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화국
한국의 주택시장을 외국과 비교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아파트의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체 주택수가 5389만 가구(2003년 기준, 이중 빈집이 12.2%)로, 우리의 아파트라고 할 수 있는 맨션은 465만7000가구(2004년 말 기준)이다.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공동주택의 비율이 10%도 되지 않는다. 일본도 맨션 공급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2004년에 착공허가를 받은 주택 119만3000가구 중 맨션은 20만 가구에 불과하다. 일본의 맨션이라는 것도 대체로 30~40가구 정도의 소규모 아파트가 상당수. 여전히 단독주택이 주택시장의 메인상품이다.
한국은 주택에 관한한 세계적으로 희귀한 나라이다. 건교부 조사에 따르면 2005년 전국의 주택건설(인허가기준) 총계는 46만3641가구이고 이중 아파트가 41만5511가구이다. 사실상 아파트만 공급되는 독특한 구조이다. 85년 전체 주택 중 단독주택이 77.3%, 아파트가 13.5%였다. 2000년 단독 주택 37.1%, 아파트가 47.7%로 역전됐다. 지금은 아파트의 비율이 5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아파트 이외에 공급되는 주택도 대부분 연립, 다가구, 다세대 주택이다. 이런 공급구조가 수십 년간 더 지속된다면 단독주택은 어쩌면 멸종위기에 처할 지도 모른다.
국토여건이 비교적 비슷한 일본에서 맨션의 비중이 낮은 것은 지진이라는 치명적 약점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우리처럼 아파트에 편중된 공급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홍콩, 싱가포르도 아파트가 많다고 하지만 이는 도시국가라는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다. 인구 밀도가 높은 유럽의 국가들도 한국처럼 시골 구석구석까지 아파트가 파고든 나라는 없다.
한국 아파트의 역사
아파트가 단독주택을 밀어낸 비결은 뭘까. 1932년 서울 충정로의 5층 유림아파트가 처음이라고 한다. 광복 후, 1961년 대한주택공사가 서울 마포지구에 도화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본격적으로 아파트가 공급되기 시작했다. 아파트가 우리의 주거문화로 정착되는 데는 걸림돌이 많았다. 1970년 4월 8일 서울 마포구 와우시민아파트가 붕괴하면서 아파트는 부실공사라는 오명의 대명사였다. 와우아파트 사고로 사망자만 33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부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70년대 들어 도시화가 본격화되면서 서울 인구 집중이 가속화되자 아파트 외에는 대안이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는 비교적 싼값으로, 대량 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급 정책 서민 주택난을 해결하기위해 시영, 주공아파트들이 대량 공급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10~20평대로 중산층용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파트는 틈새 상품 정도였다. 당시 상황에서는 아파트는 서민들의 주택 정도였다. 프랑스의 경우, 서민들을 위한 주택공급을 위해 교외에 임대용 아파트를 대량 공급했다. 최근 이민자들의 폭동도 이민자들로 슬럼화된 교외의 아파트지구에서 발생했다. 한국에서 아파트가 고급주거 수단의 상징이라면 유럽에서는 아파트가 서민주택의 상징인 것이다.
아파트에 대한 인식을 바꾼 것은 70년대 강남 신도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부터이다. 그 상징이 강남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일 것이다. 41개동 총 3529가구로 이뤄진 대단지로 76년~79년 순차적으로 준공됐다.32~80평형으로 당시에는 보기 드문 대형 평형위주의 단지였다. 특히 78년 6월 화제가 됐던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사건으로, 아파트에 대한 인식에 일대 전환이 발생했다.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한다는 것을 한국에 알려준 사건이었다. 아파트가 서민주거 수단에서 중상층 주거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히 강남 개발이 결정적이었다. 아파트 중심으로 건설된 강남은 정부의 강북인구 분산정책으로 추진된 법원, 정부청사, 명문 고등학교 이전 등으로 중산층 중심도시로 발전하는 전기를 맞는다.
재테크, 주거문화의 천박성?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으로 바뀐 원인을 몇 가지로 나눠 분석해 보자.
첫째, 아파트에 편중된 주택 정책의 지속이다. 비좁은 땅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위해서는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공급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이다. 정부는 고도성장기 주택 대량 공급을 하기위해 아파트를 주요 정책으로 채택한 것이다.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을 앞두고 달동네 강제 철거를 통한 아파트 공급이 상징적인 정책이다. 한국의 공공택지는 서울, 수도권은 물론 지방도 모두 아파트 위주이다. 수도권이야 땅값이 비싸서 아파트를 짓는다고 하지만 땅값이 싼 곳까지 아파트를 짓는 것은 일종의 자원의 낭비이고 아파트 맹목주의 일뿐이다.
둘째, 주택은 하나의 문화이다. 전통을 중시하는 유교가 지배하던 양반문화가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한국의 주거문화는 급변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단독주택 문화가 유지되는 것은 주거 전통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독주택에 산다는 것은 번거롭다. 단독주택은 관리 책임이 집주인에게 있다. 단독주택은 잔잔하게 손 볼 게 많다. 넓은 정원이 부럽다고 하지만 잔디를 깎고 정원수를 손질하는 수고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은 물론 일본에도 간단한 집수리에 도움이 되는 페인트, 공구를 파는 대형판매점들이 많다.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집을 수리하고 잔디를 깎는다는 것은 정신적 여유와 전통, 멋, 습관이 어우러져야 한다. 우리는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그런 것을 죄다 상실한 것은 아닐까. 설문조사를 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파트보다는 마당 있는 집에 대한 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여유와 습관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단독주택은 고통이다.
셋째, 아파트 확산의 가장 결정적인 공을 세운 게 아마 돈의 문제, 즉 재테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표준화된 상품이기 때문에 환금성을 갖는다. 마치 주식처럼 000아파트 00평형은 00000원이라는 식의 가격표가 붙은 상품으로 유통된다. 제 각각으로 지어진 단독주택은 표준화된 가격을 가질 수가 없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가격을 책정하기 어렵다. 이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단독주택, 토지도 지역에 따라 아파트보다 훨씬 더 가격이 급등했다. 하지만 표준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비교할 수 있는 가격 정보가 유통이 되지 않는다.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아무리 많이 올라도 1년 사이에 2배를 넘은 곳은 거의 없다. 하지만 개발 호재가 있는 토지는 2배가 아니라 서너배, 10배가 오른 곳도 많다. 더군다나 토지는 사회적 관심을 덜 받다보니 양도세 등 세금부담도 거의 없다. 정부도 재테크적인 측면을 이용했다. 좀더 높은 개발이익, 분양성 확보를 위해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의 공공택지를 아파트로 공급했다.
마법의 상자
정책, 주거 문화, 재테크가 어우러지면서 한국은 세계사적으로 드문 아파트 공화국이 됐다. 한때 소득 2만 달러 시대가 되면 선진국처럼 전원주택, 단독주택이 다시 유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이미 주거문화가 총체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마음은 단독주택이라고 하지만 몸이 아파트에 너무 길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과도한 공급은 뜻하지 않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주택의 증권화 현상이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자신과 이웃의 집(물론 주택의 절반인 아파트)의 가격을 체크 할 수 있는 놀라운 시스템을 갖췄다. 인터넷을 두드리면 저 동네 사는 사람들이 한 달간 얼마나 주택으로 돈을 벌었는지, 나는 부동산 재테크에 얼마나 열등한지를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서로 비교하고 부러워하고 질시하고 안타까워한다. 멀쩡한 사람을 천하의 무능력자로 만든다.
거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래 나도 할 수 있다. 재테크 대열에서 물을 먹을 수 없다” 은행에서 바리바리 돈을 빌려 강남으로 달려간다. 사겠다는 수요가 생기니 집값은 더 오를 수 밖에 없다. 결국 요지의 아파트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자산 격차는 더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사회적 양극화심화에도 아파트는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집값을 잡는 것은 간단하다. 무주택자들과 강남이외의 주택소유자들이 담합해서 강남의 집을 사지 않으면 천하의 강남이라도 버틸 방법이 없다. 하지만 담합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 재테크에 대한 이기심 등이 결합한 것일 것이다. 더군다나 실시간으로 주택의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한국만이 갖고 있는 마법의 상자가 사람들을 끊임없이 충동질 한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가 지역에 따라 집값이 수십 배가 차이가 난다. 하지만 우리만큼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실시간 가격 체크 시스템이 성립될 수 없는 구조 때문은 아닐까. 단독주택 중심이기 때문에 가격비교 자체가 쉽지 않다. 미국, 일본의 경우, 주택 통계는 착공이나 착공주택의 판매가격 등을 기준으로 작성한다.
주택도 관광자원이다.
세계적인 관광지라는 나라들을 가보면 과거의 주택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지역이 상당수이다. 일본 교토에서 가장 사랑받는 관광지중 중 하나가 니넨자카, 산넨자카라는 곳이 있다. 교토를 찾은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교토에서 가장 좋았던 곳으로 추천하는 곳이다. 이 지역도 잘 따져보면 사실 별 것 아니다. 오래 되어야 100년 전 정도의 1, 2층 정도의 상점들과 주택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뿐이다. 규모도 200미터 남짓한 거리일 뿐이다. 독일의 하이델베르그 등 세계적인 관광지라고 하는 곳들의 특징 중 하나가 현재와 다른,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굳이 수천 년, 수백 년전일 필요도 없다. 콘크리트로 상징되는 현대적인, 획일적인 건물과 다른, 지역 고유의 모습에 사람들은 쉽게 감동을 받는다. 파리, 로마, 런던, 마드리드의 관광 경쟁력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지역 특유의 전통적인 건물들일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사유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할 정도로 도시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강한 규제를 한다. 똑같은 아파트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파고든 나라는 아무리 생각해도 해괴하다.
아파트 참 편하다. 인류의 발명품 중 참 재미있는 상품이다. 자기 머리위에 수십명이 똑같은 위치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문화도 전통도 없는 국적 불명의 천박한 주거상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한국의 주택시장을 외국과 비교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아파트의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체 주택수가 5389만 가구(2003년 기준, 이중 빈집이 12.2%)로, 우리의 아파트라고 할 수 있는 맨션은 465만7000가구(2004년 말 기준)이다.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공동주택의 비율이 10%도 되지 않는다. 일본도 맨션 공급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2004년에 착공허가를 받은 주택 119만3000가구 중 맨션은 20만 가구에 불과하다. 일본의 맨션이라는 것도 대체로 30~40가구 정도의 소규모 아파트가 상당수. 여전히 단독주택이 주택시장의 메인상품이다.
한국은 주택에 관한한 세계적으로 희귀한 나라이다. 건교부 조사에 따르면 2005년 전국의 주택건설(인허가기준) 총계는 46만3641가구이고 이중 아파트가 41만5511가구이다. 사실상 아파트만 공급되는 독특한 구조이다. 85년 전체 주택 중 단독주택이 77.3%, 아파트가 13.5%였다. 2000년 단독 주택 37.1%, 아파트가 47.7%로 역전됐다. 지금은 아파트의 비율이 5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아파트 이외에 공급되는 주택도 대부분 연립, 다가구, 다세대 주택이다. 이런 공급구조가 수십 년간 더 지속된다면 단독주택은 어쩌면 멸종위기에 처할 지도 모른다.
국토여건이 비교적 비슷한 일본에서 맨션의 비중이 낮은 것은 지진이라는 치명적 약점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우리처럼 아파트에 편중된 공급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홍콩, 싱가포르도 아파트가 많다고 하지만 이는 도시국가라는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다. 인구 밀도가 높은 유럽의 국가들도 한국처럼 시골 구석구석까지 아파트가 파고든 나라는 없다.
한국 아파트의 역사
아파트가 단독주택을 밀어낸 비결은 뭘까. 1932년 서울 충정로의 5층 유림아파트가 처음이라고 한다. 광복 후, 1961년 대한주택공사가 서울 마포지구에 도화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본격적으로 아파트가 공급되기 시작했다. 아파트가 우리의 주거문화로 정착되는 데는 걸림돌이 많았다. 1970년 4월 8일 서울 마포구 와우시민아파트가 붕괴하면서 아파트는 부실공사라는 오명의 대명사였다. 와우아파트 사고로 사망자만 33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부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70년대 들어 도시화가 본격화되면서 서울 인구 집중이 가속화되자 아파트 외에는 대안이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는 비교적 싼값으로, 대량 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급 정책 서민 주택난을 해결하기위해 시영, 주공아파트들이 대량 공급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10~20평대로 중산층용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파트는 틈새 상품 정도였다. 당시 상황에서는 아파트는 서민들의 주택 정도였다. 프랑스의 경우, 서민들을 위한 주택공급을 위해 교외에 임대용 아파트를 대량 공급했다. 최근 이민자들의 폭동도 이민자들로 슬럼화된 교외의 아파트지구에서 발생했다. 한국에서 아파트가 고급주거 수단의 상징이라면 유럽에서는 아파트가 서민주택의 상징인 것이다.
아파트에 대한 인식을 바꾼 것은 70년대 강남 신도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부터이다. 그 상징이 강남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일 것이다. 41개동 총 3529가구로 이뤄진 대단지로 76년~79년 순차적으로 준공됐다.32~80평형으로 당시에는 보기 드문 대형 평형위주의 단지였다. 특히 78년 6월 화제가 됐던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사건으로, 아파트에 대한 인식에 일대 전환이 발생했다.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한다는 것을 한국에 알려준 사건이었다. 아파트가 서민주거 수단에서 중상층 주거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히 강남 개발이 결정적이었다. 아파트 중심으로 건설된 강남은 정부의 강북인구 분산정책으로 추진된 법원, 정부청사, 명문 고등학교 이전 등으로 중산층 중심도시로 발전하는 전기를 맞는다.
재테크, 주거문화의 천박성?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으로 바뀐 원인을 몇 가지로 나눠 분석해 보자.
첫째, 아파트에 편중된 주택 정책의 지속이다. 비좁은 땅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위해서는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공급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이다. 정부는 고도성장기 주택 대량 공급을 하기위해 아파트를 주요 정책으로 채택한 것이다.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을 앞두고 달동네 강제 철거를 통한 아파트 공급이 상징적인 정책이다. 한국의 공공택지는 서울, 수도권은 물론 지방도 모두 아파트 위주이다. 수도권이야 땅값이 비싸서 아파트를 짓는다고 하지만 땅값이 싼 곳까지 아파트를 짓는 것은 일종의 자원의 낭비이고 아파트 맹목주의 일뿐이다.
둘째, 주택은 하나의 문화이다. 전통을 중시하는 유교가 지배하던 양반문화가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한국의 주거문화는 급변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단독주택 문화가 유지되는 것은 주거 전통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독주택에 산다는 것은 번거롭다. 단독주택은 관리 책임이 집주인에게 있다. 단독주택은 잔잔하게 손 볼 게 많다. 넓은 정원이 부럽다고 하지만 잔디를 깎고 정원수를 손질하는 수고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은 물론 일본에도 간단한 집수리에 도움이 되는 페인트, 공구를 파는 대형판매점들이 많다.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집을 수리하고 잔디를 깎는다는 것은 정신적 여유와 전통, 멋, 습관이 어우러져야 한다. 우리는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그런 것을 죄다 상실한 것은 아닐까. 설문조사를 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파트보다는 마당 있는 집에 대한 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여유와 습관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단독주택은 고통이다.
셋째, 아파트 확산의 가장 결정적인 공을 세운 게 아마 돈의 문제, 즉 재테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표준화된 상품이기 때문에 환금성을 갖는다. 마치 주식처럼 000아파트 00평형은 00000원이라는 식의 가격표가 붙은 상품으로 유통된다. 제 각각으로 지어진 단독주택은 표준화된 가격을 가질 수가 없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가격을 책정하기 어렵다. 이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단독주택, 토지도 지역에 따라 아파트보다 훨씬 더 가격이 급등했다. 하지만 표준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비교할 수 있는 가격 정보가 유통이 되지 않는다.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아무리 많이 올라도 1년 사이에 2배를 넘은 곳은 거의 없다. 하지만 개발 호재가 있는 토지는 2배가 아니라 서너배, 10배가 오른 곳도 많다. 더군다나 토지는 사회적 관심을 덜 받다보니 양도세 등 세금부담도 거의 없다. 정부도 재테크적인 측면을 이용했다. 좀더 높은 개발이익, 분양성 확보를 위해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의 공공택지를 아파트로 공급했다.
마법의 상자
정책, 주거 문화, 재테크가 어우러지면서 한국은 세계사적으로 드문 아파트 공화국이 됐다. 한때 소득 2만 달러 시대가 되면 선진국처럼 전원주택, 단독주택이 다시 유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이미 주거문화가 총체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마음은 단독주택이라고 하지만 몸이 아파트에 너무 길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과도한 공급은 뜻하지 않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주택의 증권화 현상이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자신과 이웃의 집(물론 주택의 절반인 아파트)의 가격을 체크 할 수 있는 놀라운 시스템을 갖췄다. 인터넷을 두드리면 저 동네 사는 사람들이 한 달간 얼마나 주택으로 돈을 벌었는지, 나는 부동산 재테크에 얼마나 열등한지를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서로 비교하고 부러워하고 질시하고 안타까워한다. 멀쩡한 사람을 천하의 무능력자로 만든다.
거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래 나도 할 수 있다. 재테크 대열에서 물을 먹을 수 없다” 은행에서 바리바리 돈을 빌려 강남으로 달려간다. 사겠다는 수요가 생기니 집값은 더 오를 수 밖에 없다. 결국 요지의 아파트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자산 격차는 더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사회적 양극화심화에도 아파트는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집값을 잡는 것은 간단하다. 무주택자들과 강남이외의 주택소유자들이 담합해서 강남의 집을 사지 않으면 천하의 강남이라도 버틸 방법이 없다. 하지만 담합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 재테크에 대한 이기심 등이 결합한 것일 것이다. 더군다나 실시간으로 주택의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한국만이 갖고 있는 마법의 상자가 사람들을 끊임없이 충동질 한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가 지역에 따라 집값이 수십 배가 차이가 난다. 하지만 우리만큼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실시간 가격 체크 시스템이 성립될 수 없는 구조 때문은 아닐까. 단독주택 중심이기 때문에 가격비교 자체가 쉽지 않다. 미국, 일본의 경우, 주택 통계는 착공이나 착공주택의 판매가격 등을 기준으로 작성한다.
주택도 관광자원이다.
세계적인 관광지라는 나라들을 가보면 과거의 주택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지역이 상당수이다. 일본 교토에서 가장 사랑받는 관광지중 중 하나가 니넨자카, 산넨자카라는 곳이 있다. 교토를 찾은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교토에서 가장 좋았던 곳으로 추천하는 곳이다. 이 지역도 잘 따져보면 사실 별 것 아니다. 오래 되어야 100년 전 정도의 1, 2층 정도의 상점들과 주택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뿐이다. 규모도 200미터 남짓한 거리일 뿐이다. 독일의 하이델베르그 등 세계적인 관광지라고 하는 곳들의 특징 중 하나가 현재와 다른,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굳이 수천 년, 수백 년전일 필요도 없다. 콘크리트로 상징되는 현대적인, 획일적인 건물과 다른, 지역 고유의 모습에 사람들은 쉽게 감동을 받는다. 파리, 로마, 런던, 마드리드의 관광 경쟁력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지역 특유의 전통적인 건물들일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사유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할 정도로 도시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강한 규제를 한다. 똑같은 아파트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파고든 나라는 아무리 생각해도 해괴하다.
아파트 참 편하다. 인류의 발명품 중 참 재미있는 상품이다. 자기 머리위에 수십명이 똑같은 위치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문화도 전통도 없는 국적 불명의 천박한 주거상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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