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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시사

해킹 정국, 박근혜와 MB의 전쟁 시작됐다

여행가/허기성 2015. 7. 17. 05:26

해킹 정국, 박근혜와 MB의 전쟁 시작됐다

예상치 못한 외생 변수가 또 터졌다. 이탈리아 해킹 솔루션업체 '해킹팀'의 내부 문서가 비밀 정보 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공개되면서, 국정원이 또 정국의 중심에 섰다. 정부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촉발된 이 건은 이제 정치 이슈가 됐다. 

특히 이병호 국정원장이 '원세훈 책임론'을 내놓으면서, 정국은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흐름을 예상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포인트가 눈에 띈다.

16일, 'MB의 오른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일부 핵심 증거의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2012년 대선 개입 등 선거법 위반 부분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건을 고법으로 돌렸지만, 검찰이 현직 대통령과 대법원의 권위를 거스르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공소 유지 의지는 권력의 손에 달려 있다. 아직 정권은 힘이 세다. '채동욱 파동', '유승민 파동'만 봐도 그렇다. 눈 밖에 나면 잘린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아킬레스건인 '부정 선거'의 의혹을 이날 사실상 털어냈다. 최소한 법적으로는 그렇다. 원세훈을 매개로 이어져 있던 '이명박근혜'의 불편한 교집합은 해소됐다. 박 대통령은 비로소 자유를 찾았다. 

'원세훈 책임론' 본격 등장국정원, 이명박 정권을 겨냥하다  

가장 먼저 주목되는 것은 '해킹 사찰' 의혹과 관련된 이병호 국정원장의 '원세훈 책임론'이다. 이병호 원장은 해커팀의 해킹 프로그램 RCS에 대해 "연구용"이라고 주장하며 "민간인 사찰은 안 했다"고 국회에 해명했다. 

국회 정보위원인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에 따르면 이 원장은 "(북한 공작원을 대상으로 한) 연구용으로 구매한 프로그램을 (실전을 위한) 대북용으로 용도를 전환한 것이 누구였느냐"는 질문에 "제가 판단하기엔 (원세훈 전) 원장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취지로 답변을 했다고 한다. 

국정원에 따르면 해킹 프로그램 구매 시기는 지난 2012년 1월과 7월, 대선을 앞둔 해였다. 쉽게 말하면, 이 원장의 해명은 '원세훈 원장이 도입해 대북용으로 썼던 것을, 박근혜 정부에서는 연구용으로 썼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원세훈은 불법', '박근혜는 합법' 도식이다.  

특히 강신명 경찰청장이 "국가 안위에 명백하게 위험이 되는 사안이라 하더라도 법에서 규정한 도·감청이 아닌, 해킹을 통한 내사와 수사는 불법"이라며 "(대테러방지법 등) 관련 법이 통과되지 않는 한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주목된다.  

수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이미 "수사를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전례도 있다. 국제 해킹그룹 어나니머스(anonymous)가 '우리민족끼리' 사이트를 해킹했을 때, '독과 독수' 논란이 일었음에도 국정원은 수사를 진행했다.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이메일 등을 토대로 검찰이 의지만 있으면 수사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임기 반환점 앞둔 박근혜, 이명박을 비호할 이유가 없다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는 원세훈 전 원장이나, 이명박 정권을 옹호해 줄 이유가 크게 없어졌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에 대한 감사원의 이례적인 중간발표가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을 크게 불쾌하게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감사원은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를 철저한 '실패'로 규정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 파동도 심상치 않다. 대우조선해양과 이명박 정권의 관계는 미묘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우조선 협력업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전 세종나모 회장에게 뇌물을 건넸다. 과거 남상태 전 사장의 유임 로비 의혹, '친이계 낙하산' 의혹 등 이명박 정권 인사들과의 유착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기업이다. 대우조선의 대주주인 산업은행 역시 봐주기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검찰에서 이번 '분식 파동'과 관련해 수사에 착수할 경우, 이명박 정권 관련 인사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나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관련 기사 : 대우조선, 사장 바뀌니 갑자기 '파산 위기'? 

다른 기업도 주목된다. 이명박 정권과의 유착 의혹이 있는 포스코 수사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 이후 잠시 주춤했지만, 지금은 탄력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발표한 '8.15 특별사면' 대상에도 이상득 전 의원 등 이명박 정권 관련 정치인들은 포함되기 어려워졌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날 박 대통령에게 정치인 사면은 안 된다고 건의했고, 박 대통령은 "알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득 전 의원에 대한 사면 등을 내심 기대하고 있던 '이명박 진영'의 한숨 소리는 커지고 있다.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지지율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역대 정권에 비춰보면, '전 정권 부패 청산'은 지지율 반등과 국정 동력 확보에 나름 효과를 보여왔다. 이명박 정권을 겨냥한 사정 기획설은 사실 새삼스럽지 않은 것이다. 사정 정국은 이미 올 초부터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성완종 파문'과 '메르스 사태'라는 외생변수를 만나면서 잠시 어그러졌다. 박 대통령은 '부패와의 전쟁'도 '경제 살리기'도 제대로 추진해보지 못한 채 2015년 전반기를 흘려보냈다.  

朴 정부로 불똥 튈 가능성?해킹 타깃이 된 '변호사'는 누구인가? 

다시 '해킹 사찰' 파문으로 돌아와 보자. 국정원의 '원세훈 탓' 해명은, 정보기관으로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국정원 입장에서 굉장히 이례적인 행위였다. 전 정권의 국정원장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는 방증이다.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이 현 정부의 잘못으로 불똥이 튀는 것을 강하게 방어할 수밖에 없다.  

'원세훈 책임론'은 그런 절박감과 함께 원 전 원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 시점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해킹 사찰' 이슈가 박근혜 정권 문제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아슬아슬한 정황들이 포착되고 있다. 그간 국정원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왔던 한 변호사에게 기자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국정원의 간첩 조작 의혹을 파헤쳐왔던 유명 변호사다. 또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정부의 진상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했던 미국 거주 한국계 박사 한 명도 주목을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있었던 사건인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에서 유우성 씨를 변호했던 김용민 변호사는 <한겨레>에 "2013년 가을께 (항소심) 재판 준비를 위해 유 씨와 함께 회의를 하고 있는데 책상 위에 있던 유 씨의 스마트폰이 저절로 작동하며 저장된 사진이 삭제되기 시작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만약, 누군가 정말로 감시를 당했다는 증거가 발견되면? 그때부터 이 사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현 정권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희생양이 필요한 시점인데, 이명박 정권과의 전쟁은 그래서 불가피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