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카이나다(현해탄)를 사이엔 둔 우리나라와 일본. 이웃나라답게 참 비슷한 점이 많다. 고령화, 저출산 현상이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고, 도심과 지방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 것도 비슷하다.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일본의 전철 역시 그대로 따라갈까. 거품이 꺼진 일본은 요즘 ‘미니버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부동산 측면에서 보면 일본 정부가 도심 개발을 위해 용적률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국유지 민간개발까지 적극 장려하고 있는 덕분이다.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자. 한때 폭등하던 집값이 요즘 들어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언젠가 거품이 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팽배하다. 정부는 규제 완화, 도심복합개발은커녕 여전히 ‘규제 강화’라는 동아줄을 놓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부동산을 통해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일까. 일본 현지를 찾아가 대표적인 복합개발 현장을 돌아보고 일본인들이 보는 부동산시장에 대해 심도 있게 짚어봤다.
■ 개발현장을 가다(1) - 복합개발단지, 미드타운 vs 롯폰기힐스 ■
주거·쇼핑·문화 ‘3박자’ 갖춰
일본의 대표적인 복합개발단지 성공작을 꼽으라면 단연 롯폰기힐스와 미드타운을 들 수 있다. 롯폰기힐스가 구 명문이라면 미드타운은 올해 문을 연 신흥 개발단지로 꼽힌다. 이들 복합단지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 미드타운
= 오픈 한 달 만에 관광객 400만명 돌파
지난 6월 17일 저녁, 도쿄 핵심지구로 꼽히는 롯폰기역 4A출구로 나와 미드타운을 찾았다. 오픈한 지 이제 막 3개월(3월 30일 개장)이 지났지만 미드타운은 이미 지역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일요일 저녁이라 한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쇼핑몰은 오가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미드타운 홍보실인 중심타워 22층에 올라갔다. 밖을 보면 도심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서 마천루가, 아래론 공원과 맨션이 보였다. 개발 주체인 미쓰이부동산의 가미야 마사키 홍보총괄 매니저는 “옛 방위청 건물이었던 이 지역은 밤이면 환락가로 춤추던 곳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2만명에 달하는 회사원과 수십만 명의 관광객, 주민들이 몰려 새로운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고 말했다. 특히 “주변 건물들도 자극을 받아 벤치마킹하거나 리모델링하는 중”이라고 강조한다.
롯폰기힐스의 명성을 이을 대규모 복합시설로 올 3월 오픈한 미드타운. 총 3700억엔 사업비에 약 10만2000㎡의 대규모 복합시설로 건물면적만 약 6만9000㎡에 달한다. 롯폰기힐스보다 무려 1000억엔 이상 사업비를 더 투입했다.
미쓰이부동산 관계자는 “국내 기업만의 컨소시엄으로 도시를 재생하는 프로젝트가 완성됐다”며 “라이벌 관계인 롯폰기힐스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대규모 복합시설로 서로 시너지효과를 낼 것”이라고 전했다.
미드타운에는 주거지와 상업시설, 오피스가 한데 모여 있다. 먼저 리츠칼튼에서 관리하는 파크레지던스는 50㎡(15평) 임대료가 한 달 기준 50만엔(약 374만원)에 달한다. 이렇게 비싼 임대료 탓에 이곳은 말 그대로 ‘소수의 부유층만 입주할 수 있는’ 주거공간으로도 알려져 있다. 미드타운의 한 직원은 “월급의 3분의 1 정도가 월세 마지노선이라고 보면 된다”며 “연봉이 최소 1억원은 넘어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미드타운에는 주거용 레지던스뿐 아니라 내로라하는 대기업 지점들도 자리를 텄다. 동쪽의 ‘미드타운이스트’에는 코나미가, 서쪽의 ‘미드타운웨스트’에는 후지제록스, 후지필름이 들어서 있다. 중심 미드타운타워에도 야후, 시스코시스템스, 굿웰그룹 등 쟁쟁한 기업들이 입점해 있는 상황이다.
오피스 역시 가격대가 만만치 않다. 최소 3.3㎡(1평)당 4만5000엔 이상의 임대료를 내야 입점할 수 있다. 덕분에 임대 수입만 연간 200억엔을 넘을 것이란 분석이다. 일본 부동산 전문가인 허혁재 부동산114 차장은 “주변 단독 오피스빌딩에 비해 임대료가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라며 “이렇게 임대료가 높지만 기업들이 몰려드는 건 미드타운 입주만으로도 상당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물론 주요시설만 밀집한 주상복합건물 정도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미드타운의 콘셉트는 한마디로 ‘도시 내 고급스런 일상’이다. 가미야 마사키 매니저는 “미드타운은 무려 40%가 녹지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건물 주변은 대부분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미드타운 아래 히노키쵸공원 주변을 거닐다 보면 탁 트인 시야와 공간, 전시된 예술 작품들로 도심이 아닌 교외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지역 주민들은 공원을 거닐다가도 자연스럽게 미드타운 지하 1층과 연결된 통로를 통해 쇼핑과 식사를 즐긴다. 반대로 미드타운을 구경 온 관광객들은 쇼핑과 먹을거리를 즐기다 공원으로 산책을 나갈 수 있다.
일본 현지 부동산 업체 리얼웹의 이민주 컨설턴트는 “땅값이 비싼 도심 한복판에 녹지 비율을 40%로 높인 건 어찌 보면 모험”이라며 “하지만 그 이상 효과를 발휘해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인기 주거지로의 가치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롯폰기힐스
= 임대 전용 레지던스, 거래 매물로 나오기도
지난 6월 12일 오후에 찾아간 일본 롯폰기힐스. 미드타운에서 1km 떨어져 있는 롯폰기힐스는 불과 걸어서 10분 거리다. 일본의 대표적인 복합단지 개발 사례로 불리는 이곳은 미드타운보다 4년 앞선 2003년 오픈했다. 규모만 약 11만6000㎡에 달한다.
먼저 롯폰기힐스 핵심빌딩인 모리타워의 꼭대기 54층을 찾아갔다. 이곳에는 도쿄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뿐 아니라 모리미술관이 위치한 게 특징이다. 모리미술관은 2003년 개관 당시 연 4400만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예술을 상업공간에 담았다’는 콘셉트가 기존 미술관과는 달랐다. 모리미술관 관계자는 “상업시설과 미술관이 함께 설계돼 모리타워에 관광객이 몰리도록 유도했다”고 밝힌다.
원래 롯폰기힐스는 밀집 시가지였던 롯폰기 6초메에 ‘문화도시’를 콘셉트로 내걸고 시작한 대규모 시가지 재개발 사업이다. 한마디로 ‘일하고, 놀고, 문화생활까지 누릴 수 있는’ 복합도시를 추구한다. 핵심인 B지구에는 객실 수만 390실을 갖춘 국제 호텔 그랜드하얏트도쿄, 아사히TV 방송센터, 시네마콤플렉스 등이 위용을 자랑한다.
현재 이곳 상주인구만 2만여명에 달한다. 오피스인구 1만5000명을 비롯해 방송센터 2000~3000명, 주거동에 1000~2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유동인구는 훨씬 많아 평일 5만명, 휴일 10만명 수준이다.
롯폰기힐스는 랜드마크답게 개발과정도 특이했다. 사업 주체인 모리빌딩은 2000년 당시 버블경제와 불황 후유증으로 보유 중인 건물을 어떻게든 처분하려 했다. 이때 도쿄 롯폰기 지역의 20층 최신식 맨션·아크힐스의 임대료 수입을 담보로 자산담보부채권(ABS)을 발행해 240억엔을 조달했다. ABS란 특수목적회사(SPC)를 사이에 끼고 부동산의 수익권을 증권으로 만들어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것인데 이 자금으로 근처 나대지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 데 사용했다.
총 사업비 2700억엔은 참가조합원 부담금으로 하고 모리빌딩이 참가조합원으로 개발면적을 취득했다. 모리빌딩은 자금 조달 시 SPC를 이용해 일본 처음으로 대규모 개발형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진행한 셈이다.
하지만 롯폰기힐스의 명성은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하락세로 돌아선 오피스, 주거지 가격대가 이를 증명한다. 오피스 시세를 보면 3.3㎡당 4만엔 정도에 불과하다. 주거지 역시 마찬가지. 원래 임대 전용 레지던스로 알려졌지만 2년 전부터 매매되면서 저렴한 물건은 3.3㎡당 1000만엔대에 팔리고 있다. 약 50㎡의 경우 우리 돈으로 30억원짜리 물건도 나왔다.
상가 역시 가격이 떨어지는 분위기. 원래 상가 운영권은 거래가 없었지만 요즘 들어 매물이 나오고 있다. 특히 역에서 멀리 떨어져 유동인구가 적은 점포의 경우 가격 하락폭이 더욱 크다. 다만 권리금은 거의 없는 상태.
교통여건도 아쉽다. 현재 도쿄 도심에서 롯폰기힐스로 들어가는 입구는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에는 ‘교통지옥 구간’이란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이민주 리얼웹 컨설턴트는 “롯폰기힐스가 개발될 때만 해도 개장 6개월 전부터 진행한 TV광고를 통해 상당한 홍보 효과를 봤다”며 “하지만 미드타운이 들어서면서 유동인구가 줄고 시세가 떨어지는 등 위상이 예전보다 많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아파트 용지 비용이 사업비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하고 있죠. 특히 도심은 가격이 상승하고 그외 지역과 지방은 내려가는 양극화 현상이 심해 지방사업을 ‘대단한 모험’으로 생각할 정도입니다.”
일본 현지 건설사 관계자 얘기다.
요즘 국내 건설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건설사들의 해외 진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대상 국가는 다양하지만 보통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두바이 시장이 주타깃이다.
‘가까운 이웃’ 일본에도 몇몇 건설사들이 진출해 있다. 현진건설을 비롯해 삼성물산, 우림건설 등이 사업을 준비 중이다. 정성훈 현진건설 일본법인 과장(법인 대표)은 “중국이나 두바이, 베트남 등지와 비교하면 일본 진출은 다소 늦은 편”이라며 “부지 매입 부담이 워낙 크고 일본 현지 건설사들의 건축기술 수준이 높아 함부로 경쟁에 뛰어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중 현진건설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 3년 전 일본에 진출한 이후 지난해 직접 법인을 설립했다. 현재 일본 오토메야마공원 주변 맨션 개발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곳은 신주쿠구 시모오치아이1가의 일부와 3, 4가에 위치한 주택지로 공원, 녹지가 많고 유적과 고급주택이 즐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교통 요지로도 꼽혀 JR야마노테선 다카다노바바역까지 도보로 7분, 메지로역까지 9분 거리라는 장점도 있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올 10월 착공에 들어가 내년 6월부터 총 50가구 정도 분양을 진행할 예정이다. 평균 3.3㎡당 분양가를 430만엔(약 3440만원)으로 설정해 가구당 분양가만 1억1000만~1억9000만엔(8억2400만~14억2300만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정성훈 과장은 “현재 공사 준비는 끝낸 단계”라며 “신축 맨션 초기 계약률을 보면 신주쿠구는 80%, 인근 토시마구는 90%에 달할 정도로 인기 지역이라 주로 부유층을 타깃으로 공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른 건설사들은 아직 사업 준비단계인 상황. 우림건설은 현재 도쿄 도심을 중심으로 사업을 계획 중이다. 이상엽 우림건설 실장은 “일본 현지에 지사만 뒀을 뿐 법인을 차릴 단계는 아니다”며 “사업규모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 현지 사업 타당성을 적극 검토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 역시 현지조사를 한창 진행 중이다. 이 밖에 현지 맨션 분양 대신 후쿠오카 지역 골프장 사업에 뛰어든 건설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현진·우림 등 사업 준비단계 ■
일본에 진출한 건설사들의 사업 여건은 생각보다 좋지 않다. 먼저 도쿄 도심 땅값만 3.3㎡당 1000만엔이 넘는 곳이 많아 부지 매입 자체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비싼 곳은 분양가가 4억~5억엔을 훌쩍 넘는다. 물론 중심지를 벗어나면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만 분양률이 좋지 않아 사업에 선뜻 뛰어들기 어렵다. 신주쿠구 등 핵심지구만 벗어나도 땅값이 3.3㎡당 450만엔 선이지만 분양이 쉽지 않은 분위기다.
게다가 일본 은행들의 텃세가 심해 자금조달도 쉽지 않다. 현진건설의 경우 금융권 개척을 위한 기간만 최소 1년 이상을 소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성훈 과장은 “일본은 외국자본 투자에 대한 차별이 별로 없고 안정된 금융정책도 장점”이라면서 “다만 현지 은행에서의 자금조달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라고 밝혔다. 정보 공개가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도심 부동산의 주요 정보는 대부분 노무라, 미쓰이, 스미토모부동산 등 대형 디벨로퍼가 독점하고 있어 건설사들이 고급 정보를 구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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