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바르도의 가르침:『티베트 사자의 서』에 나타난 사후세계
삶과 죽음을 포괄하는 네 가지 바르도
『티베트 사자의 서』는 죽음 이후의 상황에 대한 안내서이다. 어떤 사람이 죽어 갈 때 또는 죽은 이후에 스승이나 주위 사람이 그를 위해 읽어 주는 책이기도 하고,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읽는 문헌이기도 하다. 티베트인들은 죽은 사람의 시신 옆에서 그의 귀에 대고 이 책을 읽어 준다. 티베트인들은 죽어 가는 사람 혹은 이미 죽은 사람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자명한 사실로서 전제한다.
『티베트 사자의 서』의 원래 제목은 『바르도 퇴돌 첸모』(Bardo Todrol Chenmo)로, “바르도 상태에서 가르침을 들음으로써 위대한 해탈을 성취한다”(Great Liberation through Hearing in the bardo)는 뜻. 바르도 개념은 티베트인의 생사관에서 매우 중요한 용어이다. ‘바르도’의 ‘바르’(Bar) 는 ‘사이’를 뜻하고 ‘도’(Do)는 ‘매달린’, ‘던져진’이란 뜻이다. 하나의 상황의 완성과 다른 상황의 시작 사이에 걸쳐 있는 ‘과도기’ 혹은 ‘틈’을 의미한다. 우리는 삶과 죽음 사이에 걸쳐 있는 과정적 존재라는 뜻이다.
티베트인들이 일반적으로 죽음과 다시 태어남 사이의 중간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바르도라는 용어에는 훨씬 깊고 넓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 ‘바로 지금의 삶-일상적인 바르도’는 태어난 이후에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기간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지금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이 바르도뿐이고 나머지 세 가지 바르도는 알지 못한다.
둘째, ‘죽어 가는 과정-고통스러운 바르도’는 죽어 가는 과정이 시작된 직후부터 ‘내적인 호흡’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는데, 죽음의 순간에 ‘근원적 광명’이라 불리는 마음의 본성이 떠오르면서 절정에 달하게 된다.
셋째, ‘다르마타(Dharmata)-밝게 빛나는 바르도’는 마음의 본성이 밝게 빛을 내기 시작하는 죽음 이후의 모든 경험을 포함한다. ‘밝은 빛’은 소리, 색채, 빛깔을 지닌다.
넷째, ‘업에 따라 다시 생성되는 바르도’는 우리가 환생하는 순간까지 지속된다.1)
티베트어에서 바르도의 개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삶, 그리고 죽음의 범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삶만 알고 있을 뿐 죽어 가는 과정이라든가 죽음 이후에 대해 말할 수는 없지만, 네 가지 바르도 개념에 비추어볼 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은 더 이상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이와 같이 삶과 죽음에 대해 확고한 생사관을 갖춘 티베트인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당연히 지나가야 할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죽은 사람의 영혼을 시신으로부터 끄집어 내기 위해 ‘포와’라는 수행을 통해 시신으로부터 죽은 사람의 영혼을 풀려나게 한다. 영혼이 더 이상 머물지 않는 시체는 물체에 지나지 않으므로, 독수리에게 시신을 보시하는 조장(鳥葬)을 가장 영광스러운 장례방식으로 여긴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읽어 주는 『티베트 사자의 서』
죽어 가는 임종과정이 거의 끝날 무렵 임종자의 귀에 대고 다음과 같이 말해 준다.
“그대의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의식을 집중하라. 죽음이라 불리는 것이 이제 그대에게 다가왔다. 그러니 이와 같이 결심해라. ‘아, 지금은 죽음의 때로구나. 나는 이 죽음을 이용해 허공처럼 많은 생명 가진 모든 것들에게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가지리라. 그리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리라. …… 비록 내가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사후세계만은 정확하게 지각하리라. 사후세계에서 존재의 근원과 하나가 되리라.’”2)
이를 임종하는 사람의 귀에 가까이 대고 분명하고 정확하게 반복해서 말해 주어야 한다. 임종자의 마음이 단 한 순간이라도 흩어지지 않도록 확실한 인상을 심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이 끊어져 영혼이 몸 밖에 나왔을 때 ‘자기가 살아 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 반문하게 된다. 죽은 당사자는 자기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왜냐 하면 그는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족과 친구들을 여전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그의 귀에 대고 다음 내용의 『티베트 사자의 서』를 읽어 준다.
“이제 죽음이라 불리는 것이 그대에게 찾아왔다. 그대는 이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대만이 유일하게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이 세상의 삶에 애착을 갖거나 집착하지 말라. 그대가 마음이 약해져서 이 세상에 남겨 둔 것에 아무리 집착할지라도 그대는 이제 여기에 머물 힘을 잃었다. 그대가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대는 윤회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헤매는 것밖에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 그러니 마음을 약하게 먹지 마라. 다만, 진리, 진리를 깨달은 자, 그를 따르는 구도자들을 기억하라. 그대의 마음과 육체가 분리되어 있는 이때, …… 당황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마라. …… 지난 사흘 반 동안 그대는 기절상태에 있었다. 기절상태에서 깨어나자마자 그대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생각할 것이다. 그대는 지금 사후세계에 있다. 지금 그대의 눈에 보이는 모습들은 모두 빛의 몸을 하고 있고 천신들의 형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3)
준비된 죽음, 삶의 가장 영광스러운 성취의 순간
티베트 바르도의 가르침은 우리가 미리 죽음을 준비할 때 일어나는 것과,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을 때 닥치는 것의 차이를 명확하게 제시해 준다. 우리가 아직 살아 있는 지금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삶을 통해, 죽은 그 순간에, 그리고 죽은 이후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바로 지금 이 삶에서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지금의 삶과 앞으로 다가올 모든 삶은 황폐해지고 우리는 삶을 온전하게, 충분히 살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죽어야만 하는 우리 자신, 바로 그 상태에 갇혀 버리고 만다. 이러한 무지로 인해 우리는 끝없는 환상의 나락, 생사의 끝없는 순환, 윤회라 일컬어지는 고통의 바다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바르도 가르침의 근본 메시지는 우리가 죽음을 제대로 준비한다면 삶과 죽음 모두에 커다란 희망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다. 바르도 가르침은 지금의 삶에서 놀랍고도 궁극적으로 끝없는 자유를 성취할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그런 자유는 우리의 준비 여하에 따라 우리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 죽음도 선택할 수 있고 삶 역시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자유. 죽음을 준비하고 수행을 닦은 사람에게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 삶의 가장 영광스러운 성취의 순간이기 때문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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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걀 린포체, 오진탁 옮김 『티베트의 지혜』 (민음사, 1999년) 179-182쪽
2) 파드마삼바바, 류시화 옮김 『티베트 사자의 서』(정신세계사, 1996년), 245-247쪽
3) 『티베트 사자의 서』, 263-269쪽
4) 『티베트의 지혜』,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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