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캠핑버스테마여행

³о삶"이야기..

어떤 부자, 권력자도 ‘경배하라’

여행가/허기성 2008. 9. 11. 12:04
영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일 게다. 그러나 여왕은 사실 영국(잉글랜드·스코틀랜드 그리고 북아일랜드)만의 군주가 아니다. 실제로는 16개 주권국가의 군주를 겸하고 있다. 16개의 왕관을 쓰고 있는 셈이다.

캐나다·호주·뉴질랜드·자메이카·바베이도스·바하마·그레나다·파푸아뉴기니·솔로몬 군도·투발루·세인트루시아·세인트빈센트앤드그레나딘·안티과앤드바부다·벨리제·세인트키츠앤드네비스가 그를 군주로 모시고 있다.

이들 16개국의 ‘백성’은 1억2800만 명에 이른다. 모두 영국의 해외 영토였다가 독립한 나라들이다. 독립을 얻은 뒤에도 영국 왕을 계속 군주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영연방 왕국(Commonwealth Realms)’으로 불린다.

캐나다·호주·뉴질랜드를 빼면 나머지는 작은 나라들이고, 섬나라가 대부분이다.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과는 약간 다른 개념이다. 여왕은 이들 나라에 머물지 않는 대신, 대리자인 총독(Governor-General)을 파견한다. 물론 실권 없는 명예직이다.

하지만 급료와 대우는 상당하다고 한다. 여왕은 어느 한 나라에 치우침 없이 군주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관심을 균등하게 가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거주지가 영국인데 그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53개국 모인 영연방 수장까지 겸해

여왕은 영연방의 수장이기도 하다. 영연방은 영연방 왕국 이외에, 독립한 뒤 군주가 없는 공화국이 되거나 말레이시아·통가·스와질랜드 등 다른 왕실이 들어선 37개 나라를 더한 53개국이 이룬 국제기구다. 피지의 대추장직도 보유하고 있다.

여왕은 과거 영국에 노르망디 왕가를 이룬 노르망디 공작의 작위도 이어받고 있다. 형식적인 작위지만 왕실과 귀족 사회에선 역사성과 상징성이 대단하다. 영국군 최고사령관이기도 하다. 실질적인 권한은 없지만 형식적으로는 이렇게 높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25주년이나 50주년 또는 생일은 영국은 물론 영연방 왕국, 나아가 영연방에서 가장 큰 행사다. 아무리 군림만 하고 통치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군주 또는 영연방의 수장이지 않은가.

엄청난 즉위 25주년과 50주년 선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올해로 왕위에 오른 지 56년이 됐다. 1977년에 즉위 25주년을, 2002년에 50주년을 맞았다.

1926년 4월 21일에 태어났으니 나이가 만으로 82세다. 1952년 2월 아버지 조지 6세가 세상을 떠난 즉시 왕위에 올랐다. 대관식은 53년 6월 2일 이뤄졌다.

만 26세가 되기 전에 여왕이 된 것이다. 영국에선 즉위 25주년은 실버 주빌리(Silver Jubilee), 50주년을 골든 주빌리(Golden Jubilee)라고 부른다. 결혼 25주년과 50주년을 뜻하는 은혼식, 금혼식과 같은 용어다.

여왕은 지난해 영국 군주로는 처음으로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다이아몬드혼식을 맞았다. 런던 지하철 노선 중에는 주빌리 라인이라는 것이 있다. 1977년에 개통된 이 노선은 원래 플리트 라인으로 명명할 예정이었으나, 여왕 즉위 25주년인 해에 개통됐다는 이유로 이름을 그렇게 고쳤다.

런던 시내 중심지를 지나는 주빌리 워크웨이란 산책로는 즉위 25주년에 만들고 50주년에 대대적으로 수리했다. 군주가 즉위해 50년은 고사하고 25년간 왕위를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조선의 왕들을 살펴보니 82세까지 살며 51년 7개월 동안 왕위에 있던 영조가 유일하게 골든 주빌리를 누렸다.

40년 이상 왕위를 지킨 왕이 성종·숙종 정도다. 참고로 조선 왕조 국왕의 평균 재위기간은 19년 2개월이었다. 평균수명은 44세다. 엘리자베스 2세는 장수 학자들의 연구대상이다. 만으로 82세는 영국 역대 군주 가운데 최장수 기록이다.

이전까지는 81년 7개월 29일을 살고 1901년 1월 22일 세상을 떠난 빅토리아 여왕이 이 기록의 보유자였다. 엘리자베스 2세는 이미 지난해 12월에 고조모인 빅토리아의 기록을 깨뜨렸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 산 군주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은 것이다.

게다가 지금도 정정하다. 그래서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2세는 ‘건강한 노인’의 상징으로 통한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인 1947년, 21세의 나이로 당시 해군 장교였던 필립 공과 결혼했다. 군주 재임 기간으로 따지면 엘리자베스 2세는 빅토리아 여왕(64년), 조지 3세(59년), 헨리 3세(56년)에 이어 네 번째로 길다.

2015년 9월 9일까지 재위에 있을 경우 영국 1000년 역사에 가장 오랫동안 군주 자리에 앉은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2세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모후(queen mother)는 1900년에 태어나 2002년에 102세로 세상을 떠났다.

반면 부친인 조지 6세는 51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사람의 목숨이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모후의 경우로 추측하건대 엘리자베스 2세가 90세가 되는 2015년까지 살아남고 재위도 유지해 최장 재임 국왕의 기록을 세우는 것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게 될 경우 1948년생인 찰스 왕세자는 70을 눈앞에 둔 나이까지 왕세자에 머무르는 희대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현재 왕위에 앉아있는 군주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통치하고 있는 인물은 태국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다.

푸미폰 국왕은 재작년 즉위 60주년을, 지난해 80회 생일을 각각 맞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위 기간은 푸미폰 국왕 바로 다음이다. 여왕은 10세 때 부친 조지 6세가 즉위하면서 차기 왕위 계승자로 결정됐고 부왕이 세상을 떠난 직후 26세의 나이에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즉위했다.

팔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정정하다. 매년 450건에 이르는 공식 행사에 참석한다. 통상 1주일에 나흘은 집무실인 런던 시내 버킹엄 궁에서 보내고, 나머지 사흘은 자택인 런던 교외 윈저성에서 지낸다(이 두 궁전은 여왕이 머물지 않는 날에는 일반에 지극히 사적인 공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역을 공개한다).

스코틀랜드의 가족 별장 발모랄 성 등으로 가서 전원생활을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엘리자베스 2세가 보유한 재산은?
공식 재산만 6억5000만 달러

엘리자베스 2세가 보유한 재산은 얼마나 될까. 전 세계 군주들의 재산 순위를 다룬 포브스 9월 1일자에 따르면 여왕의 재산은 6억5000만 달러에 이른다. 재산의 대부분은 부동산과 미술품, 보석이다.

버킹엄 궁을 비롯한 궁전과 왕관의 보석은 정부 소유여서 포함되지 않았다. 전 세계 군주 가운데 12위다. 하지만 여왕의 개인 재산 가운데 공개되지 않은 것이 많아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게다가 왕실 이름의 재산과 수입도 상당수 여왕이 처분권을 가진 것을 감안할 때 여왕의 재산과 수입은 그 몇 배에 이를 것으로 짐작된다.

정확한 액수는 여왕도 모를 것이란 관측이다. 더 타임스에 따르면 2006년 기준 영지의 가치가 랭커스터 영지의 경우 6억9300만 달러, 찰스 왕세자가 주도해 미래 주거지로 개발 중인 콘월 영지는 12억 달러에 이른다. 이 역시 개인 재산에 포함되지 않았다.

값을 따지기조차 어려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비롯한 왕실 소장 예술품과 공식적인 행사에 사용되는 보석까지 합치면 실제 보유 재산은 전 세계 어느 왕실 못지않은 수준이다. 다만, 절대 왕권을 휘두르는 중동 등의 왕실과 달리 재산을 함부로 처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돈

지난해 7월 뉴욕 타임스(NYT)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왕실 재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재산과 수입은 얼마나 되고, 왕실 유지에 어느 정도의 돈을 쓰는지를 다뤘다. 3월로 회기가 끝나는 2006/2007 회계연도에 여왕은 자신과 남편 필립 공의 활동비로 영국 정부로부터 2600만 달러(약 260억원)를 받았다.

국가 소유지만 여왕이 살고 있는 버킹엄 궁을 비롯한 왕궁의 유지비용과 왕실 구성원들의 대외관계, 여행경비 명목으로 4200만 달러를 받았다. 정부가 아닌 다른 기관으로부터도 여러 가지 명목으로 800만 달러를 받았다. 여왕과 왕실이 국민의 세금에서 받는 돈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정부가 주는 돈 말고도 지대 수입이 상당하다. 여왕과 왕실은 영국 최대의 지주이기 때문이다. 지대를 받는다는 말이다. 군림하되 통치하지는 않는 입헌군주제 하의 군주지만, 소유 재산은 봉건제 이후 고스란히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왕실은 랭커스터와 콘월에 있는 영지에서 상당한 수입을 올린다. 여왕이 수입을 가져가는 랭커스터 영지에서는 매년 2800만 달러 정도의 지대가 나온다. 찰스 왕세자가 맡고 있는 콘월 영지에서는 연간 4500만 달러의 수입이 나온다.

여기에 세계 최고 수준의 투자은행들이 몰려있는 영국인 만큼 왕실 재산의 투자 수익도 상당할 것으로 짐작된다. 여왕의 투자 정보는 비밀에 부쳐져 있다. 이런 돈에 비하면 박물관 입장료 등에서 나오는 수입은 그야말로 관리비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는 평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국민의 압력에 굴복해 1993년 왕실의 면세 특권을 스스로 포기했다. 1992년 윈저성 화재에 따른 천문학적 보수비를 정부에서 지급하는 문제와 관련해 영국 사회에서 논란이 일자 여왕이 면세 특권을 포기한 것이다.

여왕의 라이프 스타일
말타기·피크닉·해외 여행이 3대 즐거움

여왕의 낙은 크게 세 가지로 알려졌다. 말타기와 피크닉, 그리고 해외 여행이다. 과거 왕실전용 요트인 브리티아니호를 타고 요트 여행도 즐겼다. 40여 년 동안 ‘바다의 궁전’으로 불렸던 배로 1997년 홍콩을 중국에 돌려주는 행사를 마치고 영국 총통과 찰스 왕세자 등을 태우고 떠났던 바로 그 요트다.

하지만, 1997년 재정 긴축을 요구하는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폐선했다. 여왕과 왕실 사람들은 말을 아주 좋아한다. 앤 공주 등이 올림픽 대표로 출전했을 정도다.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바람을 피웠다고 알려진 사람 중에 승마 코치가 있었다는 것은 영국 왕실이 얼마나 말과 밀접한지를 잘 알려주는 사례가 아닐까.

야외 피크닉도 마찬가지다. 여왕은 토니 블레어 총리를 왕실 가족 피크닉에 초대하는 ‘은전’을 베풀어 왕실 경비를 삭감하려는 그의 시도를 좌절시키려고 했다. 그럼에도 먹혀 들지 않자 블레어 총리에게 악담을 퍼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왕은 매년 나라를 정해 해외 여행을 떠난다. 1999년엔 3박4일간 한국을 찾아 안동에서 생일상을 받았다. 지난해 5월 미국 방문을 예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해외 여행에서 얼마나 극진한 대접을 받는지를 살펴보자.

그는 지난해 5월 7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국빈만찬에 초대받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대접은 극진했다. 그는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6년여 재임 중 처음으로 연미복 차림에 하얀 나비넥타이까지 맨 차림으로 나타났다.

격식을 중시하지 않는 자유분방하고 거친 텍사스 사나이로선 참으로 이례적인 모습이다. 부인 로라 여사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최고의 격식을 갖춘 대접을 해야 한다”며 그런 차림을 강하게 권했기 때문이다.

국빈 만찬 자체도 드문 일이다. 부시 대통령이 워싱턴을 찾은 외국 정상에게 국빈 만찬을 베푼 건 여왕이 다섯 번째였다. 당시 모습을 더 살펴보자. 부시는 백악관 복도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과거 네 차례 방문했을 때의 사진들을 나란히 내걸도록 했다.

여왕이 기억을 되살리며 기뻐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만찬장 테이블엔 아주 특별한 선물을 놓았다. 1953년 여왕이 대관식 때 사용했던 장미와 똑같은 모양으로 장식한 케이크였다. 로라 여사는 만찬장을 수만 송이의 장미꽃으로 꾸몄다.

정원과 야외활동을 좋아하는 여왕이 특히 만족해 할 선택이었다. 게다가 장미는 영국의 국화나 마찬가지다. 영국인들은 장미의 향기와 모습을 즐기는 외에도 장미를 다양하게 육종하고 재배하는 것을 즐긴다. 영국인에게 정원 손질은 생활의 일부이며 장미는 그 가운데 핵심이다.

식탁에는 여왕의 입맛을 세심하게 배려한 메뉴를 올렸다. 먼저 지중해 특산 채소인 아루굴라와 로메인에 잉글랜드풍 농부치즈를 곁들인 샐러드에 이어 미국산 캐비아를 곁들인 완두콩 수프가 이어졌다. 영국인들이 너무도 좋아하는 도버솔이라는 이름의 가자미 구이, 거기에 살구와 버섯소스를 곁들인 새끼 양고기가 나왔다.

미국이 수출하고 싶어 하는 식료품을 내는 대신 여왕이 좋아할 요리만 골라 올린 것이다. 백악관은 일반 국빈을 대접할 때 보통 4가지 코스 요리를 내놓지만 여왕에게는 다섯 가지 코스를 대접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백악관 주방장 크리스테타 커머포드는 “미국 최고의 요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여왕을 위해서 말이다.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거장 바이올리니스트인 이츠하크 펄만이 연주했다. 만찬장에는 134명이 초대받았다. 말을 특히 좋아하는 여왕을 배려해 켄터키 더비(미국의 3대 경마대회)의 우승자인 캘빈 보렐을 초대했다.

보렐은 만찬 이틀 전 여왕이 방문한 가운데 열렸던 켄터키 더비에서 우승했다. 골프가 영국에서 탄생했음을 고려했는지 세계적인 미국 골퍼 아널드 파머도 자리를 함께했다. 수시로 말이 헛나오기로 유명한 부시 대통령은 이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만찬에 앞서 백악관 잔디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 자리에서 멋쩍은 실수를 했다. 부시는 미국 독립선언 200주년을 기념한 해인 1976년 여왕이 미국을 방문했던 사실을 언급하다 ‘1976년’의 ‘19’를 ‘17’로 잘못 말한 것이다.

7000여 명의 환영 청중 가운데서 웃음이 터져 나오자 부시는 곧바로 이를 ‘19’로 다시 읽으면서 겸연쩍은 표정으로 여왕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왕은 부시 대통령을 바라보며 느긋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은 “여왕께서 마치 어머니가 아이에게 짓는 것과 같은 미소를 내게 보내주셨다”고 말했다. 부시의 유머에 청중은 웃음바다가 됐다. 여왕도 빙그레 웃었다. 미국이 역사적으로 영국 왕실에 어떤 나라인가.

과거 영국의 해외 영토로 영국 군주를 섬기다 ‘반란’을 일으켜 독립한 나라가 미국 아닌가. 1·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도와줬고, 이젠 세계 최강국이 된 미국의 대통령이 여왕에게 이런 농담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엘리자베스 여왕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구상 어떤 부자가, 권력자가 이런 극진한 대접을, 그것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