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생활 20년, 아빠의 고민 "외국인 며느리는…"
국내의 한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인 김모씨(50)는 대학생 아들 둘을 10년 전 캐나다로 유학 보냈다. 중학교 2, 3학년이던 아이들이 학업은 등한시하고 종일 게임만 하는 게 걱정돼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캐나다를 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인터넷 여건이 국내보다 좋지 않아 리니지 같은 용량이 큰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안되는 점을 고려했다. 물론 어린 아이들끼리만 보내기가 염려스러워 아내도 함께 갔다.
덕분에 자유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 공부와 학교생활 대한 흥미도 찾은 아이들. 1~2년 만에 금방 끝날 줄 알았던 '기러기아빠' 생활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 해, 두 해 길어졌다.
오랜 유학생활로 영주권을 갖게 된 아들들은 의학대학원 등 진로를 찾아 만족스런 현지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군 입대와 취업, 결혼 등 굵직한 과제만 남았다. 아들들은 현지에서 일자리를 얻고 정착하는 것을 원하는 눈치다.
김씨는 최대한 자녀들의 의사를 존중할 생각이다. 한창 연애할 나이, 머지않은 결혼 문제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자녀들이 가급적 한국 사람과 결혼해 한국 와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교육을 위해 택한 유학이 가족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는 "외국인하고는 애들이 그렇게 진지하게 연애하는 것 같지 않던데 그렇게는 안 되겠죠"라며 웃었다.
아내와 자녀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고 국내에서 뒷바라지하는 '기러기아빠'가 사회현상으로 전면에 등장한 지 어느덧 20년이 됐다. 1990년대 중반 조기유학 열풍을 계기로 부각되기 시작한 '기러기아빠'는 이제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독특한 가족형태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해외 교류가 늘면서 기러기아빠는 이제 웬만한 기업 임원급이나 전문직, 고소득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됐다.
초기 기러기 아빠는 자녀의 조기 영어교육을 통해 치열한 입시, 취업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사는 길을 택했다. 최근 들어선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대안적 교육환경에 대한 욕구 때문에 기러기 생활을 택하는 부모가 상대적으로 늘었다.
기러기아빠 20년, 조기유학을 떠난 아이들이 상당수 15~29세 청년기에 진입하면서 기러기아빠의 고민이 비단 '혼자 사는 외로움'을 극복하는 데서 자녀의 대학진학, 취업, 결혼에서부터 가족관계 변화, 부부의 노후 등으로 범위가 확대됐다.
국내 대형 건설회사에서 부장으로 일하는 정모씨는 4년 전 13살 외동아들을 캐나다로 유학 보냈다. 아들을 챙기기 위해 맞벌이를 하던 아내도 직장을 그만두고 함께 갔다. 정씨는 연간 7000만원 안팎을 아들 교육비와 생활비로 꼬박꼬박 투자했다.
17살이 된 아들이 학교폭력도, 무자비한 입시경쟁도 없는 곳에서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게 정씨에겐 가장 큰 위안거리다. 아들이 대학진학과 취업까지 현지에서 하게 된다면 돌아오지 않아도 무관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인지 정씨는 아들의 이성교제에 관심을 갖는다. 그는 "아들이 이성친구를 사귀는 데 거부감은 없지만 외국인과의 결혼이 걱정되기는 한다"며 "보수적인 집안에서 반대할 수 있는 여지도 많아서 가급적 한국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후 문제도 고민거리다. 정씨는 "아내가 맞벌이를 하다가 그만두고 캐나다로 갔기 때문에 노후 준비에 있어서는 당초 계획에서 벗어나는 상황을 맞고 있다"며 "직장생활을 계속하면 지원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노후가 걱정되기는 한다"고 털어놨다.
서울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김모씨(45)는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을 홍콩으로 유학 보낸 지 4년 된 기러기아빠다. 김씨는 사교육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교육환경이 좋으면서도 자주 왕래할 수 있는 아시아권을 택했다.
자녀들이 대학을 마칠 때까지는 지원을 계속할 생각이다. 김씨는 "2~3억 가량을 전세 대출 받아 강남권으로 이사 가느니 유학이 낫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면서도 자녀의 향후 진로나 취업, 결혼 문제에 있어선 고민이 적잖다.
김씨는 "일이 바빠서 외로움을 느낄 틈이 별로 많지는 않다"며 "다만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월 600만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는데 요즘 세상에 내가 이만큼 해준다고 해서 자녀에게 노후에 이만큼 해달라는 생각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십만 기러기아빠의 탄생…"학벌 때문에? 국내 교육 불만 탓"
자식의 조기유학을 위해 가족을 해외로 보내고 혼자 사는 아빠, 이른바 '기러기 아빠'라는 단어가 처음 언론에 등장한 것은 2001년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기사검색 결과 한 종합일간지는 당시 칼럼 '국적없는 부모'에서 이 단어를 처음 썼다.
이후 조기유학 열풍과 함께 기러기 아빠들의 고단한 삶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그 해 연말 치뤄진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내 교육문제를 대표하는 단어로 부각되며 국립국어원의 '2002년 신조어 사전'에 포함되기도 했다.
실질적인 조기유학 붐은 시기가 다소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90년대 초 해외유학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온 대학생들이 이른바 '오렌지족'이라는 집단을 형성한 바 있다. 이들이 결혼 후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자식 조기유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00년대 초반 '글로벌' 열풍이 불어오며 자식을 조기에 해외유학 시키는 경우도 늘어났다. 성기선 카톨릭대 교육학과 교수는 "중산층들이 국제적인 학벌을 찾기 위한 시도의 하나로 '기러기 아빠'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기러기 아빠'는 전국에 수십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청이 5년마다 조사하는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0년 결혼은 했으나 배우자와 떨어져 가구가 115만명에 달한다. 이는 결혼 가구 중 10%에 달하는 수치다.
그러나 한국인의 해외 유학생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대학생 이상 한국인 유학생 수는 2014년 21만9543명으로 2012년 23만9213명, 2013년 22만7126명에 이어 3년 연속 감소 추세다.
이 가운데 초·중·고등학교 유학생은 2013년 1만2374명에 달한다. 2008년 2만7349명, 2009년 1만8118명, 2010년 1만8741명, 2011년 1만6515명, 2012년 1만4340명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2000년대 초반에는 좋은 학벌을 따기 위한 수단으로 해외 조기유학이 인식됐다며 최근에는 국내 교육에 대한 불만이나 특히 세월호 사고 이후 국내 안전 등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기러기아빠 생활을 결정하는 동력이 되고 있는 분위기다.
성기선 교수는 "최근 10년 사이 교육과 취업 제도 등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무작정 해외로 떠나는 것이 자녀교육을 위한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퍼지며 해외유학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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