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업자가 말하는 ‘연예인과 사채시장’
탤런트 안재환 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연예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서울 강남 성모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평소 친분이 있던 연예인들의 조문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안 씨가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주변인들의 진술과 정황은 사업 실패와 사채대출로 인한 빚 독촉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로 안 씨는 최근 지인에게 “(사업이) 힘들어 다 포기하고 죽고 싶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안 씨는 죽기 전 수십억 원의 빚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둠의 돈’으로 불리는 사채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사채의 부작용에 대해 지적하고, 피해자들 역시 속출하고 있다. 박신양이 연기한 STV 드라마 ‘쩐의 전쟁’이 보여준 사채의 세계는 일반인들에게 ‘공포감’ 자체였다.
사채시장에 정통한 A 씨는 사채의 위험성에 대해 동의하며 사람들의 주의를 촉구했다. 그러나 안재환 씨의 사채업자 압박설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했다. A 씨의 입을 통해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채의 ‘오해와 진실’에 대해 들어 보았다.
A 씨는 대부업체에 10여년 이상 종사하고 있는 이 분야의 전문가다. 본인의 요청에 따라 신분을 익명으로 했으며 소속 회사도 밝히지 않는다.
- 사채에 대한 매스컴의 시각은 심각할 정도로 부정적이다. 이는 사실인가?
“어느 정도 과장이 있긴 하지만 사실이다.”
- 이른바 제2금융권으로 불리는 대부업과 사채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대부업과 사채는 근본적으로 같다. 대부업체 간판을 달고 있다고 해서 사채보다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이하다.”
- 탤런트 안재환 씨의 사망에 대해 사채 빚 독촉을 견디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데?
“이자에 이자가 붙었을 것이다. 원금을 갚지 못해 원금과 이자를 다시 빌리는 식으로 진행이 되면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안 씨의 사망이 순전히 빚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연예인들만 따로 자금을 융통하는 업체들이 있다고 들었다. 당연히 일반인들에 비해 큰 액수가 오가게 된다. 안 씨의 경우 40억 사채설이 있는데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 무슨 뜻인가?
“수입이 많은 스타 연예인들에게 40억원이라면 일반인들로 치면 통상 수 백 만원 정도의 빚이라고 보면 된다. 단순히 이 정도의 빚을 갚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이 의문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다른 문제가 더 있으리라 생각한다.”
- 스타 연예인이라 해도 40억원은 큰 돈 아닌가?
“물론 큰 돈이다. 그러나 갚지 못할 만큼 큰 돈은 아니라고 본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한 연예인이 대부업체에 빚을 진 뒤 갚지 못했고, 업체가 연예인에게 ‘불법적인’ 압력을 행사했다고 치자. 안 씨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많은 연예인의 경우 그들을 보호해주는 ‘배경’들이 있다. 그 힘은 압박을 가하는 쪽의 힘과 비슷한 부류일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힘’과 ‘힘’이 만나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기 마련이다. 게다가 연예인은 유명인이 아닌가? 불법적으로 납치를 해 폭행이라도 가했다간 언론 등에서 연일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할 업체는 없을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업체들의 횡포가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는데?
“사채를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이다. 불법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법에 호소하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것도 사실이다. 요즘엔 자동차 구입을 통한 ‘차깡’ 같은 수법들이 횡행하고 있다. 돈을 빌리러 온 사람들끼리 맞보증을 시키는 수법도 있다. 청소년을 상대로 휴대폰 대출 등을 해주는 경우는 더욱 위험하다.”
- 사채를 쓸 수밖에 없는 채무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대부업체가 합법적으로 등록된 업체인지 확인해야 한다. 각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에 가면 조회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스스로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 무작정 빌리면, 무조건 깨진다. 자신이 없으면 절대 빌리지 말아야 한다.”
채권투신법이 강화돼 대부분 채권자들의 ‘압박’은 불법이다. 심야에 전화를 걸어 빚 독촉을 하는 것도 안 된다. 주변에 알려서도 안 된다. 남들이 볼 수 있도록 엽서를 통해 독촉내용을 전달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체들의 강압수단이 날로 독해지고 있는 것은 빌려주는 쪽 역시 필사적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우니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시장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해 빌리려는 사람은 많아도 갚을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대문시장, 가락시장에 가보면 실제로 피해를 본 업자들이 수두룩하다. 업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과거에는 돈을 떼어 먹고 도망가는 경우가 1년에 1∼2건 정도였는데 요즘은 한 달에 1∼2건이 발생한다고 한다. 빌리는 사람이나 빌려주는 사람이나 모두 어렵다.”
업자들도 당한다. 전문적으로 대부업자의 돈을 떼먹고 사라지는 사기꾼들도 있다. 주민등록등본을 받고 돈을 빌려주었는데, 나중에 가보니 공터인 경우도 있다. A 씨는 특히 10대, 20대의 무분별한 소비행태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 마디로 대책 없이 돈을 쓰고, 빌린다.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돈에 대한 관념을 정확히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새로운 명품을 사기 위해 갖고 있던 명품을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린다. 세상에서 명품 전당포가 존재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돈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A 씨와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데 한 중년 여성이 종이 한 장을 불쑥 내밀었다. 받아보니 ‘직장인 신용대출, 무담보·무보증’이란 내용이었다.
대부업계에서는 통상 억대의 대출은 해 주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일부에서는 연예계 전문 사채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졌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0일 대부업협회는 “공식적으로 확인이 되지 않았는데도 ‘안씨의 자살=고금리사채=협박’인 것처럼 알려지고, 모든 대부업체가 불법추심을 하고 있다는 오해가 증폭되고 있다.”면서 “안씨의 채권액이나 채권자, 불법추심행위 여부가 있었는지 현재로는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부업협회 관계자는 “안씨의 채무가 40억원대의 고액이고, 영화제작이나 화장품사업 등 사업자금 용도라는 점으로 미뤄볼 때 채무의 대부분은 제도 금융권의 채무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불법사채의 경우 1000만원 미만의 금액을 대여하고, 억대의 자금은 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채시장에서의 목소리는 조금 다르다.
사채시장의 한 관계자는 “연예인이라 할지라도 일반적인 사채시장에서 신용으로 몇 억씩 빌릴 수는 없다.”면서 “연예인 전문 사채업체에서 돈을 빌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담보만 확실하다면 사채시장에서는 200억∼300억원대의 자금도 빌릴 수 있다.”면서 “불법 업체에서 5억원 정도를 대출한 뒤 이자 등을 연체했다면 상당한 금액으로 불어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안씨의 주변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월복리 기준으로 3년 전에 안씨가 사채업체로부터 5억원을 빌린 뒤 한번도 이자를 안 갚았다고 가정했을 때 연 50% 금리를 적용하면 21억 7300만원,40%를 적용하면 16억 2700만원이다. 현재 대부업체 최고 이자율은 연 49%이지만 지난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66%에 달했다. 은행 등 부채를 포함하면 ‘40억원’의 부채는 충분히 가능한 수치다.
한편 경찰 등에 따르면 정선희씨와 안씨는 법적인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따라서 안씨의 부채는 정씨가 아닌 안씨 부모에게 상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때 안씨의 부모는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를 가정법원에 신고할 수 있다. 한정승인은 사망자의 빚을 그가 물려준 재산의 한도 내에서 갚는 것이다. 상속포기는 ‘배우자·직계비속→부모→형제자매→4촌 이내 방계혈족’ 순으로 채무가 넘어가지만 자신이 상속자가 됐다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상속포기 신고를 하면 빚을 대신 갚지 않아도 된다.
다만 정씨가 안씨의 연대보증을 섰다면 이를 갚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보증은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먼저 부채를 청구하지만 연대보증은 연대보증인에게 바로 청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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