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런의 손 … ‘치킨집’은 떨고 있다
미국 금리 인상 가시화 국내 영향
바닥친 시중금리 4월부터 상승세 ,1100조 넘나드는 가계부채 ‘뇌관’
빚내 가게 차린 계층 타격 우려 “증시엔 예고된 악재 … 영향 제한적”
“올해 어느 시점(some point this year)에는 금리를 올리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22일(현지시간)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한 마디가 국내외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다. 10년 만에 맞을 금리 상승기가 금융시장에 어떤 충격을 줄지 각국의 계산도 분주해졌다. 금리의 방향은 지난해 10월 ‘양적완화(QE)’가 종료되던 때 이미 예고됐다. 더 중요한 건 속도다.
한국은행은 Fed가 급하게 올리진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4월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금리를 결정할 때 Fed의 금리 인상과 거시 여건 둘 다 고려 사항이지만, Fed가 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우리가 곧바로 금리를 같이 올리는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감당 못할 충격이 예상되지는 않는 만큼 “거시경제, 금융안정을 다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득실을 따져보고 (우리 기준금리를) 결정하겠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옐런의 금리 인상 예고 발언으로 한은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이 훨씬 좁아졌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나선 상황에서 기준금리 추가 인하 시점을 잘못 잡았다간 외국인 투자 자금이 높아진 선진국 금리를 좇아 급격히 ‘유턴’하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칠 위험이 있다. 그렇다고 섣불리 미국을 따라가다간 여전히 회복세가 미약한 국내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위험도 크다. 한은으로선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전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낮춰야 할지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됐다.
다만 전문가 사이에선 아직은 재정도 다른 신흥국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튼튼하고, 경상수지도 큰 폭의 흑자를 보이고 있어 큰 충격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익주 국제금융센터 원장은 “미국이 금리를 올리게 되면 신흥국들은 모두 자금 유출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한국은 단기외채, 외환보유액, 경상수지를 감안했을 때 다른 신흥국보다 충격을 덜 받으리라 예상된다”고 했다. 하지만 “금리 인상 여파가 확산돼 기초체력(펀더멘털)과 관계 없이 신흥국 전체가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거시금융당국은 위기 관리와 대처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이상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칠 때 ‘강 건너 불구경’ 할 수는 없는 입장이란 얘기다.
이미 금융시장은 지난달 예행 연습을 치렀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주식·채권시장에서 한 달 새 150억 달러(약 16조원)가 빠져나갔다. 미국·독일을 중심으로 선진국 국채 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다.
글로벌 금리가 오름세를 타면서 국내 시중금리도 들썩이고 있다. 내려가기만 하던 금리가 지난달 중반 바닥을 친 이후 상승세로 전환했다. 국고채 3년물 금리(수익률)는 지난달 17일 1.691%였지만 이달 22일 현재 1.871%로 0.18%포인트 올랐다. 국채나 금융채의 흐름을 따라가는 대출금리도 영향권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 빚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가계부채는 올 1분기 110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책당국의 고민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당장 오는 7월 말 시한이 돌아오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를 연장할 것인지를 놓고 가계부채협의회 내에서 상당한 격론이 벌어질 전망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금리가 오를 때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계층은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와 한계기업”이라며 “특히 가계대출 액수로 따지면 1분위 가구 비중은 5%에 불과하지만 가구 수로 따지면 5분의 1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LTV·DTI 완화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을 추가로 받은 후 생계용 자금으로 쓰거나 자영업에 투자한 취약계층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했다. 대신 “가계부채 문제가 은행권의 구조적 위험(시스템 리스크)으로 갈 가능성은 집값이 30~40% 이상 떨어지지 않는 한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모처럼 상승 추세를 보이며 ‘박스피’ 탈출을 노리던 증시에도 금리 인상은 불길한 신호다. 다만 미국이 기준 금리를 연내 인상하더라도 국내 증시에 당장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게 증시 관계자들의 기대 섞인 전망이다. 시장이 이미 연내 인상을 예상하고 있었던 만큼 가격에 상당 부분 반영이 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주가 하락 폭이 크거나 장기간 하락세를 보이진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문정희 KB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은 금리를 점진적으로 올릴 것”이라며 “인상 속도가 예상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국내 주식시장이 급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는 투자 환경이 더 좋아질 것이란 반론도 있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미국 경제가 나빠져 금리가 오르는 게 아니라 경기가 정상 상태로 돌아와서 금리가 오르는 것”이라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국 경기가 회복되면 한국처럼 이들 국가를 상대로 한 수출이 경제 성장 동력인 국가들은 그 수혜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박스권 탈출의 관건은 기업들의 실적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조 연구원은 “지금까지는 시장에 풀린 풍부한 자금이 증시를 끌어올린 유동성 장세였다면 앞으로는 기업 실적을 따라가는 실적 장세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나 나라 밖에도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문정희 연구원은 “중국 시장의 움직임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하이종합지수가 지난해 초 대비 120% 넘게 오르는 등 중국 시장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반면 경제성장률은 2010년 이후 하락세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이 6.8%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7%를 하회하는 수치다.
문 연구원은 “실물 경기와 주식 시장의 괴리가 커진 중국이 미국 금리 인상으로 충격을 받으면 그 여파가 국내 주식 시장에까지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단 중국뿐만이 아니다. 브라질·아르헨티나·터키 같은 신흥국 내 취약국 주가지수가 미국 금리 인상으로 급락하면 국내 시장도 조정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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