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집 마련 미루다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집값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가… 무리해서 구매한 사람은 ‘불로소득’ 생겨도 금융비용 때문에 미래 불안정
▣ 제윤경 (주)에셋비 교육본부장
경기 일산에 살고 있는 장아무개씨는 올 초 30평형대 아파트를 마련해볼 요량이었다. 1억5천만원의 전세금과 현금 3천만원에 조금 무리해서 대출을 받으면 집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막상 주변의 아파트 시세를 알아보니 대략 3억5천만원이 필요했다.
전세금과 갖고 있는 돈을 다 해도 거의 1억7천만원을 대출받아야 했다. 장씨는 남편과 상의한 끝에 집 사는 것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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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5천만원이 넘는 부채는 무리라는 계산에서였다.
집값 올랐다고 정말 돈을 번 것인가
맞벌이인 장씨 부부의 월소득은 350만원이다. 1억7천만원의 대출을 받으면 매월 120만원가량(20년 원금 균등상환)의 부채원리금을 부담해야 한다. 아쉽지만 지나치게 부담스럽다는 생각으로 조만간 집값이 떨어지게 되면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고 내 집 마련을 일단 포기했다. 그런데 그 아파트가 불과 몇 달 만에 1억2천만원이나 올랐다. 더군다나 같은 시기 친구 부부는 무리해서 집을 샀다. 1년도 안 돼서 1억2천만원을 벌었다며 즐거워하는 친구를 보니 마음이 허탈해졌다.
참여정부 들어 무주택자들은 정부의 말만 믿다가 내 집 마련의 호기만 놓쳤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장씨처럼 순식간에 1억2천만원을 번 친구와 비교하게 되면 허탈함은 더 깊어진다. 왠지 자신이 눈앞에서 1억2천만원을 손해본 것 같은 기분도 들고, 한편으로는 앞으로 내 집 마련 기회는 영영 오지 않겠구나 하는 자괴감이 드는 것이다. 당연히 무리를 해서라도 저질렀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만 가득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제는 집을 사려면 3억원을 대출받아야 하는데 혹시 이제라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무모한 계산도 해본다. 그러나 장씨의 내 집 마련 보류 결정은 두 가지 측면에서 크게 문제가 없다.
1. 무리한 부채 부담은 가족의 행복을 저당 잡는다
장씨가 올 초 계획했던 대로 1억7천만원을 대출받아 집을 샀더라면 분명 그 집은 몇 달 새 1억2천만원이 올라 장씨 부부를 기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뿐, 집값이 올랐다고 장씨 부부가 부담해야 하는 상환원리금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장씨 부부는 매달 120만원가량의 부채원리금을 내야 한다. 20년 장기 모기지론으로 빌린다는 가정에서다. 장씨 가족은 부부가 30대 중반, 아이들은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가 교육비가 만만치 않다. 처음 3년간 이자만 갚고 부채원리금을 미룬다 해도 한창 교육비가 더 들어가게 될 시점에 부채 상환에만 소득의 30%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결국 집 하나에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갚아야 할 빚이 1억7천만원이라는 것은 말이 쉽지 마음에 큰 부담을 줄 게 분명하다. 장씨는 현재 집을 사게 될 때 빚 갚는 데 들어갔을 상환원리금만큼 저축을 하고 있다. 절반은 2~3년 안에 전세금 인상이나 내 집 마련의 새로운 기회를 감안해 중기로, 나머지 절반은 아이 교육비와 은퇴자금용으로 장기 투자를 하고 있다. 더불어 내 집을 갖고 사느라 빚에 허덕이기보다 부채 상환액의 20%를 연간 폼나는 여행자금 만들기를 위해 단기 저축도 하고 있다. 나름대로 미래 목표를 더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하나씩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친구가 몇 개월 만에 1억2천만원을 벌었고, 자신은 그렇게 조금씩 저축하며 적립해놓은 돈이 1천만원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 허탈해진다. 그러나 다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장씨네는 계획대로 매년 여행을 즐기게 될 것이고 조금씩 늘어난 돈으로 아이들 교육비를 넉넉하게 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장씨 친구네는 집값은 올랐지만 변한 것이 없다. 대출금 상환하느라 당분간은 여유로운 생활을 계획할 틈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집값이 올라 세금 부담이 연간 30만원가량 늘었기 때문에 가정의 가처분 소득만 더 줄어든 셈이다. 결국 오른 집을 처분하기 전에는 늘어나는 아이들 교육비도 여전히 막막한 미래로 남겨두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다.
2. 집값이 1억2천만원 올랐다고 정말 돈을 번 것인가
자산가치는 확실히 올랐다. 그러나 돈을 번 것은 아니다. 수익을 실현하려면 팔아서 차익을 손에 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씨 친구네는 집값이 그렇게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해서 그 집을 팔 생각은 없다. 설사 판다고 해도 다시 전세로 가지 않는 한 수익을 실현할 수는 없다. 그 아파트만 특별한 호재에 두드러지게 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부동산 시장은 정책에 대한 불신과 지나친 재테크 열풍으로 매도자들의 ‘더 올려서 팔아도 된다’는 기대심이 주택 가격에 포함돼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면 전국적으로 모든 집값이 동반 상승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결국 무리한 내 집 마련으로 몇 개월 만에 1억2천만원의 자산가치는 올랐지만 손에 쥘 돈은 아니다.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실제로 팔아 차익을 실현한다는 가정도 돈을 벌었다는 기분만큼의 수익을 안겨주지는 못한다. 대략 양도소득세로 50% 부담하고 그간 지불한 금융이자 제하고 취득·등록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을 빼고 나면 크게 남아야 4천만원가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10개월간을 무리해서 집 사지 않고 저축을 해서 모은 돈 1천만원보다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4천만원을 손에 쥐기 위해 산 지 1년도 안 돼 집을 팔지는 않는다.
이자비용이 소득의 10% 넘으면 위험수위
결론적으로 장씨는 사려다 포기한 집값이 올랐다고 허탈해할 것은 아니다. 부동산 가격이 불안정해서 내 집 마련 전략을 합리적으로 세워나가는 게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순식간에 1억2천만원의 대박 기회를 놓쳤다는 안타까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매달 나가는 이자비용이 소득의 10%를 넘으면 위험해질 수 있다. 오히려 무리하게 집을 사서 단기간에 1억2천만원의 자산소득을 만든 친구의 경우 금융비용이 가족의 미래 삶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소득에서 이자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20%가 넘고 있다. 원금 상환까지 감안하면 35% 가까이 되는 빚을 부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20년 동안 나눠 갚는다는 가정에서다. 빚을 갚아나가는 사이 아이들 교육비를 준비할 여력도 없는 상태이고, 은퇴 준비는 꿈도 못 꾼다. 게다가 소득의 불안정이 겹치게 되면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
내 집을 갖고 싶은 소망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합리적인 방법으로 집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집으로 인해 많은 위험을 떠안을 수 있다. 그리고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많이 끼어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한계까지 다 끌어다 집에 ‘올인’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현실 때문이다. 바늘로 살짝 찔러도 터질 것 같은 위태위태한 부동산 시장이다. 장씨는 허탈함보다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피했다는 안도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변두리 작은 평수부터 거품은 터진다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정부가 서울의 강남·송파·서초·목동, 경기의 평촌·분당·용인 7곳을 ‘버블 세븐’ 지역으로 찍어 거품 붕괴를 경고한 것은 지난 5월15일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서였다. 당시 청와대는 이들 지역의 집값이 2004년 1월부터 2006년 3월까지 26%나 상승해 기타 지역(5%)에 견줘 5.2배로 올랐다는 근거를 댔다.
잇따른 경고음에도 급등세 이어져
부동산 거품의 붕괴 경고음은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다. LG경제연구원은 2004년부터 부동산 거품론을 줄곧 제기해왔으며, 대신경제연구소는 지난해 8월 ‘한국 부동산 거품 진단과 전망’ 보고서에서 서울 강남 아파트에는 25.8~78.6%의 거품이 끼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올해 3월에는 한국은행이 ‘주택 가격의 거품 여부에 대한 평가’ 보고서에서 전국 아파트값은 2004년 이후 평균 8.8% 정도로 균형가격을 웃돌고, 강남 아파트의 경우 균형가격보다 13.7%가량 높아 거품임을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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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잇따른 경고음이 울린 뒤에도 부동산 시장의 흐름은 달라지지 않았다. 강남을 중심으로 집값은 거품 경고음을 낸 이들을 비웃듯 급등세를 이어왔다. ‘버블 세븐’ 지역의 집값 상승세는 ‘청와대 말과 거꾸로만 가면 돈 번다’는 빈축을 낳기에 이르렀다. 나름의 분석을 통해 부동산 거품 붕괴론을 들었던 전문가들은 빗나간 예측을 한 것으로 여겨져 큰 상처를 입었고, 부동산 정책 담당자들만큼이나 불신의 대상으로 치부됐다.
거침없는 집값 폭등세의 또 다른 희생물이 되려는 것일까.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되는 부동산 열풍 속에서 거품 붕괴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1월3일 ‘국내 주식시장 대세 상승 가능한가?’라는 보고서에서 “부동산 시장은 2007년까지 국지적인 수급 불안으로 상승할 가능성도 일부 있지만, 수도권의 공급이 늘고 정부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전반적으로는 하향 안정될 것”이라며 “높은 가격과 거래 부진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부동산 시장의 ‘스태그플레이션’을 거친 뒤 붕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뒤이어 최호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11월6일 ‘주택시장 불안과 금리’ 보고서에서 “2005년 상반기의 전국 주택 가격은 17.0%, 아파트 가격은 32.4%의 거품을 안고 있다”는 실증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언뜻 그다지 새삼스러울 게 없어 보이는 거품론이 다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건 과거와는 또 다른 요즘 부동산 시장의 이상 열기 때문이다. 폭등 강도가 워낙 센데다 폭등 지역 또한 드넓어 ‘집값이 미쳤다’는 일종의 공황(패닉) 심리가 퍼져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거품이 끼었다’는 데에는 이견을 달기 어려워진 실정이다.
이번에 나온 분석 결과에선 이전의 거품론과 구별되는 대목이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부동산 거품을 측정하는 모델로는 여러 가지가 개발돼 있는데, 최호상 연구원은 ‘집세’ ‘경제성장률’ ‘균형금리(경제성장률+물가)와 실제금리(CD 91일물 기준)의 차이’를 통해 부동산의 이론가격(내재가치)을 구한 뒤 이를 실제 가격과 비교하는 방법을 썼다. 이번 연구의 차별성은 금리, 임대료, 경제 성장 등 집값과 관련되는 변수들이 거품 형성에 각각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분석했다는 점이다. 집값 또는 소득 규모와 집값의 비교를 통해 단순히 거품 규모를 추정한 이전의 거품론에서 한발 나아간 것이다.
“거품은 터진 뒤에나 알 수 있을 뿐”
최 연구원은 측정 모형을 통해 금리 요인에 의한 거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2005년 상반기 전국 주택 가격에 낀 거품 17.0% 가운데 약 3분의 2(11.6%포인트)가 금리 요인에 의한 것이었고, 나머지 요인에 의한 게 5.4%포인트였다는 분석이다. 아파트의 경우 더 심해 거품(32.4%) 가운데 금리에서 비롯된 게 23.0%포인트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아파트 가격에 낀 거품의 70.9%가 금리 탓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11월9일)를 목전에 두고 나온 이 분석 결과는 치열한 금리 논쟁을 촉발시켰다. 최 연구원은 “같은 기간에 부동산 거품 논란이 일었던 미국, 영국의 거품 크기를 측정한 결과에서도 역시 금리 요인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금통위에서 콜금리는 4.5%에서 동결됐지만, 부동산 시장 움직임과 맞물려 금리정책은 앞으로 가장 뜨거운 경제 이슈로 떠오를 것임이 확실해 보인다.
이전에도 지금도, 거품론에 대해선 반박 논리가 꽤 있다. 경제학계의 대체적인 견해는 “거품은 터진 뒤에나 알 수 있을 뿐 사전에는 알 수 없다”는 쪽이다. ‘투기와 거품 그리고 부동산 가격의 변동’이란 논문의 저자인 이재율 계명대 교수(경제학)는 “이론지가(집의 내재가치)를 계산해 현실지가와 비교해봐야 하는데, 이게 어렵다”고 말한다. 토지에서 발생할 미래의 예상소득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이론지가라는 게 추측(추정)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저금리가 부동산 거품을 불러일으켰다는 데 대해서도 이 교수는 조금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 “급등한 사실 그 자체가 다시 가격 상승을 불러일으키는 게 거품이다. 오를 요인이 없는데도 오른 게 아니라 저금리로 오를 만해서 올랐다면 그건 거품으로 볼 수 없다. 거품이라고 말하는 게 맞는지 의아하다. ” 이 교수는 “사실 거품이라고 말하기 곤란한 것이 거품이라면 가만둬도 붕괴하기 마련이며, 건드리면 오히려 터지기 때문에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는, 그래서 강한 부동산 정책을 쓸 수 없게 된다는 모순을 안게 된다”고 말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도 “주택의 내재가치(이론가격)를 사전에 알기는 어렵다”는 데는 동의를 표시한다. “채권은 매년 얼마씩 이자를 준다고 써 있어 현재가치를 산출할 수 있는데, 주식만 해도 미래 배당액에 바탕을 둔 내재가치를 추산하기 어렵다. 더욱이 주택의 경우 내재가치를 결정하는 ‘주거 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각각 다르다. 똑같은 34평 남향 아파트라고 해도 강남 8학군에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진다. 집세(전·월세)가 주거 서비스를 반영한다곤 해도 수급 요건 같은 다른 요인까지 반영돼 있다. ” 전 교수는 따라서 “터지기 전에는 거품이 있느냐, 없느냐 딱 부러지게 말할 순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거품론은 무의미한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는 걸까?
‘강남 불패’라는 착시 현상
전성인 교수는 “어느 정도 거품이 끼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더라도 두 시점에서 계산한 내재가치의 비교를 통해 변화의 방향성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거품론에서 제기하는 수치의 크기보다는 그 속에 들어 있는 방향성의 함의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 교수는 그러면서 “굳이 계산을 해보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지금의 집값은 거품을 안고 있다”고 덧붙였다. “2001년쯤 대치동 34평짜리 ㅅ아파트는 3억3천만원쯤 했다. 이게 지금은 13억원이다. 같은 기간 전세는 2억원에서 4억원 정도로 올랐다. 집값과 전세 상승폭의 이런 괴리를 ‘거품’ 이외의 논리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자기 집이든, 전세살이든 같은 집이라면 주거 서비스(내재가치)는 마찬가지인데, 두 시점에서 양쪽의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졌다면 거품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강수 교수도 직관적인 판단으로 볼 때 거품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쪽이다. “거품이란 게 지표를 갖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시장의 여러 분위기로 보아 이상 열기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국지적 집값 폭등세가 모든 주택들로 확산되고 있다. ” 전 교수는 “거품은 터져봐야 아는 것이지만, 대단히 위험한 상황으로 가고 있으며 이상 열기 다음에는 가격 폭락이 온다는 객관적·역사적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부동산값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데는 공감대가 꽤 넓은 듯한데도 여전히 꿋꿋한 집값 급등세로 수차례 제시된 거품론의 빛은 많이 바랬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만큼이나 거품론도 마치 ‘양치기 소년’처럼 신뢰를 잃은 듯하다.
일찌감치 거품론을 제기했던 이들 중에는 지규현 주택도시연구원 책임연구원도 있다. 지 연구원은 올 5월 청와대 홈페이지에 실은 ‘전문가 기고’를 통해 실질 주택 가격과 전국 아파트 가격 추세, 적정 주택 구입 가격, 전세가 대비 아파트값 비율을 들어 강남 아파트 가격은 거품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그는 “‘강남 불패’에 대한 시장의 맹목적인 믿음과 기대는 아직 사그라지지 않고 있지만, 이는 ‘보이는 것을 믿지 않고 믿고 싶은 것만을 보는’ 착시 현상”이라며 “이런 착시는 순진하고 위험하다”고 말했다.
최근 집값 상승은 거품이 커진 것
거품론 제기 뒤에도 강남을 중심으로 집값이 쉼없이 오른 데 대해 지 연구원은 당시 진단이 틀렸다기보다는 “거품이 커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일단 경과를 봐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소득 증가에 비해 주택 가격이 너무 빠르게 상승했다. 근로자 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3800만원 정도인데, 수도권에선 3억원짜리 주택을 구입하기도 쉽지 않다. 집값이 연소득의 8배 수준이다. 다른 나라들(3~5배)에 비해서도 높다. 우리나라도 과거엔 5배 수준이었다. ” 지 연구원은 “가계의 부채 부담이 너무 높아 금리 인상 같은 충격이 있을 경우 쉽게 불안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의 진단도 비슷하다. “지금은 경제 사정도 안 좋은데, 돈이 많아서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이건 당연히 거품이다. ” 박 연구위원은 “그동안 정부 대책의 ‘약발’이 떨어지면 다시 상승하곤 하면서 ‘부동산 불패 신화’가 굳어졌는데, 과거(1990년대) 일본처럼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전에 나온 거품론이 오류를 범했다기보다 거품이 쌓여왔다는 뜻이다.
투기와 거품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금융·조세 정책 같은 정부 대책이나 뜻하지 않은 외부 변수에 따라 거품은 질서 있게 꺼지기도 했고, 요란한 파열음을 내며 터지기도 했다. 또 거품 붕괴의 시기가 정책 변수에 따라 당겨지거나 늦춰지기도 한다. 따라서 누구도 쉽사리 거품 붕괴의 양상이나 시점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역사적 경험으로 보아 “모든 거품은 붕괴하게 돼 있다”(이재율 교수)는 데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최호상 연구원은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는데, 몇 차례 급등을 거치면서 ‘산’이 너무 높아져 있다”며 “경기 상황과 맞물려 주택 시장이 급락세를 타거나, 주택 시장 내부의 수급 불균형으로 심각한 붕괴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전의 국내외 사례에선 대부분 전반적인 경기와 맞물리면서 주택 시장의 거품이 꺼졌지만,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공급 과잉의 시점에 이르러 주택 시장 내부 사정에 따른 가격 급락세가 나타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거품 붕괴의 출발점은 수급 형편으로 보아 ‘강남 외’ 열악한 지역의 ‘작은 평수’ 아파트가 될 것으로 최 연구원은 분석한다. 당장은 몰라도 경기 상승 분위기가 나타난다면 정책 금리를 높여 위험을 미리 줄여놓아야 한다는 권고는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
전성인 교수는 “금리 몇% 올린다고 집값을 잡을 수는 없다거나 돈 많은 이들은 어차피 은행 돈 빌려서 집을 산 게 아니라고들 하지만, 자기 손에 쥔 돈으로 집에 투자했더라도 ‘기회비용’(은행에 맡겼더라면 얻을 수 있었던 수익)이란 게 있기 때문에 금리 효과는 누구에게나 미친다”며 “우리 경제의 암적인 존재로 떠오른 집값 급등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불황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반론에 대해 전 교수는 “투자 부진이 유동성 제약 탓이 아니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도 대혼돈의 전야?
미국 대공황에 임박했던 1929년 9월 월스트리트의 주가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일반 투자자들의 욕망을 딛고 급상승하고 있었다.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Saturday Evening Post)는 그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할머니는 용돈으로 주식을 사셨고, 아버지는 ‘황소와 곰’(주식시장 상징물)과 놀기 위해 나가셨고, 어머니도 한 토막 정보를 믿고 주식을 샀네. 이렇게 번 돈으로 아기는 비싼 신발을 하나 얻어 신네.” 1929년 9월3일 다우존스 주가지수는 381.17로 치솟았고, 그 뒤 25년 동안 미국 증시에서 이렇게 높은 주가지수는 경험할 수 없었다. 77년 전 미국 주식 시장에서 나타난 ‘대혼돈의 전야’는 오늘 한국 사회의 주택 시장과는 무관한 것일까?
[인터뷰]“저금리 기조가 거품 불러와”
▣ 최호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프로야구 선수의 활동 내용이 연봉에 비해 좋지 않은 상황이 2년, 3년씩 이어지면 그 선수의 ‘몸값’은 ‘거품’이고, 거품은 빠지게 돼 있다. ”
실증 분석을 통해 부동산 거품론을 제기한 최호상(38)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주로 (통화당국의) 저금리 기조가 유동성 확대, 주택담보대출 증가로 이어지며 부동산 거품을 초래했다”며
“지난해 하반기 이후에도 집값이 크게 올랐다는 것을 감안할 때 (2005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한) 이번 분석 결과보다 거품은 훨씬 더 커졌을 수 있다”고 밝혔다. 최 연구원은 “최근 들어 주식형 펀드의 유입액이 줄어들고, 9~10월 부동산 담보대출이 늘어났다는 점은 예의 주시해야 할 신호”라고 말했다.
그동안 부동산 거품론이 여러 차례 제기되면서 거품론에 대해 내성이나 불신 같은 게 조성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거품론을 제기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나?
=주택시장의 불안과 현재의 주택시장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로, 2005년 상반기 기준의 측정치라도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워낙 장기간 급등세가 지속되다 보니 거품론을 수긍할 수 없다는 이들도 많다. 거품임이 분명하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임대료, 경제 성장에 비춰 (부동산 값이) 과도하게 올랐다. 2003~2005년에 종합대책이 나왔는데, 처방되지 않고 오히려 내성만 키웠다. 2004~2005년만 해도 주로 국지적 상승이었다. 최근엔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기미다. 서울의 강북 뉴타운, 판교, 검단, 파주로 확산돼 있다. 예전 일본의 부동산 버블(거품) 조짐과 유사한,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 금리 인하로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하는데, (금리 인하는) 소비·투자 활성화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주택시장부터 안정시켜나가는 게 차후 리스크(위험)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본다.
부동산 거품의 주요인으로 저금리 기조를 들었는데.
=경제성장률과 이자율을 감안한 ‘균형금리’가 대략 7.7%로 추산되는 반면, 실제 금리는 4%대 후반이다. 3%포인트 격차가 있다. 이게 결국 유동성 확대를 불러오고 주택시장 급등세로 이어졌다. 경제 주체들이 지속적인 저금리를 기대하는데다 은행권에서 가계대출 비중을 크게 높였다. 과거에 비해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얼마나 낮은가. 또 부동산 말고 마땅한 투자 대상이 없다 보니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린다.
이번 분석 결과는 지난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 뒤에도 집값이 많이 올랐다는 걸 감안한 추정은 해보지 않았는가?
=(거품의) 수준은 많이 높아졌을 것이다. 다만, 요인별로 보아 금리 요인은 축소됐을 수도 있다. 한국은행에서 그동안 5번에 걸쳐 콜금리를 올렸기 때문이다. 올 3분기 이후엔 금리 외 기타 요인들이 (거품 형성에) 많이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부동산 투자 대열에서 막차라도 타야 한다는 심리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본다. 강북 지역의 경우 오를 요인이 없음에도 오르고, 가격 상승세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공급 과잉으로 거품이 붕괴된다면, 강남 외 열악한 지역부터, 또 소형 평수부터 시작되겠지만, 다른 지역으로 여파가 한꺼번에 미치면서 걷잡을 수 없게 진행된다. (가격 폭등세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전국적 확산 여부에 따라 시장 안정이 좌우될 것이다.
보조 맞추다 갈라진 한·일
좁은 땅덩어리, 높은 인구 밀도, 비슷한 관련 법과 제도…. 부동산 문제에서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자주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는 건 이런 유사성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이 크게 들썩이고 ‘거품’ 논란이 불거지면 과거 일본이 겪었던 폭등과 폭락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한국과 일본은 1980년대 말 거의 비슷한 시기에 부동산값 급등의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경제통상학부)의 논문 ‘일본의 부동산 거품과 장기 불황’에 인용된 통계 자료를 보면, 도쿄의 상업지역 땅값은 1983년에 8.4% 오른 뒤 줄곧 상승세를 이어가 1986년엔 무려 74.9%의 폭등세를 보였다. 이런 추세는 시차를 두고 오사카, 나고야를 거쳐 지방으로 확산됐다. 1985년 1004조엔이던 일본의 전국 지가 총액이 1990년에는 무려 2389조엔으로 급팽창한 데서 투기 열풍의 실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의 땅을 팔면 미국을 서너 번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온 게 이즈음이었다.
일본이 본격적인 지가 상승기로 접어든 뒤인 1988년부터 한국도 부동산 가격 급등기에 들어간다. 한국토지공사 통계자료를 보면, ‘2003년 1월=100’을 기준으로 한 지가 지수는 1988년 1월 47.78에서 1990년 1월 80.37, 1992년 109.29까지 치솟았다. 부동산값 급등 현상이 수도권에 한정되지 않고 전국으로 확산되고, 주택보다는 토지를 중심으로 투기 열풍이 일었다는 점에서도 일본과 비슷했다.
한국과 일본은 1990년대 초 부동산 가격의 급락 경험도 공유하고 있다. 전강수 교수 논문을 보면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3대 도시권의 상업지를 기준으로 할 때 2002년 일본 지가는 1991년 정점 때와 비교해 4분의 1, 주택지는 2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고, 전국의 상업지는 5분의 2로, 주택지는 5분의 3 수준으로 추락했다. 한국의 지가 하락세는 일본보다 약간 늦게 1993년부터 시작됐다. 상승세와 하락세 모두 일본보다 2년가량 늦게 나타난 셈이다. 토지공사의 전국 지가 지수(2003년 1월=100)는 1992년 1월 109.29에서 1994년 1월 99.93, 1996년 1월 99.91로 떨어졌다. 반짝 반등했던 지가 지수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다시 추락해 1999년 1월 87.39까지 내려갔다.
한국과 일본 부동산 시장의 비슷한 흐름은 여기까지다. 1980년대 말의 급등세에서 1990년대 초반의 하락세까지 2인3각처럼 보조를 맞추는 듯하던 두 나라의 부동산 가격은 그 뒤부터 전혀 상반된 모양새를 띠었다. 일본은 골 깊은 폭락세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며 ‘부동산 거품 붕괴’의 전형을 보여줬다. 이는 일본 중앙은행이 기준금리(공정할인율)을 1987년 2.5%에서 1989년 5월 3.25%로 올린데 이어 1990년 8월말에는 무려 6%까지 끌어올린 데서 촉발됐다. 반면,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2001년부터 반등세로 돌아서기 시작해 2002년 큰 폭으로 올랐으며, 정부의 갖가지 대책 와중에도 지금껏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 두 나라의 이런 차이는 일본의 부동산 대책, 즉 이자율 정책과 조세 정책이 한국보다 더 강했고, 그것이 불황으로 이어진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본과 다른 한국의 양상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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