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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시사

이 당선인, “공무원을 편안한 일자리로 봐선 안돼”

여행가/허기성 2008. 1. 29. 00:06

 

[한겨레]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28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파견 공무원 80여명과 함께 한 오찬 간담회에서 또다시 ‘개혁에 소극적인’ 공직사회 분위기를 매섭게 비판했다.

그는 “여러분은 부서 이익을 지키거나, 인수위 돌아가는 것을 여러분 부서에 전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러 여기 나온 것이 아니다”라며 인수위 파견 공무원들이 정부조직 개편안을 둘러싼 각 부처의 ‘민원 창구’가 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정부 부처에서) 조직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 다소 일어나는데, 시대를 거스르는 것”이라며 “(인수위에 파견된) 여러분들이 변화와 개혁을 주도해야 하는데,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인수위 파견은) 여러분 일자리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시대 변화를 주도하러 나온 것이지, 어떤 특별한 혜택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당선인은 공무원들이 ‘프로 정신’과 ‘봉사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공무원을 평생 일자리를 보장받는 편안한 일자리로 보는 견해는 옳지 않다”며 “공무원이 한 시간 잠 덜 자면, 국민은 한 시간 더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다. 공직자가 철저한 봉사정신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21세기에 맞는 정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공무원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추어주는 말도 했다. 그는 “공무원은 개혁이나 변화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과 변화를 주도하는 세력”이라며 “요즘 제가 언론에 비쳐지는 걸 보니, 공직자를 변화와 개혁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공무원이 이 시대에 약간의 걸림돌이 될 정도의 위험수위에 온 것 같다”며 공무원을 향한 강한 불신을 드러낸 발언을 완화시키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는 “대한민국은 관이 주도하는 체제로 성공한 나라”라면서 “1980년대 말을 지나면서 관 주도에서 민 주도로 넘어가는 과정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제대로 되지 못해 공직자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었다. 공무원들이 이 시점에서 한번 더 분발할 때가 됐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 “내 양심에 반대해 서명안할 권리 인정해달라”


[한겨레] 인수위 “특유의 오만과 독선의 발로”
통합신당 “내용 공감하나 행동은 부적절”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정부조직 개편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음을 강력하게 내비치면서 ‘정권 이양기’에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언급으로 다음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은 물론, 조각 일정까지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인수위와 한나라당은 퇴임을 불과 한달여 앞둔 대통령의 ‘발목잡기’ 라고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 개편안에 대한 노 대통령 인식=떠나는 대통령으로서 유례없는 행보에 대해 노 대통령 스스로도 ‘핀잔받을 일’이라고 인정을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사리야 어떻든 물러나는 대통령이 나서는 것은 새 정부 발목잡기이니 그러지 말고 뒷모습이 아름답고 산뜻하게 떠나라는 언론의 충고를 들었다”며 부담을 느꼈음을 실토했다. 그러나 그는 “만약 우리 사회에 토론의 장이 제대로 열려 있었다면 내가 왜 욕먹는 일에 나섰겠냐”며 언론과 정치권의 토론 봉쇄를 회견의 핵심 이유로 제시했다.

그는 특히 “국민들이 선거로 대통령을 뽑았다고 모든 것을 백지위임한 게 아니다. 지난 5년 동안 나는 근거도 없는 의혹, 논리도 없는 반대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나도 당선됐는데 지난 5년간 백지위임한 게 있냐”며 새 정부에 협조하라는 요구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는 “내가 발목잡기를 하는 게 아니고, 국회가 신중하게 생각하고 깊이있게 토론해 달라는 것이다. 내 임기 중에 내 양심에 반대해 서명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해 달라고 조금 얘기하는 것”이라고 거듭 항변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통일부·여성부·정보통신부·기획예산처 등을 거론하며 이들 부처들을 통폐합할 경우 나타날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주로 통일부와 여성부 방어에 집중하는 대통합민주신당의 태도가 미온적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여러 부처를 합쳐 대부처로 하는 게 작은 정부냐. 대부처로 합치면 정부 효율성이 향상되고, 대국민 서비스가 향상된다는 논리는 사실이냐”고 인수위의 ‘대부처주의’와 ‘작은 정부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 정치권, ‘소신 아닌 고집’ 비판=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런 태도에 대해, 정치권에선 ‘소신이라기보다는 고집’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우선 대통령직 인수위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새 정부조직은 현정부가 아닌 다음 정부에서 운용할 일인데, 마지막까지 이에 협조하지 않는 건 지나치다는 시각이다. 이동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노 대통령 특유의 오만과 독선의 발로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명박 당선인은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 보고를 받고 일체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은 전했다. 주 대변인은 “이 당선인은 국회의 유인태 행정자치위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조직개편 필요성과 협조를 부탁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는데도 정부조직 개편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개편안을 놓고 한나라당과 대립하는 대통합민주신당의 반응은 좀 조심스럽다. 내용 면에선 공감하지만, 거부권 행사라는 행동은 적절치 않다는 취지다. 물러나는 대통령도 자기 철학에 따라 할말을 하고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지만, 국회 절차를 존중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게 우선이라는 얘기다. 이미 선거를 통해 국민적 평가를 받은 대통령인데, 자신만의 원칙에 너무 집착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내부에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