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전철 '헛바퀴'…9곳 중 1곳만 본궤도
위례신사선, 노선변경 놓고 강남-송파구 주민간 갈등
교통여건 단기간 개선 힘들고 주변 집값에 악영향 우려도
내년에 착공할 예정이던 동북선(왕십리~상계역)은 서울시 경전철 가운데 가장 유망한 노선으로 꼽혔다. 서울지하철 2·5호선과 분당선 등이 연결되는 왕십리역에서 마장축산물시장 경동시장 등을 거쳐 길음뉴타운, 월계동 롯데캐슬아파트를 지나 하계동 우성아파트, 종점인 상계역까지 15개 정거장이 대부분 주거 밀집 지역이다. 향후 40년 운영을 전제로 한 편익비용비(비용 대비 수익률)는 1.2로 민자사업으로 추진하는 9개 경전철 중 가장 높았다. 2007년부터 사업이 물망에 올랐지만 행정절차 지연 등으로 늦어지다가 주관사인 경남기업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사업이 멈췄다.
경전철 개통을 주택 분양 판촉 내용으로 활용해온 건설회사들도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김상욱 삼성물산 마케팅팀장은 “전철이 새로 지나간다는 사실만으로 역 주변 아파트 가격이 2000만원가량 뛴다”며 “동북선이 사업자를 빨리 찾아야 성북구 장위뉴타운에서 내년에 공급할 예정인 아파트 분양이 차질을 빚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왕십리~상계 잇는 동북선 사업 중단
경남기업이 동북선 사업을 포기하자 서울시는 차순위 협상대상자인 현대엔지니어링을 통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적잖은 사업비용(1조5753억원의 50%)과 위험이 따르는 현재 사업방식(BTO·수익형 민자사업) 등을 감안할 때 현대엔지니어링이 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사업 여건이 많이 변해 무리해서 사업을 진행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사업이 완전 무산된 후 재공고 절차에 응하면 기존 BTO보다 조건이 좋은 위험분담형(BTO-rs)으로 동북선 사업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이 노선의 개통은 일러야 2025년께나 가능하다. 애초 경제타당성 분석 결과 최적 개통 시기(2018년)보다 7년 이상 늦춰지는 것이다. 사업 제안부터 기획재정부 타당성평가 등의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9개 경전철 중 유일하게 최근 사업이 본궤도에 오른 신림선도 비슷한 절차를 거쳤다. 신림선은 2010년 우선협상대상자에 남서울경전철(주관사 고려개발)이 선정됐으나 주관사가 이듬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면서 사업이 멈췄다. 2012년 대림산업이 새 주관사로 나서면서 겨우 정상화됐다.
◆불발로 끝난 사업자 공모
동북선과 함께 강북지역 주요 도시철도로 기대를 모았던 면목선도 사업자 선정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할 처지다. 이 노선도 2007년부터 사업 제안을 받았으나 계속 흥행에 실패했다. 지난 9월 낸 마지막 공고에서도 마찬가지다. 청량리역에서 시작해 전농동 사거리·장안동 삼거리, 면목역, 우림시장을 거쳐 신내차량기지로 가는 노선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업성에 문제가 있어 여러 방향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우림시장과 신내 지하차도 등을 걷어내고 공사에 들어갔을 때 현재(8894억원)보다 사업비용이 크게 늘어날 위험이 있어서다. 서울시가 관련 절차를 거쳐 재공고를 내려면 일러야 내년 4~5월께야 가능할 전망이다.
노선 길이가 가장 긴 서부선도 사업 지연이 계속되고 있다. 서부선은 동작구 상도동·관악구 봉천동 등 주민 의견 수렴 과정에서 장승배기역~서울대입구역 노선 연장이 확정되면서 사업이 당초보다 최소 3년가량 늦춰졌다. 이쪽 노선이 연장되자 일부 은평구민은 새절역에서 신사동고개 삼거리까지 한 개 역 연장을 추가로 요구하고 나섰다.
삼성물산이 민간사업자로 나선 위례신사선은 노선 위치를 두고 주민 간 갈등에 휩싸였다. 강남구 세곡동, 일원동 일대 주민들은 현재 학여울역에서 옛 가락시영아파트(송파 헬리오시티)역으로 바로 이어지는 노선에 대모산입구역 삼성서울병원역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송파 문정지구, 위례신도시 주민들은 사업이 더 이상 지연돼서는 안 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광역도시철도과 관계자는 “노선 변경은 수익성을 감안해 민간사업자가 결정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된 경전철의 파급효과는 크다. 2017년 개통 예정인 ‘서울시 1호 경전철’ 우이신설선을 타면 강북구 우이동에서 동대문구 신설동까지 이동시간이 기존 50분대에서 20분대로 단축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노선 개통을 감안, 서울시는 신설동 역세권 개발계획을 13년 만에 새로 마련해 지난 12일 발표했다.
위례선 제외한 8곳 모두 지하 경전철
서울시의 지하 경전철사업이 겉돌고 있다. 지하철 사각지대의 교통환경 개선을 위해 2007년부터 본격 추진한 경전철 9개 노선 중 본궤도에 오른 사업은 여의도와 서울대를 잇는 신림선 한 개 노선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역 부동산중개업소 등에서는 이들 노선 확정을 내걸고 아파트 청약을 권유하고 있어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전철은 6~10개 차량을 연결해 운행하는 기존 지하철(중전철)과 달리 2~4개 차량을 연결한다.
17일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도시철도 시설이 상대적으로 적은 서울 동북부의 교통 여건을 개선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동북선(왕십리~상계역) 경전철사업이 원점 재검토에 들어갔다. 우선협상대상자인 경남기업이 지난 16일 법원에 회생계획안을 제출하면서 이 사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차순위 협상대상자인 현대엔지니어링도 사업권을 인수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량리역과 신내동을 연결하는 면목선사업은 상황이 더 나쁘다. 서울시가 지난 9월 민간사업자 모집공고를 재차 냈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서부선(은평 새절역~장승배기역)도 서울대입구역까지 연장이 확정되면서 계획보다 3년가량 착공이 미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목동·난곡·우이신설연장 노선도 아직 사업을 맡겠다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위례신사선은 노선 변경 여부를 두고 강남구와 송파구 주민 간 갈등을 빚고 있다.
서울 경전철은 기존 지하철 접근이 어려운 지역을 대상으로 2007년부터 민간투자 방식으로 추진됐다. 서울시는 지하철을 이용하기 힘든 지역을 서울 전체 면적의 38%가량으로 분류하고 있다. 시는 이들 지역에 대한 경전철 건설을 골자로 하는 ‘서울시 10개년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안’을 지난 6월 다시 내놨다. 2007년 시작한 기존 7개 노선(신림·동북·면목·서부·우이신설 연장·난곡·목동) 사업을 계속 추진하면서 별도 계획한 위례신사선과 위례선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지상을 달리는 위례선을 빼고 전부 지하철이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지하철역 하나가 들어서면 인근 지역 개발 가치가 최대 1조원 가까이 올라가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경전철 사업 지연으로 분양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내년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던 동북선 사업에 대한 주관사의 사업 포기로 성북구 길음뉴타운 등 동북 4구(성북·강북·도봉·노원) 일대의 지하철 교통 여건은 단기간에 개선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길음뉴타운 내 반석부동산의 최준식 대표는 “이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동북선이 들어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민자사업에 내재돼 있는 문제점을 간과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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