상인지는 몰라도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일확천금의 꿈을 꾸게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집이란 것이 부의 축적수단이 아닌 내 식구들의 온전한 보금자리로 인식되어 졌으면 좋겠다. 살기 좋은 세상은 바로 그런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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