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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가정 들여다보니 ▶연구원으로 일하는 42세 ㅇㅇ씨 가족

여행가/허기성 2006. 9. 24. 19:08

경기도 용인시 코오롱그룹 화학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는 이희정(42)씨 가족은 주말이면 아파트 숲 사이에 섬처럼 남아있는 텃밭을 찾는다. "뿌린 만큼 거두는 삶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어서"란다. 아빠가 갈고 고른 10평짜리 밭에는 아들이 물을 줘 기른 상추며 부추.고추.배추 따위가 푸릇푸릇 자라고 있다.

경북 의성의 넉넉지 않은 농가에서 태어난 이씨는 지난 5월 이 텃밭에 반해 용인의 33평짜리 아파트를 샀다. 살던 연립주택을 처분한 돈이 아파트 값의 절반밖에 안 돼 은행 대출을 받아야 했다. 덕분에 330만원 안팎인 월급에서 50만원이 대출 상환에 들어간다. 자동차 할부금 80만원과 보험금 40만원을 제외하면 160만원 정도를 생활비로 쓸 수 있다. 알뜰한 부인 송정미(44)씨도 저축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씨는 1981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안 맞아 고향으로 돌아갔다. 4년간 농사를 짓고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보다 7년 늦게 경북대에 들어가 포항공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일본의 도쿄농공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대기업 부장이나 이사가 될 나이인 그가 아직 과장급인 이유다.

이씨네가 그나마 생활을 꾸려가는 것은 다른 집에 비해 사교육비가 적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는 아들 영로(15)는 늘 전교 10등 안에 들지만 지금껏 과외 한번 받지 않았다. 딸 수빈(11)도 마찬가지. 영어.수학 등은 학교에서 배우는 게 전부다. 이씨는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이런 생각은 대학 3학년 때 결혼해 10여 년간 과외 지도로 생계를 이어본 경험에서 나왔다. "과외 의존도가 높은 학생들은 스스로 연구하고 학습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직장생활에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는 것. 그렇다고 사교육과 담을 쌓고 지내는 것은 아니다. 혼자 배울 수 없는 과목, 특히 예체능은 적극적으로 배우게 한다. 손발이 움직여야 머리 회전도 빨라진다는 생각에서다. 어릴 때 태권도와 수영을 익힌 영로는 요즘 테니스 강습을 받고 있다. 수빈이는 재즈댄스와 피아노를 배운다. 다른 집보다는 적다곤 하지만, 다달이 구독하는 학습지 몇 가지를 포함하면 결국 생활비의 절반이 교육비다. 교육 주관이 뚜렷한 부부지만 딸 수빈이의 학교생활은 늘 신경이 쓰인다. 수빈이는 한글을 깨칠 무렵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가 유치원을 다녔다. 일본어를 익힐 만하자 귀국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언어와 문화 충격이 없을 수 없었다. 이씨는 "일어를 배운 게 좋은 경험인지 모르겠지만, 아이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운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십줄에 들어서면서 부부는 처음 재테크를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올 봄 구입한 아파트 시세가 7000여 만원 오른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다. 이씨는 회사가 무한정 생계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첫 직장인 한 대기업 연구소에 취직하자마자 외환위기가 터졌다. 하루가 멀다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는 동료들을 위한 환송회가 이어졌다. 그도 8개월 만에 그만뒀다. "종자돈도 없는데 별다른 재테크를 생각하기 어렵다. 연구 중인 광 확산판 개발이 잘 돼서 인센티브를 받고, 자동차 할부금 상환이 끝나면 저축을 늘릴 생각"이라고 그는 말했다.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이씨가 만든 가훈이다. 얼핏 무모해 보이지만 살림이 빠듯한 이씨네가 남들보다 여유롭게 살 수 있는 힘이다. 가족은 1년이면 10여 차례 여행을 떠난다. 산행을 곁들인 캠핑을 주로 한다. 서로의 유대감을 높이고 돈은 아끼는 저비용 고효율 휴(休)테크다. 외식을 삼가는 대신 텃밭에서 자란 싱싱한 채소로 식단을 짠다. 부인 송씨는 최근 용인시가 운영하는 시민대학에서 문화유산 해설 과정을 듣고 있다.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을 하고 싶은 욕심에서다. "학생 신분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해서인지 가진 게 많지 않아도 조금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정도"라는 이씨 부부의 바람은 소박하다. 아이들이 독립하기 전까지는 한데 모여 단란하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이씨는 "어린 시절 누나들이 타지로 유학가는 바람에 오래 떨어져 지냈던 게 못내 아쉽기 때문"이라고 했다.